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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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이 나서면 무슨 일이건 대충 수습한다. 그런 방식은 역시 안 좋은 게 아닐까? 감기에 걸리자마자 해열제를 먹어 눌러 놓았다가 오래도록 완쾌되지 않아 고생하는 일이 있다. 그런 경우와 마찬가지다. 어차피 오른 열은 열이 나게 두는 편이 낫다. 세상사란 모두 일정한 수위를 넘어선 뒤가 아니면 수습할 수 없는 법이니까. -262쪽

"미노루 씨는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요."
도시미가 중얼거렸다.
이와 씨가 바로 말을 받았다. "하지만 애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아가씨도 내 나기아 되면 아마 싫어도 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란 어쨌든 진짜 자기 나이보다 애가 되거나 어른이 되거나 할 수는 없게 되어 있어요.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늙는 겁니다. 어리면 아무리 까치발을 세워 키를 크게 보이려 해도 어린 상태인 거죠."
-263~4쪽

'우리는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다. 돌아갈 집도 없이, 거친 들판에 내던져진 외톨이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도 대답하는 것은 바람소리뿐이다.'
그 젊은이가 저지른, 변명할 길이 없는 끔찍한 살인 뒤에서마저도 고독한 휘파람 소리와 그 소리에 대답하는 공허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걸까?
그리고 그 부분은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잠이 든 미노루 곁에서 이와 씨는 살며시 그 구절을 암송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워한다.'
-28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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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 김영사 / 2005년 1월
구판절판


인생이란, 특히 변화의 시기에 있어서 인생이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끝은 보이질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동안에는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많은 부분이 그 모습과 닮았다. 목표를 볼 수가 없고,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여부도 알 길이 없다. 그리고 도대체 인생의 목적이란 것이 무엇인가?-16쪽

인생이 불확실해 보이고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때, 계획과 경험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바로 사막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막의 가장 힘든 점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산을 더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은 사막보다 덜 애매하니까. 마라톤을 처음 뛰는 것은 산세가 험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완주를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상세한 책자가 있다. 마라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고 하는 희미한 적이 아니라 체력과 의지이다. 나도 모르게 살금살금 다가오는 적보다는 눈에 보이는 적이 낫다. -23~4쪽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혹은 변화의 사막을 건널 때, 나침반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아 준다.
둘째, 우리를 더 깊은 사막으로 이끌어 준다.
셋째, 우리가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에 중점ㅇ르 둘 수 있게 해준다. -38쪽

목표를 갖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산꼭대기 이외의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면 빚을 청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최종 결과를 생각하지 않으면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조차 또 다른 목표 또는 또 다른 계획이 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지금 현재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여야 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며, 우리를 인도해줄 의미 있는 나침반 바늘이 되어 줄 수 있다.
우리는 변화의 사막에 있지 않을 때에도, 나침반 바늘을 찾고 있지 않을 때에도 눈높이 낮추기를 실행할 수 있다. 매일 지금 이 순간에 완벽하게 충실히 산다면 어떨까? -49쪽

하루나 일주일쯤 나침반을 따라가보라. 그리고 인생이라고 하는 거대한 사막 안에 있을지라도 자신이 걷고 있는 사막의 이름을 불러보고, 존재 방법, 살아가는 방법의 방향을 선택하라. 그리고 한동안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내가 점점 나의 사막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라. 궁극적으로 사막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사막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나침반은 여러분이 이러한 여행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여러분에게 의미가 있는 그런 방향을 꾸준히 제시해줄 것이다.
현재 진행형이라는 동사 시제가 있다. 우리의 나침반을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인생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 나침반은 우리가 현재, 이 순간을 잃지 않도록 도와 준다. 방향 감각만 올바르게 잡혀 있으면 길을 잃었을 때도, 지도가 쓸모없는 그런 곳에서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56~7쪽

지금 건너고 있는 사막을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종류의 오아시스가 필요한 걸까? 잠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매주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침반 바늘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나 배우자와 또는 오래된 친구와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건 아닐까?
그러고 나서는 오아시스를 침해하는 야만인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친구나 친척, 동료, 아이들, 직장 상사, 고객, 의무, 프로젝트, 해야 할 일, 완벽주의적인 성격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오아시스를 보호할 벽을 세운다. 사막과 오아시스를 구분 짓는 분명한 경계선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각오를 해야 한다. 오아시스의 필요성을 믿지 않는 비신도들이 여러분을 시험에 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일부는 이교도이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최악의 야만인이 될 수도 있다. '아니오'라고 하지 못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오아시스에 걸어 놓는 빗장을 풀어 주는 것과 같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습성에 젖어 있는 내 안에서는, 다음 사막을 건널 때까지 오아시스에서 쉬지 않-74~5쪽

