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2003년 4월
구판절판


한번 만나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더라도 그 사람이 이 곳에 있다면, 하는 상상은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그것만으로 나는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것만으로 나는 용기를 내어 혼자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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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다이도 다마키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절판



 그의 행동에는 어린애가 곤충을 핀셋으로 만지작거리는 듯한 연구심과 잔혹함이 어우러져 있다. 일단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흥미를 잃으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그래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저 여자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우린 똑같은 입장이잖아.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굳이 저렇게 떠벌릴 필요가 있을까. 저러면 결국 그의 입장만 곤란해질 텐데.
-36쪽

앞으로도 이 사람하고 몇 번, 아니 몇십 번쯤 이렇게 같이 식사를 하겠지. 이건 예감인가, 아니면 희망인가. 아아. 절망적이다. 너무나 우울한 미래가 아닌가.-52쪽

 늘 당신이 지금 뭘 먹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가능하다면 앞으로 쭉 지켜보고 싶었고. 지금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당신이 떠날 때마다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더군. 줄곧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근데 옆에 있으면 왠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당신을 위해선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55쪽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순 없을까. 새로 시작한다. 아아, 이 얼마나 신선한 느낌인가. 젊음이 넘친다. 순수함이 넘친다. 생기발랄하다.-68쪽

그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답답할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 갔다. 헤어지기 전에 뭔가 멋진 말을 들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미련을 남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105쪽

나는 양팔을 쩍 벌린 채 앞으로 넘어질 듯 끌려가면서, 고개를 돌려 그에게 어색한 표정으로 살짝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상대도 부드럽게 눈으로 인사한다. 이것으로 불편한 감정이 말끔히 지워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왠지 상대가 '응, 괜찮아. 지난 일은 용서해줄게.'하고 말하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할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한 걸까.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다. 나는 단지 그를 찼을뿐이다. 상대가 싫어졌으면 그런 자기 생각을 빨리 전하는 게 좋지 않은가. -121쪽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의 밤 하늘은 밝은 별들이 많지 않아 쓸쓸하다. 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이에, 지금이 후쿠오카에서 별똥을 봤던 그 시간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지금 여기 있잖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부르르 몸이 떨렸다. 왠지 불안하다. 마음이 허전하다. 거리의 돌멩이보다 더 보잘것 없는 내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그 뿐이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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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품절


사랑의 행위에서도 지적인, 너무도 지적인 것이 현대인이다.-28쪽

사랑은 일종의 영구적 예외의 상태이며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또 자기 자신에 대한 또 자기들 이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투쟁 상태다-33쪽

추억은 괴로왔던 일로만 달리게 되는지도 모른다-59쪽

사랑하면서도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따위를 고려하고 그 연후를 계산하고 하는 진정하지 못한 태도는 그들이 배격하는 바다. 일단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이다. 변명이나 보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다.-101쪽

누가 그들을 쫓는 것일까? 바로 자기 자신들인 것이다. 케스트너의 말처럼 원을 그으면서 달아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불안과 공포감을 가지고 그들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그들은 마취를 찾는다. 절대로 혼자여서는 안되니까, 고독만은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니까,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 무서운 것이다.-105쪽

내가 미치도록 그것이 될 것을 원했던 것으로 되는 대신에 자기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가장 의외의 방향으로 어느새 자기가 형성되어 버린 것을 발견한다-113쪽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의 선물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본다.-117쪽

지금도 앞으로도! 꿈 없이는 살 수 없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현실만이 전부라면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무엇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에게도 뜻밖인 형태로. -125쪽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호기심을 끌고 알고 싶고 아끼고 싶다. 그러나 모든 것의 파괴자이고 인간의 적인 시간은 여기에서도 또 한번 맹위를 보인다. 즉 가장 뜨거웠던 사랑도 '시간'에는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나마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옭아맨 거미줄을 통탄한다. -172쪽

우정이나 사랑은 그것의 본질에 있어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방향으로 나의 의식을 나날이 선택하는 나의 태도, 즉 나의 의식의 의도에 의해서만 그러한 것들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절정으로 승화된 순간을 말하는 것이며 가득찬 순간, 자기 의식과 타의 의식이 완전히 하나가 된 순간을 말할 것이다-181쪽

결국 외모의 미추란 편견인 것이리라. 우리의 심적 이미지에 의해서 그것은 좌우되며, 시간이나 공간에 예속되어 있다. 그러나 오나전히 자유롭고 완전히 순수한 어린 아이의 마음에는 미와 추의 이 판단은 없는 것이다. 빈부의 판단이 없듯이..-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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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에단 호크 지음, 우지현 그림,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4년 11월
품절


