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좋은 글귀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자꾸 읽게 된다. 이번에 읽은 웨하스 의자도 그러한 이유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예상외의 발견이라고 할까?! 내가 지금껏 읽어온 그녀의 작품 가운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38살의 중년이라면 중년이라고 할 수 있을 한 여자. 그리고 애가 둘딸린 유부남인 그녀의 애인.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고 마치 손을 대면 부서져버릴 것 같은 웨하스 같은 상태의 여자의 모습, 가끔씩 찾아오는 절망을 쫓아내려고 하는 여자의 모습. 그녀의 일상이 고스란히, 그리고 혼자서 독백을 하듯이 그려지고 있다. 애인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던지,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에서 그녀에게 많은 부분을 동감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의 다른 모습인 절망이 때때로 그녀를 찾아와 괴롭힐 때의 감정이라던지.

 만약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우울한 기분에 잠겨 있거나, 고독하다고 느낄 때 이 책을 읽는다면 그녀에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코끝이 찡해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안타까운 여자의 모습이 자꾸만 머리 속을 파고든다. 한없이 나약한 한 마리 새같은 여자의 모습. 소설 속에서 또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어째 늘 내가 동감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불륜을 하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아, 그리고 이 책도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애인의 감정에 대해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구판절판


<바로 이거야. 이런 곳을 언제나 갈망했었지. 이곳에서 살자.>(대부분 많은 남자들이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자기와 일생을 함께 할 여자요, 자기의 소유가 될 여자요, 인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곁에 머물러 있을 여자라는 생각을 번개처럼 뇌리에 떠올린다는, 이른바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감정이었다.) -9쪽

보행은 마음을 달래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떼어놓고, 그와 동시에 팔을 리듬에 맞춰 휘젓고, 숨이 약간 가빠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와 중심을 잡는 데 필요한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고 - 그런 모든 것들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 -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롭게 되는 일련의 현상들이었다. -8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험때 읽을만한 책으로 짧은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 전체 이야기가 100장남짓되는 짧은 이야기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물론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좋아서 선택한 책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조나단은 <좀머씨 이야기>에서의 좀머씨처럼 세상과의 접촉을 되도록 피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은행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그는 5달 뒤면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는 것을 낙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 그의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존재는 바로 다름아닌 집 앞 복도에 있는 비둘기. 복도에 온통 똥을 싸놓고, 게다가 날개도 떨어져있는데다가, 그 눈으로 조나단을 쳐다보기까지 한다! 우리의 조나단 그 모습을 보고 그 비둘기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무도 끔찍하게 생각한 나머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갰노라고 다짐을 하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여관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리고 출근을 한 그는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동안의 자동적이고 기계적인 생활에서 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인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여관에서 묵게 된 날 악천후가 있게 되고, 그는 용기를 내어 집에 가고, 말끔하게 청소가 된 복도와 이제는 비둘기가 없음을 보게 된다.

 '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 책은 경비원 조나단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보자. 우리의 모습이 조나단과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맞춰진 일과에 따라 하루하루 기계와 같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조나단의 이 하루는 일상으로부터의 이탈. 혹은 일상의 기계화를 깨닫게 되는 자각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깟 비둘기때문에 소심하게 벌벌대고 짐을 싸가지고 나온 조나단을 비웃지 말자. 비둘기는 단지 그가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하나의 매체로 사용되었을 뿐이니까. 만약 비둘기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그는 자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계기때문이던지간에 조나단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고, 그로인하여 다시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품절


노름이란 말이 논다, 놀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건 다 알 거다. 남들 다 놀이를 할 때 혼자 칼을 갈면 한두 사람의 등을 찌르거나 뒤통수를 칠 수는 있다. 하지만 진정한 노름꾼은 남이 놀 때 같이 놀고 남이 칼을 갈면 같이 갈아준다. 세상에 리듬을 맞춘다, 이게 노는 것이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노름에도 도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 그게 현실적인 정치나 비지니스의 그것보다 나을 수 있다. 요즘의 정치가들, 사업가들, 마피아들 너무 놀 줄 모른다. 숨을 들이쉴 줄만 알고 뱉을 줄 모른다. 먹을 줄만 알고 쌀 줄은 모른다. 그래서 차곡차곡 모으면 많이 딸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죽는다. 숨이 막히고 뚱뚱해져서 추하게 죽는다.-23~4쪽

