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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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이라면 딱딱하고, 재미없고, 뭔지 알 수 없는 느낌만 풍길 뿐이라는 인식을 없지 않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런 편견때문에 이 책을 빌려놓고 선뜻 잡지를 못했는데, 이는 이 책을 지은 작가인 나이폴이 200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해서 결국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빠르게 나이폴이 그려주는 미겔 스트리트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겔 스트리트는 외부의 사람이 본다면 '빈민굴'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곳이다. 이 책은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주인공으로 삼아 연작 소설의 형식으로 총 17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의 배경은 1930년대,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인 포트 오브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우리의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다. 미국군에게 츄잉껌을 얻으려고 하는 모습에서는 특히나 더.

 여튼, 이러한 암담한 시대상에도 불구하고, 미겔 스트리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유쾌하다. 어찌보면 작가는 그들을 희화화함으로써 그들의 절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보여주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어쨋든 표면적으로 그들은 볼 때 그들은 유쾌하고, 그와 동시에 권태, 무위, 그리고 도덕적인 타락, 막무가내적 고집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결국 미겔 스트리트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 화자가 단지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장학금을 받아 떠나는 장면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안겨줬다. 그 곳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 점차 난폭해져갔던 그. 그런 그가 그 곳을 떠난다고 해서 그 곳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술술 읽혀가는 책이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담겨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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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1-05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한테 책 보내려고 땡스투합니다^^

이매지 2006-11-0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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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안에 민음사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고말겠다는 나름의 계획아래, 전집 순서대로 볼까하다가 평점이 좋은 작품부터 접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단순히 평점만 보고 접한 책이다. 작가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이 책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채.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모래 구덩이 속에 갇혀버리듯이 그렇게 나는 이 책 속에 갇혀버렸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곤충채집을 위해 휴가를 얻어 모래로 뒤덮인 곳으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마치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이유를 알지 못하고 15년 간 군만두만 먹으면서 갇혀버리듯이, 이유도 모른 채, 잡혀버리고 만다. 한 시라도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모래로 뒤덮인 마을. 그는 그가 묵고 있는 모래때문에 나무가 썩어가는 집을, 그리고 그 집의 주인인 묘한 느낌의 여자를, 모래의 껄끄러움만 가득한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모래 산을 올라갈 때, 자꾸 미끌어지는 것처럼, 그는 점차 점차, 그는 도망가지 못하고, 결국은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 탈출하겠다는 <희망>의 조각만을 남겨놓은 채, 그렇게 적응해간다.

 마치 이 책 속에서 주인공이 당하게 되는 일은 시지푸스가 끊임없이 바위를 움직여야 하는 일과도 같다. 그는 끊임없이 모래를 파내야 하는 것이다. 파내고, 또 파내고, 하지만 모래는 줄어들지 않고, 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모래 특유의 껄끄러운 느낌이 머리 속에 남아서 어느새 책을 놓는 그 순간에 목이 말라왔다. 그래서 마신 물에서 나는 개운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내 목에 모래가 걸린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계속 껄끄러움이 남아 있었다.

 이 책은 결국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혹적으로.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이 책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접해도 좋다. 읽다보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테니까. 벗어날 수 없는 모래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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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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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타인에게 얘기하는 것이기는 해도 스스로 꿈꾸는 것은 아니다-78쪽

물론 꾀병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마치 너무 바짝 감아 튕겨나갈 듯한 태엽을 손 안에 꽉 쥐고 있는 것 같다. 언제까지고 이런 일을 참고만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이 되어가는 대로 그냥 나를 내맡겨서는 안 된다.-81쪽

없다고 곤란해질 일은 전혀 없다. 환상의 벽돌을 듬성듬성 쌓아올린 환상의 탑이다. 하기야 없어서는 안 될 것들 뿐이라면, 현실은 슬쩍 손도 댈 수 없는 위험한 유리 세공품이 되어버린다...요컨대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에 컴퍼스의 중심을 두는 것이다-92쪽

