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전 우울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몸이 아프려고 우울했던 모양이다.

목 뒤가 부었다. 머리 바로 아래에 종기처럼 뭔가 단단한 것이 생겼다. 벌써 2주가 넘었다. 목을 앞으로 숙이면 아프다. 그래도 심하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제 갓바위에 갔다오고 나서는 어릴 적 볼치기할 때처럼 아팠다. 볼치기할 때 울었던 것처럼 울었다.

오늘 아침 병원에 갔다. 남편이 절대 수술을 하지 말고 통증을 줄이는 약만 받아오라고 했다. 종기라면 수술을 권할 것이다. 의사는 보통 종기와 다른 것 같다고 한다. 종기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고, 밖에서 보면 표시가 나는데 내 것은 만져봐야 알 수 있다고. 어쩌면 임파선 계통일 수 있다고, 이틀 후에 다시 보자고 한다. 약을 이틀치를 받아왔다. 바보 같이. 월요일엔 제사가 있는데 병원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종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전했다. 조금 예상은 했다고.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임파선 결절은 그렇게 통증이 심하지 않아서 좀 헷갈린다고. 기다려보자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기도를 너무 열심히 한(찔린다. 뭐 그렇게까지 열심히는 아니지만) 탓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다. 아파도 감사한 생각이 든다. 요즘 한창 참회기도중인데, 아픈 것도 참으면 죄의식과 자책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사이비교주들이 신도들에게 주로 심어놓는 것들인데...나는 스스로 사이비교주가 되고, 신도가 되었단 말인가? 어쨌든 아픈 것이 억울하지 않고 감사한 것은 정신건강에는 나쁘지 않은 듯.

그래도 약을 먹었다. 사이비교주 아래 있는 신도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현실적이다. 내일 결혼식과 모레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오늘 통증을 줄여야만 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한약과 병원에서 가져온 양약을 30분 간격을 두고 모두 먹을 참이다.

남편은 당분간 절을 하거나 참선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한다. 목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그래도 어제도 못했는데 좌선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약을 먹어 그런지 훨씬 덜 아픈데...

아침부터 병원 다녀오느라 너무 긴장했다. 일단 좀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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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0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것이 과하면 아니 함만 못하다고 하니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행복한여행자 2004-05-1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 마세요. 뭐,, 아프고 안아프고가 내 뜻대로 되는건 아니지만, 마음가짐이 중요한거 같아요. 마음공부 너무나 열심히 하시는 님께 많은 자극받고 반성하게 되네요.. 아마 내공의 힘으로 별탈없이 쾌차 하실겁니다.

이누아 2004-05-1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쾌차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받아온 항생제를 이틀 먹고는 설사를 해서 항생제를 받으러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나았습니다. 목 뒤편의 혹(?)도 점점 작아지고 있고, 이젠 꾹꾹 눌러도 아프지 않습니다. 마음 편하게 가지고, 아프지 않을 생각입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갓바위에 연등이 걸렸다. 밤에 오면 예쁘겠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에서는 연등을 단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준비의 처음은 그전 연등을 찢는 일이다. 다 찢어서 버린 다음 다시 연등을 만든다. 어찌보면 참 낭비다. 그럴 돈으로 불쌍한 사람이나 도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멀쩡한 것을 찢음으로써 마음의 집착을 끊고, 꽃잎 한장한장 붙임으로써 정성을, 불을 밝힘으로써 마음 속의 광명과 희망을 켠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러고나면 이웃이 더 잘 보인다.

언젠가 포교당에서 앞에서 목탁을 들고, 예불을 집전한 적이 있다.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앞에 앉아서 기도했기 때문일까? 평소에는 불특정한 중생들이나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기도했는데, 그날은 포교당에 앉아 있는 모든 신도를 위해 기도했다. 저절로 그런 마음이 솟아났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모두인 것 같았다.

등불은 언제나 그런 상징이다. 자신이면서 모두인. 빛은 혼자서만 몰래 감추어 가질 수 없는 것이므로. 예전에 민방위 훈련(?)을 하면 소등을 하게 했는데 그때 담요를 덮어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금방 들켰다. 그렇게 빛은 감추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 안에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것은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연등을 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마음에 등불이 있어 감출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미 켜졌던 등불의 공덕은 모두 잊고, 늘 새로운 등불을 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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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0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도 하면서 몇번 헤아리지 마라고 하더군요... 잘은 모르지만 열심히 마음을 비우러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남편과 같이 밥상마주놓고 사경하면서도 모르지만 내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이누아 2004-05-02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경을 하시는군요? 저는 몇 번 시도했는데, 이상하게 사경은 잘 못하겠더라구요. 때가 되면 사경도 할 수 있겠지요. 금강경과 법화경을 사경하려고 책만 사두고 내내 펼치지 못했는데...수행은 쉼없이 하는 것이 중요한 듯. 성불합시다!!!
 

