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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06년 3월
평점 :
얼마 전, <오만과 편견>이 국내에 개봉해서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덕분인지 원작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고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퉈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아쉬웠던 것은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가 <오만과 편견>에만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었다. 기존에 나온 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시덥잖은 번역(혹 번역가가 이 글을 본다면 기분나빠하겠지만 내게 있어서 범우사판의 <맨스필드파크>는 최악의 번역이었다.)으로 출간되어 있거나 절판되서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형편이어서 그런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러던 중, 그녀의 다른 작품인 <이성과 감성>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을 때 내심 기뻐하며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다시 번역되서 나왔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기다렸던 책이기때문에 반가움에 집어들었다.
<오만과 편견>에서처럼 이 책의 내용도 영국의 전원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자매의 사랑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노신사 대시우드의 사망으로 시작된다. 그의 조카인 헨리 대시우드(그에겐 첫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한 명과 현재의 부인과의 결혼에서 얻은 딸 셋이 있다.)는 법적 상속자로 원래대로라면 그가 상속을 받아야만 했지만 노신사는 상속의 반을 네살짜리 손자에게 상속시켜줬고, 세 손녀딸들에게는 고작 천 파운드씩을 상속시켜줬다. 그럼에도 낙천적으로 희망을 가졌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헨리 대시우드가 병으로 죽게 되자 상황은 급변한다. 본디 성품은 나쁘지 않은 아들이었지만 부인인 패니의 말에 넘어가 누이동생들에게 별다른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러던 중 먼 친척의 도움으로 그들은 결국 정든 고장을 떠나 새로운 고장으로 떠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사랑을 찾게 된 두 자매, 엘리너와 메리앤. 둘 다 지성과 외모를 모두 겸비했지만 언니인 엘리너는 분별력이 있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한 이성적인 여자라면, 동생인 메리앤은 감정에는 충실하나 그것을 절제하지 못해 지나치게 감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진 여자다. 이들의 이런 성격은 사랑을 하는 데에서도 드러나 엘리너는 에드워드란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와의 애정은 겉에서 보기엔 알아채지 못할 정도. 하지만 메리앤의 사랑은 그야말로 누가봐도 사랑에 빠져있음을 알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 둘의 각기 다른 사랑이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그들을 둘러싼 상황과 함께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다소 지지부진해보일지도 모른다. 조용한 영국의 전원풍경처럼 이 책의 내용도 조용히, 잔잔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고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과의 갈등,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오해, 돈과 결혼의 상관관계,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은 결코 조용하고 잔잔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작가의 시선(혹은 어투)은 평온하게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독자에게는 지극히 '이성'적인 엘리너와 지극히 '감성'적인 메리앤, 두 자매의 모습 중 과연 어떤 쪽이 긍정적인가에 대한 저울질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 작가 스스로 어떤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은 듯하지만 내 생각엔 메리앤이 실연을 당한 후 좀 더 공부에 힘쓰고 예의를 배우겠노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마 제인 오스틴은 이성을 좀 더 중시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엘리너를 보면서는 '저러다 홧병이라도 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었고, 지나치게 '감성'적인 메리앤을 보면서는 '저러다 헤어지면 고개를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성'과 '감성'의 중용의 덕을 지킨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평범한 우리네들은 둘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을. 두 자매가 각각 만나는 상대들의 성격차이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고, 영국 사회의 일면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웠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대개 내용이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그 속에 든 저마다 다른 메세지들이 마음에 든다. 현대의 뻔한 사랑이야기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접하고 보니 또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1) 이 책의 원제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ce and Sensibility>이다. 요새 한참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안감독이 1995년에 영화화하기도 했던 작품으로 영화엔 엠마 톰슨, 휴 그랜트, 케이트 윈슬렛 등이 출연한다. 혹, 책을 읽고 구미가 당기는 분들이나 책의 내용을 간략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영화를 봐도 좋을 듯 싶다.
덧2) 이 책의 번역은 대체로 매끄러운 편이나 곳곳에서 낯선 말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남사스럽다'라고 하는 것을 '남세스럽다'라고 표헌하고 있는데 사실 어감이 낯설어서 그렇지 표준어는 '남세스럽다'이다. 이 외 '지청구'와 같은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번역이었다. 내가 알기로 윤지관 교수는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 선출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