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장바구니담기


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왔어요. 눈을 뜨고 찾아내려고만 하면 이 땅 위엔 아름답고 귀한 것이 얼마든지 많을 거란 생각 말이오. 하지만 그 아름답고 귀한 것들은 우리가 눈을 뜨고 찾아내지 않으면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보이질 않습니다. 볼 수가 없습니다. 누구의 눈에도 띄어본 일이 없이 우리 눈앞에서 숨어 사라져버리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중략- 바로 저 나무 뿌리가 그런 것 중의 하나지요. 산에만 올라가면 저런 고목나무 뿌리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모두가 땅속에 숨어 있어요. 놔두면 제물에 썩어 없어져버릴 것들이지요. 하지만 내가 올라가 땅을 파고 썩어가는 뿌리를 찾아주면, 저것들은 제 몫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지니고 저렇게 내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요즘 사람들 현상의 실첸가 뭔가를 찾아낸다고 생 유리창을 주먹으로 두들겨깨기도 하고, 새끼줄을 이리저리 얽어매는 따위의 어려운 짓들까지 하는 모양입디다만, 이 나무 뿌리는 그렇게 힘이 들 필요가 없어요. 일부러 뭘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요. 제가 원래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그 숨어 묻혀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놔두면 그냥 땅속에서 썩어 없어질 나무 뿌리를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란 말이우다. 그게 예술이 안 됩니까. 그래선 예술 작품이 안 되는 거웨까?-358~9쪽

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을 최종적이고 불가변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서 그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내일의 선택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390쪽

믿음이 없이는 자유라는 것을 함부로 행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믿음이 없이 자유를 행하니까 싸움과 갈등과 불신과 미움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지 못함이 곧 사랑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믿음이 없는 사랑을 행함은 사랑을 행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고 말입니다. -40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장바구니담기


스트릭랜드 부인이 왜 남편을 두고 난처하게 여기는지 알 만했다. 예술계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여자에게 그는 분명 자랑거리는 되지 못했다. 사교에는 재능이 없음이 분명했다. 하기야 남자는 그런 재능 없이도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남자에게 보통 사람들과 구별될 만한 어떤 괴팍함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저 선량하고 따분하고 정직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높은 인품을 존경할 수는 있을지언정 아무도 그를 사귀려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훌륭한 시민,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 정직한 중개인일 수는 있겠지만, 그에게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34쪽

그들은 서서히 늙어갈 것이며, 아들과 딸은 성년이 되어 때가 되면 결혼하게 될 것이다. 한쪽은 예쁜 아가씨로 자라 장차 건강한 아이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고, 한쪽은 잘생기고 사내다운 남자로 자라 틀림없이 군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풍족한 가운데 품위 있게 은퇴하여 자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생활을 마음껏 누리다가 무덤에 묻힐 것이다.
하기야 수많은 부부들이 다 이런 식으로 산다. 이런 유형의 삶의 방식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삶은, 잔잔한 시냇물이 푸른 초원의 아름다운 나무 그늘 밑으로 굽이굽이 흘러가 이윽고 드넓은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 바다는 너무 평온하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초연하여 불현듯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36쪽

특이한 말투나 기이한 버릇을 강조하면 그들의 특색을 잘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낡은 융단 벽걸이의 무늬처럼 보일 뿐이다. 그들이 배경과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은 탓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니 무늬가 어슴푸레해져 그저 하나의 멋진 색깔로만 보이는 것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그런 정도였다고나 할까. 사회라는 유기체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그것에 의지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는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이게 마련인데 그들 역시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치 몸 안의 세포들 같았다. 필수적인 요소이면서 건강한 상태에서는 더 중요한 전체 유기체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37쪽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56쪽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그 전환이 광신자에게처럼 단숨에, 사도들에게처럼 광폭하게 왔다고나 할까. -75쪽

나는 남들의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허세이다. 그것은 남들이 자신의 조그만 잘못들을 비난할 때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들은 아무도 그 잘못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76쪽

나는, 양심이란 인간 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이다.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敵)을 문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77쪽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네. 나야 어릿광대 아닌가. 여자의 사랑을 받을 만한 위인은 못 되네. 나도 그걸 알고 있어. 그러니 스트릭랜드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탓할 수야 없지. -151쪽

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네. 내가 보기엔, 사랑에 자존심이 개입하면 그건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야. -152쪽

사랑의 감정에는 다정함이란 요소가 있게 마련 아닌가. 하지만 스트릭랜드에게는 자신이든 남이든, 도대체 다정하게 대한다는 게 없었다. 사랑에는 또한 약한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 잘해 주고 싶고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이기심을 다 떨쳐버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걸 몹시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겸양이 존재한다. 스트릭랜드에게서는 그런 성향을 상상할 수 없었다.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리게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 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159쪽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191~2쪽

사람이란 사교적인 교제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면을 너무 철저히 쓰고 다니다가 정말 그 가면과 같은 인격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은 진짜 모습을 꼼짝없이 드러내고 만다. 겉만 그럴싸한 것은 곧 속이 텅 비어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욋가지를 쇳조각처럼 칠한다 해도 쇳조각처럼 보일 리는 없다. 아무리 특이하게 꾸민다 해도 평범한 정신을 감출 수는 없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에서도 날카로운 관찰자는 영혼의 깊은 비밀을 읽어내고 만다. -20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1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구판절판


성공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네. 성공은 과거나 현재의 위치에 달려 있는게 아닐세. 성공은 성공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네. 그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날이 바로 성공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떼는 날이지.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것일세.-93쪽

나는 미래의 성공이 과거에 한 일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네. 자네는 이제 자기자신에게 '내일의 성공을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네. -9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내 앞에는 불길하고 위협적인 또 한 차례의 십 년이 펼쳐져 있었다. -192쪽

서른 살- 고독 속의 십 년을 약속하는 나이, 독신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나이, 야심이라는 서류 가방도 점점 얄팍해지는 나이, 머리카락도 점점 줄어드는 나이다. -193쪽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22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혹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0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김순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말해서 아기가 태어나는 24시간 동안 나는 생각해 보았지요. 결혼은 일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라고. 그런데 단 한 번의 실험에 의지한다는 것은 너무 경솔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경관은 동정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씀하시는 뜻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닙니까? 발을 내딛지 않고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요. 또 그런 위험을 무릅썼다고 해서 잘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것 같더군요."-2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