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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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란 중요한 거에요. 원초적으로 그래요.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아니라고요? 실존이란 엄연하고도 무거운 거라서, 지켜보는 눈길이나 기록하는 손가락 따위의 존재 여부로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나요. 나하고는 생각이 다르군요.
존재했던 엄연하고 무거운 현실도,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져버립니다. 그 반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도 일단 기록되어버리면 존재했던 것으로 착각되어요. 세월이 흘러 증언자들이 모두 늙어 죽어버리면 더욱 그렇죠. 기록은 기억의 확장이니까요. 우리는 기억을 믿듯이 기록을 믿어요.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 존재는, 기록이 남아 있는 그 범위까지만 유효성을 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영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그 기록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에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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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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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고 살 때 진실하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갈 때 가장 설득력이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쓰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가장 힘든 과제다. 자신의 주장이 거짓말이 아님을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체리 카터-스코트
-57쪽

젊은 작가들, 혹은 나이야 어떻듯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손 안에, 그들의 삶에, 그들의 인간관계 속에, 어쩌면 그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직업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납득시키는 것이 너무 힘들어 놀랄 지경이다. 이야기는 시베리아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에게 딱 맞는 경험이란 없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로데오 경기에 나가거나 황소와 싸울 필요는 없다. 작가는 글을 잘 쓰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면 된다. 작가의 의도를 독자가 금방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글쓰기라 부르는 이 작업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토마스 맥구안 -61~2쪽

모든 글쓰기는 독학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충분히 글을 쓰는 것만으로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처음에 쓰다보면 자기가 보기에는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정말 대단한 글을 썼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다. 독자를 빨아들일 것 같은 이야기하며 다층적이고 선명한 등장인물이며,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여, 그러니까 처음의 흥분이 사라진 뒤에 다시 읽고 나서야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때로는 다시 쓰는 일만이 유일한 구제책이 된다. 또 때로는 원고를 맨 아래 서랍에 쳐박아두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기도 하다. 요는, 모든 작가는 스스로 배워야 하는 존재이니 작가라면 능히 스스로 자신의 실수를 파악해서 이를 고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는 능력이 향상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 좋다는 말을 기대하지 말라. 좋은 충고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엄격하게 자신의 글을 평가할 수 있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는 법을 익혀라. 이런 방식, 이런 시선이 가장 소중하다. 자신의 내면을 통해 글쓰는 방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수 그래프턴. -1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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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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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간섭하지 않는 사귐을 연애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연애는, 내가 했던 연애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애인 사이인 남녀가 상대방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것은 부정한 행위이다. (중략) "우리가 사랑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첫 눈에 반해 국경과 인종과 계급을 초월해서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열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 사랑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죠." "그런 낭만적 사랑이 존재하며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건 겨우 2백 년도 되지 않았어요. 그동안 지구상에서 일생을 보낸 수십억 명의 사람들 중에 정말 그렇게 산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죠. -30~1쪽

사랑에 관한 한 '최후의 로맨티스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사랑에서 낭만을 빼면 남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33쪽

아무리 물 반, 고기 반인 낚시터라 하더라도 서툰 낚시꾼들은 빈 그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능란한 낚시꾼이 되려면 타고난 자질에 더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나 바람둥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즐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마저도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바람둥이가 될 수 있다. 나비가 꽃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어떤 나비에게 옷을 벗어 줄지 결정하는 것은 그녀들이다. 그녀들은 남자의 유혹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들이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같이 잘 남자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유혹에 약하고 열 여자도 마다하지 않으니 말이다. -47쪽

나이가 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모든 게 간단해지는 것 같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면 그만이거든.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해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내가 잘못한 거라면 고쳐야겠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내가 잘못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뭐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야.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고 그걸 참을 수 없어서 덕훈 씨가 헤어지자고 했던 거잖아. 근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덕훈 씨는 원래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인 거야. -63~4쪽

결혼이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연애가 이벤트라면 결혼은 일상이다. 연애할 때는 주로 그녀의 젖가슴과 사타구니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결혼하고 나면 연애할 때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아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우려 들면 아내는 귀이개를 가져온다. 아내의 손에 귀를 맡기고 아내의 무릎을 어루만지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성욕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스킨십이 얼마나 따뜻한 느낌인지. -122~3쪽

