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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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의 문명 사회를 떠나는 것에 대해 진지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당신 친구들이 속해 있는 이 사회가 그립지 않겠느냐고. 당신의 대답은 매우 단호하고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니오, 난 아무 것도 동경하지 않습니다."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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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9-2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맘때부터 늦가을까지 이 책을 곁에 두면 딱 좋을듯 싶어요
콩고드 강, 어둠 속을 뚫고 배를 띄워
한 밤 홀연히 유영하고 돌아오는 물 소리가 들립니다.
이누아님은 제게 당단풍나무에요

이누아 2006-09-28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이 책의 주인공 같아요. 우연히 길가에서 만나도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같은 류의 나무라면. 기분 좋아요. 님과 같은 나무라니. 우리 사이좋은 나무가 돼요. 물소리...운문사 아래 계곡은 출입금지 구역인데 전 그 아래 오래 앉아 있었어요. 물소리가 햇살 때문에 차게 들리지 않았지요. 헤세 이야기를 해서 그럴까요? 헤세의 [싯탈타]에 나오는 뱃사공 봐즈디바 생각이 나요.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 님과 나무와 물소리와 봐즈디바가 오버랩...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는 기침이 지나쳤다.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졌다. 신랑이 가져온 약이 독한가 보다. 약을 먹었더니 조용해졌다. 이제 생강차 대신 쑥차를 마신다. 지나친 기침 탓에 몸에 힘이 좀 없다. 거실에 비스듬이 눕는다. 햇살이 길게 늘어져 거실에 가득 찬다. 큰언니가 포항에서 2층에 전세를 살던 집은 옥상 가득 햇살이 들었다. 언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나서 아이의 신발이 옥상 마당에 굴러 다니는 걸 보면서 이 행복이, 평온이 깨어질까봐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문득 그 말이 떠오른다. 평온, 평온하다, 지금.

이렇게 햇살과 함께 늘어져 베란다의 나무와 그 너머의 산을 본다. 집을 참 잘 구하였다. 아무 두려움 없이, 조건 없이, 의미 따윈 생각지도 않고 아무 때고 사랑해,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사랑해.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보니 아이들이 작은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있다. 놀이터에는 큰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눈을 조금만 들면 공사장이다. 늘 시끄럽다고만 했었는데 포크레인과 굴착기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니 생각보다 재미있다. 앞 도로로 경찰차가 천천히 모퉁이를 돈다. 어린 남자 애기들은 어쩌다 포크레인이나 경찰차 같은 장난감들을 좋아하게 된 걸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말이다. 잠시 아이가 되어 볼까?

아, 햇살이 깊이 들어온 것은 이제 이별할 때라는 것이군. 안녕, 햇살. 

쑥차향이 좋다. 한번 더 우려도 되겠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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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9-24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침이 심한가 보군요. 우리 아이들 어릴때 기침이 오래도록 멎지 않으면 살구씨 기름을 먹이곤 했어요. 약은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독할까봐......살구씨 기름이 기침에 좋다더군요. 재래 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저 또한 오늘 하루 아주 평온하고 고요합니다. 뒹굴뒹굴 하루를 게으르게 편안하게 보내는 중입니다.^^

이누아 2006-09-25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력한 약 덕분에 많이 나았어요. 살구씨 기름이야기는 처음 들어요. 좀 나으면 하나 사다 두면 좋겠어요. 전 감기가 걸리면 기침 감기가 주로 걸리거든요. 고마워요. 내일 아침은 기온이 아주 낮을 거라고 하네요.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이제 텔레비전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을 봐도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 놀라워라.

나는 술 마시기를 무척 즐겼는데 나랑 그렇게 마셔 댔던 사람들도 내가 몹시 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술을 무척 좋아했다. 몸 때문에, 다른 이유 때문에 술을 자제하려고 애를 썼었다. 그런 내가 비가 와도 술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제 이어진 나와 술의 끈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했던 아련한 연인을 기억하듯 술을 기억한다.

오늘, 술을 한잔 했다. 왈로에게 말했던 고량주 두 잔 이후로. 이렇게 언제 술을 마셨는지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가끔 술을 마신다. 오늘은 큰아주버님 댁에서 저녁식사가 있었다. 시댁에서 유일하게 술을 잘 드시는 큰아주버님께서 와인을 주시더니 양주를 주신다. 앉아 있어도 못 걸을 것 같다. 히, 그래도 여전히 맛있군.

