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 저택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교향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장바구니담기


"당신과 나는 에인스윅 저택에 대한 얘기를 하느라고 시간가는 줄도 몰랐잖아. 우린 둘 다 행복한 기분에 싸여 있었어. 헨리에타, 그게 무얼 뜻하는 것인지 정말 모른단 말이야?"
"정말 모르는 사람은 에드워드, 바로 당신이예요 우린 오늘 오후 내내 과거의 추억 속에서 지냈다는 것을 모르세요?"
"과거로 되돌아가 보는 것도 때로는 아주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순 없어요. 인간에게 아주 불가능한 일 중의 하나가 지나온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거예요."-78쪽

죽음이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너무나 순식간에 닥쳐온다는 거예요. 살아 숨쉬는 매 순간마다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니죠.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사라져 버린다는 건가요? 죽음 뒤엔 무엇이 오죠? 공허함이에요. 맞아요. 이 공허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죽지 않았다고 해서 한 죽음을 옆에 두고서도 카라멜 커스터드를 먹으며 희희낙낙했어요. 누구보다도 더 생의 의욕에 차 있던 존, 그 존은 이제 차가운 시체가 되어 누워 있는데 말예요. 전 죽음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되뇌었어요. 죽음, 죽음, 죽음, 죽음, 죽음, 그러나, 아무런 뜻도 없는 단어일 뿐이에요. 결코 어떤 의미를 지닌 게 아니에요. 단지 썩은 나뭇가지가 꺽인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 죽는다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죽음이란 단어도 그렇게 대단한 말은 못 되죠. 죽음, 죽음, 죽음, 죽음. 마치 정글 속에서 들려 오는 북소리 같죠? 죽음, 죽음, 죽음, 죽음, 죽음...-151쪽

난 대체로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건들을 많이 알고 있는 편이거든요. 다시 말해, 상상력이 최고로 발휘된 사건을 많이 접해 봤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는 창조력이 아닙니다. 그것에 필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열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19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장바구니담기


일어난 일을 날마다 기록하는 것은 고금이 다르지 않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일이 없지 않아 내 한 몸에 모여든 일이 언제고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날이 다르고 달이 다르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가까우면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멀어지면 헷갈리며, 아주 멀어지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일기를 쓴다면 가까운 일은 더욱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먼 일은 헷갈리지 않으며, 아주 먼 일도 잊지 않는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일은 일기로 인해 행하기 좋고,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일기로 인해 조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기란 것은 이 한 몸의 역사다.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는 글을 배운 이후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3,700날 남짓을 살아왔다. 3,700날 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면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여 돌아보면 빛이 사라진 것과 같다. 날마다 기록하지 않아서 생긴 잘못이다. - 유만주-27쪽

그대는 살림살이가 나보다 백 배나 넉넉한데 어째서 그칠 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는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있기야 하지.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 통하는 창문 하나, 햇볕 쪼일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라네. 이 열 가지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네. 늙은 날을 보내는데 이외에 필요한 게 뭐가 있겠나. -김정국-45~6쪽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고
지나치게 먹으면 편치 않다.
의젓한 너 천군이여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이양연-55쪽

나는 혼자다. 오늘날의 선비 가운데 나처럼 혼자 다니는 자가 있는가? 홀로 세상을 헤쳐 가니, 벗을 사귈 때 어느 한편에 치우칠 리가 있겠는가? 한편에 치우치지 않으면 나머지 넷 다섯이 모두 나의 벗이 되나니, 나의 교유 범위가 넓지 않은가? 그들의 냉혹함이 얼음장 같다 해도 나는 떨지 않고, 그 뜨거움이 대지를 불태운다 해도 나는 타지 않는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이, 오직 내 마음 가는 대로 쫓아갈 것이다. 내 마음이 찾아가는 곳은 오직 나 자신일 뿐이다. 그러니 거취가 느긋하여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유몽인-65쪽

매사에 전기라는 것이 있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반전할 계기를 마련하려 사람들은 좋은 날을 가려 전기로 삼는다. 지난날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마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 전기로 삼기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옛사람들의 글에서도 심기일전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자주 발견된다. 동짓날과 제야에 쓴 시문이 특히 그러하다. 이 세시명절은 모두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179쪽

아 똑같은 봄이건마는 연꽃과 국화를 만난 봄은 반드시 머뭇머뭇하며 꽃을 피우기 어려우니 일찍이 피는 오얏꽃에 비교할 수 없다. 이것이 어찌 봄의 잘못이랴. 연꽃과 국화가 봄을 저버린 결과다. 가만히 생각하니 낯이 뜨겁고 창자에 열이 나서 차마 더 말을 늘어놓을 수 없다. 바라건대, 그대 문신은 나를 비루한 놈이라 여기지 말고 바보 같은 성품의 나를 한 번 더 도와서 예전 습성을 씻어버리게 해달라.내 비록 불민하나 새해부터는 조심하여 그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리라. 오늘은 세모라, 내 감회가 많이 생겨 붓꽃을 안주 삼아 들고 벼루 샘물을 술 삼아 길어올리니 마음의 향기 한 글자가 실낱같이 가늘고 희게 타오르는구나. 글을 잡고 신에게 고하노니 신령은 와서 흠향하시라. -이옥-182~3쪽

