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야, 네가 미국에서 부친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손으로 쓴 카드를 주고 싶었다는 네 말에 어떤 간절함이랄까, 그리움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네 결혼식이었다. 내가 결혼할 때 친구 하나가 울었다고 했다. 마치 자기가 날 시집을 보내는 것처럼 서운하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고. 결혼식장에서는 모르겠더니 집에 오니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나는구나.

결혼식은 아름다왔다. 즐겁게만 보이는 신랑, 신부에 함께 웃고, 여자 주례 선생님의 출현에 놀라고, 그분의 또렷한 목소리에 하객들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후배들의 노랫소리는 천상의 것 같았다. 15년 전 쯤에 너도 저 아이들처럼 노래하고 있었구나.

너와 인사를 나누고 두 친구와 함께 차를 마셨다. 좀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애들이 미리 나와 할 말이 없을 것을 염려했다고. 그렇게 할 말이 없었는데도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이...

숙희야, 결혼 축하한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신랑이 점점 좋아진다. 우리는 처음에 부부이기만 했는데, 지금은 친구이자 도반이자 가족이며, 따뜻함이다. 오늘의 기쁨으로 문을 연 너의 결혼도 나날이 사랑과 존경으로 가득한 생활로 피어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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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2-26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인거 맞죠? 건강하시죠?? 잘 지내시죠? ^^

비발~* 2004-12-2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다시 오신 것, 멋진 성탄절 선물입니다.

혜덕화 2004-12-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지요? 자주 뵐 수 있기 바래요. ^ ^

이누아 2004-12-2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렬한 환영, 감사합니다. 저도 무척 반갑습니다. 모두들 안녕하시죠?

비로그인 2004-12-2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이누아님, 친구분이 결혼하셨나봐요. 뵌 적은 없는 분이지만 친구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누아님, 이제 돌아오신거죠. 저희도 물론..옙..안녕하구요, 거, 앞으로 종종 좀 뵙고 그럽시다.

비로그인 2004-12-29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신랑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뉘..부럽기만 합니다. 아무튼 이누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05년도 건강하십쇼, 넙죽. (__)

이누아 2005-01-0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건강하시고, 새해에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오. 본래 날마다 좋은 날이거든요.

big_tree73 2005-05-1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서야 보는구나. 고맙다.
15년 전쯤이라는 말에 놀랬다. 그럼 우리 만난지도 15년쯤 된건가?

2005-05-1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 한 10분쯤 지난 것 같았다. 화두는 순일하고,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도 아프지 않았다. 두 시간 가량 그랬다.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옆에 앉은 보살님께 방선하는 동안 정(定)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데 방선 시간에도 계속 앉아 있어도 되느냐고 여쭸더니 대중과 함께 움직이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와 무여 스님의 법문 테잎을 들었다. 선정을 체험하더라도 환희심을 내지 말고, 화두가 잘 안 될 때가 공부가 익어갈 때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정에 탐착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어떻게 탐착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다시 그 상태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래도 도반이 계시고, 테잎으로나마 경책을 해주시는 선지식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계속 될 것 같았던 그런 상태는 잠을 자고 나니, 사라졌다. 잘 때도 또렷할 것만 같던 화두가 잠 속에 깊이 묻혀버려 들어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래서 용맹정진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한결같이 좌선으로 힘을 얻어 화두를 참구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좌선할 수 있는 인연을 얻은 것에 머리 조아려 감사드린다.

=======================

저는 한동안 서재를 떠나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과 가르침을 나누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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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10-1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실꺼죠?

2004-10-15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04-10-15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그렇게 좌선 할 수 있는 인연이.
정진 잘 하시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비로그인 2004-10-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4-10-15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누아님, 요즘 제가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는데다 가을을 타는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는데..이리 떠나시다니요. 아니 되옵니다..그러나 귀거래사, 라구요. 조만간 다시 뵐 수 있겠지요? 정녕 그러하온지요?

2004-10-15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25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25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요일에는 선방 보살님의 어머님의 49재 중 마지막 재가 있었다. 일흔 넷인 보살님의 아흔 여덟의 친정 어머니. 아무리 호상이라도 아버지 돌아가신 때보다 몇 배는 더 슬프시다고 하셨다.

재는 봉화에 있는 축서사에서 행해졌다. 덕분에 아침 6시에 절에 모여 대절낸 봉고차를 타고 출발했다. 가는 중에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데도 사람들이 법당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는 재에 참석한 이야기가 아니라 재에 참석하러 갔다 무여 스님을 친견한 이야기다.

재를 행하기 전에 무여 스님을 친견했다. 첫 말씀이

"살림살이나 다른 것은 조금 부족하거나 잘 못하더라도 공부는 처-얼저하고 화-악실하게 자-아-알 해야 합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항상 정신을 차려서 화두를 챙겨야 합니다. 정신 차려서 자-아-알 공부하셔야 합니다."

였다. 질문이 있는 사람들은 질문을 했다. 나는 절수행에 대해 질문을 했다. 몇 번 하지 않았지만 전에 생긴 목 뒤의 임파결절이 아무래도 삼천배를 한 후 생긴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이번에 밤새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했더니 다시 목 뒤가 좋지 않다. 자비도량참법을 보면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도를 쉬지 말라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삼천배가 참회에 좋은 것이니 몸에 문제가 생겨도 기도를 하다 생긴 것은 쉽게 낫게 되어 있다고 계속 하기를 권하시기도 하는데 실제로 무리가 있더라도 용맹심을 내는 것이 좋은지, 내게 적절하게 해 나가는 것이 좋은지 궁금해서였다.

