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작가
김훈 첫 소설집 『강산무진江山無盡』 출간!

그는 글을 써서 ‘밥을 버는’ 사람이다. 신문에서, 잡지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그의 글을 보아왔다. 그러나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그는 우리에게 ‘소설가 김훈’은 아니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에세이스트, 우리 시대의 문장가’가 그에게 따라붙던 수식어였다. 1995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펴낸 바 있고, 1998년 『한 모금의 당신』을 연재하다 말았지만, 에세이스트가 소설을 쓴 것이었을 뿐, 그는 소설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2001년, 그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니, 그 안에 숨어 있던 소설가 김훈을 발견했다. 그리고 첫 소설을 발표한 지 11년 만에 우리는 그의 첫 창작집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첫 단편 「화장火葬」을 발표한 것은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고도 2년이 지난 2003년 5월이었다. 나이 어린 동료 직원에게 연정을 품은 초로의 사내는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다. ‘당신’이라고 감히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녀. 뇌종양인 아내의 병수발을 하는 동안에도 원피스 옷깃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빗장뼈와 그 위로 드러난 푸른 정맥에 사내의 마음은 수줍게 떨리기만 하고, 아내의 빈소를 찾아 절을 하는 추은주의 완연한 몸매에도 그는 어쩔 줄을 모른다. 병들고 시들어가는 인간의 몸에 대한 적나라하고 섬뜩하리만큼 리얼한 묘사들이 돋보였던 이 첫 단편으로 그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단편을 발표하고도 1년 6개월이 지난 2004년 겨울에야 그는 두번째 단편을 발표했고, 이듬해 5월에 발표한 「언니의 폐경」으로 다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첫 단편을 발표한 지 꼭 삼 년 만에 첫 창작집 『강산무진江山無盡』이 출간되었다.
여전히 ‘소설가’로 불리길 수줍어하는 그는 자신을 ‘자전거레이서’라 불러달라 하지만, 이제 그는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지 오 년 만에 세 개의 문학상을 거머쥔 온전한 ‘소설가’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열어볼 독자들은 아마, 벌써 다음 창작집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세속 도시의 네안데르탈인


이전의 장편소설들에서 원형적 이미지로 사유되던 속절없는 세상의 풍경은 이 소설집에 이르러 세속도시의 일상적인 디테일을 획득하고 현대성의 구체적인 한 표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는 『강산무진』에 등장하는 현대인들의 표정으로부터 오히려 호모사피엔스의 등장과 더불어 인류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을 발견한다. (……)『강산무진』은 이 현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세속도시를 견디고 기어가며 부유한 흔적이다. 하나의 생이 넘어진 곳에 다시 다른 생이 시작되고, 또다른 생과 더불어 한 번도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그렇게 보자면 이 소설집은 당대를 배경으로 한 인류의 영원한 삶의 풍속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소설집의 끝에서 시간의 유장한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류의 원형질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강산무진』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이 ‘자연’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신수정(문학평론가)

한국문학은 어느 틈엔가 김훈이 있어 풍요로워졌다. 그의 문장으로 소설이 완성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의 행보를 한참 관망했는데 그가 「언니의 폐경」을 써내자 아, 정말 소설가가 되어버렸구나, 아쉽고 즐거웠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는 한치의 물러섬 없는 완고한 격렬함과 끝도 없이 물러서는 허무한 흔들림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한다. 그 둘은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서로를 집요하게 묘사해가며 자신들의 삶을 대변할 한 문장의 말을 찾아간다. 그리하여 홀로인 것 같던 개별자들의 고독한 삶은 그의 손길을 거친 후엔 어느덧 새 의미를 부여받아 존귀하고 참다워져 있다. 그 과정을 탐독해가는 일은 결국은 무(無)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꽂혀 있는 ‘항로표지’를 응시하는 일이기도 해서 항상 기대되고 긴장된다.
신경숙(소설가)

이 책에다가 제가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겠습니까? 그러게요. 병이란 사람 몸에 피는 꽃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산다는 게 죄다 그렇게 제 몸 안에 꽃피우는 일인가 봅니다. 앓는 일이라는 게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자기 몸에 꽃피우고 이 풍진 세상 건너가는 사람들 얘기 읽으며 저도 조금 병들었습니다. 치명적입니다. 저와 같은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연수(소설가)


