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1 : 국내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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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요?"
"그건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 덕과 도를 쌓고, 자비심을 품어 남을 가련히 여기는 선한 마음과 용기를 갖는 것만이 작지만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커다란 운명을 움직일 수 있을만큼……."
박 신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장 호법의 말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 그러나 마음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누구라도, 아무리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은 운명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역으로 큰 줄기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 동시에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니던가. -42쪽

모두 바빠 보였다. 왜 저리 바쁘게 지나가는 걸까? 그래, 저들은 살려고 바쁜 것이다. 너무 많았다. 싸우지 않고는 제 몫을 차지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아져 버렸다. 그리고 똑똑해졌다. 너무 똑똑해서 남을 이기지 않으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지식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지혜는? 지혜는 어디로 갔나?
어린아이에게 총을 쥐어 주어서는 안 된다. 일단 총을 쥐고 난 다음에는 도로 빼앗기 힘들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세상은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었다. '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에서 '하라'의 말은 점차 타성적으로 잊혀 갔고, '하지 말라'는 말은 반발을 부추긴다. 이런 지경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혼자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230쪽

구원의 길이 없었던, 설령 있다 해도 손을 댈 수 없는 엄청난 적과 마주쳐서 어떻게 했어야 한단 말인가? 아아, 그것도 섭리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건 결코 섭리가 아니다.
악귀는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것을 해소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평범한 인간이 거대하게 똘똘 뭉친 악과 어떻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그 앞에서 어떻게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
무슨 힘으로?
권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 권능을 얻으려는 것이다. 얻지 못하면 훔치기라도 할 것이다. 인간의 몫은 인간이 맡아야 한다. 구세주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사이 사라져 가는 생명이 너무 많지 않은가.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라면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궁극의 목적이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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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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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진리는 시간의 딸』을 읽고 난 뒤 조세핀 테이의 매력에 빠져 다른 작품이 없는지 찾아봤다. 하지만 『진리는 시간의 딸』 외에 국내에 번역·출간된 다른 책은 없었고, 일본 미스터리가 대세인 흐름 속에서 조세핀 테이 같은 영미 고전미스터리 작가가 새삼 소개될 수 있을까 하며 내심 포기했었다. 그렇게 조세핀 테이를 잊어갈 즈음, 신간 도서 목록을 살피다 우연히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을 발견했다. 아, 얼마나 기다려온 조세핀 테이던가! 마침 좋은 분께서 책선물을 주신다고 해 넙죽 받아 이번 주말, 오랜만에 고전 미스터리의 매력에 푸욱 빠졌다.

  입양됐긴 하지만 제대로 된 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난 열다섯 소녀 베티 케인. 방학을 맞아 고모댁에 놀러간 그녀는 개학한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고 실종된다. 그리고 4주만에 온 몸에 멍자국을 안고 돌아온 소녀. 그녀는 자신이 프랜차이즈 저택이라는 곳에 납치·감금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프랜차이즈 저택에 사는 샤프 모녀는 소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소녀는 기가 막힐 정도로 저택의 세부를 세세히 설명한다. 주변에 집이라고는 한 채도 없는 허허벌판 위에서 떨어져 살아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 취급을 받아온 모녀, '키스라고는 성경책 말곤 해본 적이 없는 애'처럼 순수한 모습의 소녀. 이들의 진술은 엇갈리지만 소녀의 진술이 너무나 명쾌했기에 사건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모녀의 소행으로 흘러간다. 세상이 모두 샤프 모녀에게 등을 돌리지만 우연히 이 사건을 변호하게 된 로버트 블레어는 이들을 신뢰하기 시작하고, 베티 케인의 진술과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탐정으로 나서 조사를 시작한다.

