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에스프레소
이정호 지음 / 이매진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대개 매일 아침 집으로 배달된 신문을 훑어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포털사이트에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기사의 제목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보다 빠르게 새로운 기사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쓰레기같은 기사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 기사의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도 한다. 과연 어떤 방향으로 기사를 이해해야하는지, 실제 우리나라의 기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책이다.

  소위 '언론 플레이'라는 말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좋은 기사 거리가 있으면 우르르 그것을 기사화하여 한 사람을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하고, 그것의 진실을 까발린 언론에 대해서는 몰매를 때리는 것도 하나의 '언론 플레이'이다. (최근에 일어난 황우석 관련 사태를 보면 그렇지 않은가? PD 수첩 1탄을 방송했을 때는 MBC에게 뭇매를 때리던 언론은 이제는 돌연 무너진 황우석 신화 앞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이런 '언론 플레이'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기사를 쓰는 (혹은 방송을 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신문사에 소속되어 있고, 신문사는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보수적인 신문사, 진보적인 신문사. 그 아래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는 자신이 속한 신문사의 입장에 치우칠수밖에 없다. 그러니 "신문에서 나온 기사인데..."라는 믿음은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는게 낫다. 

  책 속에서는 실제 기사들을 인용하여 사회적인 이슈나 정치적인 쟁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A라는 신문사는 이렇게, B라는 신문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자, 어떤 것이 진실인 것 같은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처음엔 아무런 생각없이 신문을 읽으면서 세뇌받듯이 받아들였던 그 기사의 진실 앞에 얼떨떨한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그동안 언론에 속고 살았다는게 너무 분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어두운 면, 밝은 면, 더러운 면, 추악한 면. 그 모든 것을 파헤쳐서 대중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시켜줘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정말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 나라의 언론은 순전히 그들만을 위한 언론이었다. 한 예를 들면, 조선일보에서 못 먹어서 장농에서 굶어죽은 아이, 생활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하면서 외국의 사례를 끌어다 국가에서 보다 많은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에서 실제로 그런 정책을 만들려고 하자 그들은 복지비 예산이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다며 분노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난치병에 걸린 한 소년을 소개하고, 며칠 뒤에 삼성측에서 그 소년을 돕기로 했다는 것을 기사화한다. 결국에는 재벌들의 미담기사를 싣기 위해서 포석을 깔았던 것이다. 노조가 파업하면 노조의 입장에서 기사를 싣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외국의 사례를 끌어와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끼워넣는 기사들도 정말 많았다.

  자신의 주체성을 갖지 못한 언론. 언론개혁의 의지조차 가지지 못한 언론.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그야말로 사기를 치고 있는 언론.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의 작은 목소리는 무시해버리는 언론. 그런 언론은 이제는 더이상 믿을 수 없다. 넘치는 기사 속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밝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언론에 대해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 언젠가는 믿을 수 있는 언론. 사회의 어둠까지 비출 수 있는 언론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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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역사 중에서 타인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타인은 과연 실재적인 것의 이름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비밀스럽게 존재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타인이 존재하며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왔다고 하는 것은 텔레비전의 선전이거나 종교의 광고문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들 타인을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실제로는 만난 일이 없기 때문이다.(「회색 時」)

시간은 이렇게 그를 지나쳤고, 그는 그렇게 ‘타인’을 지나쳤다. 어쩌면 그가 그렇게 시간을 스쳐갔고, 타인들 역시 그렇게 그를 스쳐갔을지도 모르겠다.
데뷔한 지 십삼 년, 그는 그렇게 변화해왔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통과하고 실재하지 않는 ‘타인’과 마주하며.

