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별 통신
요시토모 나라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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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나보다 솜씨가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아, 난 재능이 없나 봐, 으흑, 흑'하고 생각했는데,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테크닉과는 무관하지만 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 요컨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를 나름의 수법으로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것이다. 미술사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테크닉에서도 자유로운 상태. 아무튼 그 사람 특유의 개성이 드러나면 될 거라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무튼 앞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다-27쪽

그 아홉 장의 수채화는 이렇게 나 자신을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면서 제작해야한다는 기분으로 그렸는데, 역시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이 지금도 그리고 있고, 내일도 그릴 것이다. 아무튼 계속해서 그리는 것, 그리는 행위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이미 나란 존재는 의미가 없으니까. -140쪽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또 나자신에게는 아주 소중한 그 무언가를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잊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잊어버릴 만하면 그것을 깨우쳐 줄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154쪽

1959년 12월 5일. 이 사랑스러운 태양계 제 3혹성에 태어난 그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나란 인간은 살아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슬픈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이 살아 있는 한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뉴턴이 발견한 중력이란 것으로 우리의 두 발이 굳건히 땅을 딛고 사는 이 조그만 별에서...-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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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 통신
요시토모 나라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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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접한 사람이라면 왠 슬픈 눈망울을 가진 아이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바로 나라 요시토모. 이 책의 저자이다. 그는(책을 읽으면서 나라 요시토모가 남자였던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연히 여자일 것이라고 제멋대로 상상했던.) 이 책을 통해 작은 별 지구에서의 그의 삶을 그의 그림과 사진과 글을 통해서 보여준다.

 '1959년 12월 5일 이른 아침, 나는 이 작은 별을 찾아왔다.'로 시작되는 책은 그의 학창시절, 대학시절, 여행이야기 등을 겸손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 솔직하게. 하지만 이런 그의 자서전은 간단한 스케치로만 드러날 뿐 세부적인 모습들은 그려주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30살이 되어서라도 훌쩍 독일 유학을 결심하는 모습이나, 세부적으로까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언어적 소외감 속에서 그는 그림으로써 이를 극복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다. 자신은 대학의 합격을 운이 좋았을뿐이라고 했지만, 너무 지나친 겸손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아. 그리고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록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니. 정말 나라 요시토모가 남자였다는 사실 다음으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비록 나에게는 미술에 대한 재능은 거의 없다. 하지만 비단 미술에 대해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게다가 건방도 안 떨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고 느낄만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노력, 그리고 그만의 세계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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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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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속에는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이 실려 있다. 더불어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었다. 대개의 경우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글을 썼는지는 밝혀주지 않으니 궁금한데, 이 책의 경우 하루키는 자신이 단편을 어떻게 지었으면 대충 어떤 시기에 지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니 왠지 호기심 해결. (이 중에 몇 편을 제목부터 정해놓고 쓰기 시작했다니, 역시 사람마다 이야기를 짓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첫번째 이야기인 <중국행 슬로보트>에서는 자신이 만난 몇 명의 중국인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조금은 코믹하고, 조금은 모자라보이는 이야기에다가 자신의 존재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가 섞여들어간 조금은 가볍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은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인 <가난한 숙모 이야기>에서는 가난한 숙모가 없는 주인공이 가난한 숙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등에 가난한 숙모가 함께 다니는 조금은 기묘한 이야기. 등에 있는 가난한 숙모라는 존재가 생겨나고, 그것으로 인하여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어느날 훌쩍 사라져버린 이야기에서 왠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졌다. 세번째 이야기인 <뉴욕 탄광의 비극>에서는 줄줄이 주변인의 죽음을 겪게 되는 한 사내의 이야기였고, 네번째 이야기인 <캥거루 통신>은 백화점 상품 관리과에서 일하는 한 사내가 레코드 교환을 원한 고객인 한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황당하기도 하고, 만약 내가 그 여자였다면 '이거 미친 놈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법한 그런 황당한 이야기. 다섯번째 이야기는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으로 아르바이트로 잔디를 깎는 사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일하는 집에서 잔디를 깎으며 겪는 이야기가 보여진다. 내내 차분한 정경이 그려지는 모습. 영화였다면 대사는 몇 마디 없이 화면만 보여지는 영화같았다고 할까. 여섯번째 이야기인 <땅 속에 묻힌 그녀의 작은 개>는 호텔에서 만난 여자와의 이야기로 비오는 풍경이 처음에 제시되서 그런지 비오는 날 인적이 드문 호텔 커피숍에서 읽으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인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에서는 양사나이와 양박사가 등장하는데, 그때문인지 몰라도 <양을 쫓는 모험>이 생각나기도 한. 사실 뭐 내용은 그보다는 추리소설에 나올 법한 무기력한 탐정 같지만. 물론, 뭐 정통 추리소설은 아니고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는...

