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총 5가지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저마다 평범하지 않을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근친상간이나 불륜, 짝사랑 등의 소재부터 영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읽으면서도 그다지 좋은 기분을 가지기 힘들었다. 5개의 이야기중에서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샴푸>라는 제목의 이야기였고, 가장 기분이 나빴던 이야기는 <피에스타>라는 제목의 이야기였다.

 <메뉴>에서는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오빠와 동생의 근친상간을 오빠로 나오는 도키노리가 자신의 근친 상간을 왠지 어머니의 죽음과 연결지어서, 마치 자신은 어머니의 죽음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같지만 실은 그로인하여 상처를 받았고, 그 때문에 자신이 자신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왠지 호감이 가지 않았던 캐릭터였다. 도키노리의 영향을 받은 동생인 세이코(친동생은 아니지만)의 행동들도 도키노리의 행동을 그저 따라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체온재기>에서는 불륜의 상대의 아버지와 그의 애인(요시즈미 부인)을 만나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항상 죽음을 숨겨놓고 있었다는 요시즈미 부인의 말이 왠지 모르게 호소력있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인공인 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피에스타>에서는 짝사랑하던 남자가 있는 추녀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욕망'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욕망이 화자이기때문인지 몰라도 이 이야기가 가장 껄끄러웠다. 주인인 추녀에 대한 비하뿐만 아니라 욕망 스스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나타내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물론, 추녀가 화자가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보다는 좀 더 직설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강점이 있지만, 읽는 난 그다지 유쾌하게 읽혀지지 않았으니...

 <공주님>에서는 가진 것도 개뿔없으면서 공주인 척 도도함만 가지고 있는 노숙자 히메코와 우연히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하인처럼 행동하는 어리숙한 마슈가 등장한다. 마슈를 사사건건 무시하면서 그를 통해서 자신의 내부에서 비어진 크로스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히메코의 모습은 '얜 대체 뭐야?'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물론, 그것이 메코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로 인하여 히메코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여튼 후에 마슈가 사랑이었음을 알고 마슈를 찾아가다가 지하철에서 사고로 죽고 마는 히메코의 모습에서 만약에 마슈와 다시 만나게 됐다면 둘의 사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싶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둘은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됐지만...

 <샴푸>는 어찌보면 요시모토 바나나적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바나나 특유의 멜랑꼴리함은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소라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소라뿐만 아니라 소라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야기와 얽혀서 보여지고 있다. 건물의 창문을 닦는 일을 하는 소라의 아버지의 애인으로부터 사고가 나서 병원이라는 소리에 함께 걱정하며 병원으로 달려가는 소라와 그의 남자친구. 그리고 창문을 닦다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애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음을 알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쁨의 만세를 부르는 소라의 남자친구의 일들은 왠지 모르게 풋풋함을 주었다.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서 흥미반, 기대반이었지만 그녀는 내게 그다지 매력적인 존재는 아닌 것 같다. 한 작품만 접해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으니, 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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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악셀 하케 지음, 조원규 옮김, 토마스 마테우스 뮐러 그림 / 북라인 / 2002년 7월
절판


음식점 한가운데서 손가락을 치켜들거나 손을 흔들면서 웨이터의 눈길을 기다릴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싫다. 소리 없는 회전목마처럼 한참만에 한 번씩 주위를 둘러보고 가는 그 눈길 말이다. 나를 바라보기 직전에 웨이터는 눈이 멀어 버리는 모양이다. 일 초 동안 아주 깜깜절벽이 된다. 그 눈길은 나를 보지 못한 채 스쳐가고, 그런 다음에 웨이터는 마술처럼 눈에 덮여 있던 콩꺼풀이 떨어져 나간다. 그의 눈은 다시 주의 깊어지고, 누군가 불과 일 초 동안 치켜든 턱의 움직임이나 거의 눈에 띄지 않을만한 눈짓 하나에도 바삐 달려간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유리로 만들어 진것도 아닌데!-100쪽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일은 지겹다. 당신이 어딘가 가고 싶어하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당신과 똑같은 곳에 가고 싶어하면, 당신은 할 수 없이 줄을 서게 된다. 뱀처럼 긴 줄이다. 당신은 줄 맨 끝에, 즉 참기 어려운 일이짐나 뱀의 꼬리 부근에 선다.-106쪽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유년의 꿈을 이루어야만 할까? 아니면 그 꿈을 그냥 간직해야 할까? 꿈을 간직했던 때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않으면 어쩌지? 옛 시절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면? 그렇다면 너는 카누는 가졌지만 꿈은 잃어버리는 거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거지-123쪽

그를 보는 것은 습관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창가로 가서 그를 살폈다. 습관이란 원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다. 어제의 일이 오늘도 이어지고 내일도 그러하리라. 이런 것이 인생에 따라붙는 불안을 가시게 해준다. -126쪽