1993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각각 한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포함 열일곱 권의 책을 펴냈으니(번역서 두 권까지 포함하면 열아홉 권!) 이 년에 세 권꼴로 책이 나온 셈이지만 1999년 『그 사람의 첫사랑』이 나온 이후 창작집은 칠 년 만이다. 그사이 출간된 산문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제외한 여덟 권이 모두 장편소설이다.
그사이, 배수아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공무원과 소설가라는 투잡(two-job)족--이 말은 배수아가 맨 처음 사용한 말이다--에서 전업 소설가가 되었고, 공항과 자택을 오가던 그는 이제 독일과 한국을 오간다. 독특한 문체 때문에 폭넓은 독자 대신 열혈 팬들을 거느리고 있던 그는 이제,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2004년 『독학자』를 내놓으며 그는 “나의 초기 소설 및 그 독자들과 결별하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독자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을 듯하다. 그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 역시 독자들에겐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이므로.

“뭐예요?”
“죄송하지만 문을 좀 열어주시겠어요? 난 이곳에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집주인이 잊었는지 문을 열어주지 않는군요.”
“뭐라구요?”
“문을 좀 열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난 바이올린 레슨 부탁을 받았는데 그것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서, 그런데 이곳이 가르쳐준 주소이고 오늘 시간도 맞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군요. 그러니, 문을 좀 열어주었으면 해서요.”
“도무지 못 알아듣겠네. 그러니까 당신은, 이곳에 찾아온 사람이 맞는데, 당신이 이곳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문을 대신 열어달라는 거군요. ……찾아갈 방이 몇호인데요?”
“1323.”“그런데 왜 내가 문을 열어줘야 하는 건지, 별일이네, 참. 이봐요, 난 1105호에 사는데, 그말은 당신이 벨을 누른 이곳은 지금 1105호란 말이에요. 1105호와 1323호는 비슷하지도 않은 숫자인데, 이상하군요. 왜 그러는 거지요? 내 생각에는 당신은 그의 이웃에게 부탁해야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나도 물론 그러려고 했지만, 아무도 집에 있질 않아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내 생각에는, 당신은 오늘 그냥 돌아가고 나중에 다시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아니면 다른 이웃에게 부탁해보든가요. 나는, 내가 문을 열어주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게다가 돈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마짠 방향으로」)

그는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어쩌면 대화가 아니라 끊임없는 독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내 앞에 있는 것은 ‘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재하지 않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나(우리)의 이야기는 허공을 맴돈다. 그 이야기는 결국 나(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던가. 언제나 그랬듯이. 문득, 그의 소설을 읽으며 떠올려본다. 진짜 ‘대화’라는 것을, 나는 ‘나누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어쩜 듣는 이 없는 무언가에 대고 끊임없이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투정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통 부재의 세상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
결국은 그가 나이고, 내가 너인 이 세상에서.(「훌」)

나는 말이지, 언제나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왜냐하면 너무 흔한 이름이어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었거든. 내 할머니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 게다가 가까운 친구 중의 한 명의 할머니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 뭐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아이들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언제나 한 명 이상은 반드시 있었어.(「마짠 방향으로」)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던져놓기만 하는 줄 알았던 그가 이번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최근 몇 년간 그의 인물들(실은 그의 ‘인물’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고민스럽다. 대부분 그의 인물들은 웬일인지 그 자신으로 읽혔다)은 그와 마찬가지로 항상 ‘길 위’ 어딘가에 있었다. 그들은(그리고 그는) 왠지 ‘지금-여기’가 아닌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분명 실재하는 어떤 세계이기는 하나 ‘지금-여기’는 아닌 듯한. 그런데, 이제, 조금씩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살갑게 다가와 말을 건네거나 조근조근 맛깔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소설을 두고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 독자들은 곰곰 다시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소설들이 지금 나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지.