 한 작가의 처녀작을 읽는 것은 왠지 설레임을 준다. 지금과는 다른 작가의 면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은 나에게 설레임을 줬고, 그리고 그런 나의 설레임을 지켜줬다. 그의 다른 장편소설보다는 뭔가 생각할거리는 적은 편이지만, 그냥 가볍게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게 아닐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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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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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소?
누가 고백할 수 있겠소,
나는 신을 믿는다고?
마음속으로 느낀다고 해서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만물을 포괄하는 자,
만물을 보존하는 자,
그는 당신을, 나를, 그리고 자기자신을
포괄하고 보존하고 있지 않소?
하늘은 저 위에 둥글게 덮여 있지 않소?
대지는 이 아래 굳건히 놓여 있지 않소?
영원한 별들은 다정한 눈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떠오르지 않소?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당신의 머리와 가슴으로 밀려들어와
영원한 비밀을 간직한 채
보일 듯 말 듯
당신 곁에서 떠돌고 있질 않소?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으로 당신의 가슴을 채우구려.
그리하여 당신이 온통 행복감에 젖게 된다면,
그것을 행복 ! 진심! 사랑! 신!
무어든 원하는 대로 이름을 붙이구려.
나는 그걸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소!
느끼는 것만이 전부이지요.
이름이란 공허한 울림이요, 연기요,
안개 속에 휩싸인 하늘의 불꽃일 뿐이오.-18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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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눈의 물고기
사토 다카코 지음, 김신혜 옮김 / 뜨인돌 / 2004년 12월
절판


누군가가 쉽게 싫어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입에 담지 않으면 칼처럼 상대를 푹 찌르는 일도 없다. 마음의 피를 보는 일은 없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도서관을 나왔다. 최악의 기분. 사람이 싫다는 기분은 더럽다. 독이 있다. 자신이 내뿜는 독에 의해 자신이 더러워지고 고통스럽고 죽을 것 같다-101~2쪽

잃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왜 잃어버리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 걸까? '사라지지 않는 남자'라는 말이 갑자기 스위치라도 켠 듯이 머릿속에 확 밝혀졌다. 니도리가 좋아한다는 남자 타입. 초조하고 불안하다. 왜 그럴까? 이 강렬한 불안감. 안타까운 느낌. 사라지지 않는 남자 따위 없는 게 아닐지. 어떤 남자라도 사라져버린다. 우리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어떤 인생이라도 반드시 끝난다. 생애를 함께 보내고 내 쪽이 먼저 죽어버리면 사라지는 걸 보지 않아도 되지만. 니도리가 원하는 게 그런건가? 내가 원하는건 그런건가? 잘 모르겠다. 사라지지 않는 남자 -312쪽

눈이 마주쳤다. 기지마의 그런 눈은 본 적이 없다. 강렬하고 뜨거운 눈이다. 기분이 넘쳐나는 눈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예리하게 관찰할 때보다 더 깊이 나를 사로잡았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도우루짱도 니도리도 없다. 기지마뿐. 진공의 허무의 어둠 속에 둥실 기지마가 혼자만 있다. "나 무라타를 좋아하고 있어."그 단 한 사람이 갑자기 말했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말에 놀란 듯이 움찔 어깨가 올라갔다. "점점 좋아하게 돼. 틀림없이 더욱더 좋아하게 될 거야. 내 자신의 기분 같은 걸 어떤 식으로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림만 계속 그리고 있었지만, 그림이 아니면 전해지지 않을 거라도 생각하고 있었지만."-336~7쪽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는 기쁨. 좋아한다는 고백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행복함. 마음을 털어놓으려 할 때에 하려 했던 말은 이제 아무 필요가 없다. 마음에 담아두자. 사라지지 않는 여자가 되겠다는 결심. 사라지지 않는 남자로 삼겠다는 결심-337쪽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있어?" 도우루짱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웃음을 참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있어." 진짜? " 그 사람 지금도 좋아해?" "옛날 일이야." "싫어졌어? 어디쯤인가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미움으로 바뀌었어?" "글쎄, 어떻게 됐더라. 그렇게 흑백이 분명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도오루짱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레이 존에서 페이드 아웃이라고 해야 할까." 페이드 아웃-. 사라진건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건가. 싫다. -3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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