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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타파스 사파리 - 스페인 한입 음식 타파스를 타고 떠나는 여행
유혜영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3년 6월
평점 :
약 10년 전 스페인어과 전공 수업을 기웃거리면서 스페인 문학과 문화, 라틴아메리카 역사 등에 빠져 지냈던 적이 있었다. 스페인어과 전공 수업을 무슨 교양 수업 삼아 신나게 듣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두 과목만 더 들으면 부전공이 될 뻔했었다. 제대로 읽고 말할 줄도 모르는데 부전공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맺은 스페인과의 인연(?)은 올해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면서 다시 깨어났다.
태양의 나라, 정열의 나라 등 스페인을 수식하는 말도 많고,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같은 축구 팀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에게 스페인은 '맛의 나라'였다. 10년 전만 해도 외국 음식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 않았던 터라 수업 시간에 풍문으로 들은, 돼지 넓적다리를 말려 만든다는 하몽은 어떤 음식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보다 지갑이 가벼웠던 대학생에게는 설사 어딘가에서 팔았다손 쳐도 빠에야도, 샹그리아도, 그리고 타파스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뭐 발렌시아 오렌지로 만들었다는 오렌지 주스 정도가 내가 접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스페인 음식이었겠지 싶다. 이제는 그때보다 다양한 음식을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지만 '본토'의 맛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름간의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여행 루트를 짜기에 앞서 스페인 문화, 그 중에서도 음식 문화에 대해 살펴보고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고, 맛볼 수 있는 것이 여행이기에. <스페인 타파스 사파리>는, 알폰스 10세가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는 술을 마실 수 없도록 법을 제정해 생겨났다는 타파스를 비롯해, 다양한 엠부티도(돼지의 다양한 부위를 이용한 저장 음식으로 보존, 가공해 숙성시킨 것과 익힌 것 크게 두 종류다), 하몽, 파에야 같은 스페인의 음식에 대해서뿐 아니라 보케리아 시장과 산타 카레리나 시장처럼 바르셀로나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공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그리고 <귀향> <하몽하몽> 같은 영화, 달리,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로 스페인 음식에 대해 풀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0년 넘게 스페인에서 생활한 자신의 경험을 전함으로써 단편적인 맛집 기행 혹은 미식 여행이 아닌 스페인에서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유학 시절, 한밤중에 타파스 집을 순례했다는 이야기나 스페인인 남편과의 일화 같은 소소한 이야기는 간단히 먹는 타파스 같은 느낌이었다.
각 장의 말미에는 'OO구역 현지인처럼 즐기기'를 붙여놓아 저자가 추천하는 타파스 가게, 스페인 음식점, 구경(혹은 쇼핑)할 만한 가게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르셀로나에 한정된 정보라 더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는 내게는 조금 아쉬웠지만, 맛, 디자인에 별점을 매기고 대략적인 가격대도 제시해줘 주머니 사정에 맞게 골라갈 수 있게끔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맛깔나는 에세이에 싱싱한 요리 사진과 일러스트, 여기에 간단한 레시피까지. 다양한 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요리처럼 읽고 나면 한 끼 맛있게 먹은 것처럼 배가 부른 책.
언어는 소통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음식을 체험하고 나누는 데는 어떤 준비나 과정도 필요하지 않다.기꺼이 새로운 향과 맛을 받아들일 자세만 있으면 충분하다.거기에 약간의 배고픔을 남겨둔다면 최상의 준비를 마친 셈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도대체 이 요리는 어떤 재료와 방식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더욱이 그 요리 뒤에서 피카소나 달리가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면 어떻겠는가? 요리와 사람, 공간, 거리,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역사의 일부가 되어 후세에 전해질지 궁금하다. 의식주의 형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하지만, 음식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유한 민족성과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식에 담긴 철학, 문화, 생각과 자세만 잘 살펴봐도 한 민족의 지난 시간과 미래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 자신을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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