갓바위에 다녀오는 길에 친구집에 들렀다. 친구 집은 갓바위와 가깝다.

친구는 차량자원봉사를 지원했는데 맺어진 환자가 젊은 아줌마다. 아이를 낳다가 뇌졸중이 되어 누운지 3년. 아줌마는 누워 있다. 기저기를 차고. 만 3살짜리 아이는 24시간 탁아방에 있고, 이 아줌마를 돌봐주러 오는 아줌마가 있다. 남편은 직장이 멀다.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온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이 아줌마의 병원비와 이 아줌마를 돌보는 간병인과 아이의 탁아방에 들어간다. 남는 것은 없겠다.

친구는 생각했다. 이 아줌마가 정부지원을 받아 요양원에 가 있으면 이 아줌마의 남편과 아이는 살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란 걸 가지고. 아이가 언제까지 탁아소에서만 있을 수는 없을테니. 차라리 아이를 데려와서 동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조금씩 도우면 낫지 않을까? 하루종일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이 아줌마도 요양원이 더 편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남편도 덜 지치겠지?

그래서 친구는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했다. 이런 환자가 있는데 요양원 같은 곳에 보낼 수 없느냐고. 복지과에서 대답하길 기초생활대상자여야만 한다고. 아니면 100만 원도 넘는 병원비를 몽땅 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집안은 언제나 어둡고, 기저기를 찬 탓인지 냄새가 난다. 그런 집에서 마냥 누워 있는 아줌마와 그런 집에 들어와서 나가야 하는 아저씨. 만날 수 없는 아이. 그집 아저씨는 고아였다고 한다. 아이를 위해서 아내를 버리지는 않겠지? 어쨌든 그 아저씨는 이미 3년을 버텄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언제나 빠듯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돈은 모래처럼 새어나간다. 그 병은 나을 것인가? 이 집에서 아저씨가 직장을 잃거나 희망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내가 건강보험료를 너무 적게 내는 것일까? 공짜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 정부에서 얼마간 지원을 해줄수는 없는 것일까? 거동도 할 수 없는 상태인데...정부의 태도는 아저씨가 노숙자가 되고, 아이가 보육원에 가야만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치매 환자 요양병원도 최소 90만원 정도다. 최소! 어떤 사람에게는 한달 임금일 것이다.

예전에 호주에 갔을 때, 한국인 가이드가 자신의 아버지가 암에 걸렸는데 만약 한국에서 암이 걸렸다면 자기 집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을 것이고,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호주에서는 그 모두가 무료였다고.

나는 한국에 살면서 호주의 이야기를 듣는다. 호주는 딴 나라다. 딴 세상이다.

그래도 아픈 사람은 아프다. 안 아픈 사람들이 도우지 않으면 많이 아프다가 버려지거나 죽는다. 내 친구처럼 대견한 자원봉사자도 있지만 희망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호주처럼 하려고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사람들은 화를 낼까? 세금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아무도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은데..."불신지옥"이구나.

이야기를 하는데, 끝을 맺을 수가 없다. 해결된 건 없으니까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계속 해야 한다. 끝내고 싶지만 끝낼 수가 없다.  아니면 그 아줌마는 계속 갇혀서 아무도 모르게 힘들어 해야 할테니까. 

소외된 이웃과 복지제도에 더 많은 관심을!!!---이런 구호가 가슴 속에 파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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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0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진작 혜택을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 못받는 경우가 많아서...
맴만 챱챱하네요...

Smila 2004-05-0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정 얘기만 들어도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를 낳다가 그렇게 되었다니 더더욱...

행복한여행자 2004-05-1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복지제도! 절절히 생각해봐야 할것 같아요.. 갈수록 살기가 뻑뻑해지는 현실속에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게 고작 적당한 자책감과 알량난 기도 뿐임이 죄스럽습니다.
 

우울하다.

오랜 만에 우울하다. 아마도 제사 전 증후군인 듯. 나에게는 명절이 두 번이 아니고 네 번이다. 다른 제사들은 이렇게 증후군까지 생기지 않는데 할머님, 할어버님 제사는 명절이랑 비슷하다. 오시는 분들도 그렇고.

우울하기에 왜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봤더니 그것밖에 없다. 이번 주 일요일은 고종 도련님 결혼으로 울산, 월요일은 시할아버님 제사, 토요일은 어버이날, 그리고 그 다음 주 일요일엔 친정 엄마 생신을 당겨서 행사해야 할 듯(환갑이시다). 그리고 그주 수요일은 시아버님 제사다.

제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그다지 쉴 새가 없다. 30명 안팍으로 손님이 오시니 낮에는 음식준비하고, 저녁식사 때부터는 "차리고 씻고"가 시작된다. 내가 행사를 싫어하는 걸까? 요즘처럼 사람들 모이기 힘든데 이 정도 찾아 와 주시면 감사하고 즐겁게 생각해야 할텐데 이런 행사가 있으면 조선시대의 상민이나 하인이 된 것 같다. 방에 있는 사람들은 양반 같고.