수록작품 발표지면
_배웅 ----------------『바자』 2006년 3월호
_화장火葬 ------------『문학동네』 2003년 여름호 | 2004 이상문학상 수상작
_항로표지航路標識 ----『창작과비평』 2005년 겨울호
_뼈 ------------------『문학동네』 2006년 문학동네 봄호
_고향의 그림자 -------『현대문학』 2005년 1월호
_언니의 폐경 ---------『문학동네』 2005년 여름호 | 2005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_머나먼 俗世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
_강산무진江山無盡 ----『내일을여는작가』 200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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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책들은 내게 있어서 어려운 숙제를 만드는 일과 같다.
그가 가진 연륜때문인지 그는 결코 가벼운 글을 쓰지 않는다.
날카롭고, 무덤덤하고, 시원하고, 그렇지만 어려운 글들을 쓴다.
때문에 난 그를 좋아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그런 거리감같은걸 느낀다.
얼마 전, 현대문학강독시간에 교수님께서 언니의 폐경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했다던데.
많은 수의 아이들이 굉장히 헉헉거리면서 읽었다고. (나는 그 전해에 들어서 다른 과제였다만.)
그 얘길 듣고 나만 어려워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었다랄까.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기존에 이미 발표되었던 단편들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여기 저기에 흩어져있던 그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았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보다는 작가 개개인의 소설집을 좋아해서 이 편이 더 좋다.

어쨌거나,
늘 선뜻 다가서기엔 어려운 김훈이지만,
다시 한 번 그와의 교감을 만들어봐야겠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일지언정, 지겹다고 버릴 수는 없는 작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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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도 꽤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는 사토시군 하나만 믿고 덥썩 개봉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포스터부터 "사토시가 나옵니다!"라고 광고하고 있다. 정작 영화를 들여다보면 일상적인 하루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가고 있는 영화인데 포스터때문에 깜빡 속아버렸다랄까.

  이야기의 주축은 대학원때문에 교토로 이사를 간 마사미치의 집들이이다. 그 곳에서 마사미치의 7명의 친구들은 주거니 받거니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오락을 하기도 하고, 술에 취해 친구의 머리를 댕강 잘라놓기도 하며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14미터나 되는 고래가 해변으로 올라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건물 중간에 낀 사내가 등장하기도 한다. 뉴스에서 한 번쯤은 접해봤음직한 그런 이야기들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

  일본영화 특유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괜찮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볼 수 있을듯. 하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사소한 사건을 가지고 질질 끌듯이 영화를 만드는 듯한 구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지겨워죽겠네'라고 느낄 것 같다. 다만,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던간에 영화에서 제시하고 있는 '오늘'의 의미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는 자정. 하지만 단순히 시간으로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뭔가 찜찜하지 않은가. 개개인에게 있어서 연속되는 날들이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오늘의 의미를 찾아보는 일은 이 영화가 내게 준 하나의 과제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생각하고 봤다면 글쎄, 다소 실망하지 않을까. 되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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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6-04-1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볼 때 마다 느끼는거지만 어쩜 저리도 귀여울꼬.
'조제와 호랑이 -' 에서 캐릭터 정말 맘에 들었삼. ! ㅋㅋㅋㅋㅋ

이매지 2006-04-1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캐릭터는 비슷한 것 같은데 포스터처럼 단독 주인공은 아니예요^^
 
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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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 몇 번이나 이름을 접했지만 책으로는 뒤늦게 만나본 그녀. 꽤 두꺼운 페이지의 압박때문인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한 분들의 호평,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있어서는 하나의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는 '나오키 상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집어들게 되었다.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이야기 속으로 나를 강하게 빨아들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타워팰리스쯤 될 법한 호화로운 아파트.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의 웨스트 타워. 폭풍우가 거세게 치던 밤. 그 곳의 2025호에서 일가족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단순히 일가족이 살해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터인데, 알고보니 살해당한 사람은 일명 '버티기꾼'들이었다. 비바람 속에 가려져 끝없이 혼란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이 책 한 권 속에 녹아있다. 이야기는 독특하게 르포르타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하나씩 얻어가고, 그 것을 통해 사건이 있던 날의 정황을 추정해본다. 일정한 시점이 없고, 인칭이 없기때문에 독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고, 그 개개인의 사정을 귀담아 들으며 독자 스스로도 사건을 구성해볼 수 있다. 실마리를 하나씩 하나씩 툭툭 던지다가 작가는 마지막에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의 입을 빌려 조심스럽게 진상을 털어놓는다.

