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품절


도둑으로 의심받은 노동자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를 상기해보자. 매일 저녁 퇴근할 때 그가 끌고 가던 운반 수레를 꼼꼼하게 조사했지만 감독관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안은 항상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감독관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 노동자가 훔친 것은 바로 수레였던 것이다. 이 반성적 역전은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내재해 있다. 우리는 소통 행위의 내용 속에 소통 행위 자체를 포함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소통 행위의 의미는 그것이 하나의 소통 행위라는 사실을 반성적으로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무의식의 작동 방식에 대해 잊지 말야아 할 첫 번째 사항이다. 그것은 수레 안에 숨어 있지 않다. 그것은 수레 자체다. -36~7쪽

라캉이 "상징적 거세"라고 부른 것(여기서는 무시할 수 있는 복합적인 근거로)이 바로 즉각적인 심리적 정체성과 상징적 정체성(대타자 안에서 혹은 대타자에 대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내가 쓰고 있는 상징적 가면이나 타이틀) 사이의 간극이다. 그리고 남근은 이 상징적 거세의 기표다. 라캉에게는 왜 남근이 단순한 생식기관이 아니라 기표일까? 전통적인 임관식에서 권력의 상징물은 그것을 획득한 주체를 권력 실행자의 위치에 놓는다. 만약 왕이 손에 홀을 쥐고 왕관을 쓰고 있다면 그의 말은 왕의 말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 상징물은 내 본성의 일부가 아니라 외재적인 것이다. 나는 외부의 그것을 착용하는 것이다. 나는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그것을 입는다. 즉자적인 존재로서의 나와 내가 행사하는 기능 사이의 간극을 도입함으로써(즉 나는 결코 완벽하게 내가 행사하는 기능의 차원일 수 없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나를 "거세한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상징적 거세'의 의미다. 거세는 내가 상징적 질서에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과 상징적 가면이나 타이틀을 받아들이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거세는 직접적인 존재로서의 나와 나에게 어떤 지위나 권위를 부여하는 상징적 타이틀 사이의 간극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거세는 권력의 반대가 아니라 권력과 동의어다. 그것은 나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남근은, 내 존재의 생명력을 표현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징물, 즉 왕이나 판사가 자신의 표장을 착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가 쓰는 가면이나 상징 같은 것이다. 남근은 내가 달게 된 일종의 신체 없는 기관으로, 그것은 결코 신체 일부가 되지 않은 채 내 몸에 달라붙어 비일관성과 과도한 보충성으로 삐쳐 나오는 것이다.
이 간극 때문에 주체는 결코 완전하게 자신의 상징적 가면이나 타이틀과 직접 동일화될 수 없다. -55~6쪽

우리는 타자의 욕망과 대면함으로써 야기되는 불안(anxiety)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라캉에 따르면, 환상이 타자의 수수께끼 같은 욕망에 대한 대답을 제공한다. 환상에 대해 기억해야 할 점은 환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욕망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환상이란 내가 딸기 케이크를 원하지만 현실에서 구할 수 없을 때 딸기 케이크를 먹는 환상을 꿈꾸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어떻게 나는 다른 무엇보다 딸기 케이크를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환상이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 것이다. -76쪽

하지만 이와 동시에 덧붙여야 할 것은 환상에서 상연되는 욕망은 주체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 내 주위에서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점이다. 환상, 혹은 환상적 장면 내지 시나리오는 "너는 그것을 말하고 있지.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면서 실제로 원하는 것은 뭐지?"에 대한 대답이다. 욕망의 근원적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들이 내 안에서 보는 것은 무엇이지?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지?"다. 어린아이는 복잡한 관계망 속에 끼워져 있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아이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는 아버지, 어머니, 형이나 누나, 삼촌, 숙모 등. 가령, 어머니는아들을 보살핌으로써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의 전쟁터 내지 촉매 같은 역할을 한다. 아이는 자신의 이런 역할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가 타인들에게 정확히 어떤 대상인지, 그들이 자신을 가지고 벌이는 게임의 성격이 정확히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다.
환상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환상은 내가 타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려준다. 환상의 상호 주관적 성격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어린 딸이 딸기 케이크를 먹는 환상에 대해 말한 것처럼 지극히 간단한 상황에서도 파악될 수 있다. 이 상황은 결코 욕망의 환각적 작용(어린 딸은 케이크를 원한다. 하지만 케이크는 없다. 그래서 아이는 케이크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의 상황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딸기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는 동안 그 어린 소녀는 자기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걸 엄마 아빠가 만족스럽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딸기 케이크를 먹는 환상은 실제로는 이와 같은(부모가 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아이와의) 동일성을 형성하려는 시도에 관한 것으로, 그것은 부모를 만족시켜서 자신을 그들의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준다. -77~8쪽