나는 일등만 하는 친구를 부러워한 적은 없어. 우리 동창 중에는 삼 년 내내 아버지 차로 등교한 군수 아들도 있었고 또 삼년 내내 일등만 하다가 대학 가서 곧바로 고시 패스한 놈도 있지. 나는 그런 놈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더. 그놈들은 그야말로 별종이야. 나도 별종은 별종이었는데, 안 조은 쪽으로 별종이지. 반에서 등록금도 제일 늦게 낼 정도로 가난하고 공부는 꼴찌고 사고쳐서 학생과에 제일 많이 불려가는 게 나였어. 그런데 그 놈들은 나를 별종 보듯 하면서 저희가 별종인지는 몰라. 나는 네가 부러웠어. 평범해 보이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구.-92~3쪽

죽도록 좋아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걸 기본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정상에 오른다. 재주가 없어도 부지런한 사람은 자기 몫은 하게 되어 있다. 재주가 있어도 게으르면 소성(小成)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성할 수는 없다. -104~5쪽

일설에 의하면 사람은 눈으로 처음 본 것이나 처음 들은 것은 잊을 수 있지만 처음 맡는 냄새에 대한 기억은 일생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223~4쪽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아니다, 아니야. 어처구니는 있다.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실낙원은 낙원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연은 사랑이 있었기에 성립한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은 있었기에 가능한 말이다. 어처구니는 언젠가 있었다. -226~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읽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이후로 푸욱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국 작가. 인간에 대한 통찰을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리라. 여튼간에 이 책속에는 총 8개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각각의 이야기 속에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좀 진지한 모습이라고 할까?

 각각의 작품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자면, <꽃피우는 시간-노름하는 인간>에서는 화자가 K라는 도시에 놀러갔다가 세계 최고의 도박사 피스톨 송 선생의 강연을 우연찮게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성석제는 인간 세상을 도박판에 비유하고 있으며, 더불어 거짓이 팽배해있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하지만 날은 숨이고 있는) 비판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인 <해방-술 마시는 인간>에서는 주인공이 몇 명의 사내와 화가라는 한 여자와 술을 마시게 되고, 화가라는 여자가 갑자기 울자 그녀가 왜 우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함께 이야기한 것들을 다시 곱씹어보면서 진행되는 형식의 글로, 과거 교사 시절에 만난 '재떨이'라는 여자와의 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술을 일상의 해방의 도구로 인식하는 점은 익히 보아온 이야기이긴 하지만,어찌되었건 술을 통해서라도 쳇바퀴도는 것 같은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우리네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아닐까? 그건 그렇고 대체 그녀는 왜 울었던 것일까?

 세번째 이야기인 <소설 쓰는 인간>에서는 한 제비족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우리 세계를 춤, 춤방, 남자, 여자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는 춤에 홀랑 빠져서 결국 제비. 그것도 왕제비가 되지만, 꽃뱀에게 당하고 춤 인생을 결국엔 끝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어느 왕제비의 인생-내 운명을 바꾼 호두알 두 쪽.'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쓰고자 한다.

 네번째 이야기인 <홀림>에서의 화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분열, 복제된 다수로 만들어 각각의 상황에 맞춰가면서 홀린 듯이 살아간 인생을 보여주며 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다보는 것으로 그려지는 풍경은 뭐랄까. 나른한 오후같은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더불어, 이 이야기는 작가의 스스로의 자전적인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다섯번째 이야기인 <협죽도 그늘 아래>는 한 여자의 기구한 사연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터에 끌려간 남편. 그리고 그의 돌아오겠다는 말에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반복되는 시작점을 통해서 왠지 시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더불어 그녀의 슬픔이 아스란히 느껴져 왠지 서글퍼졌다.

 여섯번째 이야기인 <붐빔과 텅 빔>은 전혀 다른 두 형제의 삶을 대비하여 보여주면서, 두 형제의 인생을 그려주고 있다. 앞서간 형의 노선을 밟아가는 아우의 이야기를 통해 공허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온 방식은 전혀 다르고, 그 끝도 다른 두 형제이지만, 하나의 삶을 살고 있는 형제의 이야기. 왠지 그러고보면 우리네 인생도 결국은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일곱번째 이야기인 <방>에서는 책으로 가득찬 한 방을 통해서 도무지 뭔소리를 하고 있는건가싶을 정도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이상한 소설. 확실치 않는 세계에 대한 풍자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 이야기인 <이무기>에서는 바보 곽영출을 통해서 다양한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바보의 눈으로 본 세상도 결국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

 이렇게 총 8개의 단편 속에서는 성석제 특유의 인생에 대한 통찰이 가벼운 비판과 함께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뭔가 비주류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주류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어서 흥미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인생사를 비꼬아도 성석제의 소설은 웃음을 줄 수 있어서 좋다. 떨떠름한 기분만이 아닌 우선 문장 자체를 즐기고, 그리고 나서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식의 그의 작법에 당분간은 계속 빠져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