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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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손가락>이나 <악의>를 보면서 가가 형사 시리즈에 관심이 생겼는데, 가가 형사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신참자>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2010년 1위작으로 꼽히자 급 관심. 게다가 현재 일본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중이라 드라마도 볼겸 겸사 겸사 <졸업>부터 읽기 시작했다. 굳이 작품 순서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가가 형사의 첫 사건부터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소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하기사 뭐 <붉은 손가락>과 <악의>를 벌써 읽어버렸으니 별 의미는 없겠다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 그런지 아쉬운 면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은 풋풋한(?) 대학생인 가가 형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작품.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저마다의 장래를 정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일곱 명의 친구들. 그 중 한 명이 자신의 집에서 손목을 그어 죽은 채 발견된다. 모든 상황으로 볼 때는 자살로 보였지만, 자살할 아이가 아니었다는 점과 함께 몇몇 의심스러운 상황 때문에 혹시 타살이 아닐까라는 추정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명의 친구가 설월화라는 다도게임 중에 독이 든 차를 마시고 갑자기 죽는다. 둘 다 자살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점점 이 두 친구가 우리 중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퍼진다.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친구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종종 일본 추리소설에서 일본 문화를 작품에 적용시키는 모습을 보곤 한다. 일단은 낯선 부분이라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문화적인 요소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해서 일단은 흥미를 갖고 읽게 된다. 이 작품 <졸업>에도 그런 요소가 등장하니, 바로 다도와 검도다. 검도야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퍼져 있지만 다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다른 소설에서 접한 적은 있지만 아무래도 어렵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그 다도의 게임 중 하나인 설월화라는 것이 주된 트릭으로 등장하니 머리가 지끈. 그저 시간표 트릭을 접할 때처럼 아예 마음을 비우고 읽어버리거나, 아니면 조금 집중해서 트릭을 따라가는 방법 밖에는 없어보였다. 뭐 정신줄을 놓지 않고 차분히 따라간다면 못 따라갈 것도 없는 트릭이었지만, 다도에 낯선 우리에게는 다소 어렵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었다.

  두 개의 사건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트릭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두 개의 트릭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많아 트릭 자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트릭 자체보다는 오히려 가가와 그의 친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에 더 집중하게 됐다. 가가의 첫사랑인 사토코, 엘리트 코스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도도, 평범한 대학생 커플이라 할 수 있을 와코와 하나에. 이들의 관계를 흔드는 도도의 연인으로 '망설임 공주'였던 쇼코와 검도에 재능이 있었던 나미카의 죽음. 그리고 가가와 친구들의 은사로 정기적으로 다도 모임을 갖는 마사코 선생님 등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쇼코와 나미카의 죽음으로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가가의 추리로 어느 정도 진실이 밝혀지지만, 그렇게 밝혀진 진실이란 그동안의 우정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것이었다. 학생에서 사회인이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라 하기엔 너무나 아픈 이야기. <졸업>은 어쩌면 미스터리의 가면을 쓴 청춘성장소설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슬몃 들었다.

  스토리나 트릭 자체는 딱히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덜했지만, 교사와 경찰 사이에서 고민하는 가가의 모습이나 결국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떠나버린 아픔에 안정적인 교사를 택하는 모습 등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더불어 어쩐지 가가답다는 생각이 드는 고백도 인상적이었다.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인 <잠자는 숲>에서는 가가의 어떤 면을 만날 수 있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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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특별하지 않은 청춘들의,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박근영 지음, 하덕현 사진 / 나무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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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다니며 국경을 넘을 때면 이상하게 그날의 기분에 젖곤 한다. 서울로 이주해온 뒤 제법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나처럼 국경을 넘는 심정으로 이 도시로 흘러들어오기도 한다는 걸.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가공된 빛을 발하며 도시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그 빛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다른 이면에는 어둠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 도시는 누군가에게는 나고 자란 고향이며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환멸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한편 어떤 사람은 이 도시에서 봄날의 나비처럼 꿈속을 살아가기도 하리라. -11쪽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말, 한동안 그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정작 삶은 자신의 의지를 비껴가는 일이 다반사다. 내 의지와 어긋나는 일들을 겪으며 때로 아파하고 좌절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갈림길에 섰을 때 그는 생각했다. 어느 한쪽도 제대로 선택할 수 없다면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보자고.-25~6쪽

그는 자신의 짧은 이성으로 가늠이 되는 것보다 의도할 수 없는, 가늠이 되지 않는 것에 끌린다. 이 생을 사는 동안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려는 것도 궁극적으로 더 넓은 세계를 알아가려는 노력이다. -34~5쪽

