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민족사 불교경전 1
불전간행회 엮음 / 민족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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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민족사의 작은 경전 시리즈의 [화엄경]과 같은 내용의 책이다. 작은 경전의 책이 작아서 휴대하기에는 좋지만 글씨가 작아 집에서 읽기에 불편한 점이 있다. 보통 이 불교경전 시리즈의 책들이 팔리어를 번역한 것이 많은 데 비해 이 책은 중국 동진 시대의 고승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60권 본 화엄경을 축역한 것이다.  80권 화엄경이나 티벳본 등 각기 조금씩 다른 화엄경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0권 화엄경을 주로 본다고 한다.

예전에 한문으로 된 화엄경을 사볼까 하고 서점에 갔다가 그 방대한 분량에 눌러 그냥 돌아온 적이 있어 무비 스님이 완역하신 책이 있다는 걸 얼마전 알았지만 축약본으로 된 이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대승경전은 반복되는 말이 많고, 좀 지루한 감이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줄여 놓으니 읽기 편하고, 책장도 잘 넘어갔다. 

축약되었다고 해도 본 내용을 다 모르는 나로서는 아쉬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입법계품'에 이르자 생각이 바뀌었다. 선재동자가 보살들을 만날 때 '만나는 인사'는 있고 '헤어지는 인사'가 없다. 찬탄과 시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을 다 기록할 공간이 없어 몽땅 생략되어 있었다. 이 경전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조금씩 줄여져 있긴 하지만 화엄경은 워낙 긴 글이라 줄여 놓으니 표시가 너무 많이 나는 듯.

화엄경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 책도 무난하고, 또 방대한 화엄경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주니 감사한 책이다. 책에는 인연과 시절이 따로 있어서 예전에 지루하게 느껴졌던 대승경전이 이번에 보니 지루한 줄 몰랐다. 축약본인 이 책이 용기를 주어 다음엔 완역본을, 그 다음엔...그 다음에 생각하자.    

이제 대승경전과도 인연이 된 까닭일까? 화엄경을 읽고 있으면 명상 상태가 되는 것 같았다. 예전에 황당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글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화면을 만들어내고, 가슴을 환하게 한다. 경전은 아무래도 글이라기보다 기도에 가깝고, 이 경전은 명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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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노래

                                   김재진  



지나간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시절을 생각한다.
뜨거웠던 자들이 식어가는 계절에
지나간 노래에 묻어 있는
안개빛을 만나는 것은 아프다.
너무 빨리 늙어가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 보다
아프다.
누군가 나를 만나며 아파야 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지나간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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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4-2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안부 

                                    김시천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럴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깨우치며 산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오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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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자전](감산 지음. 대성 옮김, 여시아문, 200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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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고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많이 걱정하셨지요?"

어머니가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야 정해져 있지. 나 자신도 걱정하지 않는데 자네를 왜 걱정하겠나..."..."자네는 도로써 몸을 잘 가누시고, 내 걱정은 하지 마시게. 이번에도 자네와 오래 헤어지게 되었네. 기쁜 마음으로 가시고, 뒤를 돌아보지 마시게."

나는 천하의 어머니들이 이와 같은 사람이라면, 어찌 단박에 '죽고 사는 마음'을 다하지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위해 이러한 명(銘)을 지었다.

어머니와 자식의 정은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듯 하지만

타고난 묘한 성품은 본래 그대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네.

내가 우리 어머니를 보니, 나무에서 불이 나온 것 같아서

나무는 이미 타 버렸지만 불에는 본래 '나'가 없다네.

살아서도 그리워하지 않고, 죽어서도 모르는 척하시니

이제야 내 몸뚱이야말로 석녀가 낳은 것임을 알겠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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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은 마음이고 분별 없는 것이 지혜이다. 마음에 의지하면 물들게 되고, 지혜에 의지하면 깨끗해진다. 물들면 생사에 윤회하고, 깨끗하면 여러 부처님조차 없다.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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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나고 죽는 일이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은 금방 닥쳐옵니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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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4-24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산 스님 저작 벌써 저도 찾아놓았는데, 이렇게 리스트도 만들어주시다니! 찜합니다~

이누아 2004-04-2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더 알찼을텐데...이런 생각도 들지만 다 읽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리스트부터 먼저 만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없이 기쁩니다.
 
감산자전
감산 지음, 대성 옮김 / 여시아문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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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 스님이 해설하신 중용을 읽고는 이 스님이 쓰신 책 중 번역된 책들을 죄다 찾아서 사 두었다. 하나씩 읽을 생각이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든 것이 이 책이다. 어느 제자가 스님의 자서전을 청하였더니 금방 써서 주셨다고 한다.

주로 사건 중심으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곳곳에 스님의 체험 등이 엿보인다. 참선을 해도 금방 깨치시고, 글을 배우실 때는 책을 완전히 외우시는 데 별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아, 그러니 이 사람은 천재로구나 하고 나와 관계 없는 사람인양 쳐다볼 뻔 하였다. 그런데 그 어머니를 보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그의 어머니는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염하는 분으로 아들의 출가를 막지 않으셨고, 출가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들이 귀양을 갔을 때에도 '나도 생사에 집착하지 않는데 너의 생사를 걱정하랴'고 위로하신다. 참으로 그 어머니가 생사의 큰 일을 해결한 분이 아닌가 싶다. 그런 어머니 아래 태어나 어려서 출가하여 대중을 교화함에 위로는 왕실과 아래로는 불교를 모르는 바닷가 사람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바가 없고, 홀로 수행함에 그 경계가 범인이 이를 수가 없었다. 출생부터 그런 어머니를 만난 인연을 보건대 전생의 수행함이 이미 이 경지에 이르러 사람몸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사람이 천재니 나와 다르다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밥 먹듯이 물 마시듯이 묵묵히 수행하다 보면 아 그 사람의 경계가 그러했구나 할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오히려 생긴다.

깨달아도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 업은 업대로 가고 깨달음은 깨달음대로 간다. 깨친 후에도 귀양을 다니고 무고를 당함을 보니 그러하다. 깨달음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것이요, 자신이 누구인지 보고자 하는 것이요, 바른 견해를 갖고자 하는 것이리라.

누가 내게 자서전을 써보라 한다면 오늘 내게 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오늘 수행한 이야기가 내일의 글이 될 수 있을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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