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의 상자 - 하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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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여름, 우연히 <우부메의 여름>이라는 추리소설을 읽고, '정말 여름에 읽기엔 좋은 책이구나.'하며 혼자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올해 <우부메의 여름>의 작가인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읽어야지하고 잔뜩 벼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지만, 일단 분량부터 이 전에 읽었던 <우부메의 여름>의 족히 2배는 되는 지라, 책을 보면서 언제 다 읽나 한숨만 푹푹 내쉬었는데, 상권은 좀 오래 걸린 편이지만, 하권은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하권이 좀 더 얇다는 이유도 한 몫 했을지도.)

 이 책 속에는 총 4개의 사건(가나코 살해 미수사건, 가나코 유괴미수사건, 가나코 유괴 및 스자키 살인사건, 불특정 연쇄토막살해사건)이 등장하고,(교고쿠도가 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에는 사건은 5개가 되지만 이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듯 하여 생략.) 각각의 사건은 전혀 개연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립된 사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나씩 하나씩 얽혀들어가 마침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하지만 그 각각은 여전히 각각으로 존재하고 있다.) 마치 사건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것인가 싶을 정도로 묘하게 맞아들어가고, 그러한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서 '망량'과 '상자'가 등장한다. 더불어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 요괴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요컨대 묘하게 섬뜩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책 속에서 교고쿠도가 몇 번이나 말하듯이, 뒷.맛.이. 좋.지. 않.다.

 이번에도 교고쿠도의 기나긴 이야기(궤변인가.)는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고조시켜주었고 또 마지막에 가서는 '아아. 그랬던 것이로군!'이라고 하며 무릎을 치게 했다. 책의 두께에 대한 부담이 나름대로 상당했지만, (내심 판형을 더 크게 했으면 페이지의 압박은 없었을텐데 싶기도.) 어찌되었건 두번째로 만난 쿄고쿠 나츠히코의 이야기 역시 잘 읽었다. 묘하게 섬뜩한 느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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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7-1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우부메의 여름'이 저에겐 좀 어려웠어요. +_+ ;
 
라파엘로의 유혹
이언 피어스 지음, 송신화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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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전에 읽었던 이언 피어스의 작품인 <핑거포스트 1663>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이 책도 주저없이 덥썩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했던만큼 재미있었다.

 이야기는 라파엘로의 미공개 그림이 아래에 감추어져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젊은 미술사학도 아가일이 찾아낸다. 그는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자 로마에 왔으나, 벌써 번스라는 중개상이 가져간 뒤였다. 그리고 작품은 경매에 붙여져 어마어마한 가격에 로마의 박물관이 가지게 되고, 그러던 중 그림이 홀랑 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뒤이어 박물관에서 일하던 페라로가 살해당한다. 그림을 불태운 사람, 페라로를 살해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런 미스터리를 아가일과 이탈리아 미술품 절도반의 플라비아와 보탄도가 풀어나간다.

 이 책 속에는 미술가의 뒷 얘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 실려있다. 미술품에 투기를 하는 사람, 작품을 모방해서 그리는 화가, 위조품을 가려내는 감정가, 그리고 박물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력다툼 등등. 하나의 그림을 놓고 벌어지는 온갖 지저분한 일들이란.

 이런 류의 소설이 대개 그렇듯이 이 책도 사실 여부에 있어서 굉장히 헷갈리게 했다. 정말로 라파엘로의 그림이 존재했다는 것인지 아닌 건지. 책에 앞에는 라파엘로의 그림이 실려져있고, 책의 뒤에는 책에서 나온 화가들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책에서 나온 화가들의 작품의 경우에는 그 페이지에 적절하게 소개해주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보고서는 대체 어디 나왔던 사람인지 기억이 안났으니..