나는 완벽히 소외된 자였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방에 무수히 많은, 그런 식으로 소외된 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나는 그들처럼 그의 공간과 환호를 채우기 위해 징집된 존재였습니다. 내 탄생은 예술을 위한 징집이었을 뿐입니다.(「양곤에서 온 편지」)

이로써 어쩌면 대답이 된 걸까? 그가 “삶이 주는 모욕을 견디”(「병든 애인」, 『그 사람의 첫사랑』)며 살고 있는 이유가? 어쩌면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야기하고 있었던 그 무엇을 우리가 너무 늦게,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작가’ 배수아는 이제, 끝나지 않을 듯 보이던 길 위에서의 서성거림 끝에서 천천히 길을 찾는 듯하다.
사유는 더욱 깊어지고, 문장은 더욱 치밀하고 견고해졌다. 그것은 지금 활자화된, 지면 위에 붙박인 그 내용 이상의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정확해서 오히려 암호와도 같아진 그의 문장을 다시 한번 한 자 한 자 해독해나가야 한다.

난 어떤 하나의 문학적 언어가 ‘완성’의 단계에 가 닿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도구로서의 언어가 항상 폐쇄적인 룰을 갖고 있다고 믿지는 않아. 적어도 나는 가능한 한 최경계에서 작업하고 싶어.(『당나귀들』)

“작가란 동시대 정신을 대표하는 자가 아니라 그 경계에 있는 자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언제가 말했다. 그는 분명 ‘작가’이다. 그저 ‘소설가’가 아니라.
1993년, 데뷔 당시 독특한 신세대 작가 중의 하나였던 그는, 이제 경계에 있는 자의 대표가 되려는 듯하다.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영혼에 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날 뿐이다.(「회색 時」)

그의 영혼이 또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 또 어떤 잠재력을 보여주게 될지, 그의 앞으로가 더욱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 배수아 |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소설과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따. 2003년 한국일보문학상,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 발표작품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소설집, 고려원, 1995
『랩소디 인 블루』, 장편소설, 고려원, 1995
『바람인형』,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1996
『부주의한 사랑』, 장편소설, 1996
『만일 그대가 사랑을 만나면』, 시집, 르네상스, 1997
『심야통신』,소설집, 해냄, 1998
『그 사람의 첫사랑』,소설집, 생각의나무, 1999(『No.4』로 재출간, 생각의나무, 2005)
『철수』, 중편소설, 작가정신, 1998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장편소설, 이룸, 2000
『붉은 손 클럽』, 장편소설, 해냄, 2000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산문집, 이룸, 2000
『이바나』, 장편소설, 이바나, 2002
『동물원 킨트』, 장편소설, 이가서, 2002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2003
『에세이스트의 책상』, 장편소설, 문학동네, 2003,
『독학자』, 장편소설, 열림원, 2005
『당나귀들』, 장편소설, 이룸, 2005

* 초판발행 | 2006년 1월 9일
* 신국판 | 320쪽 | 9,500원
* ISBN | 89-546-0071-9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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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의 절망과 실존적 허무를 피에로의 몸짓으로 대변한 당대의 정신적 제왕이자
모더니즘, 리얼리즘, 실존주의의 시세계를 구축하며 전후 문단의 지평을 넓힌 기린아였다.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출생.
1939년 덕수공립보통학교 졸업, 경기공립중학교 입학.
1944년 명신중학교 졸업. 관립 평양의학전문학교 입학.
1945년 광복 후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올라옴. 종로 3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 茉莉書舍’ 개업.
1947년 시 <남풍>과 산문 <아메리카 시론>을 종합지인《신천지 新天地》에 발표.
1948년 김경린, 김수영 등과 함께 시 동인지 《신시로新詩論》창간에 참여. 자유신문自由新聞사 문화부 기자로 활동.
1949년 4월 신시론 동인들의 5인 합동 사화집詞華集《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출간.
1950년 모더니즘 동인그룹 후반기後半期에 참여하여 시작時作 발표.
1951년 1․4후퇴로 대구에서 《경향신문》전선판戰線版 발행 종군기자로 활동.
1955년 선박 ‘남해호 南海號’의 사무장으로 부산항을 떠나 미국을 여행함. 첫 시집《박인환 선시집選詩集》출판.
1956년 시 <세월이 가면>을 쓰고 친구 이진섭李眞燮이 곡을 부침. 3월 20일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는 것”
한국인의 애송시 ‘세월이 가면’ 과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50주기 기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세월이 가면’ 한 소절 읊조려 보지 않거나 한 잔 술로 버지니아 울프를 노래해 보지 않은 이들은 드물 것이다. 박인환, 그는 한국문단사에서 잃어버린 시대로 평가받는 해방 후 1950~60대에 문학뿐 아니라 영화와 노래 등을 즐겼던 댄디이자 ‘명동백작’으로 군림했던 한국 모더니스트의 기수였다. 31년의 ?은 삶을 살다간 그가 생전에 남긴 시집은《박인환 선시집》단 한 권뿐이지만, 최근에는 문단에서도 그의 50주기를 앞두고 전란 중의 피폐함과 전후의 상실감을 가장 잘 드러낸 시인으로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지분향기 가득한 오늘의 명동의 거리에 그의 향기는 가고 없지만, 한국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추억되는 박인환의 시,산문,사진 자료들을 이 한권에 집대성했다.