미스코리아들이 이렇다고 한다. 너무 웃어서 얼굴에 경련이 날 것 같다고. 지금 내가 그렇다.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 걸까? 편한 자리가 아니었는데도 편하게 술을 마셨다. 편하다는 건 참 좋구나.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도 춤을 춘다. 춤추는 손가락과 경련이 날 것 같은 얼굴. 웃고 있다.

오늘 저녁, 술을 마셨다. 지금 약간 취했고, 약간 즐겁다. 술은 아직도 기념할 만한 것일까? 이 밤에,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 술 이야기를 하고야 만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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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의 지혜 -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마음의 힘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진우기 옮김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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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속에 드넓고 고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허공처럼 걸림 없고 지극히 고요한 그곳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길을 헤맨다.

존재의 심연에 있는 나의 자아는 고요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나 형상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이다.  -p.13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저자가 쓴 두 번째 책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가 산문적이고, 설명적이라면 이 책은 시적이다. 의심이 없고, 마음이 맑은 사람이야 시를 읽어도 전율하겠지만 생각이 많은 사람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고요함이 뭐야? 자아라고? 더 깊은 차원이라니? 라는 글자를 따라 다니는 의문에서 어떻게 하면 고요함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을까? 하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궁금해질 수도 있으리라. 이런 물음표들을 조금 적게 하려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생각과 의심이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뤄진 책이고, 구체적인 방법 역시 제시되어 있다. 사람마다 그 방법이 구체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책을 읽고나면 이 책이 훨씬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 글의 나는 "물 위에 번지다가 사라지는 파문처럼 순간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p.37)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제외한 과거와 미래, 생각과 염려는 내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들일 뿐이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저자가 말하는 고요와 나의 실체는 과거와 미래로 가득찬 생각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각하는 순간, 사라진다.

작은 언니가 사라진 지 일년이 훨씬 지났지만 슬픔이 흥건했다. 그렇다고 우울한 건 아니었다. 그저 슬펐다. 허전하고 슬픈 것, 하루에 그저 잠깐 동안이지만 매일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어느날, 몸살이 나서 누워 있었다. 혼자 아파 누워 있는데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는 것이 인식되었다. 어, 슬픔들은 다 어디로 갔지? 하고 고개를 들었다. 구름처럼 몰려다니던 슬픔들이 나를 비껴갔다. 구름처럼 몰려다니는...이 표현은 기형도의 어느 시에서 인용해서 생각들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했었다. 슬픔은 그렇지 않은 줄 알았다. 내 몸 어디에서 꼬물거리며 차올라오는 줄 알았다. 심장을 짜서 즙을 내듯 가슴이 아프다가 눈물이 쏟아지는 줄 알았다. 그것들이 이렇게 밖에서 몰려다니다니...그렇게 왜 슬픔이 오지 않나 쳐다 보고 있으니 슬픔이 내게서 가 버렸다. 이 책에 비슷한 구절이 있다.

나는 '권태로운 사람'이 나의 본모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권태는 다만 나의 내부 에너지가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슬픈 사람은 내가 아니다. 두려운 사람은 내가 아니다. 권태.분노.슬픔.공포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지표이며, 늘 가고 오는 것이다. 가고 오는 것은 그 무엇도 내가 아니다. -p.29

자각만으로도 충분하다. 왜 이런 자각이 어려웠던 것일까? 악착같이 에고가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고의 특성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지만 에고는 문제를 일으킨다. 쟤는 나보다 키가 커, 그래서 속상해, 키를 키워야 겠어...키라는 문제를 일으킨다. 에고가 나타나서 쫑알거리지만 않으면 문제될 게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몸이 약하다'를 에고는 '몸이 약한 나'로 바꿔 놓는다. 겉으로는 몸이 약한 사실을 문제로 삼아 개선시키려고 하지만 실상은 몸이 약하다는 사실이 나의 일부이므로 이것을 놓칠 수 없게 한다. 이걸 놓치면 나를 잃게 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에고는 이렇게 단정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딱딱하다. 선방에서조차 저 사람보다 방석에 더 오래 앉아 있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고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고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을 그대로 두어라. 그것으로 충분하다.-p.75

