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긴티 부인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심윤옥 옮김 / 해문출판사 / 1988년 5월
품절


이곳에서 사귄 첫번째 친구는-지금까지 내가 지녔던 어떤 친구보다도 가장 소중하지-사실, 매우 자주 나를 화나게 했었어. 아니, 지금 내가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건가? 천만에. 나는 단지 의심에 가득찬 그의 호기심과, 입을 벌리고 나의 재능-엉터리 이야기를 꾸며대는 것도 아니면서 그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재능에 감탄하던 모습, 내겐 줄곧 명확했던 진실을 겨우 감지했을 때의 바보스러우리만큼 당황하고 놀라와하던 모습, 그런 것들만을 기억할 뿐이다. 나의 소중한 친구여! 그것이 나의 결점일세.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언제나 나의 결점이었지. 그 약점을 헤이스팅스는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사실 재능이 있는 사람들로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외부로부터의 격려도 필요한 법이다. 정말이지 내가 얼마나 존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음미나 해가면서 하루 온종일 의자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인간에겐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거야. 사람에겐- 요즘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조역'이란 게 필요하단 말이야. -6~7쪽

'왜' 여자들은 자신의 젊었을 때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 첫번째 이유는 분명히 허영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녀는 아름다운 소녀였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녀였는지를 되새겨보기 위해서 자신의 사진을 간직하는 게요. 거울이 그녀에게 불쾌한 사실을 말해 줄 때, 그 사진은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녀는 아마도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이것이 열여덟 살 때의 내 모습이야...' 그리고는 한숨을 쉽니다... 아시겠소? (중략) 그러면 두 번째 이유, 그것은 감상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의 사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진도 간직하게 되니까 말이오... 이를테면 결혼한 딸의 사진 같은 거... 그 딸이 아이였을 때 튤을 두르고 벽난로 앞의 카펫 위에 앉아있는 사진 말입니다. (중략) 그리고 분명히 '세 번째' 영역도 있다오. 허영심도 감상도 사랑도 아닌- 아마도 '증오심'의 영역일 겝니다. 복수하고자 하는 열망을 생생히 간직하기 위해서 말이오. 당신에게 해를 입힌 누군가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 것을 자신에게 늘 일깨우기 위해 사진을 간직할지 모르지요. 그렇지 않소?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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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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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어떤 점으로 보나 이 사나이의 범행이 틀림없다고 믿는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선입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용하여, 그런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 지나치고 마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성이 돼 버린 상식이 맹점을 만드는 일이 때때로 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상식이라 하더라도 수사하는 데 있어서는 일단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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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짖을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브라이언 아이젠버그 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명진출판사 / 2007년 6월
절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미디어가 점점 더 그 세력을 떨치고 있는 시점에서는 이제 종을 울리는 행위에 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 네임 인지도나 연상 단어가 아직도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고객은 이제 이러한 요소들만 가지고 선택하지 않는다. 오늘날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경험이고, 그 경험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많이 제공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선택의 요소로 작용한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의 여지도 많고 정보도 많은 경험 중심 경제에 살고 있다. 이 경제에서는 경험이 바로 브랜드임을 명심해야 한다. -38~9쪽

오늘날 시장은 정보 중심으로 움직인다. 고객은 특정 상품을 구매할 때 자신이 어떠한 경험을 할지 궁금해한다. 문제는 판매자들이 여전히 정보 공유에 인색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수많은 고객이 자신의 경험을 포장해 그것을 다른 수많은 고객에게 들려주고 있다. 기업들도 고객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정보 공유의 필요성을 역설하면 많은 마케터가 놀라고 만다. 고객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면 거래상 유발될 수 있는 모든 마찰을 해소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가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경영 전문 연구가였던 조셉 파인 2세와 제임스 길모어가 맨 처음 파악했던 경험 경제가 이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한 경험은 어떻게해야 고객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제 기업이나 브랜드의 성패는 고객에게 즐거운 경험을 얼마나 많이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52쪽

