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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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수사의 발전이 추리소설을 망쳤다, 라고 할 정도로 요즘 추리소설은 논리보다는 증거를 통해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독자가 개입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인지 어지간해서는 크게 매력이 없다. 고전 추리소설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치밀하게 구성된 트릭. 범인의 의외성. 그리고 어디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고 독자를 도발하는 작가. 이런 요소에 매료되지 않을 추리소설 애호가가 어디 있을까. 실로 오랫만에 그런 기개를 이 책에서 느꼈다.

  음악 또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일곱 명의 예술대생. 방학 동안 기량도 닦고 더위도 피할 겸 고즈넉한 산속에 위치한 리라장을 찾는다. 예술가의 기질이 있어서일까. 저마다 개성이 강해 티격태격하기 일쑤지만, 예술이라는 공통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견제하며 느긋한 날을 보내려 한다. 하지만 이중 한 커플이 갑작스럽게 약혼을 발표하고, 인근에서 일어난 숯쟁이의 죽음으로 리라장을 방문한다. 시체 옆에 놓여진 스페이드 카드 한 장. 리라장에서 사라진 스페이드 카드는 이후 벌어지는 살해 현장마다 차례대로 하나씩 하나씩 등장한다. 하나씩 둘씩 죽어가는 사람들. 학생들 중 한 명이 범인임은 혹실하지만 알리바이상으로 볼 때 범인의 정체는 묘연하기만 하고, 그 수법과 동기 또한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과연 범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수법으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죽인 것인가.

  아유카와 데쓰야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작가이지만, 일본에서는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와 함께 '본격 추리소설의 신'으로 추앙받는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낯선 작가라는 설레임과 긴장을 휘어잡는 실력에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1958년 작품으로 약 50년 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었고, 촌스럽다는 느낌 또한 전혀 들지 않았다. 중간중간 작가가 독자에게 힌트를 주듯, 또는 복선을 깔듯 직접 개입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부분도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동시대를 사로잡은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와의 비교가 아닐까 싶다. 두 탐정 모두 사람이 셀 수 없이 죽어나간 뒤에 범인의 정체를 밝혀낸다는 점은 공통점이지만(사실 <리라장 사건>의 명탐정 호시카케 류조는 이미 사건이 미궁에 빠질 무렵 등장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 그 외모는 사뭇 다르다. 능청스러움과 덥수룩함 뒤에 감춰진 예리함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매력이라면, 호시카케 류조는 외형부터 스마트함을 풍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탐정. 최근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삼수탑>을 읽어서인지 두 탐정이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피식거렸다. 

  물론 약간 두루뭉실하게 눙치고 가는 듯한 부분도 있었고, 우연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왜 아유카와 데쓰야가 '본격 추리소설의 신'인지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아유카와 데쓰야라는 이름. 기억해두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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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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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고쿠 나츠히코의 책은 늘 장광설에 정신이 반쯤 나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했다. 힘들게 읽어내려가면서도 그의 소설을 끊을 수 없었던 것은 역시 그럼에도 교고쿠 나츠히코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쁜 나날 속에서 짧은 호흡으로 읽을 책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이 한 권 두 권 쌓여가기 시작했고, 마치 마음의 부채처럼 그의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등장한 <웃는 이에몬>. 무엇보다 기존의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는 말에 끌려(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도 한 몫했다) 오랫만에 교고쿠 나츠히코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야기는 일본의 유명 괴담인 '요쓰야 괴담'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교고쿠 나츠히코가 풀어가는 이야기는 요쓰야 괴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요쓰야 괴담이 '괴담'이라면 <웃는 이에몬>은 기묘한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우직하고 통 속을 알 수 없는 무사 이에몬이 병 때문에 아름다움은 사라졌으나 자신만의 굳셈을 지닌 이와와 결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불화를 거듭하다 자신의 상식과 맞지 않는 것은 망쳐버리는 남자 이토 기헤이의 계략에 흔들리는 이야기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쉽게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두 남녀(이에몬과 이와)의 서툰 사랑 이야기가 <웃는 이에몬>을 이룬다.

  그동안 읽어온 교교쿠 나츠히코의 소설에는 뭔가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웃는 이에몬>은 이전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단 늘 나를 긴장케했던 장광설도 없고, 등장인물도 이와와 이에몬, 기헤이, 우메, 나오스케, 소데, 다쿠에쓰, 마타이치 등 몇몇으로 한정되어 있어 살짝 들어간 어깨의 힘도 풀고 읽을 수 있었다. 요괴는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기괴한 느낌을 풍기며 전개되는 이야기. 그 기괴함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과 어둠, 질투와 집착. 이것이 <웃는 이에몬>에 교교쿠 나츠히코다운 면모를 더해줬다. 

  요쓰야 괴담을 아는 이라면 분명 이미 익히 알려진 괴담을 비트는 데에서 얻는 나름의 재미가 있으리라. 하지만 <웃는 이에몬>의 원전에 낯선 이들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 기괴하고 매력적인 사랑 이야기를 읽어가는 데서 재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존의 교고쿠 나츠히코의 팬과 새로운 독자를 위한 책으로 무색하지 않은 작품. 특히 '항설백물어 시리즈'의 마타이치의 첫 등장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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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1-01-0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 베개 옆에 누워있는 책...오늘도 제 얼굴을 때린 책 -_-;;;
얼렁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이매지 2011-01-03 10:06   좋아요 0 | URL
제 베개 옆에는 장하준의 책이 자꾸 머리를 때려요 ㅠㅠ

Forgettable. 2011-01-03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고 싶다. 항설백물어 2권은 언제나오나요?ㅠ

이매지 2011-01-03 10:08   좋아요 0 | URL
그르게요, 저도 어여 읽고 싶은데 ㅠㅠ

다락방 2011-01-0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앙.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단 말입니까?
장바구니로 고고씽해야겠어요. 교고쿠 나쓰히코의 사랑이야기라니! 므흣!