고 계속 가다 보면 나중에 훨씬 더 멋진 휴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그렇다. 유목민 복장을 한 산악인이 가장 위험한 야만인이다. -75쪽

오아시스에 멈춰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아시스에서는 그 적막과 고요함 덕분에 지금까지 건너온 사막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만약 이미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해결책도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을 내다보고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이렇듯 오아시스에 머무는 시간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대부분은 고속도로 교차점이나 대상들이 다니는 길 위에 있다. 오아시스에서 생각을 해본 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위기가 닥치거나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또는 중요한 생일에만 우리가 그때까지 따라온 내면의 나침반을 바라보고 인생의 방향을 다시 살펴본다. 때로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기회조차 활용하지 못할 때도 있다. -77~8쪽

정체된 상황은 바로 우리의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 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면 현실 세상과 좀 더 가까워지고 좀 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109쪽

겸허해진다는 함은 그저 자기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작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약점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겸허함이며 이를 통해 더 높이 일어설 수 있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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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클럽
텐도 아라타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절판


내 안에서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간다.
언제부터였는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차라리 악마 같은 놈이 나타나서 이것과 이것을 가져가겠노라고 선언하고 빼앗아간 거라면 그나마 기억에 남았을 테고, 조금은 저항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깨달은 무렵에는 이미, 전혀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고 난 후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다른 것을 빼앗아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분명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을 매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빼앗긴 자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빼앗는 자가 되어 간다. -7~8쪽

그때는 분명 어렸지만, 소중한 것의 본질은 빠짐없이 존재했었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나마 그때 지키지 않았더라면 영영 되찾을 수 없었을 것도 많았다고 말할 수 있다. -10쪽

이제 뭘 할까 궁리하다가, 문득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5교시가 지리시간이었던 탓도 있다. 지도를 펼쳐 어디를 어떤 자원이 있고 어떤 무역이 활발한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같이 뭐 하나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은 점점 변해가는 이 세상에 과연 설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앞으로 내가 있을 곳이 정말 존재하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27쪽

단시오가 자살하고 싶다는 이유는, 실연이었다.
요즘 세상에 고작 그깟 이유로 죽으려는 거냐 싶다. 하지만 사실 이유야 뭐든 상관이 없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뚜렷한 동기라든가 이유 같은 것을 상실한 게 아닐까...
젊은 사람이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면 텔레비전이나 신문은 동기를 찾느라 야단법석이다. 하지만 다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대단한 이유를 갖고 살아가는지가 의심스럽다.
예를 들면 친구가 문자를 보냈는데 답문을 깜빡했을 때, 별거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심각하게 고민이 되면서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거나, 불경스럽지만 친구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부질없는 환상 같아도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 얼떨결에 실행해버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31쪽

뭔가를 버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타이밍을 놓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54쪽

마음속 풍경과 바깥 경치는 연결되어 있다... 직감으로 그렇게 느꼈을 때처럼 나는, 붕대를 감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까닭은 상처가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상처를 받았다'라고 인식하게 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건 상처야'라고 인정해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74쪽

이름이 생긴 거야, 시오. 우울했던 일, 납득이 안 갔던 일, 못 참을 일이라며 마음에 쌓아두었던 일들. 그 감정에 붕대를 감았더니 이름이 붙은 거야. '상처'라고 말야. 상처받으면 아프고 누구나 침울해지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래봤자 상처일 뿐이니까, 치료하면 언젠간 분명히 낫는 거잖아. -74쪽

"장난하냐? 그 정도야 다들 경험하는 흔한 추억이잖아."
"어. 그런 말 해도 되는 거야? 다들 경험하는 거라고 상처 안 받는 게 아니잖아? 자라온 환경, 성격이 다 다른데 설사 비슷한 경험이라도 받는 상처의 크기는 당연히 다르지 않겠어?
"그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단시오가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실의에 빠졌을 때 자주 그런 말을 하거든. 그런 일은 자기들도 겪었고 다들 있는 일이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격려한다고 해주는 말이긴 한데 괜히 모욕당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어."
"아, 나도 이해한다. 나만의 상처를 멋대로 남의 거랑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달라, 이런 느낌이지."
-127쪽