  간단하게 책의 내용을 요약해버리면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인사건'이 되어버리겠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때문에 책 속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외국인 이름은 다 고만고만하게 생각하는 나의 단순함 때문에 초반에는 꽤 혼란스러워하며 책을 읽었다. (나와 같은 곤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등장인물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센스가 필요할 듯)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들 개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동정을 느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인 듯 싶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내 주위에서 한 번쯤은 봤음직한 그런 인물들이었기때문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은 작거나 크거나 저마다 가족간의 갈등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끔 만들어줬다.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건의 배경이 된 2025호가 경매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부동산이라는 소재와도 맞닿아 있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매입자가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려는 '버티기 꾼'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허왕된 꿈을 가지고 호화 아파트를 사려고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커다란 상자같은 아파트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변해갔는가에 대해 접하면서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노인이 죽은지 한 달만에 발견되었다와 같은 이야기들이 생각이 났다. 삭막하고, 인간적인 정이 없는 곳.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의 의미를 알까. 그리고 또 애초에 허왕된 꿈을 쫓아 무리해서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은 과연 그 아파트를 얻어서 행복했을까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봐온 추리소설과는 구성이나 방식이 전혀 다르기때문에 전통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실망스러워할 지도 모른다.(물론, 워낙 재미있기때문에 전통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책을 놓아버릴 독자는 없을 듯) 책 속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똑똑한 탐정, 형사는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독자에게 "범인이 누군지 한 번 맞춰봐"라고 도전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화자는 담담하게 사건에 연류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시각에서 전해주고, 독자에게 독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상, 가족상, 한 개인의 꿈 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던 작품이었다. 딱 한 작품을 접해봤을 뿐인데 그녀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너무도 커져버렸다. 단 한 작품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반열에 올라버린 그녀.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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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4-1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셨어요? ^^ 잘 읽고갑니다.

이매지 2006-04-1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이제 한숨 돌리시는건가요? ^^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얼핏 봐서는 하루키의 책이라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이 책의 제목은 독특했다. 처음에 이 제목을 봤을 때 난 <망량의 상자>나 <우부메의 여름>을 지은 쿄고쿠 나츠히코를 떠올렸었다. 적어도 기담은 왠지 하루키와는 멀어보였고, 책의 표지도 기묘한 느낌이 감돌았다랄까. 이 뿐 아니라 책장을 처음 폈을 때 만나는 첫문장인 "나, 무라카미는 이 글을 쓴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대강 3인칭으로 진행되지만, 화자가 이야기의 첫머리에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이게 단편소설집이 맞나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게끔 했다. 어쨌거나 다소 하루키스럽지 않다고 생각한 요소들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겨갔다.

  책은 총 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우연한 여행자, 하나레이 만,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시나가와 원숭이' 이 다섯편의 이야기는 제목에 걸맞는 이야기들이다. 즉, 뭔가 좀 기이한 이야기들이라 현실감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또 한 켠으로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일어날 법한 이야기기도 한 그런 이야기들.

  첫 이야기인 우연한 여행자에서는 하루키 자신이 경험한 사소한 우연을 이야기(한 공연에서 자신이 연주해줬으면 하는 두 곡을 연주자가 잇달아 연주한 일)하고 뒤이어 그 이야기를 듣고 지인이 꺼낸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점 카페에서 디킨스의 책을 읽고 있었던 한 피아노 조율사가 마침 옆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은 여자와 알게되고, 그녀와 만나면서 자신의 누나와 같은 자리에 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녀는 유방암 검진을 받는다는 말을 그에게 하고, 그는 뭔가에 끌려 오랜동안 연락을 끊어왔던 누나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녀 또한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소 극적이긴 하지만 전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은 아닌 이야기랄까.

