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자경문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쓰신 "계초심학인문"(戒初心學人文)과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원효 스님의 제자인 야운 비구의 "자경문"(自警文)이라는 세 글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주로 계를 받기 전 행자나 사미나 사미니 스님들이 이 글을 배운다. 이 글을 다 배워 익혀야만 강원에 갈 수도 있다. 출가자 위주의 서적이라 해도 무방하지만 출가자나 재가자나 진리를 구하는 한 마음이 일어나는 그때가 "초심"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초발심자경문을 한 글자 한 글자 익히고자 한다면 혜국 스님의 강의는 적절하지 않다. 스님의 강의는 매월 초하루 법문이 이어진 것이고, 대중을 위한 것이라 시주자에게 보시물을 받을 때의 스님들의 자세 등 출가자에게만 해당하는 부분은 건너 뛰고 주로 재가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해서 강의를 하신다. 더구나 자경문 강의는 이루어져 있지 않다. 초발심자경문이 대강 어떤 글인가 가볍게 알고 싶다면 그냥 들어도 좋고, 아니면 스스로 서적을 통해 온전히 익힌 다음 강의를 들어도 좋을 듯 싶다.

강의의 첫부분...처음 마음의 사람(初心之人)은 반드시 이제 막 불문에 들어온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구해야 겠다는 마음이 이는 그 순간은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불교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처음 마음을 일으키는 그 사람인 것이다. 악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선한 벗을 가까이 하라는 것은  외부의 사람이나 대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생각이 곧 악한 벗이라고...

스님도 나처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원효 스님이 파계하고 아무렇게나 지내셨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글에서 그분이 고행을 통해 구도했음을 알 수 있다.

"메아리 울리는 바위동굴로 염불법당 도량삼고 슬피우는 기러기 울음으로 마음 기쁜 벗을 삼아 예불 참선에 무릎이 얼더라도 불기운 그리지 않고 주린 배 창자가 끊어지는듯 해도 먹거리 찾을 생각 내지 말지니 눈 깜짝새에 백년세월 가는 데 어찌 배우지 않을 것이며 일생이 얼마나 되기에 닦지 않고 방일하겠는가"

 읽어도 읽어도 좋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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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 기본예절 불교신행총서 14
일타 / 효림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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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다 보면 일주문부터 반배를 하는 사람, 탑에 반배하는 사람, 안하는 사람 등등 일반 불교대학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절에 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떤 것이 절집에서의 적절한 행위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침서가 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절집 안에서의 행동을 반성하는 계기를 준다. 어떻게 걸을 것인가, 앉을 것인가, 인사할 것인가...사실 사찰에서의 특수한 경우에 대한 설명도 많지만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내게는 더 와 닿는다. 걷고, 앉는 일상적 행위는 굳이 사찰 내에서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늘 깨어있어 행위하거나 사고하는 나 자신을 자각할 수 있게 한다. 마치 위빠사나 명상처럼.

물론 일타 스님의 책에는 또 재미있는 일화들이 가득하다. 아주 금방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자다. 적은 시간으로 일상의 움직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절하는 방법이나 대상, 참선자세 등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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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이야기 - 불교신행총서 5 불교신행총서 5
일타 지음 / 효림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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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보살계를 받았지만 정식으로 오계를 받지는 않았는데 저번 달에 오계를 받았다. 받고나니 마음에 부담만 가득했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로 구성된 오계 중에 첫번째 계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막막했다. 살생의 범위는 너무나 광대해서 채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 이른다. 오계를 받은 재가 불자들은 어떻게 이를 실천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이런 의문에 대해 이 책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출가자에게는 엄격하게, 재가자에게는 다소 느슨하게 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면 불음주의 경우, 실제 계에서는 "취하지 마라"는 의미가 강하므로 재가자가 어쩔수없이 마시는 것은 가능하지만 출가자의 경우 예외없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살생이나 도둑질, 삿된 음행이나 거짓말은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 것이지만 음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음주는 나머지 4가지의 잘못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5계 중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5계는 아주 간단하지만 일타 스님의 여러 가지 옛날 이야기(?)처럼 들려주시는 실례들은 계를 지켜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언젠가 계를 지키는 것은 구속이 아니라 떳떳함을 부여하는 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처를 스승으로 삼고, 부처인 자신을 발견하는 길을 가겠다는 다짐에 떳떳함과 용기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오계가 내 삶에서 자유로 가는 훌륭한 계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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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은 매우 짧다. 그런데도 아주 심오해서 반야심경에 관한 책은 엄청나다. 짧지만 말하자면 긴 이 경전에 대한 강의인데 겨우 테잎 4개다. 아무래도 혜국 스님이 시간에 쫓겨가며 강의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

