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구판절판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어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 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방향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거기에는 백골을 분쇄해 놓은 것 같은 하얗고 고운 모래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지. 그런 모래 폭풍을 상상하란 말야. -17쪽

세계가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데도, 너를 받아줄 공간은-그건 아주 조그만 공간이면 되는데- 어디에도 없다. 네가 목소리를 구할 때 거기 있는 것은 깊은 침묵이다. 그러나 네가 침묵을 구할 때 거기에는 끊임없는 예언의 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가 이따금 네 머릿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비밀 스위치 같은 것을 누른다. -27쪽

장소의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화장실과 식사. 형광등과 플라스틱 의자. 맛없는 커피. 딸기쨈 샌드위치. 그런 것에 의미는 없다구.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아닐까? 안 그래?-50쪽

모든 것이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그 큰 전쟁에 관한 일도, 돌이킬 수 없는 생사 문제도, 모든 일들이 먼 과거의 일이 되어갑니다. 나날의 삶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많은 중요한 일들은 차갑게 식어버린 오랜 별처럼 의식 밖으로 사라져갑니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새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일도 너무 많습니다. 새로운 양식,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새로운 말들.....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로 망각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주춧돌처럼 자기 안에 남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결코 마모되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190~1쪽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될거야.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그런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218쪽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 가운데에서 시작된다. 그 말을 예이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In dreams begin the responsibilities. 그 말대로다. 거꾸로 말하면, 상상력이 없는 곳에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256쪽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하고 조니 워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규칠일세.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눈을 감아도 사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으니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을 거라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걸세, 나카타상. 눈을 똑바로 떠야 하네. 눈을 감는 것은 약자가 하는 짓이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가 하는 짓이란 말일세. 자네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단 말이야, 똑딱똑딱하고." -285쪽

그것이 이야기의 공통적인 구성 요소지. 커다란 전환. 의외의 전개. 행복은 한 종류밖에 없지만, 불행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야. 톨스토이가 지적한 대로 말이야. 당사자 이외의 타인에게 행복이란 교훈적인 우화이고, 불행이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일 경우가 많지.-307쪽

우리 인생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한계점이 있어. 그리고 훨씬 적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도 있지. 그런 한계점에 이르면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들은 그저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315쪽

세계는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고, 나카타 상. 매일 때가 되면 날이 밝지. 그러나 거기 있는 건 어제와 똑같은 세계는 아니지. 여기 있는 건 어제의 나타카 상이 아니란 말이야. 알겠어? -369쪽

주위에서 잇따라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요. 그중의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고, 어떤 것은 전혀 선택하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를 잘 구별할 수가 없게 됐어요. 즉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실제로는 내가 그 일을 선택하기 전에 이미 일어나기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생각돼요. 나는 다만 누군가가 미리 어딘가에서 정한 것을, 그냥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고, 아무리 애써 보았자 그런 것은 전부 헛일이라고 말예요. 아니,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점점 더 내가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들어요. 내가 나 자신의 궤도로부터 멀어져가는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나에게 아주 힘든 일이거든요. 아니, 무섭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몰라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때때로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요.-38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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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절판


간단히 말해, 내 경우는 침대에서, 그것도 누운 자세에서 책이 가장 잘 읽혔다. 예전에는 배를, 요즘에는 등을 대고 누워 읽는다. 베개 두 개를 괴어 든든하게 받쳐놓고. 앉은 자세로 하는 독서는 학교, 일, 신체적인 제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즐거움의 일부가 증발해버린다. 지하철에서 하는 독서를 빼고는-13쪽

책은 그렇게 세상을 돌아다닌다.-24쪽

빌린 책은 신성한 것이다. 그 책을 펼치는 것조차 이미 신성 모독처럼 느껴진다. 빌린 책을 가방에 넣고 방금 우체국에서 우편환을 찾은 기숙사 학생처럼 잔뜩 긴장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분실이나 절도는 자연재해보다 훨씬 심각한 불명예가 될 것이다.-27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서관을 드나든다. 그건 금전적인 여건과 공간의 문제다.-36쪽

이빨 빠진 식기, 구두 닦는 걸레로 사용해도 시원찮을 낡은 스웨터를 버리는 것은 얼마나 속 후련한 일인가. 일곱 개의 야채 껍질 벗기개 중 다섯 개, 낡은 전기 믹서, 1965년부터 1985년 사이 세금 관련 서류 뭉치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은 또 얼마나 속 시원한 일인가. 하지만 책을 버리는 것은 연애편지나 할머니의 공책을 불태우는 것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38쪽

