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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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의 모든 학문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었듯, 확률 역시 역사 발전에서 한몫을 담당했다. 하지만 확률이라는 정보가 정작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돈을 걸고 동전을 던져 보면 알게 된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동전의 앞면 때론 뒷면이 떨어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카바나(Kavanagh, T.M.)가 지적했듯, 확률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일반적인 예측을 할 수는 있짐나 가장 결정적인 것, 즉 구체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못한다. 확률은 다음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날지에 관해서는 영원히 침묵을 지킨다. -12~3쪽

인간은 타인의 행복과 운을 부러워하지만 존중해 주지는 않는다. 돌아서서 시기하며 공평하지 않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을 것이다. -84쪽

하필이면 일기를 써오지 않은 날에 일기장 검사를 받는 것처럼. 살다 보면 그런 억울한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렇다고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탓해서는 안 된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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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 조선 후기 지식 패러다임의 변화와 문화 변동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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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8세기에는 무언가에 단단히 미친 사람이 많았다. 이런 비정상적인 몰두와 집착을 그들 스스로는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다. 벽이 없는 인간과는 사귀지도 말라고 했고, 벽이 없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벽은 확실히 이 시기 지식인들을 특징짓는 중요한 코드였다. -20쪽

이 시기에는 이렇듯 백과전서적 지식 경영이 크게 성행했다. 주제와 목표만 정해지면 이들은 모든 정보를 조직화하고 편집해냈다. -25쪽

18세기는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의 질이 문제되는 시대였다. 산만하고 무질서한 정보들이 우수한 편집자의 솜씨를 거쳐 새로운 저작으로 재탄생했다.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일상의 허접스런 놀이나 풍습, 시정의 이야기도 중요하다고만 생각되면 지체없이 편집되었다. 모든 지식이 편집되고 재배열되었다. -26쪽

그들의 자의식이 지향하는 가치는 옛날이 아니라 지금이었다. 중국이 아니라 조선, 관념적 도덕이 아니라 눈앞의 진실이었다. 이덕무는 자신의 시에서 "나는 지금 사람이라 또한 지금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옛것을 따르느라 참됨을 잃기보다, 눈앞의 진실을 따르겠다는 으미다. 그러자 정약용이 "나는 조선 사람이니 즐겨 조선의 시를 짓겠다"고 화답했다. 박지원은 조선 사람은 조선풍의 시를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31쪽

박지원의 생각에 눈 뜬 장님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었다. 눈만 뜨면 뭣 하는가? 정작 자아의 주체를 세울 수 없다면 눈을 뜬 기쁨은 새로운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길 잃고 헤매지 않으려거든 도로 눈을 감아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라. 좌표축을 세워 출발하라. 확장된 세계, 혼돈스런 정보 앞에서 주체의 확립보다 절박한 건 없다. '나' 없는 세계는 카오스일 뿐이다. 이 점은 인터넷 시대라고 다를 게 없다. -32쪽

잊는다(忘)는 것은 돌아보거나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18세기 정신사와 예술사의 발흥 뒤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어느 한 분야에 이유 없이 미쳤던 마니아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몰두의 바깥에는, 인간의 존재를 질곡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강한 분노와 반감이 교체하고 있었다. -108쪽

18세기 시단은 이러한 환경 아래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정겹게 포착했다. 시 속에 인간의 체취가 스며들고 그 시대의 풍경이 떠올랐다. 일그러지면 일그러진 대로 진솔했고, 눈물겨우면 눈물겨운 대로 고마웠다. 분노를 굳이 감정의 체로 거르지도 않았다. 변치 않을 도(道)는 눈앞의 진(眞)으로 바뀌었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무슨 구호처럼 유행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니, 남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두보나 소동파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보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생각이 새롭고 보니, 실험도 자유로웠다. 듣도 보도 못한 육언시를 다투어 지었다. 칠언율시의 삼엄한 형식미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그 자리를 산문투에 가까운 오언절구가 차지했다. 시는 관념적 풍경을 복제하지 않았다. 눈앞의 광경, 살아 숨쉬는 인간들을 관찰했다. 사진사처럼 그 시대의 장면들을 찍어내고, 역사가처럼 꼼꼼한 필치로 재현했다. 추한 것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았다. 겉꾸민 아름다움은 더럽다고 외면했다. 전통적인 형식에는 미련이 없었다. 꼭 해야 할 말이라면 틀을 깨고라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광기와 열정이 문단을 떠돌았다. -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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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4-0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서설 밖에 보지 않았는데, (전문적이긴 하지만)제법 흥미로운 것 같더라구요.:)

이매지 2007-04-0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설에 나온 부분이 바로 뒤 챕터에 또 반복되는 감이 없잖아요.
<미쳐야 미친다>와도 겹치는 부분이 꽤 되는 것 같구요. ^^;
 