에고...늘 고요 속에 있는 것은 아닌데도 붙잡고 있던 허깨비의 실체를 본 탓일까,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한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고요함 속에는 이렇게 기쁨이 넘실거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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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9-1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것보다는 때로는 듬성듬성 뛰어넘는 글들이 와닿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공백을 내 마음으로 내면적으로 넘는 과정을 만들어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언어적 인플레와 거품을 걷어내면
고요함과 이 순간 등등의 단어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모르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고요함 그 자체가 된다는 말이 고요함의 표현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말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모든 책이 그러하듯...
내적인 과정이 글을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 껍데기일 뿐이겠지요..
말과 글의 인플레에 익숙해진 제가 이 책이 주는 생략에 조금 마음을 더 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혜덕화 2006-09-1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때로 온 세상이 고요함을 온 몸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삼천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이거나, 혹은 장을 봐오는 저녁 시간 쯤에 거리의 소음과는 전현 상관없이 느껴지는 고요함. 그 틈에서 찰나적이지만 존재의 고요함을 느낍니다. <틈>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아주 짧은 순간들, 1초도 되지않는 그 고요가 사실은 몇년, 몇십년의 분주함을 뛰어넘는 우주적인 진리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벌써 1년이 되었군요. 아마 이 세상 어딘가에서 다른 몸 받아 유복하게 건강하게 살고 있겠죠?^^

이누아 2006-09-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혜덕화님, 그 틈이 제게는 늘 서늘했었는데 요즘은 평온하게 느껴져요.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x자가 들어간 걸 보면 추리소설인가? 무슨 종류의 소설인지 모르지만 내가 읽는 속도로 봐선 추리소설이다. 32편의 마이리뷰가 있다. 이달에 나온 책인데 인기가 좋은 책인가 보다. 리뷰를 안 쓰려다가 달팽이님이 어느 댓글에 적은 불협화음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한 여자가 있다. 전남편이 괴롭힌다. 전남편을 죽인다. 옆집 남자가 나타나 살인사건을 은폐해 준다. 옆집 남자(수학 선생)와 그 친구(물리 교수)의 두뇌싸움 같은 인상을 주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아마 그 장면들이 이 책의 재미이리라. 그러나 나는 한 여자와 옆집 남자 이야기만 하련다.  

옆집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한다.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라도, 공범이 되어서라도, 아니 그 이상이 되어서라도 그 여자를 보호하고 싶다. 그 여자도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다. 기분이 좋다. 무언가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그 여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러나 그 여자는 생각한다. 저 남자는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도왔다.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싫어할 것이다.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나는 남자를 만나면 안 되는 건 아닌가? 그건 전남편에서 옆집 남자로, 사람만 달라졌지 구속은 똑같다. 고맙기는 하지만 옆집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이 사건으로 나를 구속할까 두렵다.

이런 옆집 남자의 마음과 모든 의도를 간파한 물리학자 친구는 왜 친구의 의도대로 모른 척 해주지 못했을까? 그 여자에게 옆집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 여자가 마지막에 그를 찾아간 것은 옆집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너무 큰 빚이었기 때문이다. 애정 때문은 아니었다. 그 빚을 지고도 살아가려 했으나 딸이 먼저 무거워 쓰러지려고 해서 하는수없이 간 것이다.

한 인간의 사랑-그것이 어떤 류의 것이든-이 다른 인간에게 가 닿았을 때 허무하게 부서지는 걸 보는 것 같다. 그 여자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남자가 과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관계는 바짝 조아서 소리가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는 악기 같다. 조금만 잘못 연주하면 줄이 탱-하고 끊어질 것만 같은.

이들이 어떻게 해야 좋은 화음을 내겠는가 하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불협화음이란 단어가 이 글을 읽힌 후 꽂혀서 그 두 사람을 클로즈업해 주었을 뿐이다. 쓰고나니 이 책의 리뷰로 어울리지 않는 글이다. 언제 어울리는 글만 썼던가. 오랜만에 읽는 추리소설이었다. 조금 재미있고, 조금 씁쓸하고, 조금 황당했다. 그리고 나는 옆집 남자가 어떻게 사건을 은폐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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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3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뻔한 트릭이었죠. 원래 짝사랑이 그런 거지 싶네요. 사실 전 물리학자가 불협화음이었어요 ㅡㅡ;;;

이누아 2006-08-3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기 전에 물만두님의 리뷰를 찾아 읽었어요. 물리학자가 없었으면 글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는 몰라도 그가 등장인물 중 가장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면에서는 정말 물리학자가 불협화음인 셈이네요. 너무 뻔했다구요? 저처럼 추리소설을 20년만에 읽는 사람에겐 뻔할 뻔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