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절판


거짓말을 짚어내기 위해 심문자가 살펴봐야 할 세 가지가 있다. 비언어적 행동(신체언어, 또는 동작학), 언어적 특질(음조나 대답 전의 머뭇거림), 그리고 언어로 표현된 내용(용의자의 대답 내용). 처음 두 요소는 거짓말을 탐지해내는 데 있어 신뢰성이 굉장히 높다. '무엇을' 말하는지를 통제하는 것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통제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또한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제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선은 상대가 진실을 이야기할 때 보이는 태도들의 목록이다. 심문자는 나중에 상대가 거짓말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보이는 태도를 그 목록과 비교하게 된다. 그 둘이 일치하지 않으면 심문 대상이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다. -16쪽

캐트린 댄스는 '인간 거짓말탐지기'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그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다른 유명 동작학 전문가와 프로 심문자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탐지기일 뿐이었다. 스트레스는 거짓말의 열쇠이다. 스트레스가 포착되면 그녀는 거짓말의 근원을 파헤치며 상대를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다.
동작학 전문가들은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떤 타입은 상대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때 주로 드러난다. 댄스는 그것을 '거짓말 스트레스'라고 불렀다. 물론 거짓말과 상관없이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 찾아드는 일반적인 스트레스도 있다. 우리가 지각을 하거나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육체적 위해가 두려울 때 느끼는 스트레스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댄스는 각기 다른 동작 행동들이 두 종류의 스트레스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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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
김열규 지음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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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도깨비는 생사 사이의 '경계 존재'이다. 이 점은 도깨비의 본바탕을 말할 때 매우 큰 뜻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비형의 후손인 도깨비들에게서 그 존재의 '경계성'은 여러모로, 여러 국면에 걸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질 것이므로, 우선 여기서는 요점만 줄여서 말하는 것이 좋겠다.
그가 출몰하는 장소며 시간은, 꼭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경계에 걸쳐 있다. 길머리, 고개, 길가의 으슥한 곳, 또는 숲의 그늘 등등이 그가 나타나는 장소이다. 그런가 하면 해질 녘 조금 지나 어둑어둑하기 시작할 무렵, 누기가 치고 비가 올 것같이 음산한 무렵이 도깨비가 나타나는 시간이다. 시간이며 장소가 다 갈림에 처해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도깨비가 사라지는 시간도 대개는 날이 새려 하는 신새벽녘이다. -35쪽

밤 외출로 도깨비들이 벌이는 밤 놀이판, 그 장난의 현장은 우리들 인간의 무의식이 활개치고 나서는 무대나 진배없다. 인간의 억눌린 욕망이 터져오르듯, 사람들의 막힌 욕구가 폭발하듯 도깨비들은 한밤중에 들에 나가 놀이판을 벌이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장난판이며 난장판을 펼치는 것이다. 한밤 도깨비들의 놀이판은 우리들 인간의 꿈의 터전이나 매한가지다. 인간이 못다 한 소망을, 사람이 하고 싶어도 참고 누를 수밖에 없었던 욕망을 도깨비가 대신 채워주고 풀어주는 것이다. 도깨비는 이래서 한국인의 대리인이 되고 변호사가 된다. -46쪽

도깨비는 그러한 인간의 소망을 마음껏 드러내놓는 우리들 한국인의 이드다. 그들은 한국인의 노출되고 실현된 이드의 뭉치고 덩어리다. 그러한 상태다. 그러니 도깨비의 밤놀이는 다소 음산하고 내숭한 인간의 무의식 또는 이드가 펼치는 퍼포먼스의 현장이 되기 마련이다. 도깨비들이 난리를 떨고 요사를 부리며 법석을 피는 것은 그러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깨비답지 못하다. -47쪽

우리들 인생살이에는 의붓어미 노릇 하는 게 쌓이고 또 쌓여 있다. 윤리니 도덕이니 하고 어깨에 힘주고 있는 것이, 규제며 제약이니 하고 으스대고 있는 그 고약한 것들이 모두 우리의 의붓어미 꼴이다. 가시덤불이다. 그 밤귀신 같은 것들의 시새움 때문에 눈칫밥 먹듯 세상을 살고 코치죽 먹듯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칫밥 안 먹고 코치죽 안 먹어도 그만인 세상을 이룩해서 살고 싶다. 그러면서 내친김에 제도며 규제, 윤리며 도덕 따위 쇠사슬을, 올가미를, 아니면 덫을 박살 내고는 제멋대로, 제 깜냥대로 이 짧은 한세상을 누리고 싶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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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품절