 이 책은 이언 피어스 자신이 미술사를 전공해서 그런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 다른 미술사 미스터리 시리즈가 출간될 예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더불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아가일, 플라비아, 보탄도)이 모두 매력적이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지 어렵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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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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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지나 엽서에는 스피드만을 요구하는 요즘의 시대 감각과는 정반대인 평온함과 그리운 손길도 있다. 편지에는 이제부터 마음을 전하겠다는 무게가 전해지며, 편지 봉투를 뜯는 사람은 다소의 차이가 있어도 오로지 자신에게만 전달된 그 특별한 우편물에 얼마간의 기대와 흥분을 느낄 수 있다. -8쪽

편지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이다. -12쪽

그것이 어떤 기회였던, 만나기만 하면 그건 멋진 첫 출발이 됩니다. -21쪽

사람이란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의 의미를 잃기 쉬운 법. 행복이란 게 뭔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무심코 인생을 업신여길 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입을 벌리고 있다. 감사할 수 있는 것, 이건 틀림없이 행복하다는 증거이다. 만약 죽기 직전에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채우고 떠날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마지막은 없을 것이다. -65~6쪽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에 묶이지 않고-66쪽

-나카라이 히사미 님
나는 당신이 싫어요. 당신도 내가 싫은가요?
당신은 나를 변화시키고 싶지 않나요?
나는 당신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지금이 변화시킬 기회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당신이 좋아요. 당신도 내가 좋은가요?

          -나카라이 히사미 -102쪽

편지에는 마법의 힘이 숨어 있어 제대로 그 힘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마음은 몇 배나 아름답게 미화되어 상대에게 전해진다. 느낌이 좋은 연애편지라면 받은 쪽은 보내는 이의 이미지를 좋은 쪽으로 키워갈 수 있을 것이고, 또 보내는 사람이 자신의 용모에 자신이 없다 할지라도 상대는 이를 좋은 쪽으로 오해해 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안에 멋진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 무언가를 글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러브레터는 괴로운 마음을 대변하는 가장 듬직한 원군이 된다. -118~9쪽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단 하나의 열쇠가 필요하다. 이것이 연애편지의 철칙이다. -122쪽

마음에는 경계라는 게 있어서 사람들은 그곳을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고 생각해. 난 마음의 국경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고 아직도 여행을 하고 있어. 마음의 경계란 복잡하고 다양한 지형을 그리고 있어. 내가 어느 날, 집에 돌아가지 않고 여행을 떠난 건, 좀 특별한 지형을 한 마음의 풍경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야. 그 여행은 대단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었어.-175쪽

편지는 완전한 수제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지를 받으면 기쁘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만 보내진 메시지. 그것을 우체통에서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작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편 집배원을 통해 멀리서 배달된다는 것이 기쁘고, 거기에는 우체통이라는 것이 존재해, 그 작은 상자를 여는 기쁨까지도 딸려 온다. -20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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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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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사실 이 책의 소재가 '편지'라는 것만 알 수 있었지 무슨 얘기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차례를 보니, 편지를 쓰는 것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가 싶어지기도 하고, 편지를 매개로 벌어지는 연애담인가 싶어지기도 하고, 여튼 궁금한 마음만 더해져서 결국엔 재빨리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직업이 소설가인데, 부업으로 시작한 편지를 대필하는 일이 오히려 승승장구하게 되고...이 책은 그가 편지를 대필해 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때로는 사연은 생략되고 편지만 실려있기도 한다.)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조심스레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에서부터, 자기가 차버린 남자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는 편지, 어린 시절 자식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엄마가 그녀의 아들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편지,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할머니에게 손자의 죽음을 알릴 수 없어 손자를 가장하고 쓰는 편지 등등 이 책 속에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풋풋함을 느끼게 해준다.

 언제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문자나 전화를 할 수 있고, 이메일을 통해서 연락을 할 수 있으니,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편지는 거의 쓸 일이 거의 없다. 그 때문에 우편함에 쌓이는 것은 온통 고지서, 광고물들뿐이다. 하지만, 우편함을 열었을 때, 그리운 사람에게서 받는 편지 한 통. 손으로 정성껏 써 내려간 그 편지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할 것이다.