이매지 2011-01-03 13:43   좋아요 0 | URL
말랑말랑한 연애담은 아니지만,
교고쿠 나쓰히코의 사랑이야기만의 매력은 분명 있습니다! 므흣!

가넷 2011-01-03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설백물어를 읽으면서 급 관심이 생겨서 웃는 이에몬,우부메의 여름까지 질렀습니다. 항설백물어는 한꺼번에 읽지는 않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어 볼까봐요.

이매지 2011-01-03 22:12   좋아요 0 | URL
항설백물어와 웃는 이에몬, 우부메의 여름.
모두 제각각의 특색이 있는 작품이죠^^
세 작품중에 가독성만큼은 <웃는 이에몬>이 최곤거 같아요 ㅎ
 


2011년에도 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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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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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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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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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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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다.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럴, 거리에 반짝이는 풍경, 모금을 위해 종을 울리는 구세군, 20세기의 크리스마스 영화의 고전 <나홀로 집에> 등등. 하지만 문학에 있어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작품은 역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이 아닐까 싶다. 구두쇠의 대명사 스크루지가 유령을 만나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배워간다는 내용이야 따로 읽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자(?) <크리스마스캐럴>을 읽기 시작했다.

  표제작인 <크리스마스캐럴>을 비롯해 이 책에는 총 7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소설, 에세이 등 방식은 조금 달랐지만 '크리스마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만큼은 공통적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찰스 디킨스 연구자인 마이클 슬레이터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글을 통해 왜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것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나 천하의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과천선해 베풀며 살게 된다는 <크리스마스캐럴>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강조하는 내용들이라 이야기로의 매력은 떨어졌다. 그저 '알고 있다'고 느껴온 작품을 한 번 읽은 데에 의미를 두고 싶다. 흥청망청 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감사와 즐거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조금은 변질되어버린 크리스마스 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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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3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스 디킨스가 왜 크리스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지 더 궁금해지는 리뷰~^^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길...

2010-12-30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10-12-30 22:55   좋아요 0 | URL
내년 크리스마스에 한 번 읽어보세요 ㅎㅎㅎ
순오기님도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하고 힘찬 새해 맞이하시길!
 
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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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여름을 알려온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이제는 간격이 짧아져 여름, 겨울에 한 권씩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긴다이치 코스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읽고 있던 <크리스마스 캐롤>을 잠시 접어두고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삼수탑>을 읽기 시작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작품이야 워낙 영상화가 많이 되어왔던지라 "네 번의 드라마, 한 번의 영화로 만들어진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최고의 이색작"이라는 문구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는데, '이색작'이라는 측면에서는 이견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했다. 

  일단 기존의 긴다이치 코스케의 사건이 삼인칭의 시점에서 그려지고 있다면, <삼수탑>은 독특하게도 일인칭 시점이다. 그것도 사건에 휘말리는 방관자적인 인물이 아니라 사건의 중심에서 용의자로 몰리는 한 여성(!)이 경험한 일들이 그려진다. 어린 시절 양친을 잃고 백부의 양녀가 된 오토네. 다소곳하고 얌전한 규수로 자라난 그녀가 어느 날 먼 친척으로부터 백억엔이라는 거액을 상속받게 된다. 단 조건은 그가 정한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백부의 회갑연 중에 한 남자가 살해당하고, 그가 오토메가 결혼해야 했던 그 남자로 밝혀지면서 피의 서막이 올라간다. 이 경우 유산은 오토네를 포함한 친척들이 함께 나눠야 하지만, 유산 상속이 예정된 이들이 하나씩 살해당하고, 살해 현장에 남은 증거 때문에 오토네는 용의자로 의심 받는다. 이때 그녀의 곁에 또 한 명의 의문의 남자가 등장하고 그에게 매료된 오토네는 그와 함께 유산 상속과 자신의 무죄를 밝힐 계획을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동안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읽을 때 책 속에서 긴다이치 코스케는 어딘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캐릭터로 등장했다. 하지만 <삼수탑> 속에서 긴다이치 코스케는 누구보다도 유능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단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김전일과 함께 하는 여행은 피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 또한 사람 죽어나가는 건 막상막하. <삼수탑>에서는 정말인지 무수한 시체를 넘어 결말에 이른다. 하지만 사람이 몇 죽어나가도 꿋꿋이 자신의 페이스대로 확신이 설 때까지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긴다이치 코스케. 어쩌면 그게 그의 또다른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여주인공의 시점에서 수사망을 피해 도주극이 그려져서 그런지 본격미스터리라는 느낌보다는 한 편의 스릴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자극적이고 굉장히 통속적이며 관능적인 느낌마저 주는 전개라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렇기에 영상화도 많이 된 듯.) 한 명 한 명 줄어가는 등장인물 속에서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져 마지막까지 지루하지 않았다. 다음엔 언제쯤 긴다이치 코스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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