 

이국에 대한 선망으로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려한 문학청년의 내면적 풍경

이 시집은 1920년에 태어나 태평양 전쟁의 실감 속에서 성장기를 잘 보내고 해방과 더불어 성년을 맞은 뒤 곧바로 참혹한 내전을 겪은 조선 문학청년의 평균적 내면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분단과 전쟁으로 찢겨진 옛 식민지 출신 청년으로서 이국에 대한 선망과 감상주의로 제 상처를 어루만지며 궁핍한 시대를 버텨내려고 하였으며, 댄디의 옷을 벗어던지고 한 가족의 책임 있는 가장으로서 시대와 결합하는가 하면, 연극․영화 쪽에까지 관심을 뻗치며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전방위 예술인을 꿈꾸었다. 그의 시와 세계관은 새로운 지평을 겨냥하고 있다. 박인환의 생애는 서른 해에도 채 이르지 못했으나 그의 작품 활동은 생애 마지막 열해 동안 이뤄졌다. 20대의 10년은 큰 시인이 되기에 짧은 기간이 아니나 한국문학을 위해서, 박인환은 더 살았어야 했다.

소설가-한국일보 논설위원 고종석


“문단에 뿌린 화제만큼 시인으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으나, 외상술을 마실 때에도 ‘꽃피기 전에 갚을게’란 말을 남겼던 시인다운 시인이었다. 그의 ‘맑은 가난’이 그립다.”
-천양희(시인)

"전란 중의 피폐함과 전후의 상실감이 박인환의 시에서처럼 잘 반영된 시는 없었다. 박인환 문학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홍섭(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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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파티 - 하룻밤에 이루어지는 에피소드 에세이
브루스 에릭 카플란 지음, 김정한 옮김 / 홍익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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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번도 파티를 열어본 적이 없는 부부. 에즈먼드와 로즈마리. 그들은 성대한 파티를 열기로 결심하고 초청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한다. 하지만, 친구들, 이웃들, 친척들, 동료들. 이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키니 초청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을 줄이려고 해도 이 사람은 이래서 꼭 초청을 해야겠고, 이 사람도 빼놓을 수 없고. 누구는 빼놓고, 누구는 초대하고 할 수 없었던 이 부부는 결국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기로 하고 모두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손으로 직접 써서.맙소사)

