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구판절판


사람들이 문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들으면 대개 옳다. 그런데 그런 지적들이 내겐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다른 길이 보여도 발이 그쪽으로 가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259쪽

희망이나 전망이 없어도 살아야 되는 게 삶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희망을 견제하지 않고 어떤게 사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나는 희망 없이도 역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인간은 헛된 희망 때문에 무지몽매해진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무지몽매해지는 것은 어설픈 희망때문이다-261쪽

심오한 소통은 순전히 개인의 몫인데....나는 회의적이다. 가령 섹스처럼 남녀가 살을 맞대고 있는 경우도 남과 전혀 소통이 안 된다. 섹스 행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감각밖에 없다. 자기가 느낄 수 있을 뿐이지 상대가 느끼는 바를 느낄 수 없다. 섹스는 결과적으로 편애다. 사랑하면 느낀다. 이런 말들은 우스운 말들이다. 나는 편애할 때 편안하다. 사랑, 보편타당. 이런 말들보다 편애, 편견 이런 말들이 더 소중하다.-26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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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 번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김훈이라는 사람은 에세이도 이렇게 만들어 내는구나. 라는 약간의 감탄을 자아낸 적이 있다(물론, 책을 읽을 때는 제법 어렵게 꾸역꾸역 읽어갔었다.). 흔히 유명 작가의 에세이를 생각하면, 난 늘 하루키의 말랑말랑한 에세이(소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를 떠올렸다. 하지만, 김훈은 소설도 그렇지만 에세이조차도 초지일관적이다. 그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그리고 날카로운 의식. 그런 것들이 이 작은 책에는 녹아 있었다.

  내가 읽은 것은 구판이다. 서지정보를 보니 신판에서는 아마 판형이 좀 바뀐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구판에서는 표지에 김훈의 얼굴을 떡 하니 싫어놓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책의 사이즈는 너무 작고, 그 속에 쓰여진 글씨는 너무 폭이 넓다. (말 그대로 글씨와 글씨 사이의 폭이 넓다.) 물론, 이런 판형이면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는 편하겠지만, 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부러 페이지를 늘리기 위한 수작으로 삐딱하게 보이니.

  책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접어두고, 에세이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김훈 나름의 날카로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의 사유의 폭이 넓고, 깊음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가 꼭 이런 글을 써야했는가라는 생각이 들게끔하는 어이없는 에세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에세이들을 그는 한 손에는 연필을 한 손에는 지우개를 들고 치열하게 써갔을 것이다. 아날로그 적 삶을 살아가면서 밥을 벌어먹고 있는 그. 그의 모습을 100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나에게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자전거 여행>보다는 어렵지 않게 읽었고, 한 인간의 사고의 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나와는 뭔가 맞지 않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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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에서 그는 공지영과 함께 책을 쓰고 있노라고 했었다.
아마 그 때 그가 말한 책이 이 책인 듯 싶다.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남자의 시선,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는 이 책은,
어찌보면 냉정과 열정사이 아류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왠지 관심이 간다.

2005년 5월 16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과 파리에 있는 두 작가가
서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것이라 한데,
한겨레 신문을 보지 않은 관계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지만...

둘 다 괜찮은 작가들이니 이 작품. 기대해봐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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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1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궁금하네요. 이멜 어떤 언어로 했을까요?

이매지 2005-12-1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로 번역가가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고보니 궁금해지네요 ^-^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구판절판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토오루는 그것을, 시후미에게 배웠다. 일단 빠져들고 나면,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도. -54쪽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110쪽

기다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어머니가 읽다 내버려 둔 주부잡지를 훌훌 넘겨보면서, 토오루는 생각한다.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시후미와 연결된 시간. 이곳에 시후미는 없지만 자신이 시후미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낀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15쪽

누구든 태어난 순간에는 상처 입는 일이 없어. 나,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예를 들어 어딘가 불편한 몸으로 태어나거나, 병약하거나, 몹쓸 부모를 만난다 해도, 녀석이 태어난 순간에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아. 인간이란 모두 완벽하게 상처 없이 태어나지, 굉장하지 않아? 그런데, 그 다음은 말야, 상처뿐이라고 할까, 죽을 때까지, 상처는 늘어날 뿐이잖아, 누구라도. -327쪽

누구든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로 상처 입는 것에 저항하는 거야, 여자들은. -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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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대개 어떤 작가를 접할 때 있어서 두어 작품만 접해보면 나와 코드가 맞는지 안 맞는지가 대번에 판단된다. 물론, 단 한권으로 호불호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왠지 나름대로 열심히 쓴 작가에 대해 실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 권만 접했을 때는 별로였던 작가들이 두 권째 들어 확 좋아하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대표적인 예가 레이몬드 챈들러다), 언제나 판단은 최소한 2권을 읽고. 라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놨다. 그렇게 시험적으로 2권을 읽고서 ' 나와는 정말인지 궁합이 안 좋군'이라고 판단을 내리게 되면 그 뒤로는 신간이 나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대표적인 예가 파울로 코옐로.) 그런데 그런 내 독서생활에 있어서 모호한 작가가 한 명 있으니 그가 바로 이 책을 지은 에쿠니 가오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그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씩은 책을 보다가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출간된 그녀의 작품을 죄다 읽었다. 게다가 신간이 나오면 '이번엔 괜찮으려나.'라는 생각으로 또 그 신간을 집어든다. 그것도 능력이면 능력이겠지만, 뭐.

  이번 책에서는 나이차가 엄청나게 나는 두 남녀의 사랑이 그려진다. 엄마의 친구와의 연애이니. 삐딱한 눈으로 본다면 둘의 관계는 원조교제처럼 보일테고,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랑에 빠진 두 남녀로 보일 거다. 세상에 별 다른 흥미도 없고, 학교는 그냥 졸업만 하기를 바라고,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토오루. 그는 삶의 이유를 시후미를 통해서 얻는다. 한 편, 시후미는 나름 토오루에게 시간이 갈수록 빠져든다. 이들의 사랑은 사랑인지. 아니면 서로에 대한 욕망인지. 책을 읽으면서 참 모호해졌다. 이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연상연하 커플인 코우지와 키미코. 그들의 사랑도 모호하다. 싸움을 하듯이 섹스에 탐닉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과 성욕의 구분이 모호해짐을 느낀다. 점점 서로를 옭죄는 사랑. 시간이 갈수록 파멸의 길로 이끌어가는 사랑. 스무살의 젊은이들과 유부녀들의 사랑은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길을 가는 외줄타기 같았다. 언제 파괴될 지 모르기 때문에, 더 짜릿하고 더 소중한 것이랄까.

  에쿠니 가오리의 어떤 책보다 나와는 지독하게 코드가 맞지 않았던 책이었다. 몇 군데의 문장은 마음에 들었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따분했고, 분위기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연 내가 다음 그녀의 작품을 또 읽겠다고 덤빌 수 있을까. 싫으면 안 읽으면 그만일텐데. 그것도 쉽지 않으니 참.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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