어떤 표지들은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탐을 내던 책조차도 거들떠보지 않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창 독서를 하다가 책의 내용과 표지, 아니면 텍스트와 저자 사진을 대조해보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저자의 사진 역시 내 신경을 건드린다. 이 작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나는 수염도 없고 바싹 마른 그를 상상했다. 그런데 턱수염을 기른 데다 살이 쪄 투실투실하기까지 하다. 도도하고 투박한 여자일 거라고 믿었던 저자는 한껏 교태를 부리는 세련된 도시 여자다.-63쪽

책에 배인 나쁜 냄새는 결정적이다. 반면, 좋은 냄새는 점점 더 섬세하게 변해간다. 책들은 언제나 본래의 정수를 약간 간직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사라질 새로운 향들로 풍부해져서는 아주 섬세하고, 아주 뿌옇고, 아주 건조한 냄새를 발산하게 된다.-66쪽

각각의 책은 연주자의 손가락에 따라 다르게 울리는 독특한 악기다.-71쪽

비평가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펼치는 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예배당의 하녀들이 주일 미사때마다 나와 퍼뜨리는 향에는 질식이라도 할 듯 기겁하는 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입소문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114쪽

누가 나에게 "최근에 읽은 것 중에 뭐가 좋았어?"라고 질문을 하면 무슨 조화인지 나는 완전한 건망증 속을 헤매게 된다. 그렇다,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115쪽

책의 경우에는 수없이 많은 접근 방법과 선택 동기가 있다. 작가, 나라, 만남, 장르, 정황, 판형, 순간적인 기분, 계절, 집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 모든 것이 구실이 된다. 관계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21쪽

독서광은 아니더라도 책을 즐겨 읽던 사람이 책 읽기를 마다하면 그건 분명 어떤 병의 징후다. "책 읽을 마음조차 안 생겨." 이 말은 신경쇠약, 피곤,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는 것을 뜻한다.-138쪽

"책 읽을 마음조차 안 생길 때는 단편을 읽어야 해요. 한번 시도해봐요, 나아질테니." -140쪽

독서광은 손전등, 가로등, 깜빡이는 네온등, 자동차 미등, 촛불의 가물가물한 빛 아래에서도 눈을 비벼가며 책을 읽을 수 있다. 대부분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쓴다.-156쪽

독서광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저장할 수 있을까? 그는 저장하지 않는다. 그는 기억상실증 환자다. 새것이 옛것을 대신한다. 망각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그는 읽고 있는 것을 기록한다. -157쪽

나는 누가 어깨 너머로 내 책을 읽는 것 역시 참지 못한다. 마치 목욕을 즐기고 있는데 누가 불쑥 들어오는 느낌이다. 무례한 시선에 기분이 상한 나는 아예 독서를 포기하고 만다. 누가 내 연못에 돌멩이를 던졌다. 낱말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간다. 문장들이 허물어진다. 모든 것이 지워지고 만다.-162쪽

아름다움이란 사람이나 물건이 자신의 못난 부분마저 좋아하도록 만들 줄 알 때, 그것을 자신의 개성과 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1쪽

똑같은 장르, 엇비슷한 즐거움, 비슷한 분량, 둘다 대기 상태, 같은 작가. 나는 내가 왜 어떤 책은 두 시간만에 미친듯이 읽어치우면서 다른 책은 일주일 동안이나 질질 끄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212쪽

독서에 관한 한, 시민이라고 모두 평등하지 않고 남녀 간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똑같은 방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맛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소화가 잘 안 되는 책이 있고, 배부른 독자가 있는가 하면 굶주린 독자가 있다. 식욕은 기질뿐만 아니라 계절, 상황, 장소, 주변장식, 고요, 잡음, 결핍, 풍부, 사랑, 증오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기분과 마음의 움직임, 정신적, 신체적 요동을 좇아간다. 내 경우에는 거기에 기상 악화도 추가된다.-213쪽

각자에게는 매일 다른, 자신의 리듬이 있다. 그러니 아무도 참견하지 말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기를.-214쪽

나는 책 없이, 담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독서는 정말 그렇게 바람직한 어떤 것은 아니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 속상해하면서도 혹시라도 마약에 손대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는, 뭘 모르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책은 마약과 같기 때문이다.-222쪽