경험이란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고객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경험을 더 즐거운 방향으로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상 발생하는 마찰을 더 줄이면 줄일수록, 고객의 구입 과정을 더 줄이면 줄일수록, 고객의 구입 과정을 더 쉽게 하면 할수록 고객의 신뢰는 더 커질 것이고, 고객이 경험을 통해 느끼는 기쁨 또한 더 클 것이다.
고객이 경험을 통해서 많은 친근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애착은 커진다. 그러면 그 상품이나 서비스에 부과하는 경제적 가치도 더 증가한다. 고객이 느끼는 친밀감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지 그 방법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설득 공법이 추구하는 목표다. -52~3쪽

여러분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음속에 달성하고자 하는 임무를 담고 대화 탁자 앞으로 왔다. 이들은 이미 웹사이트, 이메일, 매장, 또는 텔레비전 광고를 통하여 여러분의 회사에 관심을 보여온 사람들인데, 그 수준에 머물지 않고 여러분과 직접 대화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지식이 있다. 행동, 특히 인터넷 환경에서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는 참가자들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이며, 목표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76쪽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화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여러분이 제시한 경험을 선택할 완벽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 그들은 대화를 중단하고 가버릴 것인지, 여러분과 거래를 약속하고 지갑을 열 것인지, 연다면 얼마나 지출할 용의가 있는지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어디에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여러분의 고객이 여러분 회사 웹사이트에 들어왔다가 더 이상 클릭하지 않고 나가 버렸거나 광고를 보지 않고 통과해 버렸다면 고객과 여러분과의 대화는 이미 끝난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엄청나게 많은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이 '한 번 더 클릭'하게 만드는 것이다. -76~7쪽

AIDA의 공식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지 않고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주의를 집중시킨 후에는 관심을 더 갖게 하고, 욕구를 자극해 행동으로 옮기게끔 동기부여를 한다.
우리는 이 AIDA 공식에 S, 즉 Satisfaction(만족)을 추가했다. 특히 웹 중심, 고객 경험 세계에서는 단순한 행동 수준을 넘어서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족이라는 조각이 추가됨으로써 이 구매 과정은 완전한 원이 된다. 그 결과 고객이 다시 돌아와 새로운 구매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 만족을 한 마디로 노력의 보상이다. 만족 없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인 고객 충성도를 확보하기 어렵다. -9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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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매혈기 - 글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킨 한 평론가의 농밀한 고백
김영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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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의 멜로드라마적 삶을 다룬 <하루>라는 한국 영화를 봤을 때도 경험의 부족을 느꼈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은 아이를 갖기 위해 안달하고 뱃속에 든 아이가 무뇌아인 걸 알면서도 억지로 낳으려 들 만큼 무모하며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가 곧 죽게 됐을 때 예상했던 격렬한 슬픔에 휩싸인다. 한두 번은 나도 울 뻔했지만 내 누선이 자극받은 것은 신경의 반응이지 마음이 움직인 게 아니었다. 이런 유형의 영화는 파블로푸의 조건반사처럼 내 신경의 어디를 누르면 반응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은근히 불쾌해지기도 한다. 뭐야 이건,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이런 영화를 보며 울어야 돼, 라는 생각에 표정이 굳어진 채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선배 한 사람이 말했다. "저건 경험 없으면 모른다. 내 첫 애가 나오다가 죽었잖니. 그 생각이 나서 혼났다."
난 역시 이 분야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삶의 부분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실제 삶의 괴리도 곧잘 거기서 나온다. -26~7쪽

히치콕은 "내 영화는 케이크 한 조각"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자른 삶의 조각이 달콤한 케이크가 아닌 덤덤한 식빵이어도 상관없다. 거기에 딸기잼을 발라먹을 수도 있고 버터를 바를 수도, 때로는 그냥 맨빵만 먹을 수도 있다. -29쪽

