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구판절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잘 잡는다고 했던가.이 말은 새에 관해서만 부분적으로 맞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고작해야 먹이가 되려고 일찍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똑같이 일찍 일어났는데 누구는 하루 밥벌이를 하는 데 반해 바로 그 밥벌이 때문에 다른 누구는 생명을 잃는다. 그렇다면 일찍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새로 태어나는가 혹은 벌레로 태어나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쪽

모두들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쁠리야 없지만 이제는 조금씩 서로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에 어쩐지 쓸쓸하기도 했다. -160쪽

진정 고독한 이는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법이다. 책은 고독한 이의 벗이다. 그리고 심심한 것보다는 고독한 것이 근사해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고독해지기로 했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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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구판절판


헤어짐이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135쪽

남자란 바퀴벌레 같은 존재이고 없애려해도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다. 때려도 죽지 않고 이사를 가도 따라오고 불을 끄면 침대 속에 비비고 들어오고 아침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크라운을 가진 바퀴벌레라고 해서 나에게 뭐가 달라지나.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벌레일 뿐이고 그들 나름의 욕구에 의해서 살아간다. 나와는 다르다. 심플하게 받아들이자. 이제 길은 나에게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존재도 뭐도 아니다. 길게 끌려다니다가는 걷어차이는 것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 아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걷어차이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찾아올 패배감과 자기 환멸이다. -149쪽

살아간다는 것은 밥과 권력을 위한 투쟁. 노력해야 한다. -186쪽

나는 앞으로의 인생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행운이나 성공도 없지만 치명적인 파국이나 불이익을 겪지 않고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 그 대신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는 거다. 그래, 그것은 지루할 것이다. 흥미진진한 일도 아닐 것이다. 내가 백원만큼 일하고, 사회는 나에게 백 원을 지급한다. 남보다 앞서거나 불로소득을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더 결심을 굳힌다. 혼자 가는 거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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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6-11-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책 제목도 예사롭지 않는데...
"남자란 바퀴벌레 같은 존재이고 없애려해도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다......"
호호~~^^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이매지 2006-11-2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수아 좋아하시는 분들을 또 엄청 좋아하시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보통이었어요.
뽀송이님께는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절판


'의무를 다하다', 이 무슨 거창하고 결연한 말인가!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든지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수가 있다.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 커다란 결정을 훗날 뒤돌아보고 회상해보면, 그 중대성을 심각하게 의식하고 결정을 내린 듯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10쪽

내가 그날 아주 불행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이십 년, 아니 이십이 년 전 나는 불행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내 안에서 응고되었다. 어떤 힘이 상처를 무디게 하는지 나는 모른다. 물론 상처가 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나와 라요스 사이에 일어난 일을 말로 다 형언하기는 어렵다.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견딜 수 없던 일이 갑자기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와달라고 외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경찰관이나 의사, 사제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살아남았다. -22쪽

가망 없는 사랑은 절대 사그라들지 않아. -40쪽

비바람을 맞아본 사람은 비를 피할 지붕만 있어도 행복한 법이다. -51쪽

죽은 자들은 얼마나 강한가! 무력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이 무자비한 사멸의 법칙에 따라 땅속 깊이 묻혀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죽은 자들은 비밀스럽게 살아나 이따금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이 순간 언니가 그렇게 비밀스럽게 다시 살아났다. 죽은 자들은 어느 날 문득 다시 나타나 주도권을 휘두른다. -119쪽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선과 악, 아니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당신에게는 그런 한계가 없어요. -145쪽

한계니 가능성, 선과 악, 그런 것들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소. 에스터. 우리가 하는 행위는 대부분 이성적이지도 않고 뚜렷한 목표도 없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보았소? 무슨 일을 꼭 이득이나 기쁨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오. 당신 삶을 한번 돌아보구려. 그러면 많은 경우 어쩌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거요. -145쪽

성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예 없거나 도덕적인 불구처럼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소. 인간이 되기 위한 모든 것을 갖추었는데, 오직 손이나 발이 하나 없는 사람에 비교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의수나 의족을 달면 세상에 유용한 일을 할 수 있소. 이런 비교를 해서 미안하구려. 그런데 당신은 나한테 바로 그런 의수나 의족이 될 수 있었소. 도덕적인 의수나 의족 말이오. -153쪽

현실은 당신이 나를 속였다는 거죠. 이런 경우 예전에는 '나를 희롱했다'고 낭만적으로 표현했어요. 당신은 카드 대신 감정과 사람을 가지고 도박하는 별난 도박사에요.-155쪽

상대방의 말이나 감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 두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삶의 토대는 부실할 수밖에 없어요. 흔히들 '늪'이나 '모래 언덕'에 집을 짓는 거나 같다고 말하죠. 아무리 집을 지어보았자, 어느 날 무너지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요.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인간적이고 운명적인 데가 있어요. 현실적이죠. 허나 당신을 믿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사람보다 더 운수가 사나울 수 없어요. 어느 날 자신이 허공 속에, 무無에다 집을 지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은 이익을 위해서라든지 순간적으로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아니면 그런 성향을 타고났다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듯이 거짓말해요. 당신은 눈물도 거짓이고 행동도 거짓이죠. 그러기도 아주 어려울거예요. 이따금 당신이 정말로 천재라고 믿을 때가 있어요... 거짓말의 천재. -15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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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1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이매지 2006-11-1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갓 다 읽었는데 좋았어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도서관은 혼자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섞일 수 있는 훌륭한 장소다. 저마다 자신과 관련한 어떤 것에 몰두하고 있는,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40쪽

독서는 유쾌한 고립 행위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자신을 접근하기 힘든 존재로 만든다. -47쪽

독자가 책에 쓰인 것을 그대로 믿고, 책과 현실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책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남은 마지막 광채조차 빼앗아가 삶을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책은 삶이라는 험난한 항로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의 기능을 수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넘쳐나는 책 사태 속에서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어려운 탐사 여행과 같은 것이 되었다. -18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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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6-11-1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182-3 내용. 공감되네. :)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드네. 리뷰도 써줘. 리뷰보고 사서볼까.. 고려해보려구. 으흐

이매지 2006-11-14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있어~ㅋㅋ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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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이 기뻐서 견딜 수 없는 놈들은, 퇴치해도 퇴치해도 들끓는 상가 건물의 바퀴벌레 같은 존재다. -32쪽

마모루는 가끔, 인간의 마음이란 양손을 깍지 낀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오른손과 왼손의 같은 손가락이 서로 번갈아 가며 깍지를 낀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상반되는 두 개의 감정이 등을 맞대고 서로 마주하고 있지만, 양쪽 모두 자신의 손가락이다. -55~6쪽

할아버지 생각에, 인간에는 두 종류가 있어. 하나는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는 인간. 다른 하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인간.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나쁜 건 자신의 의사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한 일에 대해 변명을 찾는 거지.-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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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8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6-11-0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도착했어요. 음음. 이번주까지 기둥겨보세요^^;

알맹이 2006-11-0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사람들은 인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라고 구분하는 걸 좋아하나봐요. 삼월~ 에도 보면 책을 읽는 인간과 책을 읽지 않는 인간, 으로 나누어 놓았던데.. 심심찮게 그런 글들이 발견되네요.

이매지 2006-11-0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저 구절보면서 그 구절 생각했었어요^^ 다소 극단적인 것 같긴 하지만 뭔가 확실해보이는 그런 것도 없잖아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