지하철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나지만 음악만 틀어놓으면 아무리 소리를 줄여도 도무지 집중을 못한다.-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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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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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주부가 자신의 딸이 책을 너무 좋아해서 밥먹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화장실갈 때, 심지어는 친구 생일 잔치에 가서도 책을 읽노라는 말을 하며 어떻게 아이가 책에 빠지게 해주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며칠 뒤 독자 의견란에서는 그 기사에 대한 반박으로 그게 자랑이냐?라는 요지의 글이 실렸다. 요컨대 책을 읽을 때는 책상에 앉아서 올바른 자세에 읽어야 하고, 친구 생일 잔치에 가서 책만 읽다가 오는 건 애가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라는 반박이었다. 어느 쪽의 말이 올바른 독서일까? 솔직히 말해보자면 나 또한 밥먹을 때, 화장실에 갈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책장을 기웃기웃하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이 있지 않은가 둘러보기 일쑤다. 내가 생각해도 이거 원 문자중독증인가 싶을 정도로 꼭 책이 손에 없어도 글씨가 쓰여있는 거라면 뭐라고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내가 두 사람의 의견 중에 어느 편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듯. 요컨대 관점의 차이일 뿐이지 이제 옳다 이게 그르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후자의 경우에는 장담하건데 단 한 번도 책에 빠져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책에 빠져있는데 그깟 밥이 문제고 화장실이 대수겠는가.  

   이 책 <책과 바람난 여자>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저 신문기사였다. 이 책을 쓴 아니 프랑수아도 나처럼 첫번째 경우에 속하는 사람이다. 아니, 나보다 이 사람은 단수가 훨씬 높다. 난 어디 발 끝이나 따라 가려나?! 여튼 그녀가 이야기하는 책과 관련된 생각이나 에피소드들에 공감하면서 '맞아! 맞아!'를 외치면서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오타나 비문을 발견할 때면 마치 숨은그림찾기의 정답을 찾은 것 마냥 좋아하기도 하고 ('넌 안 그러는 줄 아냐! 그런 실수는 그냥 눈 감아주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서도 어느새 표시하고 올바르게 고쳐놓는다.) 책을 읽을 때는 어떠한 잡음도 들리지 않게 조용한 상태에서 책을 읽는 것이나, 책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나, (나도 내가 가끔 변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읽을 책이 없을 때 패닉상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 등등등 그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일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그녀가 프랑스 사람이기때문에 처음 들어보는 책의 이름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읽은 책들을 그녀가 언급해주었더라면 더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긴 하지만 우선은 이 책에서 언급된 책들 가운데 출간된 책들이라도 몇 권이라도 찾아서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자의 이야기에 국적을 뛰어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듯 싶다. 짤막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읽어가면서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 반가움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이 책을 보내주신 별사탕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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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2005-08-21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처음 출간됐을때부터 읽고 싶었던거였는데 선뜻 손이 안가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참이예요.;;(한번 읽어볼까나.;)
그나저나 신문기사가 흥미롭네요. 전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후자의 반박문은 도저히 못 들어주겠어요.책이란 모름지기 책상에 앉아 바른자세로 읽어야 한다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은 과연 얼마나 바른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습니다. ('너는 얼마나 잘하는데 그래?'라는 비뚤어진 심리가 아니라...자신이 말한만큼 지키는지 그 자체가 보고싶다는 말입니다. 그게 그건가..하하;) 게다가 전자의 경우 아이가 친구집에 가서도 책을 보더라.라고 했지 책만 보다 왔다고 하진 않았는데도 아이에 대해 비난조로 말하다니..아- 괜히 열받습니다.(해당 기사를 직접 본게 아니라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전자의 경우도 아주 권장할 만한 아이의 독서자세가 아닌건 알지만, 반박문의 내용이 유치하군요. 혜지님 말대로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저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점이네요. (음..내용이 많이 빗나가고 있군)
암튼, 후자의 사람은 한번도 책에 빠져본 적이 없을거라는 말에 동감x100 입니다.
그리고.. 혜지님 같은 사람 여기 또 있습니다..하하;;(요즘 동생이 저 보고 완전 '오타쿠'같다며 이상한 눈으로 봐요!-_-;;)

이매지 2005-08-21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신문기사 전자의 경우에는 애가 친구생일에 가서는 책에 빠져서 왔다는 식의 얘기였었어요. 뭐 부모가 과장을 했을 것 같아서^-^;; 전 장소는 중요치 않고 어쨋든 아이가 책을 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예요. 과연 나중에도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지만...^-^;;저도 아부지가 이제는 책 좀 고만 읽으랍니다 -_ ㅜ
 
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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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초등학교 즈음이었다. 물론 어린이를 위해서 쉽게 쓰여졌었겠지만,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조금은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흔히들 데미안을 이야기할 때 인용하는 구절인 '새는 알에서 태어난다~'와 같은 구절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고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친구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별다르게 가슴에 와닿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금 집어든 이 책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게 초등학교때보다는 좀 더 성숙해졌다는 의미일까?