'이상적 자아'는 주체의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내가 되고 싶은 모습, 타인이 그렇게 봐주기를 원하는 모습)다. 자아 이상은 내가 내 자아 이미지 속에 새겨 넣고자 하는 응시의 작인으로, 나를 감시하고 나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도록 촉구하는 대타자이자 내가 따르고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다. 초자아는 그와 같은 작인의 가혹하고 잔인하며 징벌하는 측면을 가리킨다. 이 세항을 기초 짓는 구조화 원리는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다. 이상적 자아는 상상계로, 라캉이 "소문자 타자"라고 부른 내 자아의 이상화된 분신 이미지이다. 자아 이상은 상징계로, 내 상징적 동일화의 지점, 그러부터 나 자신을 관찰(판단)하는 대타자 내부의 지점이다. 초자아는 실재계로, 내게 불가능한 요구들을 퍼붓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내 실패를 조롱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작인이자, 내 '죄스러운' 분투를 억누르고 그 요구들에 응하려 하면 할수록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유죄가 되는 그런 작인이다. 스탈린 시대 공개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냉소적인 모토 '그들이 결백하면 할수록 그들은 총살당할 만하다'는 가장 순수한 모습의 초자아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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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1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책 좋아요? 아직 실물을 못봤는데

이매지 2007-06-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내용은 200페이지 남짓이구요, 종이도 페이퍼백 타입이라 가벼워요. 전에 서점에서 봤는데 이 시리즈가 두께는 다 비슷비슷하더라구요. 아직 라캉밖에 읽지 않아서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내용도 괜찮은 듯 싶네요^^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네요^^

가넷 2007-06-1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던데요. 안내하고있는 내용의 어려움 여부를 떠나서..-.-;
 
라캉의 정신분석 정신분석과 미학총서 4
신구 가즈시게 지음, 김병준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2월
절판


인간 개체가 거울상을 마주했을 때 나타내는 강한 환희 속에는 자아의 통합과 성적인 활동이라는 양면이 혼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인간은 이 시기에 거울상으로서의 자신을 이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성적 흥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나르시시즘의 구조이다. 거울이라는 허상의 차원 속에서 성적인 목표와 이상적인 자아가 공고히 결합되는 것이다.
머지않아 '거울의 나'는 '사회적인 나'로 급선회한다. 즉, 거울을 대신해서 사회적 가치를 담당하는 자로서의 동포의 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회적인 나로의 선회는 인간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자로 안정시키는 방향성을 가지는 동시에 인간을 사회에 매인 몸으로 만들어 편집증적 광기의 구조적 기반을 준비한다. -52쪽

클라인의 번역 원고 분실, 면담시간 단축, 애인 실비아의 임신, 대공비의 이름 누락, SPP를 탈퇴해도 IPA에 남을 수 있다는 착각 등 일련의 실수가 거듭되면서 라캉은 라캉으로 생성되었다. 돌이켜 보면, 각각의 실수가 한결같이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사후적 의미 부여가 가능해진다. 정신분석에 의해 주체가 어떻게 주체성을 실현하는가에 대한 모델이 라캉 자신의 정치적 생명의 궤적 속에 나타나 있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의 욕망이 차차 드러나는 것처럼, 실수로 점철된 라캉의 궤적은 자신도 모르는 그의 욕망에 의해 지탱된 것으로 보인다. 그 욕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희생양 게임처럼 보이는 이 고통스러운 분열극을 라캉은 어떤 기분으로 경험하고 있었을까? (중략)
라캉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자신의 발견의 근원적인 형태로 선택한 이유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몰랐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라캉은 그 당시 자신이 처한 정치적 운명을 그리스 신화 속 비극의 주인공의 운명과 겹쳐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정신분석가답게 자신의 무의식의 욕망이 오이디푸스적인 운명으로 자신을 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68~9쪽