결혼 전에 우리 과 선배의 강의가 있었다. "실제로 양반집 아낙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물론이고. 상민들은? 남자고 여자고 다 일했다. 그런데 조선 말기가 되자 거의 모두가 성을 가지고 족보를 가지게 되었다. 그 과정은 국사교과서 참조. 그렇지만 성과 족보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 하인을 거느릴 형편은 안 되니 하인의 일은 아내가 맡고, 양반의 체통은 남편이 지니게 되었다"는 말씀. 이 말이 제사나 명절 때 떠오른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모두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하루종일 부엌에 있고, 의사결정권이나 발언권도 없고. 게다가 시댁엔 쉴 방도 없다. 부엌은 실외에 있어서 실내와 완전히 분리된다. 이 점은 괜찮은 점이다. 구식 부엌이라 일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지만. 어쨌든 멀쩡하던 내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느낌이다. 무대 장면 바뀌고, 어둠 뒤에 있다가 다시 막이 시작된다. 아예 역이 바뀌어서. 의사표현도 하고, 농담도 하고, 투정도 하던 나는 사라지고, 헌신적이고 착한 아내와 며느리로 변신한 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시댁의 "behind story"를 듣게 된다.

그러고보니 대학 때 충청도의 절에서 지낼 때는 고무신 밑창에 구멍이 나도록 뛰어 다니며 일을 했었다. 하루에 일하는 양이 제사나 명절 때과 맞먹는 날이 많았다. 그때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이렇게 우울해지지도 않았다. 내가 원해서 했으니까.

문득 찾아오시는 시할어버님이 내 불평을 아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굴도 못 뵌 분이지만 내가 그분께 밥을 차려드릴 기회를 갖는 것이라는 적극적인 생각을 해볼까? 잘 안 된다.

그래, 수행이다 생각하자. 삶이 통째로 수행이고, 이 일도 수행이다. 지나가던 도사가 저 집에 가서 딱 이틀만 일해주고, 오는 사람에게 음식 베풀고 그렇게 오라고 해도 나는 할 사람이다. 평소엔 집에서 참선하고, 월요일엔 일하면서 화두참선하는 연습하러 가야지! 됐나? 됐다! 내가 원해서 간다! 고?

그냥 이렇게 추스려본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마음에 파문이 이는 것을 본다. 아직도 어리고 어리다. 우울은 이것을 쓴 것으로 접는다. 안 접히면 접힐 때까지 기도한다. 그러면 우울은 접수된다. 하하하, 말하고 나니 우울을 기도로 고문해서 조용하게 만드는 것 같다.

기분이 확 좋아지네. 냄비처럼 가벼운 마음이여...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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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4-2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셨군요? 으... 그렇담 다 이심전심입니다.^^

이누아 2004-04-2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선되어야 할 문화인데, 제가 나서서 개선하자면 상처받는 사람이 많을 듯. 특히나 저보다 몇 배는 고생하셨을 어머님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될 수도. 사실, 저도 엄두가 안 나고요. 그나마 어머님이 좋으신 분이라 순응하기 어렵지만은 않지만...이렇게 익숙해져서 머리는 진보, 몸은 구태인 다수의 한국남성들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아니겠지요?

다연엉가 2004-04-30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이 정말 수행이라고 믿고 삶니다. 내 마음 먹은대로 행해 지느니....

이누아 2004-05-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행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행위가 남을 위한 행위이거나 강제가 아닌 나를 위한 행위, 나를 향상시키는 연습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의 본질은 즐거움에 있습니다. 적극성, 강한 믿음, 사랑이 수행을 즐겁게 합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

그대들 기쁠 때 가슴 속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이 그대들에게 슬픔을 주었음을.

그대들 슬플 때에도 가슴 속을 다시 함번 들여다보라. 그러면 그대들,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이제 울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진정 그대들은 기쁨과 슬픔 사이에 저울처럼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오직 텅 비어 있을 때에만 그대들은 멈추어 균형을 이룬다.

...

========

우정에 대하여

...

그러므로 그대들 친구를 위하여선 최선을 다하라. 그가 그대들의 마음의 조수의 썰물 때를 안다면 밀물 때도 알게 하라.

다만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찾는 친구, 그런 친구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언제나 시간을 살리기 위하여 친구를 찾아라.

그대들의 요구를 만족시킴은 곧 그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 결코 그대들의 공허를 채우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하여 부드러운 우정 속에 웃음이 깃들이게 하고 기쁨을 나누라.

하찮은 이슬 방울 속에서도 마음은 아침을 찾아내고, 다시 불타오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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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4-2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아이가 아니다....그들의 영혼은 ...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