편도표란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맥락 없는 생활을 뜻한다. 그렇게 상처투성이 편도표를 손에 쥐고서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왕복표를 거머쥘 수 있는 사람에 한한다. 그렇기에 돌아오는 표를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지 않도록, 죽어라 주식을 사고 생명보험에 들고 노동조합과 상사들에게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156쪽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될 지 말지는 오로지 이 순간에 달려 있다...뭘 우물쩍거리고 있는 것이냐!......순간이란 당장에 포착하지 않으면 늦는 법이다......다음 순간에 편승하여 뒤를 쫓을 수는 없는 것이다!-187~8쪽

똑같은 색의 반복은 효율적인 보호색이라고 한다. 생할의 단순한 반복 속에 녹아들면 언젠가는 그들의 의식에서 멀어지고 마침내 지워져버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201~2쪽

아,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봐. 고소공포증, 첨단공포증, 마약중독, 히스테리, 살인광, 매독, 백치......각각 1퍼센트로 치고, 합하면 20퍼센트......물론, 충분히 가능하겠지만.......인간은 100퍼센트 비정상이라는 것이 통계상 증명되는 셈이지.-206쪽

돌아보니, 구멍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자이크란 거리를 두고 보지 않으면 좀처럼 전체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기를 부려 눈을 가까이 들이밀면 오히려 단편 속으로 헤매들고 만다. 하나의 단편에서 벗어난다 해도 다시금 또 다른 단편에 발이 걸리고 만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가 본 것은 모래가 아니라 단순히 모래의 입자였는지도 모른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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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구판절판


아구리는 너무 많이 변해버린 그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아구리는 남자의 몸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목덜미에서 어깨로 흐르는 선을 감싸듯 쓰다듬던 손바닥의 촉감도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옛날의 연정은 어느새 색이 바래버렸다. '그런 때도 있었나...'하는 어렴풋한 향수같은 감정만 남았을 따름이었다. 잊혀져가는 노래가 끊어질 듯 들려오는 오르골 같다고나 할까. -15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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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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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 실려 있다는 단편소설집이다. 원래는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원작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접한 책인데, 원작보다 다른 작품들의 재미에 폭 빠지게 됐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기본적으로는 모두 사랑이야기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듯이, 다양한 종류의 사랑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사랑을 무던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개인이 어떠한 결함(예를 들어, 장애라던지 나이에 맞지 않게 철이 없다던지, 이중인격적이라던지 이혼녀와 같은 사소한 결함아닌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은 삶에 있어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주인공이 사랑을 하고 있던, 아니던 간에 말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하나의 일상 혹은 비일상으로 구분되는 것뿐이지 필수불가결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대개 로맨틱한, 그리고 말도 안되는 연애소설만은 아니다. 현실감각을 유지하면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특징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좀 더 책 속의 인물에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 같다.

 사랑의 시작될 때의 설레임,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의 열정, 이윽고 무감해지고 차가워져버린 사랑의 끝. 이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개체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것들을 이 책은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짝살짝 감춰가면서 감칠맛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게 작가의 연륜이고, 힘인것인가?! 이 작품이 지어진지 족히 20년은 되었는데도 지금과 동떨어지지 않은 이야기인 것은 아마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때문에 집어들게 된 책이지만, 그보다 좀 더 소중한 작품들을 접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린 결말이라는 점에서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어서 간만에 상상의 즐거움을 누려보았다.

 사랑을 하려는, 하고 있는, 사랑이 식어가는 모든 이들이 읽으면 와닿을만한 책이다. (특히 여자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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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5-06-28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다놓고 아직도 못읽고 있네요.ㅎㅎㅎ
사랑을 하려는, 하고 있는, 사랑이 식어가는 모든 이들이 읽으면 와닿을만한 책이다
마지막말 멋있어요!!

이매지 2005-06-2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그런 민망한 말씀을^-^;;;;
시간 나시면 어여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