 사실, 나같은 경우에는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편지를 많이 쓰는 편(원래도 편지를 쓰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이다. 매 번 편지를 쓸 때마다 편지지를 앞에 두고 무슨 얘기를 적을까 고민하고, 편지를 써내려가는 과정, 그리고 조심스레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그 순간까지 편지는 그것을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좋게 해준다. 그리고 가끔씩 우편함에 넣어진 녀석의 편지를 접하면 대체 무슨 얘기를 썼을까 하고 기대하게 된다(사실 뜯어보면 맨날 무슨 말을 써야할지 통 모르겠다는 편지이지만.)

 이러한 일련의 경험(편지를 쓰기위해 머리를 짜내고,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것)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서는 책상 서랍을 열어 편지지 한 장을 꺼내, 그리운 사람에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 같다. 때로는 느리게 살아가는 것도 삶에 있어서 하나의 즐거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에 읽었던 <사랑을 주세요>에서도 편지를 매개로 하는 내용이 나왔던 것이 기억이 나기도... 그리고 책 속에는 츠지 히토나리가 한국의 독자에게 보내는 메모(?)도 끼워져 있어서 그의 깜짝 편지도 만나볼 수 있을 듯. (공지영과 함께 소설을 연재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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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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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에서부터 '무슨 이리 안 어울리는 동물의 조합인가' 싶었고, 제목을 보고선 '카스테라? 먹는 그 카스테라?'라는 생각을 하면서 박민규의 첫 소설집을 넘기기 시작했다. 차례를 쓱 보니 이거 또한 가관이다.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아, 하세요 펠리컨>, <야구르트 아줌마>, <코리언 스텐더즈>, <대왕오징어의 기습>, <헤드락>, <갑을고시원 체류기>라니. 이거 제목만 봐서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 궁금해 궁금해.'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 박민규의 이야기에 그렇게 또 다시 빠져들었다.

 박민규의 소설은 일단 재미 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마치 무슨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이 정신이 없어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혼을 쏙 빼놓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작가가 하는 말투에 감염되어버리고 말아버린다. 아. 몰라 몰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적으로는 좀 뭐랄까 삼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우주적으로 (박민규도 이 책에서 계속 우주적 운운한다.)볼 때, 이들의 모습은 독특하다. 지구를 자세히 보려면 지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처럼 이들도 한 발자국 물러서서 보면 그저 독특한 개성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 그러한 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황당무계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요란한 소음을 내는 냉장고때문에 냉장의 세계를 알게된 사람이 그 냉장고에 소중하거나 해악인 것을 넣어버리는 일(카스테라)라던지, 무슨 CF의 멘트처럼 어느 날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대왕 오징어를 만났다는 이야기(대왕오징어의 습격)나, 헐크 호건에게 헤드락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헤드락)등과 같은 일들은 실로 황당무계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 서글픈이야기도 함께 있다.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고시원에서 방귀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조심 살아가는 생활기(갑을 고시원 체류기)나, 집안을 살리기 위해서 푸시맨으로 일하는 학생이 아침마다 아버지를 밀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이야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73번이나 회사에 원서를 냈다가 퇴짜를 맞고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지 하고 오리배가 있는 놀이동산에서 일하는 이가 겪는 이야기(아, 하세요 펠리컨), 한 달이 넘게 변비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야구르트 아줌마)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내게 때로는 잔잔한 즐거움을 , 때로는 서글픔을 , 때로는 눈물이 날만큼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박민규의 문체가 독특하거가 말거나. 난 이제 시장에 가서 카스테라나 하나 사서 먹어야겠다.



 고마워, 과연 박민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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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04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님 서재에서는 님의 나이가 안느껴져요. 너무하신거 아니에욧!!

이매지 2005-07-0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제가 너무 숙성해버렸다는 것입니까?
혹은 아직 철이 안 들었다는 것인가 -ㅅ-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