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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K -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건 질문들이었다. 끊임없는 질문들. 어디로 가고 있냐? 너는 누구냐? 왜 혼자지? 여기서 무슨 일을 해야 하죠? 왜 먹지 않나요? 타인이든 자신이든 질문들이 넘친다. 넌 누구냐? 어디로 가는 길이냐? 마이클인가, 마이클 피사기인가, 마이클즈인가...
그의 얼굴 때문에 K는 여자친구들이 없었다. 그는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했다. -p.11
즉 나는 왜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었다. -p.14
그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했고, 어머니와 함께 있는 공간도 얼마간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를 돌보는 게 삶의 이유라고 쉽게 받아 들인다. 혼자 있는 게 편한데 어머니의 고향을 향해 가고, 어머니가 뼈가 되었는데도 어머니를 안고 어머니의 땅으로 향해 간다.
전 지체하고 싶지 않아요. 시간이 없어요. -p.57
나는 지체하고 싶지 않아요.-p.66
왜 그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 어디로 가기에?
나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자신의 인생이 끝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가 의지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그녀의 어머니 또는 그녀의 어머니의 혼이었다. 나에게 그녀는 성인 여자였지만, 그녀는 마음 속으로는 아직도 자기 손을 잡아주고 도와달라며 엄마를 찾는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삶을 알 수는 없지만, 그녀 자신의 어머니도 어린아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끝이 없는 아이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p.154
지체하지 않고 가고 싶던 그곳은 어머니의 고향이었고, 어머니의 고향은 아이들의 집이며, 자신은 그 집안의 아이다. 그가 찾아가고자 했던 곳은 자신의 근원이었고, 그는 그것을 "나는 정원사다"(p.238)라는 외침에 담아 버린다. 그러나 그 무모한 외침은 정원사든 지렁이든 아무 상관도 없다. 그가 지체하지 않고 벗어나고자 했던 도시는 허가증이 없으면 벗어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는 벗어난다. 수용소는 일종의 거주지다. 그곳을 벗어나면 거주지를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벗어난다. 의사의 친절과 보호가 없으면 그는 죽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벗어난다. 왜?
어쩌면 사실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 동시에 모든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모른다. 어쩌면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인지 모른다. 감금당하지 않거나, 문에 보초가 서 있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수용소를 탈출했다. 어쩌면 내가 몸을 낮춘다면, 나는 동정심으로부터도 탈출하게 될 것이다. -p.239
그가 지체하고 싶지 않은 곳은 갇힌 곳이다. 마이클이든 정원사이든 지렁이든 자신이고 싶다. 침대와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을 규제한다면 거부하겠다. 굶어죽어도. 그러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글쎄다. 그저 지금은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 누구의 제재 없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몸을 더 낮춘다면 동정심으로부터도 탈출할 수 있다. 몸을 더 낮추자....펌프에 물이 없다면 찻숟가락으로 물을 퍼올린다 할지라도 자신의 정원을 가꾸겠다고(p.241). 그래서 탈출한 그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전쟁 속에 있는 게 아닙니다."-p.183
그는 밤새도록 걸었다.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때로는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에 전율감마저 느껴졌다. -p.129
그는 자유로움 속에 있다. 군의관의 말처럼 "단순한 환자 또는 전쟁의 희생자 또는 희생의 피라미드를 구축하는 단순한 벽돌 이상의 존재"(p.217)다. 그런 존재라고 누가 규정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를 내버려두세요. 그를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은 그의 허약함, 그의 병, 그의 고통, 닥칠지 모르는 그의 죽음...그가 그의 고통보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더 두려워했다는 걸 군의관이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군의관도 갇혀 있다. 수용소, 환자, 전쟁 속에. 갇혀 있는 것을 자각하기만 하면 보인다. 자각한 후 군의관이 한 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의 정원에 관한 얘기를 할게요. 사막의 한복판에서 꽃을 피우고 생명의 음식을 생산하는 신성하고 매혹적인 정원의 의미에 대해서 당신에게 얘기해줄게요. 당신이 지금 향하고 있는 정원은 어느 곳에도 없고, 수용소 안을 제외한 어디에나 있어요. 마이클즈, 그것은 당신이 속해 있고, 집이 없다고 느끼지 않을 유일한 장소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에요. 그것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아요. 단순한 길로는 그곳에 갈 수도 없어요. 당신만이 그 길을 알 뿐이에요."-p.220
군의관의 말은 군의관의 말일 뿐.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당신들이 깨웠던 거요. 그게 전부요."-p.162
그게 전부다.
읽는 내내 그가 흑인이고, 입술이 기형이며, 35kg의 약골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 버렸다. 그저 잠이 많구나. 삶과 죽음에서조차 갇혀 있지 않으려는 걸까? 그저 잠이 많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는 동정심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니까. 내가 그를 어떻게 말하든 그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문득 궁금해진다. 마이클,
당신이 그처럼 눈을 크게 뜰 때, 당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