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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책에는 어떤 때가 존재한다. 그 책을 어릴 때 얕은 경험치를 가지고 읽느냐, 나이가 들어 연륜이 생긴 뒤에 읽느냐에 따라 다르고 내가 즐거운 기분일 때 읽느냐, 우울할 때 읽느냐에 따라 책은 다르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읽고는 별로였던 책이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읽으면 '나만의 명작'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아직은 그 때를 못만난 책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변신, 시골의사>는 내게 아직은 내가 이 책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줬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1학년 필수과목이었던 '독서세미나'란 수업때문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이 이야기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됐고, 그 깊고 심오한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좀 더 나이가 먹은 뒤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했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이 책을 잡았다.
책의 주인공은 그레고르 잠자라는 한 남자다. 그는 맏아들이긴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가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 나이든 부모님과 어린 여동생을 부양하는 그는 나름의 소망(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겠다는)도 가지고 있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하는 영업사원이다. 그렇게 열심히, 묵묵하게 일을 하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바로 그가 벌레가 되어버린 것. 그 모습을 하고는 돈을 벌 수도 없고, 식구들과 의사소통도 불가능해졌다. 그는 그의 방에 갖힌 채 서서히 소외된다. 가족들은 더이상 돈을 벌어다주지 않는 그에게 관심이 없다. 그는 사라져줘야 할 존재, 차라리 죽어줬으면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벌레가 되기 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많은 것들을 희생했던 그레고르 잠자. 그는 어쩌다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일까.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그보다 더 충격은 가족들의 변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사과를 던지는 아버지,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우리 오빠라면 가족을 위해서 다른 곳에 가거나 죽었을 꺼라는 여동생의 모습. 하지만 그레고르가 죽어버린 뒤, 그들은 과연 그를 위해, 그의 죽음을 위해 눈물을 흘렸는가? 각자 어떤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들의 생활이 생각보다 그리 암담하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깨닫고 삶의 희망을 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벌레가 되어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그레고르. 그의 가족은 그가 벌레가 되기 전부터 그를 '돈 벌어다주는 기계'쯤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레고르는 하나의 부품처럼 여겨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내 경험치가 그리 높지 않아 그레고르의 심정, 카프카의 의도를 100프로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읽었을 때보다는 좀 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시간이 흘러 몇 년 뒤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되면 그 땐 그들을 얼마큼 더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