  초대장을 보낼때만해도 전 세계 인류의 절반정도 참석하겠지. 다들 사느라 바쁠텐데 어떻게 오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파티가 열리던 날 비행기표는 완전히 바닥나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티에 참석한다.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만 했고,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고, 새로운 인연을 찾은 사람도 있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정말 혼란스러운 파티였다. 하지만 그들은 무사히 파티를 끝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누군가의 파티에 초대된 것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빼놓고, 누구는 초대할 수 없어서 모든 사람을 초청한 사람들에게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명단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을까? 괜시리 궁금해진다. 그리 무게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잠깐 머리를 식히는데는 괜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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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중가인 2006-02-1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이책 왠지 너무 귀여운데요 뺄수가 없어서 전원참석이라! ㅎㅎ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이매지 2006-02-12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대형서점가실 일 있으면 가서 한 번 보세요. 저도 서점에서 서서 후딱 읽었거든요 ^-^;
 
장국영이 죽었다고?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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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욱이라는 작가는 처음이다. 뒤에 실린 해설에 보면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와 <베티를 만나러 가다>도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난 이 작가를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어느해 4월 1일.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뉴스에 올라온 장국영의 죽음을 만우절의 장난쯤으로 생각했었다. 일부러 그 날 자살을 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본인이 아니고야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그는 만우절에 세상을 등졌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 

  총 아홉편의 단편은 저마다 제목도 독특하다. 표제작인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시작으로 당신의 수상한 근황,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양,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타인의 취향, 장미정원의 아름다운 원주민, 나가사키여 안녕. 제목들은 직설적으로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인 <장국영이 죽었다고?>에서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채무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한 신용불량자. 그는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히 생활한다. 만우절. 그는 채팅방에서 한 이혼녀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녀와 같은 시간 같은 극장에서 영화를 봤었고, 같은 날 결혼하여, 같은 신혼여행지에서, 같은 호텔에 묵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후 각자의 삶에 골몰했고, 그들의 삶도 계속된다. 다음 이야기인 <당신의 수상한 근황>에서는 한 보험 사기를 밝혀내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사고를 당한 뒤 아무도 믿지 않게 되고 그의 그런 성격때문에 그의 실적은 최고라 할만하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그의 앞에 우연히 첫사랑의 그녀가 피보험자로 등장한다. 그녀가 등장을 해도, 그가 뒤집힌 차에 갇혀있어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이후의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뭔가 정상인의 삶에서 약간 벗어나있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장국영이 죽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첫사랑의 그녀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생의 허망함, 고단함, 괴로움, 일상으로부터의 탈피. 그 단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재미있다. 괜찮다. 싶다가도 뭔가 2프로 부족한 느낌은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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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1-1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우절,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 아닌가요? 아마도 우연이겠죠. ^^

이매지 2006-01-1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도 만우절은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흠. 찾아봐야겠네요~

하이드 2006-01-1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우절은 왠만한 나라 다 있어요,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라면,,,, 음. 내 생일날. ( 때찌때찌 입방정;;)
이매지님, 저랑 비슷한 시기에 이 책을 읽으셨군요. ^^

이매지 2006-01-1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제 생일날 (만우절 다음날).
아무도 죽었다고 하면 믿어주지 않겠죠. 만우절 재방송이라고 -_-;
저도 안그래도 하이드님 리뷰보고 리뷰를 쓸까말까 고민했어요.
단편집은 왠지 정리도 안 되는것 같고해서.

하루(春) 2006-01-12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그럼 다른 나라도 4월 1일이겠네요? 그럼, 일부러 그런 걸 수도 있겠군요. 으음...

하이드 2006-01-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pril fool's day 라고 하는데, 유래는 까먹었어요. -_- a

오를르 2006-01-1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듣기로는 원래 새해가 4월 1일인 유럽의 나라가있었는데 대세에 따라 1월1일을 새해로 삼기로 했데요.
그랬는데도 바보같이4월 1일이 새해인지 알고 있는 사람을 놀렸다나..
속였다나... 하는 유래로 들었는데..
역시 확실하지 않는 지식은 쓸모가 없군요 ;;ㅔ;

이매지 2006-01-1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를르님. 덕분에 검색창에 두드리는 수고를 줄였어요 ^-^;
전 그냥 그 상식 믿을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