정신분석가는 환자의 말의 속도를 감지하면서, 환자의 내면의 담론 속에 생겨난 이 '촉박함'을 포착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움직이는 리듬, 시간의 변조에 자신의 귀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데, 이 때 단시간 면담은 구획을 지향하면서 스피드를 올린다. -83쪽

단시간 면담이란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으로서 파악하는 실천인데, 그 자기 의식 속에서 사람이 아닌 대상이 필연적으로 포함되고, 그것이 떠오르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실천인 것이다. -92쪽

대상-a는 내가 나 자신을 초월적인 시점에서 보게 될 때 필요한 지지대인데, 이것이 둘러싼 사람과 물건 속에 나타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초월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도록 도와준다. 이 지지대가 없다면 나는 자신을 외부에서 볼 수 없다. -100쪽

나에 대한 타자의 비율로서의 대상-a는 나의 자기동일성의 지지대이다. 비율인 대상-a는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문제가 뚜렷이 드러나듯이 이 비율이 조금이라도 붕괴되면 대상-a는 비율이 아닌 응시나 똥 등으로 구체성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 타자를 황금수의 입장에서 볼 때, 나와 타자의 관계는 원래 불안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황금수는 무리수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른바 '무리수적인 관계'로서 끊임없이 애매하게 흔들리고 있는 관계이다. -101쪽

나의 언어 활동이 진리를 포괄하기 위해 요청되는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증거를 나 자신은 내세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증거를 요청하고 있는 언어를 향해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즉, 나는 태초부터 거기에 존재하는 언어에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미를 얻어야만 한다. 의미를 만드는 것에 관한 능동성은 더 이상 내 안에 없다. 그것은 언어 속에 위치지워져 있다. 언어는 나에게 있어 태초부터 그곳에 있고 나에게 생존의 의미를 부여하는 자로 간주된다. (중략) 말하는 존재인 인간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 이르면 논리적 무모순성을 유지할 수 없다. 이것은 언어의 구조상 필연적이다. 말하는 존재 자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어 바깥의 어떤 것에 의해 지탱되어야 한다. 그 지탱은 말하는 존재의 바깥에서만 구할 수 있다. 무력한 수단으로서 타자의 담론을 받아들일 뿐인 존재는 동시에 나의 언표의 진실성을 지탱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존재는 과거의 타자의 담론 속에 흔적없이 묻혀 있다. 타자의 담론 속에서 그 대상으로서 존재를 누리고 있던 나의 실재는 타자의 담론을 통해 발견되어야 한다. -122~4쪽

욕망을 매개로 하여 주체가 타자가 되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주체가 맺고 있는 관계라 주체에 대해 타자가 맺고 있는 관계로서 상징화되는 것이다. -168쪽

광기는 자유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가장 충실한 동반자이며, 그 움직임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또한 인간의 존재는 광기 없이는 이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만일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 극한으로서의 광기를 자신 안에 짊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심적 인과성에 대하여')
-178쪽

사회에서 이러한 상상계의 작용을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상상계의 작용은 사회의 기본적인 유대구조이기 때문이다. 다수에 끼어 보려는 게임에는 늘 절대 다수자의 상이 환상으로 떠오른다. 이 다수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중의 의향을 구현하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의 원래 모습은 상상적 단계에서 설립된 우리 자신의 거울상이다. 나는 다수자가 구성하고 있는 전형적인 인간이라는 거울상 속에서 자기동일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에 힘쓰고 있다고 해야 할까?-19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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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06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라깡에 입문하고 계시는군요 :)
전 라깡은 아직입니다. 관심영역 밖에 있어요.

이매지 2007-06-0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영역 밖이긴 하지만 레포트를 써야하는 관게로 어쩔 수 없이 -_ ㅠ
읽다보니 알 것도 같은데 아직은 좀 어렵네요^^

이매지 2007-06-1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라캉 읽기>가 이 책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굿바이! 떨림증 -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하는 비결
아소 켄타로 지음, 이광철 옮김 / 다산북스 / 2007년 5월
절판


모든 일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협력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협력자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 즉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애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성에게 긍정적인 연애감정을 표현해야 하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호의를 보여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 인생의 성공 여부는 어찌 보면 타인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떨림증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설득할 기회를 놓친다면 그만큼 인생에서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19쪽

떨림을 두려워한 나머지 첫걸음부터 뒷걸음질치는 건 각자의 인생 앞에 놓인 무한한 성공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23쪽

