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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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책은 사실 손이 선뜻 가지 않아서 읽지 않고 있었는데, 군에 간 남자친구가 읽고서는 '이건 쭉 연애소설인거 같다가 마지막에는 무슨 SF 소설도 아니고...'라는 말을 해서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하는 궁금증에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녀석이 말한대로 이 책은 연애소설이다. 아내 미오를 잃은 다쿠미는 아들인 유지와 함께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다. 아내 미오는 죽기 전에 다시 비의 계절이 오면 잘 살고 있는지 보러 돌아오겠노라고 약속을 했었고, 그녀의 말대로 다시 비의 계절이 오자 미오는 다시 돌아오고, 그들은 6주간 다시금 기묘한 동거 생활을 한다.

 죽은 아내가 자신의 아들과 남편이 잘 살고 있는지를 보러 온다는 얘기는 참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인 듯 싶다. 게다가 남편인 다쿠미는 뭔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내가 미오였다고 하더라도 혼자두고 떠나기에는 너무도 걱정되는 사람이다. 그런 다쿠미에게 미오가 다시 찾아가게 되고, 아무런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미오에게 다쿠미는 그들의 연애사를 이야기해준다.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가는 그런 느린 사랑이야기에 답답함을 느끼기보다는 그들이라면 그럴테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해주었다.

 비단, 미오와 다쿠미, 그리고 그들의 잉글랜드 왕자님이자, 늘 코가 막혀있고 아무 쓸데없는 쓰레기 주워 들이는 게 취미고, 맨날 '그런거야?'라고 하는 유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농부르 선생과 푸의 이야기도 잘 어울러져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이야기가 진행된 것 같다.

 미오가 다시 돌아와 다쿠미와 유지가 죽은 미오를 다시 만나 추억을 만들고, 다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고, 이번에는 이별을 좀 더 제대로 고할 수 있었고, 그동안 마음에 묵혀놓은 것에 대해 용서를 빌 수 있었기 때문에 미오가 다시 떠난 뒤에 다쿠미와 유지가 좀 더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표지가 너무 예뻐서 홀딱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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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5-06-2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아주 좋았는데 책도 어떤지 모루겠네요.. 나중에 기회되면 봐야겠다ㅎㅎ

이매지 2005-06-2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는 아직 안 봐서^-^;;
기회가 되면 영화봐보려구요^-^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마리 짱. 우리가 서 있는 땅이란 건, 탄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꽝'하고 저 밑창까지 꺼져버리거든. 그리고 한 번 꺼지고 나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본래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지. 그 후엔 꺼져버린 땅 밑의 어두컴컴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 -219~220쪽

시간을 가지고, 자기의 세계 같은 것을 조금씩 만들어왔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 세계에 혼자 있으면, 어느 정도 안도감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그런 세계를 일부러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간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리고 그 세계란 것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고 보잘 것없는 세계에 불과하잖아요. 골판지 상자로 만든 집처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듯한...... -231쪽

앞으로 마리 짱이 어엿하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지금보다 많이 가질 수 있게 될거야. 어설픈 짓은 하면 안 돼. 세상에는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있어. 그걸 잘 조합시키는 것이 중요해. -232쪽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이조각일 뿐이지. 불이 '오, 이건 칸트로군'이라든가. '이건 요미우리신문의 석간이군'이라든가, 또는 '야, 이 여자 젖통 하나 멋있네'라든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것이든 모두 종잇조각에 불과해. 그것과 마찬가지야. 중요한 기억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도, 전혀 쓸모 없는 기억도, 구별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그저 연료일 뿐이지.-235쪽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밝은가, 어두운가 하는 것으로 쉽게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어둠과 밝음 사이에는 그늘이라는 중간지대가 있잖아. 그 그늘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그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어?-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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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맘 2005-10-1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윤회를 믿어요 마리처럼 정신이 강하지 못하거든요,,
이 책을 보는내내 마리를 부러워했어요
(특히, 다카하시같은 남자친구를 너무 갖고싶어요!!)

제가 에리언니와 비슷하기 때문에 마리를 부러워 했을꺼예요,,
(에리언니처럼 얼굴이 모델처럼 이쁘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만)
내가 뭘 진정 원하는지 모른채 이 곳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슬퍼졌어요,,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가을 웹서핑을 하다가 하루키의 25년을 기념하는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대체 우리나라에는 언제 발간이 된단말인가!'하면서 오매불망 이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본디 신간의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빌려본다는 나름의 원칙을 깨가면서까지 책을 사서 시험이 24시간도 남지 않은 그 시점에 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책을 받아들고는 너무도 판타지소설과 같은 표지에 한 번 실망을 하고, 얇다란 두께에 다시 한 번 실망을 하긴 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마리'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과 지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한편, 그녀의 언니인 '에리'는 이름 한 글자만 차이가 날 뿐이지만, 빼어나게 예쁜 외양을 가진 존재이다. 외양적으로도 너무 다른 이 자매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존재인 것 같다. 같은 집에서 살고 있을 뿐, 둘은 서로 마음을 터놓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동떨어진 존재이다. 어느 날, 에리는 이제부터 잠을 자겠다고 하고 두 달동안 마치 죽은 것처럼 잠만 자는 생활을 하고, 마리는 그 때문에 혼란을 겪고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심야의 레스토랑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언니의 고등학교 동창인 다카하시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러브호텔인 '알파빌'에서 한 중국인 매춘부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밤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화자의 시점이었다. 3인칭으로 나타나고 있는 화자는 '우리'라는 말을 통해 화자와 독자가 같은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해주는 한 편, 또 어느 순간에 가서는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존재가 되어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을 하루키의 소설에서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것이어서, 우선 이 점에서 처음에는 약간의 부적응현상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 몰라도 문장이 너무 딱딱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름대로의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화자와 같은 시점으로 사물을 보고 있기 때문에 느껴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유기적으로 문장이 연결되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여기엔 뭐가 있다. 지금은 이런 상태이다. 와 같은 나열이 나오고 있음은 뭔가 좀 어색한 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용의 흐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서 어색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기대가 컸던 탓인지 어느 정도 실망을 하기는 했지만, 하루키와 같은 인물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또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음에, 그리고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스스로 위로 하고 있는 중이다.