사슴벌레 여자 - 윤대녕 장편소설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4월
품절


그녀는 정말 어두운 어항 속의 한 마리 다랑어처럼 사는 여자였다. 그녀의 방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는 먼저 방 안을 석탄처럼 채우고 있는 고독의 냄새를 맡았다. 눈이나 비가 내리는 밤이면 자주 귀가 들리지 않고 눈앞이 보이지 않는 단단한 고독. 이를테면 축축한 공기 속에 베어 있는 키 작은 여자의 오래 된 슬픔. -36쪽

따지고 보면 사람의 기억이란 것도 단지 필요한 것 중 하나일 뿐예요. 생필품처럼 말예요. 어둠 속에 혼자 벌거벗고 누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무의미한 존재로 변해요. 지금부터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쿨하고 심플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아마 그게 인생의 전부인지도 몰라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직 못 가진 것들이 많지만 하나씩 마련할 생각이구요. -9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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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품절


이 이야기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사색하게 한다. 이야기가 우리를 살게 한다(구원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이야기에 의해 내일과 내일과 내일이, 그러니까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야기의 부재는 죽음이고, 이야기의 존재는 삶이다. 삶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가 삶을 만드는 것 또한 진실이다. 이야기가 없으면 삶도 없는 것. -14쪽

그런데 이 호기심, 타인의 삶, 타인의 세계를 엿보고자 하는 이 호기심의 숨은 동기는 무엇일까? 정말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확인해서 무얼 하려고? 정말로 궁금한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가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처럼 살고 있는가, 가 아닌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불안하게 한다.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확인함으로써 자기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고 있지 않다고 안도하려고 하는 이런 심리는 아마도 동일시 욕구의 발현일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같아지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일시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배타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22~3쪽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글쓰기의 일종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그 책이나 영화를 읽거나 본 사람 수, 또는 읽거나 본 횟수만큼의 <이방인>과 <동사서독>이 존재한다. 우리는 읽으면서, 보면서, 들으면서 이야기를 변형시킨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와 섞인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는다. 이야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의 자궁이다. 책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많은 책들의 모태이다. -23~4쪽

주변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이 다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썼다고 해서 다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그러나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착상의 단서를 잡아내는 일이다. 거미줄을 친 거미만이 잠자리를 잡는다. 사물과 현상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호기심, 그것들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을 꿰뚫어보는 상상력, 그리고 지속적인 독서와 사유(나는 그것을 문학적 자장이라고 표현하는데)를 유지하는 사람이 소설의 씨앗을 찾아낸다. 세상의 모든 일이 만만하지 않는 것처럼 소설 역시 만만하지 않다. 좋은 소설을 얻기 위해서는 소설의 자장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자장 안에서 놀아야 한다. -55쪽

현실을 '있는 대로' 베끼지 말고 '보는 대로' 가공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다'는 것.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다는 것. 현실 경험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충실히 옮겨 적으려는 작가의 욕구가 장황하고 진부하고 지루한 소설을 만든다. 생각해보라. 그 작가는 왜 모조리 다 쓰려고 하는 것일까. 자기만 따로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본 것이 없기 때문에 있는 대로 쓰려고 하고, 그렇게 쓸 수 밖에 없다.
차별화된 시선에 의해 '있는' 현실의 어떤 것은 배제되고 어떤 것(본 것)은 선택된다. -63쪽

소설을 쓰는 것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게임이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참과 거짓 가려내기가 아니라 그럴듯하게 꾸미기(조형)이다. 그럴듯하지 않은 참이 아니라 그럴듯한 거짓이어야 한다. 그럴듯하지 않은 참은 소설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거나 소설의 흐름을 방해한다. -96쪽

당신 주위의 모든 것이 소설의 재료이다. 인물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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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의 자궁이다."

이매지 2007-03-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펴는 페이지마다 밑줄 그을 구절이 많아서 감당이 안되는 책이예요.
꽤 얇은데 말이죠. 쩝.

향기로운 2007-03-2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밑줄 그을만 하신거 같아요. 읽고 싶어요^^

이매지 2007-03-2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 님도 한 번 읽어보셔요^^ 쉽게 써있어서 부담없고 좋아요^^
 
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구판절판


뭐든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꼭 독설가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발언이 독설로 들린다 해도 반드시 거기 진짜 독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15쪽

정확한 질문을 올바른 시기에 적합한 상대에게 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31쪽

불행이란 대개의 경우 그런 거죠. 이쪽을 바로 세우려 들면 저쪽이 기울어지는 식으로 서로 엇갈려 있죠. 마치 헝클어져 풀리지 않는 실처럼-472쪽

우리 집에, 오염은 없다. 집 안은 청결하다. 계속 청결할 거라고만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 -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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