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제목만 힐끗보고는 타란티노 감독이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생각했었다. 헌대 다시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제목이 반대다. 게다가 흡혈귀가 등장하는 그런 책도 전.혀. 아니다. 각 책이 거의 각목수준의 두께라 선뜻 손이 가지는 않지만 내용은 관심을 가질만하다. 1500~2000년 사이에 서양에서 벌어진 문화사적 사건을 정리한 책으로 루터, 에라스무스, 몽테뉴 등의 근대 사상가를 비롯하여 제임스 조이스, 앤디 워홀 등의 현대작가들에 이르기까지의 영역을 넘나들며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바라보는 키워드(개인주의, 해방, 과학만능주의, 세속주의 등)를 제시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누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하고 믿어왔던 정설들이 실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예를 들어, 루이 14세는 '짐은 곧 국가다'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자료와 정황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야기한다고) 



유럽의 영웅 이야기 21편을 담은 책.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인 '로빈후드'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와 같은 유명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로엔그린', '파르치팔'과 같이 다소 낯선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이 전에 나온 <세계의 동화>에서 삽화를 그렸던 타트야나 하우프만이 이번에도 그림작업을 맡아 요하네스 카르스텐젠과 함께 동화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는 흔히 과학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을 뒤집기 위해서 그동안 숱한 과학서적들이 출간된 바 있고, 또 과학을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도 나름대로 재미있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지은 문중양 교수는 좀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계산통계학과에서 과학사를 전공한 이공계 박사인 그는 이공계 출신으로는 최초로 인문대 교수(국사학과)로 임용되었다. 이런 개인의 성향이 책에 드러나는 것인지 책의 내용도 실제 우리가 역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과학 유산들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눈에 치우치지 않게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 우리가 그저 유명한 과학유산이라고 암기하듯이 받아들인 과학유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듯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인 <다빈치 코드>를 지은 댄 브라운의 작품. 작품상으로 볼 때는 2001년에 지어진 책이니 <다빈치 코드> 이전에 쓰여진 셈이지만 뒤늦게 출간되었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정치스릴러물. NASA에서 발견한 운석과 대통령 선거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 그간 소설의 주배경으로는 그저 '탐험'으로만 등장했던 북극에서 여러가지 과학적 책략이 벌어진다는 것이 신선한 정도. 개인적으로 댄 브라운의 작품은 읽을 때는 재미는 있지만 읽고나면 좀 허무한 듯해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신간이 나왔다니 관심이 가긴 간다.

 
세계사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역사는 대개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미국이야 역사가 짧은 나라라서 그렇다고 쳐도 유럽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역사가 변두리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게다가 우리가 배우는 유럽의 역사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한정된 유럽에 대한 역사이니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동유럽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런 아쉬움을 씻어주기 위해서인지 이원복 교수가 새로 출간한 <가로세로 세계사>는 강대국에 치우친 역사가 아닌 상대적으로 강대국의 그림자에 묻힌 세계사를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출간될 나머지 책들을 통해 나의 세계사 지식이 좀 더 넓어졌으면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최근에 나온 책은 아니지만 서점에서 보고 관심간 책들.


표지가 독특해서 들춰본 책인데 생각보다 괜찮을 듯 싶었다. 저항적인 이미지인 '혁명'이 소비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돌아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책. 반문화 반란은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그것은 그 바탕에 존재하는 사회이론이 허구이기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 억압구조에 대한 반발로 생긴 반문화적 표상이 되려 자본주의에 있어서 하나의 상품이 된 것. 예를 들어 미니스커트, 비키니, 피어싱, 찢어진 청바지 등은 반문화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적인 상품으로 자리매김을 하지 않았는가. 두께가 제법되고 쉽지 않은 내용이라 읽는데 시간은 오래 걸릴 듯 싶지만 읽어봄직해보인다.


서점에 같이 간 남자친구가 보곤 눈을 번쩍이면서 보던 책. 나도 옆에서 같이 들춰보니 발상이 엉뚱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설업체가 마징가 z 지하기지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설계도를 비롯하여 계획을 세워간다. 허무맹랑해보이지만 그런 일을 현실로 만든다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실제적인 건축기술을 적용하여 마징가 z 지하기지를 건설하려는 노력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허구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즐거움을 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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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9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 흥미로워요

이매지 2006-04-2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류는 그렇게 많은게 아닌데 굵직한 책들이 여럿이죠? ^^;
저 책들 언제 다 보려나 ㅠ_ㅠ
 
이성과 감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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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세상을 알면 알수록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영 못 만날 거라는 생각만 더 들어요. 원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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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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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오만과 편견>이 국내에 개봉해서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덕분인지 원작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고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퉈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아쉬웠던 것은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가 <오만과 편견>에만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었다. 기존에 나온 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시덥잖은 번역(혹 번역가가 이 글을 본다면 기분나빠하겠지만 내게 있어서 범우사판의 <맨스필드파크>는 최악의 번역이었다.)으로 출간되어 있거나 절판되서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형편이어서 그런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러던 중, 그녀의 다른 작품인 <이성과 감성>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을 때 내심 기뻐하며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다시 번역되서 나왔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기다렸던 책이기때문에 반가움에 집어들었다.