당신이 서랍장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꽝 찧었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몸이 움츠러들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노래방에서 잘 부르는 노래가사조차 떠올릴 수 없을 겁니다. 칼로 가슴을 찔리거나 머리를 세게 얻어맞으면 그보다 몇 배는 아프다고요. 그런 상황에서 글자를 쓸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암호 같은 교묘한 방법으로요. 만약 그럴 만한 힘이 남아 있다면 먼저 살려달라고 소리칠 겁니다. 아니면 엉금엉금 기어서 방을 나오든가요. 그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13쪽

현실이란 그런 법입니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말했듯이 탐정이란 직업은 범죄사건의 수수께끼 풀이와는 무관합니다. 현실에서는 바람피우는 유부남 뒷조사나 야반도주한 책임자를 추적하는 일이나 하죠. 뭐, 제 경우에는 조금 특수한 케이스라서 경찰을 돕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래봤자 알아낸 비밀을 슬쩍 찔러주는 수준이죠. 보통 이야기하는 '명탐정'이란 어디까지나 공상 속의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린이나 용과 마찬가지로 공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생물이란 말씀이지요. -14쪽

나는 명탐정이야. 그러나 정의의 사자는 아니야. 개런티도 없이 움직일 수는 없어. 울트라맨이 아니란 말일세. 경찰관도 그렇잖아? 그 사람들은 정의감 때문에 범죄조사에 임하나? 아니지? 매월 21일에 월급이 나오니까 살을 에는 찬바람 속에서 잠복수사를 하거나 하루 200건의 탐문수사를 할 수 있는 거야. 그게 직업이란 거라고. -50쪽

명탐정은 청렴해야 한다. 세속의 명예와 이득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진실의 추구를 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명탐정이다. 탐정은 직업이지만 명탐정은 다르다. 삶의 방식인 것이다. -107쪽

제가 탐정소설을 좋아한 이유는 아마추어 탐정의 화려한 활약에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고, 정교하고 치밀한 밀실 트릭에 숨을 삼켰기 때문이고, 전대미문의 살해동기에 전율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런 것들 이상으로 '관館'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218~9쪽

다 큰 어른의 놀이는 시조를 읊는 것입니까? 바둑입니까? 골프입니까? 낚시입니까? 어른이 된 뒤에 저택의 방 하나를 철도 모형 디오라마로 메우는 부자도 있는데, 그것도 애들 같은 행위라고 비난하시겠습니까? 연어낚시와 가재낚시를 하며 사냥감을 기다릴 때의 마음에 차이가 있습니까? 당신은 놀이다, 놀이다, 하고 폄하하지만, 애초에 이 세상은 놀이로 성립되어 있습니다. 원가 이십 엔의 종잇조각에 만 엔에 가치를 부여하는 화폐제도, 이것이 놀이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266쪽

원래 탐정이란 인종은 변죽만 울려대는 경우가 많아서, 관계자 일동을 모아놓고 수수께끼 풀이를 시작해놓고도 자질구레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늘 진짜 마지막이 되어서야 경악스런 트릭을 밝힙니다. 쇼트케이크의 딸기를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어린애와 다를 것이 없죠.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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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7-0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오늘이 7월 1일인데 저 책이 2010년 7월 책인데 벌써 밑줄긋기가!!! +0+
이건 주최측의 뭔가가 있는것이 분명혀요!! ㅋㅋㅋ

이매지 2010-07-01 15:31   좋아요 0 | URL
어머, 주말에 서점 가보니까 벌써 깔려 있던 걸요 뭐 ㅋㅋㅋ

도넛공주 2010-07-0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이 작가는 어떤가요 이매지님?
저의 맹목적인 미야베 미유키 집착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이매지 2010-07-02 00:27   좋아요 0 | URL
맹목적인 미미 여사 집착. ㅎㅎ
일단 이 작품은 미미 여사와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미미 여사보다는 좀더 고전 미스터리에 가까워요.
엘러리 퀸이 슬쩍 떠오르기도 했었던^^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우타노 쇼고의 다음 작품을 기대했을 터. 일본 추리소설이 다양하게 소개되는 상황에서도 우타노 쇼고의 작품은 출간되지 않아 아쉬웠는데, 올 여름에서야 잇달아 두 권의 작품이 출간됐다. 에도가와 란포 분위기라는 <시체를 사는 남자>와 밀실 트릭을 다룬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가 그것. 둘 중 어떤 걸 먼저 읽을까 하다가 나름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인 우타노 쇼고를 이해하기엔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가 더 괜찮을 듯해서 일단 이 책을 선택.