  이 책의 제목은 <데미안>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데미안이 아니라 싱클레어이다. 싱클레어라는 한 소년은 밝은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굉장히 순하고 고분고분한 아이이다.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괜히 과시를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나 하게 되는데 이를 폭로하겠다고 크로머란 친구가 그를 협박한다. 정신적으로 점점 더 괴로움을 당하는 싱클레어 앞에 우연히 (결코 우연은 아니지만) 데미안이 등장해 일을 해결해주어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협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둘의 교감.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으로 자아를 찾게 된다. 둘이 비록 떨어져서 지내는 동안에도.

   싱클레어의 두려움, 고독, 자아에 대한 갈망 등과 같은 감정들에 대해서 일부분은 나 또한 느껴본 것이기에 '고등학교 때쯤에 데미안을 다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은 아쉬운 감정이 생겼다. 현재의 내 모습에 만족하는 것도 그렇다고 실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그 때 데미안을 만났더라면 좀 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인간의 본질, 내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나도 나 자신의 알을 깨고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내가 나이가 서른이 되어서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그 때 이 책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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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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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들이 같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 뿐이다. -9쪽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구. 그러나 일은 아주 간단해. 예를 들면 그런 나방이 자신의 뜻을 별이나 뭐 비슷한 곳까지 향하게 하려 했다면, 그건 이룰 수 없는 일이겠지. 다만 나방은 그런 따위 시도는 안해. 나방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 그것만 찾는 거야.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는 거지. 그는 자기 외에는 다른 동물은 갖지 못한 마법의 제 6감을 개발하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은 동물보다는 활동의 여지가 더 많을 것이고, 관심도 더 크겠지. 그러나 우리도 얼마만큼은 정말 좁은 테두리에 매여 있어서 그걸 벗어날 수 없어. 상상 같은 건 해볼 수 있지, 이런 저런 상상의 날개를 펼 수는 있겠지, 꼭 북극에 가고 싶다라든지, 혹은 그런 무엇을. 그러나 그걸 수행하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망이 내 자신의 마음속에 온전히 들어 있을 때, 정말로 내 본질이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그런 경우가 되기만 하면, 내면으로부터 너에게 명령되는 무엇인가를 네가 해보기만 하면, 그럴 때는 좋은 말에 마구를 매듯 네 온 의지를 팽팽히 펼 수 있어. -76~7쪽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랍사스. -123쪽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152쪽

이미 많은 고독을 나는 맛보았다. 이제 예감했다. 더 깊은 고독이 있으며 그 고독은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172쪽

그렇다. 나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꿈꿀 수는 있었다. 미리 느낄 수는 있었다. 예감할 수 있었다. 아주 고요한 시각을 찾아낼 때면 몇 번 그것을 조금 느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마음속으로 눈길을 보내며 똑똑하게 뜨여 있는, 내 운명의 영상의 두 눈을 들여다본다. 그 두 눈은 지혜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광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사랑이 환히 빛나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은 악의가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 중 그 무엇도 택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무엇도 원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 갖겠다고 원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운명뿐이었다. 거기로 가는 한 구간을 피스토리우스는 길잡이로 나에게 봉사했다. -174~5쪽

"그건 늘 어려워요, 태어나는 것은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요?"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힘들었어요" 내가 잠꼬대처럼 말했다. "힘들었어요. 꿈이 올 때까지는요." -190쪽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191쪽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200쪽

그저 여자 하나를 얻는 대신 그는 마음속에 온 세계를 소유했다. 하늘의 별 하나하나가 그의 안에서 불타고 그의 영혼을 통해 기쁨의 빛을 뿜어냈다. 그는 사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 버린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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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 2005-08-1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읏,,사서 보려고 보관함에 넣었지만, 다른 책의 우선순위에 밀려 아직까지 못샀는,ㅠ,ㅠ

이매지 2005-08-1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헌책으로 3500원에 샀는데, 요새 하도 세일해서 천원차이밖에 안 되더군요 -_ㅜ

마늘빵 2005-08-1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3 페이지에 제 이름이 있군요. 감사합니다. 제 이름까지 언급해주시고.

이매지 2005-08-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미안을 얘기하면서 어찌 저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ㅋ

panda78 2005-08-1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런데 데미안, 정말 재밌죠? 중학교 시험기간에 어쩌다 잘못 집어들어서 늦게 자다 혼난 기억이 납니다. 몇번을 되읽어도 재밌더라구요. 데미안.. 근데... 지금은 집에 없구먼요. ㅎㅎ 나도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