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난이 세 개 있다. 지 덕 체라는 이름을 가졌다.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너무 멋이 없다. 그래도 지혜는 풍성해지고, 덕은 멋있다. 안타깝게도 몸집이 좋았던 체는 우리집에 온 후 아주 왜소해졌다. 벤자민도 두 그루가 있다. 모두 잎이 빛나는 예쁜 아이들이다.  

잘 돌보지도 못했는데 무사히 살아준 것으로도 고맙다. 좁은 베란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보면 웃음이 나고, 미안하고 고맙다.

오랫동안 함께 지냈는데 결국 곁을 떠난 고구마가 생각이 난다. 고구마에 싹이 났길래 물에 담가두었더니 푸른 잎이 자라났다. 1년 못 되게 자랐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소홀했던가 보다. 들깨와 보리도 떠났다. 옮겨 심을 때부터 불안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특히 들깨는 병충해가 있었던 모양인지 잎이 하얗게 되더니 말라갔다. 옆에 있던 벤자민까지 그렇게 되어 놀라서 격리시키고 두고 봤는데 제대로 못 키웠다. 국화도 너무 더운 집에, 환기도 제대로 시켜주지 않아서 일찍 떠났다. 사실, 좀더 함께 있을 수 있었는데 내 소홀함이 그들이 떠난 가장 큰 원인이다.

새 친구들과 만나고 싶은데 베란다가 너무 좁아서 공간이 없다. 사계절 내내 집도 너무 덥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 친구들을 생각하면 좀 참아야 한다. 후내년이나 좀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갈텐데, 그때까지 지금의 친구들을 잘 돌봐야지. 요즘은 꼭 함께 이사를 가자고 말한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 달라고 부탁한다. 좀더 큰 집은 베란다가 넓어서 새친구들을 불러 모을 수도 있다.

어제는 쌈배추를 샀는데 그 안에서 민달팽이가 나왔다. 전에 욕실에 민달팽이가 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보이질 않는다. 아파트 전체에 약을 치는 날이 있는데 혹시 그 약 때문에 어디선가 유명을 달리한 건 아닌지...어제 나온 민달팽이도 배추잎과 함께 욕실에 두었다. 물기도 많고, 전에 살던 아이도 오래도록 지냈으니 집에서는 이곳이 안성만춤일 것 같아서 그랬는데 오늘 안 보인다. 전에 있던 아이도 보였다 안 보였다 하긴 했는데...

얘기하다 보니 어린왕자가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 몰랐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내가 무심해서 좋은 친구들을 떠나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집 난과 나무들이 예쁘고 참 좋다. 민달팽이도 한번씩 나타나 존재를 알려 줬으면 싶다. 다들 살아있는 것들인데 바퀴벌레는 키우질 못한다. 오히려 없애려고 애쓴다.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것들이 내게 오면 아름답고 추한 것으로 나눠진다. 

나의 무지와 분별이 부끄럽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바퀴벌레 약을 사고, 풀들의 잎에 물을 뿌려 준다. 이것이 나의 사랑이다. 내가 무명 속에 있는 한 작은 풀에 대한 사랑마저 무지와 분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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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7-25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입니다. 전 식물를 키워보질 못해서 그것에 따른 기쁨은 모릅니다. 저도 이사가면 한번 키워볼려구 생각중입니다. ^^ 님의 아이들이 잘 자랐음 좋겠네요. 그래야 이런글를 읽고 좀 반성하지요.

verdandy 2004-07-2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바가바드 기타에 보면 아르쥬나가 친척들에게 칼을 겨눠야 하는 상황에서 고심할 때(생명에 대한 존중), 마부로 변신한 크리슈나 신이 설복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더 큰 우주적 질서에서 보면 생사존망이 모두 우주법칙 안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이 세상 생명들의 어울림 가운데에는 공존하기 어려운 조합도 있기 마련이고, 그것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살심을 버리는 거겠죠.

비발~* 2004-08-0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이신지, 오랫동안 안보이시네요. 건강은 괜찮으시죠?