  표제작인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비롯해 <생존자, 1명>과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등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은 모두 밀실 살인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 배경이 눈으로 둘러싸인 별장이냐,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무인도냐, 외딴 곳에 위치한 관이냐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제한된 영역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 세 작품은 닮았다. 하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우선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의 경우에는 얼마 전에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을 연상케 했다. 탐정이라는 존재,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마음껏 비틀면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부분이 꽤 닮은 듯했다. 대체 왜 죽어가는 사람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 왜 항상 고립되기만 하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인지. 추리소설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이런 아이러니함을 두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까발리고, 뒤틀어 웃음을 선사한다. <명탐정의 규칙>이 추리소설의 패턴을 하나씩 보여주는 쪽이라면,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패턴보다는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일단 이야기 속의 명탐정 자체가 공명심이나 정의에 의해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라 현실적인 면(그러니까 금전)에 의해 움직이고, 여자가 없다고, 자신이 좀체 유명세를 타지 못한다고 조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궁상맞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사건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결(그냥 범인을 지목하고 증거를 찾는 부분은 경찰에게 떠넘긴다)한다는 사실. 그 점 때문에 명탐정이 묵게 된 별장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은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금전적 보답이 없는 상황에서 명탐정이 움직일 리는 만무하니, 어쩔 수 없이 조수가 사건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반전.

  신흥종교의 일원으로 테러를 감행한 뒤 무인도로 잠시 몸을 숨긴다는 설정의 <생존자, 1명>은 일단 섬이라는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떠올랐다. 섬이라는 배경만 가지고 본다면야 <외딴섬 퍼즐>이나 <옥문도> 등 일본 추리소설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생존자, 1명>은 '범인은 과연 누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무인도, 그것도 잠시만 머물면 된다고 생각해서 제 발로 걸어들어간 섬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 이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뒷 부분에는 기사를 인용해 교차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부분을 통해 반전이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지막 작품인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제목만 봐도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같은 관 시리즈가 저절로 떠올랐다. 특히나 구조상의 부분이 가장 핵심이라는 점에서 <시계관의 살인>과 닮은 듯. 대학 시절 탐정소설 연구회로 함께 활동한 이들을 다시 불러모아 추리극을 펼치는 모습은 소설 속의 주인공의 말처럼 추리소설 마니아의 궁극적인 꿈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사건, 그리고 그것을 재현할 저택을 만들어내고, 그곳에서 처벌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것. 추리소설의 팬으로 어쩐지 상상만 해도 마구마구 즐거워졌다. (물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단편집이지만 각 단편의 분량이 짧지 않은 편이고, 장편 못지 않은 완결성을 갖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읽어갔다. "눈 오는 산장, 외딴 섬, 서양식 저택 세 가지 밀실에서 펼쳐지는 반전과 트릭의 화려한 향연!"이라는 뒷표지의 문구처럼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 3종 세트는 입맛대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추리소설을 읽는다고 그런 건 애들이나 읽는 거 아니냐고 주위의 비웃음(?)을 받았던 모든 추리소설의 팬들에게 위로와 웃음, 반전, 그리고 가슴 아릿함을 안겨줄 작품. 우타노 쇼고가 궁금했던 이라면, 추리소설(특히 신본격 미스터리)의 팬이라면 필독해야 할 책. 간만에 정신없이 즐기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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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7-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제목이 딱 읽고 픈 책이네요 바닷가 놀러가서 비스듬히 누워서요

이매지 2010-07-01 18:28   좋아요 0 | URL
오, 바닷가 별장에서 읽는 걸 상상하니 마구마구 좋아지네요 ㅎㅎ
하늘바람님 오늘 첫 출근 하셨나욤? ㅎ

pjy 2010-07-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번달 책은 이미 다 샀단 말이예요--;