  <타임스>가 선정한 '위대한 범죄소설작가 5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영미 추리소설계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달랑 『진리는 시간의 딸』 한 권뿐이라 아쉬웠던 조세핀 테이. 이번에 소개된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영국추리작가협회, 미국추리작가협회에서 선정한 100권의 도서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영화와 TV드라마로도 제작된 작품으로 탄탄한 스토리가 보증된다. 18세기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을 착안한 이 작품은 결국 미결로 남은 실제 사건을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여준다. 국내 독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이 낯설지만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데 있어서 곁가지 이야기에 불과하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사건 자체의 자극성에도 눈길이 가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시체 한 구도 없이 그저 무고죄를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이야기는 크게 보면 샤프 모녀와 베티 케인의 대립이 중심이 된다.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왜 하필 그들이 타깃이 된 것인지를 추적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소위 '마녀사냥'이라고 하는 샤프 모녀를 향한 시골 사람들의 공격이다. 옐로페이퍼 격인 지역 신문에 이 사건이 소개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1948년이 아니라 2011년의 일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말단은 자극하는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조금은 심심한 추리소설일 수도 있다. 유혈이 난자하는, 정교한 트릭을 깨부수는 류의 추리소설도 아니고 현대 법정 스릴러에 비해서 법정신도 약하다. 하지만 자극적인 맛은 없어도 먹다보면 자꾸만 생각나는 집밥처럼 그 담백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게 된 조세핀 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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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8-3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리는 시간의 딸]에 대한 기대가 커서인지 막상 읽고나니 그저 그랬는데, 이거 재밌을 거 같네요.

이매지 2011-08-30 22:53   좋아요 0 | URL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긴장감이 유지되더라구요.
약간의 로맨스(?)도 곁들여져 애거사 크리스티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ㅎㅎ

pjy 2011-08-3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이야기보다는 그나마 기증전결이 제대로 있는 고전소설이 좋아요^^

이매지 2011-08-31 11:20   좋아요 0 | URL
요새는 정말 트릭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고전은 또 고전 나름의 탄탄한 맛이 있죠 :)

카스피 2011-08-3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테이의 작품이 번역되었네요^^

이매지 2011-09-01 12:47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도 어서 읽어보세요! :)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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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범죄자에게는 두 가지 일관된 특징이 있어. 그를 범죄자로 만드는 게 이 두 가지 특징이네만. 그게 뭐냐 하면 터무니없는 허영심과 엄청난 자기중심주의라네. 이건 피부만큼이나 선천적인 성질이고 교정이 불가능한 것이야. 차라리 눈 색깔을 '교정'하라고 하지."-296쪽

"범죄자를 정의해보겠답시고 지금까지 두꺼운 책이 무수하게 쓰였지만, 사실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거야. 범죄자는 자기가 눈앞에 당면한 매우 개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걸 행동의 주된 동기로 삼는 인간이란 말이지. 이기심을 없앨 순 없지만, 그걸 만족시킬 가치가 없게 할 순 있어. 아니면 그걸 만족시킬 가치가 별로 없게 하거나."-296쪽

피고석에 선 두 사람을 보며 로버트는 생각했다. '좋지 않았던 옛시절'에는 죄 있는 자만이 웃음거리가 되었건만, 이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재판을 받지 않은 자고 죄 있는 자는 즉각 안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보호된다. 뭔가가 단단히 잘못됐다.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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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격 -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격의 미스터리!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손민중.김홍래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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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것은 가격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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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08-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지님~~~
책 주문해서 보내려고 하는데 '문발동'이란 주소가 검색이 안되네요,,ㅠㅠ

라로 2011-08-23 23:22   좋아요 0 | URL
파주시로 하니까 문발리로 나오네요. 그런데 배송이 27일로 나와요.
쫌만 기둘리세요~~~.^^

이매지 2011-08-23 23:34   좋아요 0 | URL
문발동으로 바뀐지 얼마 안 되었어요. ㅎㅎㅎ
27일이라니; 신간이라 오래 걸리나보네요 ㅠㅠ
천천히 기다릴께용~ 미리 감사합니다!
 
상투 푸딩 - Chonmage pur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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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고만고만한 영화. 달콤한 푸딩과 따뜻한 이야기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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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8-22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촌마게푸딩'이라고 책 읽었어요^^ 남자배우가 키가 꽤 크던데 촌스러운 설정에 어울리던가요?ㅋ

이매지 2011-08-22 21:17   좋아요 0 | URL
각색을 많이 안 했는지 원작이랑 거의 비슷하더라구요.
남배우는 생각보다 잘 어울렸어요. ㅎㅎ
가볍게 보긴 좋은 영환데 원작보다 감흥은 덜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