이누아 2004-08-10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은 답입니다만 휴가를 보내느라 컴퓨터를 열지 못했습니다. 휴가 전에 조금 아팠는데 휴가 간다니까 몸이 그냥 낫더라구요. 지금은 몸도 마음도 무척 건강합니다. 날씨가 몹시 더운데 모두들 더위 잘 견디고 계신지?
 

건강을 체크해 보았다. 괜찮았다.

나는 거의 3년을, 그중에 2년은 좀 심하게 아팠다. 왜 아픈지 알 수 없었지만 몸의 근육들이 두근거리고, 떨리고, 팔딱 뛰었다. 속이 메쓰겁고, 어지러웠다. 에어컨 바람을 쐬면 머리가 아팠다. 여름에도 긴 팔옷을 들고 다녔다. 2,3일에 한번씩 몸살이 났다. 괜찮은 날도 준몸살상태였다. 큰 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으니 운동보다는 잘 먹고 푹 쉬라고 했다. 그외 오른쪽 청각에 약간의 이상이 있는 것 외에 별다른 사항은 없었다.

밖에 나가기가 힘이 들었다. 걸으면 숨이 찼다. 속이 좋지 않아서 가다가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했다. 살이 빠졌다. 힘이 하나도 없었다. 제대로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검사를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한의원에서는 뭐라고 진단을 해주고 약을 줘서 먹었다. 먹을 때 좀 낫기도 했지만 다시 안 좋아지기도 했다.

결혼 전부터 그랬다. 결혼 후엔 신랑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신랑도 힘들어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대구에 내려와 적응도 되지 않고, 일도 버거웠던 모양이다. 신랑은 나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나 역시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뚜렷한 병명이 없는 탓에 스스로 게으른 사람으로 여겨졌고, 다른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빈 껍데기만 있는 것 같았다. 우울해졌다. 자꾸만 우울해져서 두렵기까지 했다.

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를 그만두기로 했다. 사흘 동안 교수님들이 꿈에 나타나서 공부를 계속하라고 하셨다. 그게 내 마음이었을까? 그러나 그만두었다. 2주에 한번씩 가던 시댁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자고 신랑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신경쓰던 일들을 줄여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아졌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몸이 조금 좋은 날은 나도 모르게 무리를 했다. 언제 안 좋아질지 모르니 좋을 때 할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좀 움직인 다음날은 몹시 힘이 들었다. 그렇게 힘든 어느날,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인터넷으로. 목사님은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만 매달리면 암 걸려 죽지만 문제를 잊고 기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금강경이 눈에 띄었다. 그 금강경 마지막 쪽에 기도하면 반드시 성취된다는 문구를 보고, 그날부터 매일 금강경을 읽었다.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염원을 둔 것은 아니었다. 아프다는 문제를 문제로만 보면 볼수록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읽었다. 석 달 정도 읽었을 때 몸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우울은 사라져갔다.

그때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나 자신을 내가 얼마나 싫어했는지 확인했다. 무능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왜 존재 자체로는 안 되는 걸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나 자신에게 그렇다면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는걸까? 몸을 비롯한 나를 둘러싼 것들과 존재 자체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내가 되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에게 내가 취한 태도는 적대적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그리고 내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차차 나아져 갔다. 몸도 마음도.  

내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던 모양이었다. 지금에서 돌아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긴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기도하고, 요즘은 인삼가루를 먹는다. 인삼가루의 효과는 대단해서 에어컨을 쐬도 아무렇지도 않다.

지난 산철결제 때도 자주 몸이 좋지 않아 선방에 매일 나갈 수는 없었는데 저번 달부터는 아무래도 뭔가 다르다. 이번 하안거 결제중에는 매일 선방에 나가는데도-그것도 버스를 타고!- 전처럼 근육들이 난리를 치지 않는다. 이틀 정도 심하게 아프긴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한 달에 한번 아픈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달엔 그렇게 아픈 적이 아직은 없다. 그리고 오늘 체크해 보니 건강한 보통사람처럼 나온다. 나를 위해 기도해준 가족들과 친구들, 끊임없이 약을 먹여준 신랑, 수행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느끼도록 도와주신 스님들과 도반들...생각해보면 나의 기도나 운동만으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고마울 따름이다.