 7시간동안 마리가 겪는 일들과 그녀의 깨달음. 그리고 에리가 잠을 자면서 겪고 있는 일들. 왕년의 레슬링 선수의 러브호텔 매니저 이야기, 음악을 하는 법대생 다카하시의 가족사와 진로 문제, 손님한테 맞아 쓰러진 중국인 매춘부와 그녀를 데리고 있는 중국인 조직, 중국인 매춘부를 폭행하고 그녀의 옷가지를 비롯한 모든 물건을 가져가버린 회사원, 누군가에게 쫓기고 러브호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 이들은 서로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고, 저마다의 갈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커다란 갈등의 양상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또 갈등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른 뚜렷한 해결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책을 덮고도 한참을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상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여튼간에, 아쉬운 면도 있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면도 있는 작품이었다. 하루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더불어 책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음악을 책의 끝에 실어놓았는데, 한 번 들어봐야겠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스파게티와 맥주의 유혹을 당하지 않았다. 그저 참치 샌드위치와 계란말이의 유혹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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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 법의학과 과학수사
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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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보다보면, 종종 '아, 정말 이 책은 사고 싶다!!!'라는 생각을 드는 책이 있다. 그런 책들은 책을 읽은 뒤에 소장용으로 따로 사놓는 편인데, 아무래도 이 책은 그런 책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 워낙 가격이 비싸서 언제쯤 살런지는 모르겠지만...(올칼라에 양장인 관계로 2만 9천원이나 한다.)

 C.S.I나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를 읽으면서 점점 더 법의학에 대해서 알고 싶었기에 법의학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보았지만 이 책만큼 폭넓고 자세한 책이 있었는가 싶다. 이 책에서는 각각의 주제에 맞는 설명을 해주고, 사진을 통해서 그 설명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그 뿐 아니라 그 주제에 맞는 실제 사례(C.S.I에서 본 사례들도 몇 개 있었다.)를 소개함으로써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그것을 채워주고 있다.

 증거 수집, 자살이냐 타살이냐?, 죽음의 흔적, 치명적인 독극물, 두개골과 뼈, 생명의 호흡, 사체 속의 벌레들, 지문은 말한다, 피는 알고 있다, DNA 지문, 머리카락과 섬유조직, 발사된 총알, 화재와 폭발, 파편과 증거, 목소리의 주인공, 범인 식별, 법의학 장비와 같은 17개의 세부적인 주제들 속에서 독자는 마치 자신이 법의학에 대한 수업을 받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책의 뒤에 쓰여진 '책으로 읽는 CSI 과학 수사대'라는 문구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좀 더 생생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되도록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법의학 과외선생님 같은 느낌이랄까.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인데 그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애교로 넘어가 줄 문제.

 이 책에 설명과 함께 곁들여지는 사진들이 때로는 너무도 뚜렷하게 등장해서 행여나 놀래서 가슴을 쓸어내릴 아주아주 비위가 약한(?)사람만 아니라면 좋은 법의학 관련서가 될 것이라고 본다. (밥 먹으면서 이 책을 읽은 나는 진정 비위가 좋은 것인지...)이 시간에도 알게 모르게 범죄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을 모든 법의학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들이 악과 맞서고 있기 때문에,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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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6-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도서관에서 보면 그냥 지나쳤었는데...
아, 그리고 저기에 오타가 있어요 ! 비유 -> 비위 그죠? ^-^

이매지 2005-06-1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오타 지적 감사드려요^-^;
그러고보니 책 안에도 오타가 하나 있어서 출판사쪽에 보내야지 하고 까먹고 있던.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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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둘 다 성취욕도 강했다. 서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밤에는 등불을 밝혀 공부했고, 웅대한 이상도 갖고 있었다. 관공서의 처장이나 국장, 또는 사회의 크고 작은 기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얼굴을 한 군중의 새까만 대열 속에 빠져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당신도 두부를 사고 출퇴근을 하고, 밥먹고 잠자며, 빨래를 하고 가정부까지 다루고, 아이를 돌보다 보면, 저녁이 되어도 책 한 장 뒤적이고 싶지 않게 되고, 웅장한 꿈이나 이상이라는 것은 개방귀 같은 소리고 철없던 때의 일이 되버리고 만다. 모두들 이렇게 섞여서 한 평생 사는 것이 아닌가? 큰 뜻이 있으면 어쩔 거고, 설사 꿈이 있다면 또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 많던 장군과 재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황페한 무덤의 풀숲 아래에 있을 뿐이다. -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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