흔히, 떨고 있는 상태를 '긴장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 경우 긴장이란 적당한 떨림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몸과 마음이 긴장되어 이제부터 분발하겠다!'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상당히 적극적이고 의욕적이어서 능력을 발휘하기에 더없이 좋은 상태다. 이런 긴장은 굳이 없애려고 할 필요가 없다. (중략) 적당한 떨림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인상을 주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30~1쪽

'떠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란, 떠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본래 자기가 지니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사고방식이다. 지금까지 '떨면 안 돼', '침착해져야지'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몸이 떨리거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던 사람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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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절판


2인조 은행 강조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둘 중 어느 한 명이 꼭 화를 내게 되어 있다. 운도 안 따라준다. 예를 들면, 부치와 선댄스(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두 주인공-역주)는 무장한 보안관들에게 포위됐고, 톰과 제리는 만날 싸운다.
그에 비하면 3인조는 나쁘지 않다. 사람 셋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난다는 말도 있다. 나쁘지 않지만 베스트도 아니다. 삼각형은 안정적이나 거꾸로 뒤집으면 균형을 잃는다.
그리고 셋이 탄 차는 별로 보지 못했다. 도주용 차에 셋이 타든 넷이 타든 상관없다면, 넷인 편이 좋다. 다섯이면 너무 갑갑하다. 이러한 이유로 은행 강도는 네 명이 필요하다. -7쪽

인간에게는 교육욕이란 게 있다. 한 번뿐인 인생살이에 자신이 없으니, 남 앞에서 선생이라도 된 양 떠벌이고는 안심하는 것이다. -27쪽

시간[時間] ①시간 흐름의 두 지점 사이 ②공간과 함께 인식의 기초를 이루는 것. 인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졌다고 믿고 있는 것 중 하나. 인간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 중 하나. 인생의 충실도와 비례하여 그 진행 속도가 빨라짐. 따분함에 비래해 그 진행 속도가 느려지는데, 수업 중에는 완전히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음. -33쪽

회의[會議] ①의견을 맞춤. ②미리 상의함. ③회사원의 노동시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 참가자 수에 비례해 시간이 길어짐.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잡음. 효과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는 드물고 막판에 보면 시작 전 상태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많음. -40쪽

인간이란 존재는 각자가 자기만의 주인을 갖고 있다. 여기서 '주인'이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근거가 되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의 상관일 수도 있고 자기만의 미학일 수도 있다. 일반 상식일 수도, 이해득실일 수도 있다. 아무튼 사람들은 행동할 때 그 주인, 즉 룰에 따른다. -49쪽

기억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컴퓨터를 들 수 있죠. 하드디스크와 DVD, 앞으로는 모든 정보가 매체로 보존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갖고 있는 거대 도감청시스템 '에쉴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위성을 경유해서 전달되는 전화나 FAX, 메일 등 모든 정보를 제3자가 수신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것이 데이터베이스에 보존되지요. 무서운 시대 아닙니까? 모든 것을 기억해서 남기려고 합니다. 기록은 선(善)일까요? 보존이나 보관은 칭찬받을 만한 일일까요? 벚꽃은 곧 지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겁니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편이 훨씬 더 좋은 것도 많지 않을까요? 헤어진 애인과의 추억, 홍수 뒤 강의 탁류, 천재가 단 하룻밤 불어재낀 알토색소폰의 애드리브, 친구끼리 나눈 바로 그 순간의 대화..... 모두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겁니다. 은행 강도를 본 것도 곧 잊어야죠. 휴대전화에 찍히는 발신이나 수신 기록 같은 건 정말 엿 같은 일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90쪽

책에 적혀 있는 것은 대개가 헛소리야. 목차와 정가 이외에는 전부 다. -131쪽

살인[殺人] 사람을 죽이는 일. 독자의 관심을 붙들어놓기 위해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
살인사건[殺人事件]소설이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알기 쉽게 광고하기 위해 제목에 덧붙이는 접미어. ¶-152쪽

자기가 속으로 느낀 것을 전부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거야. 사람들이 모두 자기 생각들을 맘속에만 담아두고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평화로울 것이다, 이 말이야. -170쪽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출이에요. 지구는 대출로 돌아가고 있죠. -203쪽