불교철학과 교리가 곳곳에 숨어 있어 역시 쉽게 강의가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쉽게 해보려고 하시지만 기본적인 용어인 오온과 연기 등에 관한 설명은 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쉽게 설명하시려고 애쓰시다 보니 강의가 좀 매끄럽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스님은 글로만 경전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읽으신다는 느낌이 든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를 해석하신 것은 이제까지 읽었던 해석들과는 달랐다. 時를 앞 문장에 붙여서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로 주로 해석을 했는데 스님은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셨다. 이때에"로 해석을 하셨다. 즉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때에 오온이 공함을 비추신 것이 아니고, 행하는 행위는 이미 완성되었고, 그리고 때에 오온이 공함을...로 보신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이 심경강의의 결론 역시 화두참선이다.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증득하는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이르면 수행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화가 나는 걸 참기가 쉽지 않고, 억울한 일을 잊어버리고 싶은데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기도나 참선은 하는 동안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참아지고 잊어버려진다. 한번은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 있었는데 집에 와서 "옴마니반메훔"을 만 번을 하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던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한 적이 있다. 평소 같으면 적어도 일주일은 끙끙거릴 일이었는데 말이다.

짧고 읽기 좋으며, 공부를 하자고 보면 무궁무진한 이 경전을 수행수단 삼아도 좋으리라. 언젠가 매일 반야심경 100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컵이 깨져도 이유가 있게 느껴져서 마음이 상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법문 감사합니다. 혜국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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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4-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되려 감사합니다.(--)(__)

비발~* 2004-04-1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는 없군요. 천수경 천수신앙 한종뿐...ㅜㅜ

이누아 2004-04-1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시아문(http://www.yosiamun.com/)에서 알라딘에 비치되지 못한 불교서적과 법문테잎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알라딘처럼 일상적인 할인은 없고 적은 수의 서적만이 상설할인코너에 있습니다. 대구에는 불교전문서적이 있는데 서울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조계사 근처에서 불교용품점이 많은 것을 보기는 했는데...

이누아 2004-04-1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모 속의 사진이 바뀌었군요. "비 냄새가 다 비를 몰고 오진 않는다"...애벌레군요. 애벌레가 모두 날개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 환한 애벌레는 날 수 있겠지요?

비발~* 2004-04-2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시아문, 즐겨찾기 해놓았습니다. 감사... 사실 조계사가 가까워 맘만 먹으면 자료 구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워낙 한 방콕 하는지라... 실은 정성이 부족한 것이겠지요. 풀쐐기가 길을 건너네... 어느 외국 시인의 시인데, 이따금 그 시를 생각한답니다. 인간을 포함해 미물이 산다는 것... 비천과 숭고는 한짝일지도... ^^
 


 

 

 불자들 사이에서 천수경과 반야심경만큼 많이 읽히는 경전은 아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도 장장 6개월이나 걸려 겨우 천수경을 외운 터다. 분량도 한 15분이면 읽을 수 있고, 감사나 참회, 발원기도도 함께 있어 읽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불교에 관한 서적들을 조금씩 읽으면서 천수경을 다시 보게 되게 되었다. 

무언가를 외우고 있는 것은 참 편리한 일이다. 책을 들여다 보지 않고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청소를 하면서, 빨래를 개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들을 수가 있다. 혜국 스님도 쉽고 재미있게 강의를 하셔서 그렇게 들어도 무리가 없었다.

전문강의가 아닌 법문이다 보니, 시간제약도 있고 해서 그런지 천수경 자체의 구절 하나하나에 대해 다 설명하신 것은 아니고 스님이 꼭 불자들이 들었으면 하시는 내용을 중심으로 강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천수경의 본래 제목인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계청" (수없이 많은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넓고 크며 원만하여 장애가 없는 큰 자비심으로 대다라니를 열어 주실 것을 청합니다)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천수경의 핵심은 "신묘장구대다라니"이다. 일부러 해석을 하지 않고 신묘한 것으로 두고 읽는 것인데, 예전에 이것을 해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거의 모두가 부처님들을 찬탄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혜국 스님은 대다라니는 해석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로지 그 신묘하고 알지 못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화두참선과도 다르지 않는 무엇이라고 하셨다.

평소에도 잘 읽는 경전이지만 혜국 스님의 말씀을 듣고는 아주 편하고, 자신있게 독송을 권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경을 읽는 것과 염불이나 진언, 참선 등 이 모든 수행법이 결국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스님 말씀을 정좌하고 듣지 않고 집안 일을 하면서 듣는 것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잡념도 없애주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나 저절로 들여다 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좋은 법문을 일하면서 듣는 것도 퍽 괜찮은 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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