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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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뉘어서 각 장마다 짤막하게 나오고 있는 이야기들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귀차니스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호어스트의 재담을 듣고 있자니, 나 정도의 귀차니즘은 새발의 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은 피곤한 일상에서 마시는 피로회복제처럼, 아니 그보다 더욱더, 웃음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기운나게 해주었다.

 이전에 스노우캣의 카툰에서 만난 적이 있는 피자를 시키고 피자배달부에게 어차피 집으로 배달을 가니 태워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기차표값을 아끼겠다고 친구가 써먹은 방법을 이용하여 깜빡 졸다가 늦게 내렸다고 변명을 한다던지, 몇 년동안에 계속 해야할 일들을 포스트잇에 잔뜩 붙여놓고 그걸 보는 것이 싫어서 집을 나오는 이야기, 엄마가 온다고 친구가 하루만 엄마대하기 연습을 하자고 해서 친구의 엄마 노릇을 하는 이야기 등등 그야말로 엉뚱하고, 황당하고, 그렇지만 차마 미워할 수는 없는 그런류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책의 내용은 둘째치고라도 마지막에 나오는 찾아보기 또한 재미를 더해주는데, 예를 들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그 자의 인생도 언제나 금요일만은 아니었음, 미국-설명할 방법이 없음, 응급실-여기까지 갔다면 이미 큰 일을 해낸 것, 천국의 문-전설의 명소, 아직 발견되지 않음, 아틀란티스 비슷하나 보물을 없음' 이런 식의 내용인 것이다. 세상에 무슨 찾아보기가 이렇게 황당하단 말인가.

 여튼, 일상에 지쳐있을 때 가볍게 볼 수 있는 한 편의 시트콤처럼(책 자체에 나오는 건 한 편이 아니라 수십편은 되지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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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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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익히 들어온 제목이었고,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지만, 왠지 모르게 두께의 압박(544쪽)으로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읽게 되었고 책을 놓고나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책이다. 1961년에 퓰리처 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는 떼어내고서라도 독자 스스로가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의 조그마한 마을인 메이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겪는 스카웃의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단순하게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관계 속에서 부조리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물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스카웃의 성장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몰린 흑인 톰 로빈스. 그를 변호하게 된 사람이 바로 스카웃의 아버지 핀치 변호사이다.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젬은 단순히 자식이 아버지를 보는 관점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재판을 바라본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무죄임이 분명한 톰 로빈스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에게 유죄 판결을 받아내고, 그는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하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 한편, 그를 강간범으로 고소한 술 주정뱅이에 쓰레기 같은 인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봅 이웰은 법정에서 핀치 변호사에게 당한 모욕을 갚아주겠노라고 핀치 변호사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하고, 스카웃과 젬을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자업자득이라고 결국 자신이 들고 있던 칼에 찔려 죽게 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취급을 받은 것은 비단 이 소설 속에 등장한 문제만은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앵무새. 즉.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남과 다르다는 편견때문에 소외받고 고통받는 존재는 오늘 날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날 우리가 알게 모르게 행하고 있는 차별과 어떤 문제에 대한 편견들. 아직 세상은 근 50년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 것일까?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 책에는 단순히 흑인문제, 인종문제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젬. 그리고 딜이 성장해나가는 과정. 특히 스카웃의 눈에 비춰지는 오빠의 성장은 놀랄만하다. 옆 집에 살고 있지만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를 괴롭히던 초반의 모습에서 어느새 철이 드는 모습은 마치 과일이 익듯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보여지고 있었다. 물론, 매일 멜빵바지 차림이었던 스카웃도 점점 숙녀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젬의 성장이 좀 더 눈에 띄였다고 할까...

 어린 아이의 눈에서 보는 부당한 사회의 모습. 책 속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처럼 부당한 판결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이들뿐. 점점 세상의 때에 물 들어가는 나의 모습은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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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품절


공주의 초는 나라에서 유명한 것이다. 그 정결하고 투명함이 보배론 구슬과 다름없다. 근래 누가 보내준 것이 있길래 밝혀서 책을 비추었더니 어두워 글씨를 분간할 수 없었다. 돋울수록 더 어두워지고, 파낼수록 점점 흐려졌다. 가만히 살펴보니, 기름도 깨끗했고, 만듦새도 아주 정밀했고, 타서 줄어듦도 더뎠다. 다만 문제는 심지가 거칠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마음이 거친자는 비록 좋은 재료와 도구를 지녔다 해도 사물을 관찰할 수 없음을 말이다. -홍길주,<수여연필>-68쪽