  두번째 이야기인 하나레이만에서는 서핑을 하러 하나레이 만에 갔던 아들을 상어의 습격에 의해 잃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자는 이 후 1년에 한 번씩 아들을 떠올리며 그 곳을 방문하고 어느 날 그 곳에서 우연히 일본인 히치하이커를 태우면서 그들의 입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잠시 두 층 아래에 사는 시어머니를 보러 간 남자가 지금 올라가니 팬케이크를 구워달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버린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내의 의뢰를 받고 남편의 자취를 찾으려하는 한 남자. 내가 종종 보던 드라마인 Without a trace(미 FBI 실종자 전담반의 이야기)가 왠지 생각나는 그런 이야기. 의뢰를 받은 남자는 남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남편이 사라진 계단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네번째 이야기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단 세 명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에 최면에 걸린 것 처럼 빠진 남자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를 기다리던 중 한 여자를 만나고 그녀를 통해 신장처럼 생긴 돌이 이동하는 다소 기이한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마지막 이야기인 시나가와 원숭이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종종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는 데 별 지장은 없지만 나름 불편을 느꼈던 그녀는 우연히 구청에서 하는 상담소를 찾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이름을 되찾게 된다.

  이렇듯 다섯개의 이야기는 소설의 허구성과 현실의 진실성을 넘나드며 아찔한 곡예를 한다. "에이 그런 일이 어디있어!"라고 치부하기엔 진실성이 있어보이고, 정말 있었던 일이라고 단정해버리기엔 허무맹랑한 이야기. 마치 예전에 즐겨 보던 토요 미스터리가 생각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도쿄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배경은 그리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 정도로 이 곳이 도시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랄까. 하루키의 다른 이야기들처럼 존재나 사유에 대한 부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하루키의 이야기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흡입력이나 허구와 진실을 오가는 점들은 변하지 않은 듯 싶다. 그리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이기때문에 하루키에 거리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작지만 기묘한 우연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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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1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벌써 보셨네요. 빠르다. ^^

이매지 2006-04-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안 두꺼워서 금방 봐요^^ 1시간 남짓 걸린듯.

비로그인 2006-04-1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한 시간 남짓 밖에 안걸려요?
책 빨리 읽는 사람들 진정 신기해요...
매지님은 하루에 두세권 읽는 것도 껌이겠어요.
전 님 두,셋 읽을 시간에 겨우 한 권 끝마칠걸요?

이매지 2006-04-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안 두껍고 그렇게 안 어려운 책이라니까요^^;;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글 / 존 버닝햄 그림 / 박상희 옮김 / 비룡소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불쑥 나와

책가방을 덥석 물었습니다.

존은 책가방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지만

악어는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존은 할 수 없이 장갑 하나를 휙 던졌습니다.

악어는 책가방을 놓고 장갑을 물었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악어 때문에 늦고 말았지요.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지각이로군.

그리고 장갑 하나는 어디다 두고 왔지?"

 

"학교에 오는데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나와서

제 책가방을 물었어요. 제가 장갑을 던져 주니까

그제서야 놓아 주었어요. 장갑은 악어가 먹어 버렸고요.

그래서 지각했어요, 선생님."

 

"이 동네 하수구엔 악어 따위는 살지 않아! 넌 나중에 학교에

남아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를 300번 써야 한다. 알겠지?"




그래서 존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300번 썼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서둘러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덤불에서 사자 한 마리가 나오더니

바지를 물어뜯었습니다.

존은 간신히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존은 사자가 심드렁해져서 돌아갈 때까지 나무 위에서 기다렸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사자 때문에 지각하고 말았지요.

 

 



"넌 또 지각이야. 게다가 바지까지 찢었군!"

 

"학교에 오는데 덤불에서 사자가 튀어 나와 제 바지를

물어뜯었어요. 나무 위로 올라가 사자가 갈 때까지

한참 기다렸어요. 그래서 지각했어요, 선생님."

 

"뭐라고? 이 동네 덤불에는 사자 따위는 살지 않아! 저 구석에

돌아서서 큰 소리로 400번 외쳐라. '다시는 사자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지를 찢지 않겠습니다.' 알았냐?"

 

 



존은 구석에 돌아서서 400번 외쳤습니다.
"다시는 사자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지를 찢지 않겠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서둘러 학교에 갔습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존을 덮쳤습니다.
존은 파도가 가라앉고 물이 빠질 때까지
난간을 꼭 붙잡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파도 때문에 또 늦고 말았지요.
 
 
 



"넌 또 지각이야.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게다가 옷까지 흠뻑 젖었군!"
 
"학교 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는데,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치는 거예요. 흠뻑 젖었어요. 그리고 물이 빠져 나갈 때까지
난간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어요. 그래서 지각했어요, 선생님."
 