우리의 미적 감각이 언제부터 이렇게 획일화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은 눈이 작을 수도 있고, 쌍커풀이 없을 수도 있고, 입이 돌출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키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인간의 생김새는 다양하잖아요. 그런데 기준을 정해놓고 미를 규격화시키려다 보니 다들 비슷비슷한 얼굴, 옷차림, 태도를 갖게 되는 게 아닐까요. 미에 표준이 어딨겠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스타일은 곧 태도 같아요. 옷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가 자신을 나타내는 거죠. -48쪽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가 서른이 넘으면 나이가 많다고 하잖아요. 30대, 40대 여자들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별로 관심도 없고요. 저는 사람들이 왜 나이에 대해 고민하고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틀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이라는 건 책 표지 같은 거 아닐까요. 나이에 맞는 대로 살아야 할 표본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것도 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합리화 같은 거니까. 몇 살에는 뭘 해야 하고, 결혼은 언제쯤 해야 하고 그런 거 사실 웃긴 거예요. 우리는 규격대로 맞춰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거든요. -7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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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1
김정란 지음 / 나무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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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 숱한 야구팬들(특히나 롯빠) 때문에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딱히 관심이 생기지 않았는데, 남친과 소소한 내기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야구의 기본적인 룰 정도야 알고 있지만, 뭔가 2%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야구 입문서로 뭐 마땅한 책이 없을까 하고 둘러보다가 이 책 <야구 아는 여자>를 읽기 시작했다.

  2009년에 나온 책이라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한국 프로야구를 속성으로 훑어보기엔 적절한 듯 싶었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들에 대한 부분이나 각 구단의 특징, 감독(올해 부임한 박종훈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아쉽) 혹은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이 부분도 현재 소속팀으로 바뀌어 있지 않아서;)가 적당히 곁들여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야구에 대한 기본적인 룰, 혹은 상식을 파악하기에 좋았던 책. 잡지를 읽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기에 좋은 듯. 흔히 여자 야구팬이라면 얼빠라고 별로 안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뭐 얼빠가 야빠되는 거 아니겠는가. 얼빠에서 야빠로 가는 첫 걸음을 이 책으로 걸음마를 시작했다면, 이제 경기를 보며 점점 야구에 빠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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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의 골프 -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18명의 인생 수업
밥 미첼 지음, 김성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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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대로 들은 거야? 하느님을 상대로 골프 시합을 한다고?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50년 동안 살아오며 사랑하고 가르치고 노력하고 성공하고 실패했던 날들, 그게 모두 이 한 경기에 달렸다고? -19쪽

맞아! 실력이 문제가 아니야. 승패가 중요한 것도 아니지. 바로 그거야…… 즐기는 것! 코스에서 존은 얼마나 즐거워 보였어? 팔짝대고 깡총거리고 흥얼거리고 노래하고 미소 짓고 깔깔대고…… 매순간을 마음껏 즐겼잖아! 시합에 열을 올리는 동안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었는지 이제 확실히 깨달았어. 존은 얼마나 즐거워 보였던지! 얼마나 태평스럽고 천진난만했는지!
그런 정신을 보여주는 프로 선수들도 봐왔잖아? 스포츠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는 사람들 말이야. 경쟁하는 것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도 있고, 존처럼 그저 그 순간을 즐길 수도 있는 거야. 윌리 메이스는 베이스에 슬라이딩 할 때마다 모자가 굴러떨어졌지. 야구를 즐겼던 거야! 매직 존슨은 코트에서 항상 환하게 웃으며 유쾌하게 경기에 임했어. 농구를 즐겼던 거지! 시게키 마루야마는 또 어떻고? 퍼팅을 놓쳐도 그 사람은 즐거워했어! 구속과 부담감을 느낄 때, 특히 내 목숨이 걸려 있을 때처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골프를 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지. -94쪽

그러한 역설 때문에 골프가 그토록 특별하고 신비한 게임이 되는 것 아닌가? 굿맨 군, 자넨 이미 여러 번 그런 상황을 경험했어.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지 않는 것. 고통받는 것과 즐기는 것. 통제하고 방임하는 것. 놀라고 실망하는 것.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 이러한 모순들을 살펴보면 골프가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완벽한 게임이라는 걸 알 수 있네. 인간이란 허점이 있으며 오류를 범하기 쉽지만 늘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니까 말일세.-123쪽

살다보면 러프에서 탈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때가 있죠.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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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절판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美)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7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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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한보따리^^
    from 꿈을 나누는 서재 2010-06-02 20:05 
    오늘아침, 옆지기는 체험학습일로 일찍 나가고 옆지기를 대신해서 아이들과 함께 수학과외를 받기 위해 용인을 갔다. 범석과 해람이가 유일하게 받고 있는 학교외 수업이다. 11시부터 2시간을 받는 데 미리 공부를 한다며 10시까지 가서 자율학습까지 하면 16시나 되어야 끝난단다. 나는 장장 6시간을 소일꺼리를 찾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근처 초등학교에 주차를 한 후 독서를 했다. 점점 날이 더위지면서 다른 꺼리를 찾는데 사람들이 등산복을 입고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