왜 하필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낭만적 사랑에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니까. 낭만적 사랑에 있어서 상대방은 자신의 결여를 메워 주는 존재이다. 낭만적 사랑은 불완전한 개인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179쪽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217쪽

어떠한 종류의 사랑이건 간에 사랑이란 그 자체로 아이러니이다. 왜? 내가 남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이고 네가 나였던 아주 짧은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사랑은 숨겨 놓았던 독을 사방에 풀어놓는다. 그리하여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정작 사랑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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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절판


대체로 사람들이 굳게 믿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옛날에 아무리 나쁜 것이었다 해도 그것이 오늘날의 그 어떤 것보다 낫다는 믿음이다. 이틀 전의 것이 어제의 것보다 더 좋다. 과거로 되돌아가면 갈수록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살 만한 세상이 된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보이는 것은 분명 그 전날보다 더 열악한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잠들기 전의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지금>의 현재가 단순히 헛것에 불과하다는 미몽에 빠질 수 있다. 마음에 안고 사는 옛날의 기억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헛것, 그래서 현재의 아픔을 잊을 수가 있는 것이다. -21~2쪽

비(雨)는 차별을 모른다. 어느 때고 비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떨어지기 때문에 비가 내릴 때 모든 사람들은 다 평등하다. 누가 더 좋고, 누가 더 나쁠 수는 없다. 모든 이들이 다 평등하고 똑같을 뿐이다. -46쪽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당신이 어느 곳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입구가 출구가 되지 않으며, 방금 당신이 들어섰던 문이라도 돌아서 보면 그 문이 사라지고 없을수도 있다.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럴 때마다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129~30쪽

아무리 우호적인 조건 하에서도 사람들은, 실로 모든 사람들은 망각의 늪에 쉽게 빠진다. 더욱이 이런 곳에서는, 실제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현상의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곳에서는 늘 많은 것들이 쉽게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망각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의 망각의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에게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완전히 상실된 그 무엇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놓이는 것이다. 그러니 비행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비행기를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점진적인,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삭제의 과정이다. 단어는 사물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결국엔 그 단어들이 환기시키는 사물의 상(像)과 더불어 단어들도 사라지고 만다. 사물들의 전체 범주, 즉 하나의 중심 사물을 둘러싼 파생 사물- 예를 들어 화분, 혹은 담배 필터, 고무밴드 등- 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기억할 순 없어도 한동안은 그것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서서히 그 단어들도 그냥 소리로만 남게 된다. 단순한 성문(聲門) 폐쇄음과 마찰음의 모음에서 마구 뒤섞인 음소(音素)들의 소용돌이로 변하다가 마침내는 그 모든 것들이 영문 모를 소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1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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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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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는 문학을 위해, 독자를 위해 삶의 다양한 광경을 재구성한다. 천재로 태어나는 주인공을 탄생시켜 그 주인공으로 하여금 열정에 사로잡혀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다니게 만들고 사랑에 빠지게 한다. 적당한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내기 위해 막 딴 치커리와 꽃상치를 잘 포개 만든, 여름 점심의 쌈밥을 만들기도 하고 연인 앞에서 처음으로 벗은 몸처럼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하얀 살을 그리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일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던져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78쪽

불멸의 문학이란, 위대한 작가란 그만큼이나 무한한 것일까? 그 끝없음을 믿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일까? 논리와 열정과 진위가 문제가 아니라면, 영원한 문학작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삶을 판돈으로 내걸 수 있는 의지의 문제일까, 아니면 제멋대로 굴러가는 운명이라는 주사위의 문제일까? -8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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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30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연수 선생의 굿빠이 이상 ㅜㅠ
김윤식 선생의 연구서에 큰 힘을 빌고 있고, 소설 중에도 김윤식 선생스러운 사람이 나와서 더 잼있었어요. 김윤식 선생님의 '이상문학텍스트 연구'같은 책 봐도 잼있어요. ㅎㅎ

이매지 2006-11-3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로 그런 책을? 이 책 재미있긴한데 읽다보니까 좀 난해한 구석도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이 아니라 정말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도 살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