"내 살다살다 별소리를 다 듣겠다. 이 동네 강에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사람을 덮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갇혀 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이 안에서 꼼짝말고 이렇게 500번 써라. '다시는 강에서 파도가
덮쳤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옷을
적시지도 않겠습니다.'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고 지각을 했다간,
이 회초리로 때려 줄 테다. 알겠냐?"
 
 



 
그래서 존은 교실 안에 갇혀서 이렇게 500번 썼습니다.
"다시는 강에서 파도가 덮쳤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옷을 적시지도 않겠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서둘러 학교에 갔습니다.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존은 제 시간에 학교에 갈 수 있었지요.
 
 
 
 



"존 패트릭 노먼 맥세너시, 난 지금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따. 빨리 날 좀 내려다오."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네~' '신기해~' 이런 마음으로 읽었는데
읽다보니 내가 선생님이었어도 거짓말을 한다고
존을 나무라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악어가 가방을 낚아채고, 사자가 바지를 물어뜯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요?
 
하지만 존 버닝햄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린이의 말이라고 해서, 상식 밖의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짓말로 단정짓지 말고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자!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다가 큰코 다칠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에게 붙잡힌 선생님이 천정에 매달려 도움을 청하는데
존이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 동네에는 그런 고릴라는 살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장면,
너무 통쾌하지 않았나요? ^^
 
사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책장을 펼쳐서 보이는 존의 글씨를 보면 저처럼 통쾌하다는
생각이 꼭 들 거예요.
거기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가끔은 틀린 글씨로 "다시는 장갑을 잃여버리지 않게습니다." ... 라고 두 면을 가득 채운 존의
반성문이 보이거든요.
존은 이런 글을 수백번씩 반복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져요.
아마도 존은 제 말을 믿지 못하고 방방 뛰며 벌을 주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반성보다는 내일은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지각하지 않기만을 바랐을 것 같아요.
얼마나 답답했을지... 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답니다.
 
 
지난 7월, 성곡미술관에서는 '행복한 그림책 여행'이란 주제로
존 버닝햄과 앤서니 브라운의 원화 전시회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다시 보게 되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의 원화는 그림책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색감이 풍부하고 매력적이었어요.
그다지 갖고싶은 그림책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그림책들의 인쇄 상태 문제였더라구요.
파스텔톤의 고운 색감들이 너무 예뻤답니다.
 
다음은 전시회 때 성곡미술관에서 준비한 존 버닝햄의 약력이에요.
디카로 찍어와서 다행히 그의 약력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네요. ^^
 

  1937년 영국 서레이에서 태어난 존 버닝햄은 1963
  년 첫번째 그림동화인 '보르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으며, 1970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로 두번째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을 수상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뉴욕타임즈에서 주는 '올해의 동화
  책'상에 네 번이나 선정되었고,
  '뉴요커' 잡지는 존 버닝햄을 "이 시대의 가장 훌
  륭하고 독창적인 작가"라고 격찬하였습니다.
 
  1977년에는 100주년을 맞이한 줄스 베르네의 고전
  작품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위해
  80일간 44,000마일을 세계일주하며 작품 소재를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1984년에는 '우리 할아버지'로 커트 마슬러 상을 
  수상하였으며,
  소녀와 할아버지의 즐거운 상상과 슬픔이 공존하
  는 이 책은 나중에 '스노우맨'에 의해
  에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간결한 글과 자유로운 그림으로 심오한 주제를 표현한 작가는 서일본 철도회사로부터 
일본 엑스포 90'에 의뢰를 받고, 그 유명한 동화책 '야! 기차에서 뛰어내려'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책은 기차놀이와 동물 인형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통해 생태학적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아보카도 아기' '네가 만약' '장바구니' '지각대장 존' '줄리우스는 어디 있지?' 
'구름나라' '잘자라 우리아가' 그리고 최신작으로 '마술침대'가 있습니다.
그는 또한 동화책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키니드 그라함의 '버드나무 속 바람'에 삽화를
그렸으며 어른들을 위한 네권의 책으로 '영국 '프랑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우리가 어렸을 때' 등을 편찬하여 삽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들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존 버닝햄은 현재 영국 런던에서 부인이자 어린이 동화작가로 유명한 헬렌 옥센버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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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16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전에 읽은적 있어요. 참..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하던 책이었는데...ㅎ

이매지 2006-04-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면서 나였더라도 안 믿었을 것 같다는 생각했었어요^^

치유 2006-04-1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각대장...일수밖에 없는 존...또 다른 모험...
또 지각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