문학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기 좋은 그릇이다. 그리움을 마음에 담아두어도 몇 십 년을 간직하기는 어렵다. 그림이나 사진에 담아둔다 해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 비석에 새겨 오래 보존하기를 바라지만 먼 옛날의 하고많은 빗돌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움을 담기에 편리하고도 오래 갈 것이라곤 문학이 있을 뿐이다. 작품성이 뛰어나면 시대를 초월해 후대에까지 그 마음이 남겨지는 행운도 얻는다. -187쪽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사람이 아니라 한나라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박지원-232쪽

여유 있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하면 한 해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없다.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남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남을 구제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여유가 없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옛사람은 "한가로울 때도 바쁜 한 순간이 있듯이 바쁠 때도 한가로운 한 순간이 있다"라고 하였다. 어찌 독서만이 그러랴? 무릇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말을 자신을 반성하는 도구로 삼아야 하리라. 이 이야기를 적어두어 옛일을 본받고자 한다. -박규수-238~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장바구니담기


곁에 누구도 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기는 하지만 세월을 헤아리지는 않는다.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 자신을 위해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탐정은 나이를 잊었고, 나 역시 그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112쪽

인간 중에서도 젊은 여자애는 참 이상합니다. 울기 위해 음악이 필요하다니. 도대체 '운다'는 게 어떤 걸까요. 스스로를 텅 비우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를 음악으로 채우는 걸까요? -15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수맘 2007-07-2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도 이 책 읽는 중이시군요. 괜히 반갑다. 저 이책 너무 속도감 있게 읽는 바람에 밑줄긋기도 못했다는 ^^;;;

이매지 2007-07-26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어제 인터넷이 안되서 다 읽었어요 ^^
저도 빨리 읽는라 밑줄도 몇 개 못 그은 ㅎㅎ

도넛공주 2007-07-2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매지님과 저와 홍수맘님 모두 같은 책을 읽었지만 감상이 다 다르군요~이래서 책이 좋답니다.

이매지 2007-07-2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넛공주님의 리뷰도 잘 읽었는데 댓글을 달려면 저 멀리 가야하는 관계로 ㅎㅎ
이거 보고 지갑 새로 살까 했던 마음을 잠시 접었어요 ㅎ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품절


 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란 없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오래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온 상처와 거절된 소원, 자존심을 짓밟힌 마음의 상처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경멸로 인해, 더 심각하게는 무관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사랑의 재가 되어 불행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아니, 그들이 이런 것들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하여 불행한 이들은 수의처럼 자신들을 감싸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행복한 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한 점이 있다. 현재가 결코 가져다주지 않는 게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의미다. 행복해지는 방법과 의미를 얻는 방법은 다르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순간을 살아야 한다. 단지 순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의미를, 꿈과 비밀과 인생에 대한 의미를 얻고 싶다면, 아무리 어둡더라도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은 행복과 의미를 우리 앞에 대롱대롱 흔들어대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9~10쪽

아버지라면 이 모든 게 헛된 짓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햄릿을 위해서라니. 그렇지만 언제나 세상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가장 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가장 좋아하게 마련이다. 의학은 내게 현실을 상징했다. 의대에 가기 전에 내가 했던 일들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고, 모든 게 놀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아들들에게 현실의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서. -115쪽

정직한 사람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명성도 못 얻지만, 부정직한 사람은 부와 명예를 얻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 노릇인가. 그래서 부패가 치명적인 거라네. 좋은 사람의 의지를 꺽어놓거든. -142쪽

남자들은 야심이 있죠. 남자들의 시기심은 주로 거기서 나옵니다. 반면, 여자들의 시기심은 언제나 성애적이죠. 둘의 차이점을 백일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백일몽을 꾸죠. 하지만 남자들은 두 종류가 있어요. 성애적인 것과 야심적인 것. 여자들의 백일몽은 전적으로 성애적이죠. -28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품절


 이성계는 전장에서는 명장이었을지 모르지만 정치판에서는 초보나 다름없었다. 전쟁이나 권력투쟁은 싸움이라는 면에서 같았지만 싸우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전쟁터에서의 명장이 반드시 정치판에서도 명장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이성계가 참전하는 전쟁터에서 적은 명확했다. 적을 죽여야 하는 이유와 방법도 분명했다. 적은 활과 칼로 죽였다. 화살로 쏘아 죽이거나 칼로 베어 죽인 적은 분명히 죽은 것이었다. 이기고 지는 것도 명확했다. 죽은 적은 다시 일어나 덤비지 못했고, 패배한 적은 도망갔다.
 그러나 정치판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선 적과 친구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죽여야 하는지는 더 애매했다. 적을 죽이는 무기도 활이나 칼이 아니라 말과 글이었다. 그 말과 글에 죽어나갔던 적은 죽은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정치판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패자가 도망가는 것도 아니었다. 패자도 멀쩡히 살아서 남아 있었다. 강씨는 이렇게 복잡 미묘한 정치판의 생리에 어두운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불안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4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