  <오만과 편견>에서처럼 이 책의 내용도 영국의 전원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자매의 사랑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노신사 대시우드의 사망으로 시작된다. 그의 조카인 헨리 대시우드(그에겐 첫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한 명과 현재의 부인과의 결혼에서 얻은 딸 셋이 있다.)는 법적 상속자로 원래대로라면 그가 상속을 받아야만 했지만 노신사는 상속의 반을 네살짜리 손자에게 상속시켜줬고, 세 손녀딸들에게는 고작 천 파운드씩을 상속시켜줬다. 그럼에도 낙천적으로 희망을 가졌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헨리 대시우드가 병으로 죽게 되자 상황은 급변한다. 본디 성품은 나쁘지 않은 아들이었지만 부인인 패니의 말에 넘어가 누이동생들에게 별다른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러던 중 먼 친척의 도움으로 그들은 결국 정든 고장을 떠나 새로운 고장으로 떠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사랑을 찾게 된 두 자매, 엘리너와 메리앤. 둘 다 지성과 외모를 모두 겸비했지만 언니인 엘리너는 분별력이 있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한 이성적인 여자라면, 동생인 메리앤은 감정에는 충실하나 그것을 절제하지 못해 지나치게 감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진 여자다. 이들의 이런 성격은 사랑을 하는 데에서도 드러나 엘리너는 에드워드란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와의 애정은 겉에서 보기엔 알아채지 못할 정도. 하지만 메리앤의 사랑은 그야말로 누가봐도 사랑에 빠져있음을 알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 둘의 각기 다른 사랑이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그들을 둘러싼 상황과 함께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다소 지지부진해보일지도 모른다. 조용한 영국의 전원풍경처럼 이 책의 내용도 조용히, 잔잔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고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과의 갈등,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오해, 돈과 결혼의 상관관계,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은 결코 조용하고 잔잔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작가의 시선(혹은 어투)은 평온하게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독자에게는 지극히 '이성'적인 엘리너와 지극히 '감성'적인 메리앤, 두 자매의 모습 중 과연 어떤 쪽이 긍정적인가에 대한 저울질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 작가 스스로 어떤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은 듯하지만 내 생각엔 메리앤이 실연을 당한 후 좀 더 공부에 힘쓰고 예의를 배우겠노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마 제인 오스틴은 이성을 좀 더 중시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엘리너를 보면서는 '저러다 홧병이라도 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었고, 지나치게 '감성'적인 메리앤을 보면서는 '저러다 헤어지면 고개를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성'과 '감성'의 중용의 덕을 지킨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평범한 우리네들은 둘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을. 두 자매가 각각 만나는 상대들의 성격차이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고, 영국 사회의 일면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웠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대개 내용이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그 속에 든 저마다 다른 메세지들이 마음에 든다. 현대의 뻔한 사랑이야기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접하고 보니 또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1) 이 책의 원제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ce and Sensibility>이다. 요새 한참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안감독이 1995년에 영화화하기도 했던 작품으로 영화엔 엠마 톰슨, 휴 그랜트, 케이트 윈슬렛 등이 출연한다. 혹, 책을 읽고 구미가 당기는 분들이나 책의 내용을 간략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영화를 봐도 좋을 듯 싶다. 

 덧2) 이 책의 번역은 대체로 매끄러운 편이나 곳곳에서 낯선 말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남사스럽다'라고 하는 것을 '남세스럽다'라고 표헌하고 있는데 사실 어감이 낯설어서 그렇지 표준어는 '남세스럽다'이다. 이 외 '지청구'와 같은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번역이었다. 내가 알기로 윤지관 교수는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 선출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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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미온♥ 2006-09-0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범우사의 맨스필드 파크는 읽기가 괴롭더군요! 도데체 누가 누나고 동생인지..노생거 사원과 설득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없구요. 이럴 땐 영어 못하는게 한탄 됩니다.ㅜㅜ

이매지 2006-09-08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스필드파크도 제대로 번역되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름대로 제인 오스틴 책들이 많이 나와서 기대했는데 영 소식이 없네요. 노생거사원과 설득도 엉망이군요. 흑흑. ㅠ_ㅠ 영어공부를 하는게 더 빠를까요? ㅠ_ㅠ

박원희 2007-01-2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이 번역도 그리 매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은데요. 참을 수 없는 영어식 표현들이 너무 거슬려서요. 신경쓰기 시작하니까 계속 보인다는...^^; 최악은 아니었지만 제인오스틴의 위트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미 1, 2권을 통해 백만 가까운 독자들을 울고 울렸던 MBC FM4U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인기 코너인『그 남자 그 여자』, 그 세 번째 이야기를 펴낸다.

1권의 테마 ‘아름다운 101가지 사랑 이야기’, 2권의 테마 ‘일곱 도시 일곱 색깔 러브스토리’에 이어 신선한 새 작가가 음악도시의 이름을 빌어 써내려간 3권의 테마는 ‘사랑에 대한 다섯 가지 감각 레시피’이다. 사랑을 할 때 마음보다 먼저 열리는 것이 우리의 오감인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다섯 가지 감각이 아닌가, 해서 기획된 이번 책의 주제는 그 예민한 사랑의 촉수다.