네가 하는 말은 애매해서 알아듣기가 힘들어. 꼭 등산로 같아. 전모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이야. 정상에 선 사람한테만 보이는 길은 의미가 없어.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사람도 둘러볼 수 있는 길을 만들어달란 말이야. -258~9쪽

들어봐, 이 세상이란 곳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어. 다시 말해서 난해한 영화 같다, 이거야. 전위적이라 몇 번을 봐도 내용을 알 수가 없어. 우린 그런 영문 모를 영화를 계속 앉아서 봐야만 하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나루세는 어디서, 뭐 이상한 잡지일 수도 있지만, 감독의 인터뷰를 읽은거지. 혹은 머리 좋은 평론가가 쓴 해설서이거나. 그러니까 영화를 봐도 이해를 하는 거야. 당황하는 일 없이.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모든 일을 다 꿰뚫고 있는 얼굴로 늘 침착하게 있을 수 있겠어?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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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요괴문화 - 그 생성원리와 문화산업적 기능
중앙대학교한일문화연구원 엮음 / 한누리미디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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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일본의 요괴는 전통적인 요괴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일본문화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가 하면,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의 요괴를 생성 아니 창작하고 있다. 요괴는 허황한 것, 허튼 것, 비과학적인 것이라 해서 물리치고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상상력의 또 하나의 표현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요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나아가 여러가지 방식으로 요괴를 즐기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더러는 문화산업으로 응용되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마이너스적인 힘을 해소하는 분출구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2~3쪽

 요괴는 창조하는 것이지만, 전혀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기보다 이미 있던 사물이나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일그러뜨리거나 축소하거나 반복하거나 뒤틀어 놓음으로써 새로운 요괴를 생성한다. 물론 이 과정에 일본인의 미의식이나 기존의 요괴관이 개입된다. -24쪽

 '요괴'를 정의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이것을 우선 글자 그대로 이해하여 '이상한 것'이나 '이상한 일' 즉 '괴이'라고 평이하게 이해해 두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요괴'라는 말은 중국에 기원을 두는 말이다. 한서에 '도읍에 요괴가 있어'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바로 위에서 말하는 요괴이다. 즉 불가사의한, 불가해한,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그 현상이 어떤 현상이며 그 정체(원인를 당시의 고대 중국인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이 말이 일본에서 처음 쓰인 것은 <속일본기> 777년 3월 19일 조에 보이는 "크게 부정을 물리쳤다. 궁중에 빈번히 요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는 기록이다. 이 '요괴'의 원인은 아마도 '오니'의 탓이라고 여겼던 것이라 생각된다.
 즉 사람에게 '이상하다'든가 '불가사의'라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요괴'라는 라벨을 붙여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집안에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소리'가 나면 그것은 그 자리의 '요괴'가 된다. 또한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얼굴'이나 '몸짓'을 하면 이것은 그때의 '요괴'가 된다. 즉 '요괴'란 사람의 인식체계나,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의 체계로부터 일탈된 것 모두를 가리키게 된다. -31쪽

오니 기와에도 화장- 보기 흉한 여자라도 화장을 하면 예쁘게 보인다는 말이다. 오니 기와(鬼瓦)는 귀신 얼굴 모양의 기와로 무섭고 거친 형상이다. 우리 속담의 '쇠말뚝도 꾸미기 탓이다'와 비슷하다. -63쪽

시누이 하나는 천 마리의 오니와 싸우기 - 며느리로서는 단 한 사람의 시누이라도 오니 천 마리와 상대하는 것만큼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라는 비유이다. 며느리로서 시누이와의 갈등은 엄청난 시련이라는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시누이에 대한 적개심은 오니와 비교되기도 하였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65쪽

백귀야행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백가지 귀신 도깨비가 밤길을 가는 모습이라는 뜻인데, 온갖 귀신들이 나와 행진을 하는 그림책이다. 전해져 오는 요괴이야기들을 시각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수 많은 요괴가 그려져 있다.
에도시대 이전부터 이처럼 두루마리 그림으로 요괴들이 많이 그려졌다. 기물이 오랜 시간 흐른 다음에 변신하여 정령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미혹한다는 '쓰쿠모가미'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도 있다. 쓰쿠모가미란 기물이 오랜 시일을 거쳐 혼을 갖게 된다는 생각에서 기물이 변신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설날을 앞두고 오래된 기물을 밖에 버리는 습속이 있다. -10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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