사람은 벗을 가려 사귀지 않을 수 없다. 벗이란 나의 어짊을 돕고 나의 덕을 도와주는 존재다. 유익한 벗과 지내면 배움이 날로 밝아지고, 학업이 나날이 진보한다. 부족한 자와 지내면 이름이 절로 낮아지고, 몸이 절로 천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개와 개가 사귀면 측간으로 이끌고, 돼지와 돼지가 어울리면 돼지우리로 이끄는 것과 같다. -성현. <부휴자담론> -94쪽

자네, 음식 중에 강정이란 것을 못 보았는가? 쌀가루를 술에 재어 누에만하게 잘라 따뜻한 구들에 말려 기름이 튀겨내면 모습이 누에고치처럼 되네. 깨끗하고 아름답지만 속은 텅 비어. 먹어봤자 배를 부르게 하기 어렵지. 게다가 잘 부서져서 불면 눈처럼 날린다네. 그래서 겉은 번드르하면서 속은 텅 빈 것을 강정이라 한다네. -박지원 <순패서>-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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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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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스스로를 '책에 미친 바보' 즉. 간서치라고 일컫는 이덕무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중의 한 사람인 이덕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연암에 대해 쉽게 풀어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과 흔히 북학파라고 묶여지는 이들이 등장하는 '방각본 살인사건', 그리고 정민 선생님이 지은 '미쳐야 미친다' 등의 책에서 잇달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덕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궁금해져서 그의 글을 찾던 도중에 이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속에는 이덕무의 글들을 자화상,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문장과 학풍에 대하여, 벗 그리고 벗들과의 대화, 군자와 선비의 도리, 자연과 벗을 삼아 등의 일정한 주제로 묶어 보여주고 있다. 쉽게 풀어썼다기보단 단순하게 한문으로 쓰여진 것을 한글로 옮겨놓은 것이고, 각주의 경우에는 책의 하단에 실은 것이 아니라 한가지의 이야기의 마지막에 한꺼번에 실어놓아서 읽으면서 불편함이 있었다. 게으른지라 책을 넘겨가면서 각주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터라...이야기의 끝에 역자가 참고라 하여 간단하게 역자의 생각을 적어놓은 부분은 책의 이해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어찌되었건간에 책의 편집 자체에 불만이...하지만 부록에 실린 이덕무의 연보나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은 마음에 들었다.

 책 속에서 이덕무의 문장을 하나씩 접해가면서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부모에 대한 효를 행하면서도 이것이 부족함을 죄스러워 하는 모습, 벗에 대한 마음가짐 등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대나무처럼 꼿꼿한 그의 모습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서 책을 파는 모습이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준 단 음식을 뺏어먹은 박제가를 꾸짖어달라고 쓰는 편지글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조금씩 문장의 행간을 파악하면서 이해를 해야되서 그런지 읽기에 버거운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인간 이덕무와 그가 살았던 시대상(정조시대의 서얼기용이라던지, 문체반정과 같은 여타의 사건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은 미숙한 한문학 실력에 뒤에 실린 한문의 원본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랄까...아, 어서 한문공부에 박차를 가해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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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동문선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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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에 대한 견해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단 하루만에 싹 바뀌는 일이 가끔 있다.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자주 있었다가는 피곤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잊을 만하면 불쑥 생긴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있고, 부정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야 물론 긍정적으로 변하는 편이 바람직하기는 한데...-29쪽

사랑을 함으로써 주변의 세계가 크게 바뀌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몸소 체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성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반짝거리는 태양과 바람의 감촉이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일도 있다.-29쪽

무언가를 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결국 치고받고 싸우는 세계이다. 모두한테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뜻하지 않은 피를 흘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 책임은 내 두 어깨로 짊어지고 사는 수밖에.-60쪽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행길에 어떤 책을 들고 갈 것인가하는 명제는 누구나가 고민하는 고전적인 딜레마일 것이다. 물론 사람은 각기 독서 경향이 다르고, 여행의 목적이나 기간, 행선지에 따라 책을 선택하는 기분도 달라진다. 따라서 일반적인 결론을 유추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만약 당신에게 '언제 어떤 곳을 가든 오케이'라고 여길 수 있는 올 마이티적인 책이 한 권쯤 있다면, 인생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65쪽

'세상에는 정말 여러 가지 종류의 함정이 있어.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 몸을 웅크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다니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하루하루 별 탈 없이 마음 편히 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120쪽

아주 드물게, 무슨 바람인지 한밤중에 눈을 뜨는 일이 있다. 그런 때면 그때 꾸고 있던 꿈의 내용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눈을 떴다가 금방 또 잠들어 버리므로, 아침이 되면 꿈에 관해서는 역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은 자신이 순간적이기는 하나 꿈의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허망하고 애달픈 사실뿐이다. 이는 잘 알고 있는 노래의 멜로디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때의 무력감과 비슷하다.-154쪽

내 머리 구석에 낚시바늘처럼 걸려서 떼어내고 싶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묘한 일이 있다. 기억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왠지 잊혀지지 않는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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