이매지 2010-07-01 20:57   좋아요 0 | URL
엇, 이제 7월 1일인데 벌써요? ㅎㅎㅎㅎ
 
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의 계곡>으로 처음 만난 해리 보슈는 이미 경찰에서 은퇴한 뒤의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고독하고 냉혹하지만 다섯 살 난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면도 지닌 탐정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경찰로 재직중이던 때의 이야기인 <유골의 도시> 속의 해리 보슈는 <시인의 계곡>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전직 의사가 자신의 개가 아이의 뼈를 물어왔다는 신고를 하고, 이에 해리 보슈가 출동한다. 험한 산 속에 묻혀져 있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아이의 뼈는 지속적인 학대의 흔적을 안고 있었다. 아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하던 중, 근처에 살고 있는 성범죄자가 물망에 오르고, 그는 심문을 받고 자살을 택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사건이라 윗선에서는 자살한 성범죄자를 범인으로 확정하고 사건을 마무리 짓고 싶어하지만, 해리 보슈는 이 사건의 범인이 성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윗선을 설득해 수사를 계속해 한 통의 제보 전화로 아이의 신원을 밝혀내는 데 이른다. 과연 아이에게는, 그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생명이 더 중요하고, 어느 사건이  더 잔인하겠냐만, 유독 아이가 피해자인 사건을 접하면 이 책 속의 해리 보슈처럼 불편함과 함께 꼭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긴다. 물론 이 사건을 불편해하는 해리 보슈에게는 뭔가 숨겨진 사연이 더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쉽게도 아직 전작을 만날 수 없으니 그저 위탁 가정을 전전했다는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그 비밀이 있을 것 같다는 지레짐작을 해보는 수밖에. 어쨌거나, 아이의 유골이 발견되며 모두의 기억에서 잊고 싶었던, 지우고 싶었던 일들이 하나둘 씩 떠오르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전개가 진행되며 긴장을 더해간다.

  대개의 시리즈가 그렇듯이, 시리즈의 묘미는 물론 흥미로운 사건 자체에도 있겠지만, 그 사건을 풀어가며 얼핏얼핏 드러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번 이야기 속에서는 얼핏얼핏 해리 보슈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베트남에 참전했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보면 <유골의 도시> 이전과 이후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초반에는 유골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주목을 했다면, 유골의 정체가 드러나고, 과거의 이야기가 하나둘 꺼내지면서는 과연 해리 보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갈 것인가에 집중하게 됐다. 해리 보슈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수식어답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나 아동 학대라는 문제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보여주는 점이 돋보였다. 결국 폭력은 또 하나의 폭력을 낳고, 마치 나비 효과처럼 조금씩 그를 둘러싼 환경을 파괴해가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권인 <블랙 에코>가 출간되었다. 이왕이면 시리즈 순서대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지만,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해리 보슈 시리즈를 앞으로 모두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조급한 마음을 붙잡고 느긋히 기다려봐야겠다. 해리 보슈를 조금씩 알아가며 그의 매력에 자꾸만 점점 빠지는 것만 같다. 이어질 시리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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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6-2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매지님 이미지 사진 도날드, 아, 볼수록 매지님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귀엽다는 말 밖엔. 나는 아직도 당신이 코스프레(?)했을 거라 믿고 있어요.ㅋㅋㅋ

이매지 2010-06-28 1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 주말에 야구장에서 오리갑님을 알현하길 바라고 있을 뿐이예요.
저는 오리갑의 노예 ㅋㅋㅋ

lazydevil 2010-06-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넬리를 빨리 시작해야 할텐데요...^^;

이매지 2010-06-29 22:59   좋아요 0 | URL
일단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ㅎㅎㅎ
찬찬히 시작하세요~

같은하늘 2010-06-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로 나오는 책인가 보군요. 이왕이면 순서데로 출간해주시지 왜 그랬데요?
근데 제목이 오싹해요.

이매지 2010-06-30 23: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시리즈 8번째 이야기예요.
아무래도 시리즈를 시작하기엔 부담이 됐던지,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시리즈가 아닌)부터 낸 다음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니까 시리즈 전권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나보더라구요.
뭐 결국은 '수요'가 문제인 것이었던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