"절을 많이 하고 나면 목 뒤가 좋지 않은데.."하는 질문을 시작하고 말을 맺기도 전에 스님께서는

"보살은 그냥 봐도 건강한 몸을 타고 나지 않은 듯한데 너무 무리하게 기도하지 마시고, 기도는 참선수행이 잘 되도록 가피를 구하는 수준에서 조금만 하세요. 느--을 화두 참구를 하는 데 마음을 쓰시고 절수행이다, 기도다 하는 것은 몸이 피곤하지 않는 선에서 공부를 위해 하세요"

하셨다. 사실 누구나 다 스님처럼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님의 수행력일까? 화두일념이 되도록 정신차려야 겠다는 발심이 일었다. 이래서 선지식을 찾는구나 싶기도 했다.

다른 분들도 여러 질문을 하셨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맞게 용맹정진을 해라, 게으름을 내지 마라, 화두를 함부로 바꾸지 마라, 참회기도도 좋지만 참선수행이 제대로 되면 저절로 참회가 되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 등등으로 대답해 주셨다.

아직도 스님을 뵌 그 느낌이 그대로이다.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을 누가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일까? 평범한 말씀이 내내 가슴에서 울린다.

아무래도 선지식도 인연인가 보다. 그저 내게 늘 가르침을 주시는 보살님의 일이라 재에 참석한 것인데 이렇게 스님을 뵙게 되니...저절로 마음으로 다시 삼배가 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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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12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천배 수행을 해 보셨나 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수행 방법이 다르고 몸이다르듯이 꼭 삼천배 수행만이 제대로 된 기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참선 수행이 더 어렵더군요. 마음도 가만히 있지 않는데다 다리까지 너무 아파서 .......얼른 아프신 곳이 나으시고, 용맹정진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처-얼저 하고 화-악실하게 수행하고 싶은데, 자주 흔들립니다. 아직 마음의 근기가 많이 부족한가봐요.
 

서재 지붕에 꽃이 피었다. 히말라야에 핀 꽃.

안 어울린다. 그래도 그냥 두련다.

야,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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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10-0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 이뻐요...^^ (이거보고나니 저도 지붕 바꾸고 싶어지네요...)

비로그인 2004-10-0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롤쑤가..지붕, 정말 근사하군요. 언젠가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건데 히말라야 고산 지대엔 18도가 넘게 온기를 발산하는 꽃이 있습니다. 추운 고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스스로 자구책을 구하다 그렇게 진화한 꽃인데 붉은 색 꽃봉오리가 거 신비롭고 아주 이뿌더라구요. 암튼, 이누아님의 히말라야에 예쁜 들꽃이 피었군요. 감축드리옵네다..

이누아 2004-10-1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여행 잘 다녀오셨죠? 인사 참 빨리도 하죠? 낯선 거리는 설렘을 줍니다.
복돌님, 님이 주신 꽃을 지붕으로 옮긴 건데 못 알아보신 건 아니겠지요?

비로그인 2004-10-1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있지라우. 근데 로얄티를 내셔야..험험..크크..마이 조오크,고요. 그저 감솨할 뿐입습지..흘..(아, 이거 저번에 답글 달았는데 곧바로 에러나서 다 날라갔어요. 지금 달라고 항게로 쫌 쑥시럽네요..)
 

우리는 오늘부터 남의 선한 일을 보면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하거나 오래하거나 오래하지 못하거나를 막론하고 기뻐할지니라.

가령 일념이나, 잠깐이나, 일시나, 일각이나, 일월이나, 반년이나, 일년만 하더라도

벌써 선을 짓지 않는 이보다는 휼륭하느니라.

그러므로 법화경에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탑 속에 들어가서 산란한 마음으로라도 한번 '나무불'하고 외우기만 해도

모두 불도를 이루리라"하였거늘

하물며 어떤 이가 이러한 큰 마음을 세우고 복과 선을 부지런히 닦는 것을 보고

따라 기뻐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러면 성현들이 슬프게 생각하시느니라.

 

저희들이 생각컨대 무시이래로 나고 죽으면서 오늘에 이르도록

이미 한량없는 나쁜 마음으로 남의 선한 일을 방해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런 일이 없었으면 어찌하여 오늘날까지 모든 선한 일을 망서리기만 하고,

선정을 익히지 아니하고 지혜를 닦지 아니하며,

잠깐동안 예배하고는 큰 고생을 하였다 하고,

잠깐동안 경을 읽고는 문득 게으른 생각을 내며,

종일토록 분주히 악업을 일으켜 이 몸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지 못하게 하리요.

마치 누에가 고치를 짓듯이 자승자박하고,

나비가 불에 들어가듯이 밤새도록 타게 되나니,

이런 업장이 무량무변하여 보리심을 장애하고, 보리의 원을 장애하고, 보리행을 장애하는 것이

모두 악한 마음으로 남의 선한 행을 비방한 탓입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고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머리를 조아리고 어여삐 여기심을 원하여

이런 죄를 참회하나니...

                                                                                     -자비도량참법 제1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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