아마도 그는 죽고만 것이리라. 그는 시간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제 그와 내가 공유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같은 리듬으로 똑딱거리는 벽시계들마저 이제 우리를 연결하지 않는 것이다-127쪽

우리는 사소한 일들로 자신을 괴롭힌다. 그런 사소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달픔을 덜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식당에 가면 우선 방대한 음식 리스트가 적힌 메뉴판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다. 수많은 텔레비젼 채널들, 쏟아져 나오는 여행 안내 책자, 수백만 권의 책들이 꽂혀 있는 넘쳐나는 서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산더미 같은 건초 더미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의지력이 없는 배고픈 당나귀 꼴인 것이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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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악셀 하케 지음, 조원규 옮김, 토마스 마테우스 뮐러 그림 / 북라인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며칠 전에 읽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와 비슷한 성격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 대해 조심스레 얘기하지만 그 일상이라는게 때로는 공감을 얻어내고, 때로는 흥미롭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쪽이 좀 더 유머의 강도가 쎄다는 느낌이...

 주인공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냉장고에게 반복되는 일상을 투덜대기도 하면서 자신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책 속에서는 주인공인 하케와 그의 아내 파올라, 그리고 그의 아들 루이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아들 루이스는 그리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않고, 이야기는 주로 하케의 이야기나 파올라와의 대화가 주가 된다. 하케와 파올라가 말싸움을 하는 부분은 키득키득 웃을 수 있게 해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비단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비행기에 대한 공포나 밤 기차에 대한 공포, 그리고 모기를 비롯한 각종 벌레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들도 퍽 흥미로웠다.

 여하튼 이 책도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처럼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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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품절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69쪽

"...좀 있다가 할어버지 집까지 모셔다 드릴 사람은 있나요?" "인샬라. 누군가 분명 있을 게다. 난 신을 믿는다." 신 얘기는 이제 지겨웠다. 신은 언제나 남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니까-172쪽

"...약속해주겠지?" "약속해요." "카이렘?" "카이렘."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니까-203쪽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거의 혁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닌 듯 느껴질 때처럼,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이제 예전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227쪽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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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대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 그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 편인데, 의도하지 않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 2권이 같은 저자가 지은 것이라는 점을 책을 다 읽고서야 깨닫게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자기 앞의 생'은 작가인 로맹 가리가 필명인 에밀 아자르로 발표한 것이기때문이었다. 작가의 이름이 로맹 가리이던, 에밀 아자르이던 어찌되었건 간에 아무런 편견없이(작가에 대한 편견은 같은 작가의 책을 몇 권 접해야 되는데, 첫번째로 접한 책이니 편견은 있을리가 없기도 하다.)책 자체만을 보았을 때 이 책은 나름대로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주인공인 모모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영화에 소리를 넣는 나딘 아줌마와 그의 남편 라몽 아저씨, 그리고 카츠 선생님 정도. 우선 주인공 모모는 아랍인으로 창녀인 엄마로 부터 태어난 아이로, 유태인인 과거 창부였지만 이제는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지내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낸다. 이들이 지내는 곳에는 모모를 비롯하여 여러명의 창녀의 아이들이 있고, 같은 건물에는 한 때 권투 챔피언이었던 여장 남자도 함께 살고 있다.

 결코 평범하지만 않은 이런 환경 속에서 모모는 위조된 서류때문에 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한채 하밀 할아버지로 부터 어느정도 글을 배우고, 평범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은 모모 나름대로의 일상적인 삶을 지낸다. 그러던 중, 로자 아줌마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병이 걸리고,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간호하게 된다. 과거 창녀였던 아줌마가 때때로 과거를 그리면서 화장을 진하게 하고, 이상한 옷을 입을 때에는 아줌마를 역겨워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모모는 아줌마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아줌마를 계속하여 돌보게 된다. 카츠 선생님이 로자 아줌마를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을 때에도 모두에게 아줌마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로자 아줌마가 이전에 지하에 마련해놓은 공간에서 아줌마와 끝까지 헤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세상의 그늘진 모습을 일상으로 바라보고 자란 모모,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삶이 괴로워도 사랑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빨리 깨달아버린 모모. 그의 모습이 왠지 안타까워보이면서도 그의 말에 수긍이 가는 것은 어째서였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비극이라면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렇지만 우리의 삶 자체도 하나의 비극이라면 비극일테니. 이 책은 삶을 예쁘게만 포장하지 않은 책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모모라는 아이가 성장해가는 모습뿐만 아니라, 인종문제나 안락사에 관한 생각, 그리고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처럼 이 책도 어린 아이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점이 얼추 비슷한 것 같기도... 연달아 이런 책을 접하니 진지하게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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