생각이 행위를 결정하는 거예요. 나라면 생각하는 걸 그만두지 않겠어요. 먼저 생각해보지 않고선 아무일도 할 수 없는거니까요-29쪽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지미가 나를 이기심에서 구해줄 걸로 생각했는데. 난 중심을 잡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구심점 같은게 필요했다.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뜰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면서도, 운전을 할 때도 생각한다. 오늘 하루 '나'를 즐겁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하고. -39쪽

사람들은 늘 얼마나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그거 알지? 하지만 사랑을 위해 하는 게 뭔데? 대부분 아무것도 안해. 이것봐, 난 널 사랑해. 그리고 그 사랑때문에 뭔가를 하려는거야. 널 위해 늘 곁에 있어주고 싶어. 네가 내게 의지할 수 있었으면해. 난 네가 의지할만한 사람이란 걸 증명할 기회를 바라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잘 살텐데, 저런 일이 일어나면 좋을텐데하면서 온통 머릿속으로 꾸며낸 나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바로 지금의 나로서 살고 싶어. -50쪽

우리 둘이 서로에게 '가정'이 되어줄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었지. 아마 그건 옳은 일이 아닐지도 몰라. 어느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람들은 중심이 필요해. 난 그런게 없어. 너한테 그걸 달라고 요구하는 게 내겐 쉬운 일이 아니야-57쪽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젊은 커플 사이에선 주로 남자가 두서없디 떠들어대며 모두가 자기에게 귀 기울여주길 원한다는 점이다. 반면 나이 든 커플의 경우 남자는 종종 무심한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빗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여자의 수다를 듣기만 한다. 대체 몇 살때쯤 이렇게 바뀌는 걸까? -123쪽

내가 결혼을 원하는지에 대해선 확신이 안 섰다. 내일을 위해 서약을 올린다는 것은 운명에 대한 불필요한 유혹 같다. 자신의 의지에 대해선 서약할 수 있지만 한 발 더 나아가 미래의 알 수 없는 변수에 대해 약속한다는 건 교만한 짓이다. 세상은 험하고 기묘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진실이라며 붙잡고 있던 것들은 뻔뻔한 거짓임이 드러나고 결국 우린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127쪽

인간관계란 어때야만 한다는 이상에 근거해서 행동하지 않고 그냥 서로 사랑하고 가능한 최대한 진실하게 살 수 있기를. 거짓말 같은건 전혀 하지 않고서. 앉아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마음 속 생각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기를. 자기의 이해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단지 누군가가 18년전이나 혹은 과거의 어느 때 서약을 했다는 이유로 나와 함께 머무는 건 싫다. 원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나와 함께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는 믿음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로 내 곁에 머물러야 한다. 깨어서 의식하는 삶, 그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열망하는 삶이다.-128쪽

성공은 무엇을 이루었는가로 가늠하는게 아니야. 그건 무엇을 극복했는가로 말하는거지.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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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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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건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 거기에 실제로 내가 있었을 때 나는 그런 풍경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별히 인상적인 풍경이라는 느낌도 없었고, 더구나 18년 후에 그 풍경을 선명하게 기억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때 나에겐 그런 풍경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37쪽

누구에겐가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예요. 누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들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물론 글로 써놓고 보면,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의 아주 일부분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싶어요. 누구에게 뭔가를 적어 보고 싶다는 그 기분이 든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로서는 행복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답니다.-166쪽

시간마저도 그러한 나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느리게 뒤뚱뒤뚱 흐르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이미 저만큼 앞장서서 가고 있었으나, 나와 나의 시간만은 진칭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386쪽

자기 자신에게는 동정하지 말아. 하고 그가 말했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393쪽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라고. -408쪽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제일이에요. 희망을 잃지 말고 엉킨 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는 거예요.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실마리는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죠. 주위가 어두우면 잠시 가만히 있으면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듯이 말예요.-418쪽

나는 그런 아무 뜻 없는 신문의 지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난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를 둘러싼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불쑥불쑥 내 주위에서 세계가 두근두근 맥박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431쪽

오늘 하루 일에 대해 나는 전혀 후회가 없었다. 오늘을 다시 한 번 산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431쪽

우리는(우리란 정상인과 비정상적인 사람을 다 포함한 총칭이에요)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에요. 자로 깊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서 은행 예금처럼 빡빡하게 살아나갈 순 없어요. -434쪽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요.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와타나베 군도 그런 인생살이를 슬슬 배워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세요-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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