항상 신랑이 말하기를, 좀 좋아질 때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올해가 지나기 전에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건강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문제만 생각하면 문제아가 되기 쉽상이니, 욕심을 접고, 자기를 잊고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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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7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04-07-2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몸이 많이 약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삼천배 다니고부터는 건강해진 것 같아요.
오늘도 공무원 건강검진 갔는데, 살이 또 빠졌더군요.
많이 먹고 50Kg은 되어야 겠다는 것이 내 목표입니다. 억지로 많이 먹어지지도 않지만.
마음을 "아픈 것"을 들여다 보는 일에 두지말고, 건강해서 고마운 현실에 둔다면, 더더 건강해 지시리라 믿어요.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나 자신을 한 번도 나 자신 속에서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왜 나 자신을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 자신을 어딘가 다른 곳에 두고

잊어 버린 일이 있다는 것일까.

진정한 나 자신과 지금의 나 자신이

별개라는 것일까.

별개라는 기분도 들고, 같다는 기분도 든다.

아아, 나 자신의 발자국조차 보이질 않네.

===========

고이즈미 요시히로 저. 김지룡 옮김, [우리는 모두 돼지], 들녘,2002,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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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이슬이며, 번갯불이다. 모든 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이 역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생각에 집착하면 모든 것이 이름과 모양을 갖게 되며, 있다 없다 하는 이분법적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름과 모양은 언제나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상하다. 모든 것은 꿈이고 이슬이고 물거품이며 번갯불이다. 이 세상 어느 것도 그대로 머무는 것은 없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

생각이 만들어낸 분별의 세계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럴 때에라야 이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의 진정한 본질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 바깥 세계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을 잘 간직하면 우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오고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도 없다. 이름과 모양은 공허하며, 전 우주는 완벽히 공하다. 우리의 존재 역시 완벽히 공하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곧 참 자아를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은 만물의 무상함을 가르쳐 우리가 이 생각이라는 '꿈'을 깨기 위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러나 경전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에서 깨어나려면 금강검을 사용해야만 한다. '오직 모를 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칼이다. 오직 수행하라. 오직 수행하라. 단지 그것뿐이다.  

=================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선의 나침반1], 열린원, 2001,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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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7-14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체 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어제 금강경 7독을 하였습니다. 이 글귀가 남더니 오늘 여기서 또 만나네요.
물거품이란걸 머리속으론 이해하면서도 움켜쥐고 사는게 너무 많습니다.

이누아 2004-07-1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금강경을 어쩌다 2번을 읽어서 많이 읽었네 했더니 혜덕화님은 7독!! 님의 내공에 나날이 놀랄 뿐입니다.
 

우리집의 우울모드는 24시간이 지나지 못해서 완전히 해제되었다. 무슨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걱정하느라 평온이라는 귀한 선물을 뺏길 순 없다!

우린 저녁에 수박을 맛있게 깨어먹으며 평온모드로 돌아왔다. 어차피 저질러진 일은 할 수 없고, 어떻게 해볼 도리없는 일은 해볼 도리가 없으니 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집이 우울한 날은 닥친 바로 그날뿐이다.

돌아보면 작년엔 거래처가 부도가 나고, 차사고가 두 번이나 나고, 수술하고...정말 일이 많았는데 우리집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모두 놀란다. 모르는 일도 아닌데 우리가 잊으니 다른 가족들도 잊어버린다.

문제를 문제로 만들지 않고, 서로 탓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신랑 덕이다. 양가집 모두 물러터진 아이 둘이 산다고 걱정하시지만 우린 천생연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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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7-1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듣기만 해도 좋습니다~^^

혜덕화 2004-07-1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출근길엔 성철 스님의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이 생각나서 운전하는 내내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고심원에서 삼천배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성철 스님 동상을 올려다보니, 스님의 동상이 빙그레 웃고 있지 않겠습니까? 평온 모드로 돌아온 님과 낭군님의 지혜에 감사.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