영화와 일상을 겹쳐 보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점점 힘이 든다. 촌스럽게도 영화 속에서 아슬아슬한 순간이 묘사돼도 참아내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고통을 다루는 것은 더 그렇다. 갓난아기를 던져 죽이는 어떤 영화를 보고 그 감독이 굉장히 미워졌다. DVD로 영화를 볼 때면 서둘러 결말을 알아보고 차분하게 다시 처음부터 영화를 보기도 한다. 시간예술인 영화의 속성을 거부하고 점점 노예처럼 화면 이미지에 굴종해 영화를 따라가는 것이 싫어진다. 왜 이렇게 참을성 없는 관객이 되어버렸을까 자문해본다. 영화에서 다루는 기쁨과 행복과 위로가 때로는 너무 시시한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가 점점 어른의 매체가 아니라 아이들의 오락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고통과 불행과 배려를 다루는 영화일 경우 때로 텔레비전의 SOS 프로그램처럼 관객의 감정을 착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 결국 영화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관심은 사라진다. 거짓말하지 않는 영화에만 흥미가 생긴다. 그게 중년의 가장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내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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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종 데트르 - 쿨한 남자 김갑수의 종횡무진 독서 오디세이
김갑수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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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한 가르침은 말한다. 진실하고 올바른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아름다운 거짓말에 불과한 것. 나만의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배타적 욕망이 사랑의 출발점이다. 사랑의 배타적 속성이 없다면 얼마나 심심할 것인가. 일단 세상의 온갖 소설과 영화의 상당 부분은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애달픈 노랫말도, 절절한 가슴앓이의 추억들도 다 쓸모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가르치는가. 상대를 소유하러 들지 말라고. 원래 세상의 가르침이란 하기 힘든 것만 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좀 거창하게 파악해보자면 그건 아마도 힘 있고 능력 있는 자의 '더 많은 소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고육책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인간의 본성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인 일부일처 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도. -18쪽

평생 단 한 번도 '종족을 보존하자'는 숭고한 결의를 다지며 섹스를 해본 일이 없다. 가장 사사로운 쾌락이자, 조금 의미 부여를 하자면 상대와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행위가 섹스다. 당근, 섹스는 게임이고 놀이고 대화다. 강간 같은 어거지 말고 가능한 상대끼리 서로 마음이 맞아 나누는 섹스라면 될수록 재미있고 유쾌한 놀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듣자 하니 가수 박진영도 이런 요지의 생각을 말했다가 찬반논쟁에 휩싸인 모양이다. 도대체 찬성하고 반대하고 자시고 할 일이 뭐 있는가 싶은데도 논란이 많은 걸 보면 섹스 갖고 비장, 숭고해지는 부류들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진다. 불안을 메우는 게 공부다. 그래, 섹스를 공부하자! 성행위 비법 따위가 아니라 이른바 성 담론이라는 것. 유식해지면 타인의 동의를 얻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31~2쪽

하지만 홍성묵의 메시지는 이렇게 단편적인 사항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일어나는 섹스'와 '하는 섹스'로 구별되는 주체성의 문제가 핵심이다. 일어나는 섹스, 즉 욕정에 휘둘려 저지르는 일과, 사랑이 담긴 교감의 한 방편으로 서로 원해서 '하는 섹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순결 운운하며 따지려 드는 마초형 남성이나, 순결을 '잃었다고' 징징 짜는 여성이나 성의식의 문맹자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스스로 원해서 상대와 '하는 섹스'는 당당하고 인격적이며 그럴 때 비로소 섹스는 당당한 즐거움이 된다.
당연한 말 같은데 우리 현실은 꽤 동떨어져 있다. 섹스는 분명 남녀가 함께 하는 일인데 그것의 향유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는 돌쇠들이 의외로 많으며, 육체를 흡사 자신의 무기이자 최후의 보루인 양 여기는 '창녀 의식'을 소유한 여성도 의외로 많다. -34~5쪽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다, 라고 말할 때의 '시'란 문예지에 발표되는 시 작품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에 상상력의 불꽃을 지피는 시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죽고 싶은 괴로움, 견딜 수 없는 소외감, 혹은 황사가 불어 닥치는 봄날의 어떤 허허로움 속에서 정처 모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사람들은 시인이 된다. -59쪽

사랑, 그중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이 끊임없는 관심과 토론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그 영원성에도 불구하고 용기에 담기는 물처럼 무정형이어서 한없이 유동하고 변해가는 속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도 자신 있게 이것이 사랑의 실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사랑의 변모를 들여다보는 간편한 방법이 있다. 신작 소설들을 찾아 읽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설은 사랑을 배경에 깔고 있는 법이므로. -1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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