참 빤한데, 그래서 참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닥칠 때마다 행할 때마다 헤매게 되는 그 사랑에 대해 이 책은 작은 속삭임으로 일러준다. 네가 그럴 때 네 남자는 그래, 네가 그럴 때 네 여자는 그래… 『그 남자 그 여자』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그 때 빚어지는 소소한 남녀의 감정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녹음기로 반복 재생하듯 정확하게 끄집어내주는 사랑의 실전 교과서에 다름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가르치는 교재가 아닌, 보여주고 들려주는 자상한 안내서 같다고나 할까. 결국 사랑은,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맞는 말을 찾아가는 여정이니까 말이다.

전편들과 달리『그 남자 그 여자 3』은 순수화가의 그림으로 보다 고급한 일러스트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세 사람’이란 코너를 만들어 같은 상황, 같은 시간을 함께 겪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이야기에 또 다른 그 남자 혹은 그 여자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사랑이 변하는 건 따지고 보면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나 결별에서 빚어지기에 아프지만, 사랑은 또한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이기도 한 까닭이다. 엽서 크기의 삽지에서 오랜 사랑의 여운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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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2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어제 사무실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자니 이소라의 음악도시가...퇴출당한 듯 하던걸요..시간을 옮긴 걸까요...그시간에 박명수가 호통을 치고 있더군요..

비로그인 2006-04-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ㅎㅎㅎ 명수가 호통을 ㅎㅎㅎ

이매지 2006-04-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 흐음. 그런가요? 전 라디오 들은지가 워낙 오래 되서^^;; 근데 음도라면 청취율도 나름 잘 나올텐데 퇴출이라니.
나를 찾아서님 / 호통 방송은 졸릴 때 들어야 하는건데 말예요 ㅋㅋㅋ
 
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더풀>과 <공중그네>로 내게 즐거움을 한껏 선사해줬던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라라피포>. 갓 나왔을 때부터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인데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신착도서 서가에 꽂힌 것을 발견하고 냅다 집어든 책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전작에서 보여준 유머와 엽기적 사고방식은 이 책에서도 유효하다. 그렇지만 이 전에 그의 작품에서 만나본 사람들은 마음의 고민을 가지고 그것을 풀지 못해 끙끙거리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형적인 모습부터 시원찮다.

  명문대 출신이지만 대인공포증때문에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남자, 그는 한동안 윗층 남자가 내는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와 여자가 내는 신음소리때문에 갑자기 잊고 지낸 섹스를 떠올리고 자위를 했고, 심지어 윗층의 소리를 좀 더 자세히 듣고자 빡빡한 재정상태에도 불구하고 도청기까지 사는 모습을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뚱뚱해서 여성적인 매력은 전혀 없어보이는 여자는 알고보니 남자를 끌어들여 음란 DVD를 촬영하고 있고, 머리가 반쯤 벗겨져서 한 풀꺾인 모습인 관능소설 작가는 취재를 한답시고 여고생을 탐닉한다. 소심해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남자는 이리저리 휘둘리고 심지어 남의 부탁으로 방화까지 저지른다. 게다가 하루하루 누워서 빈둥대며 무료한 생활을 보내던 한 40대 주부는 길에서 우연히 에로물 배우로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그들은 누가봐도 뭔가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전작 <공중그네>에서 만나본 주인공들은 자신의 그런 삶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시도(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이라부에게 찾아가는 것)를 하고 있다면, 이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그저 열심히 되는대로 타인의 육체를 탐닉하고, 쾌락에 빠져만 있을 뿐 현실을 벗어나려는 의지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설사 조짐이 보였다고 해도 금새 꺼져버리는 불꽃같은 조짐이었을 뿐.  

  솔직히 말하면 <공중그네>에서 유쾌한 웃음을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아마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책도 이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만.) 둘의 구성(여러명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라라피포>속에는 이라부같이 문제점을 해결하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변화하고 싶어도 그들에겐 변화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진다. 이라부의 도움으로 사회와 다시 어울려서 살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이 책 속에 사람들은 사회 밖에서 떠도는 사람들이다. 물과 기름처럼.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 사회라는 굴레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또 몇이나 될까. 결국 그들은 사회 밖에서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들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을까. 명문대를 나와 여기저기 원서는 찔러넣지만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 권태로운 일상에 마냥 따분해 하는 사람, 성생활에 대한 불만으로 삶 자체가 불만인 사람, 만사를 삐딱하게만 보려는 사람 등등. 이 사회 안에는 <라라피포> 속에 등장한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허리케인을 불러올 가능성이 생기는 것처럼 이 책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포자기하고 변화를 어려워한다면 우리도 결국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모습을 한심해하면서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작은 변화가 몇 년 뒤의 모습을 확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 <라라피포> 속의 주인공들이 <공중그네>의 주인공들처럼 '변화'했다면 그들에겐 어떤 미래가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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