다들 겪는 일이라고 한데 묶어버리는 건, 상대방의 마음에 신경 써주기가 귀찮거나 내키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태만에서 온다고 봐. -128쪽

우리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항상 어느 대목에서 어떠한 이유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디노가 오니스가와 강의 강변에서 말했던 고통에 힘들어하는 수많은 아이들에 비하면 대부분 시시한 상처이겠지만, 역시 상처는 상처이고, 나름대로 답답해하고 잠 못 이루는 밤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 깨달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포함해서 자기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 역시 꽤 될 것이다. -130쪽

나라는 인간은 오만하다. 상처받는 건 나밖에 없고, 상처 주고 힘들어하는 것도 나밖에 없다고, 어느새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131쪽

다들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입고 산다. 그런 곳에 죄다 붕대를 감았다가는 분명 이 나라와 온 세상이 붕대투성이가 될 것이다... 문득 머릿속에, 붕대로 칭칭 감긴 지구가 떠올랐다. -149쪽

인간의 몸은 재생한다. 상처는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 하지만 마음은 어떨까? -15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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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 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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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이때 난생처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도 아주 자랑스러웠다. 처음엔 오기와 자존심 때문에 시작한 공부가 내 인생에 귀하고도 귀한 교훈을 남긴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나타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나 미련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 기간을 통해 얻은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란 목표는 높게, 계획은 치밀하게, 실천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후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의 원칙이 되었다. 이 원칙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세계 여행은 여전히 꿈으로만 남아 있을지 모른다. -22쪽

"왜 오지로만 여행을 다니나요?"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수없이 받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나로 하여금 배낭을 꾸리게 한다. 그러나 이 원동력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여행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해야 옳겠다.
이번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다.
"인생의 안정기를 생각해야 할 나이에 왜 이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나요?"
"인생의 전반부를 돌아보고 후반부 계획을 잘 세우기 위해서요."
이것이 내 여행에 대한 기대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나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조금씩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기를 기대했다. -31~2쪽

나는 편안한 삶을 포기한 대가와 단신 오지 여행이라는 달콤하지만 혹독한 수업료를 치르고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내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은 바로 나라는 것.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 바다가 고요할 때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나 나는 내 배의 키를 굳게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깊은 행복감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37쪽

'하고 싶은 일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 여행 원칙이며 내 인생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가기 어려운 곳이라도 갈 수 있으면 간다! 서울 가서 김 서방 찾으려면 찾는다! -53쪽

여행을 할 때는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 책자가 오히려 여행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경우가 있다. 책에 의존해서 그대로만 다니고, 그만큼만 체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여행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마르코 폴로나 리빙스턴 같은 탐험가의 마음으로 여행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설령 정보 부족으로 아주 중요하고도 신기한 것을 놓쳐버린다고 해도. -92쪽

될 수 있으면 현지인처럼 생활한다는 원칙. 이것이 내 여행의 기본이다. 겉으로 흉내만 내려고 한번 해보는 게 아니라 정말 현지인처럼 느껴보고 싶어서다.
이렇게 하면 현지인들은 한 발짝 성큼 내게 다가서며 마음의 문을 연다. 터키의 그 찻집에서도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121쪽

인간의 최대 과제가 행복을 찾는 일이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안에서 최대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닐까?
그 과정이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남들이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과 기준이 다르니까. -128~9쪽

"나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게 천성이자 직업이지만 내가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려고 해요. 친절도 도가 넘치면 버겁고 부담이 되는 건 물론 하고 나서도 내가 이만큼 해주었는데. 하는 마음이 생겨 어떤 형태로든 반대급부를 기대하게 되거든요. 우리의 구질적인 한국병 '섭섭증'은 여기서 비롯되는 거지요."
지금도 가끔씩 되새겨보는 이 말은 얼마나 옳은 얘긴지 모른다. 그러니까 섭섭하다는 감정은 생각대로 해주지 않는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기쁘게 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준 나 때문에 생기는 거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고 싶은 만큼만 하자. 그러면서 그 우러나는 마음의 폭과 깊이를 키우자.'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녀의 지론이 지켜진다면 세상을 사는 게 훨씬 쉽고 부드러워지리라.
-142~3쪽

실제로 중요한 것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얼만큼 왔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힘을 제대로 축적하면서 알맞은 속도로 가고 있는가라는 소중하고도 고마운 자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목표가 뚜렷하다면 남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가면서 무엇을 하는지 비교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 불경에서도 모든 번뇌의 근본은 남과 비교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180쪽

"인생은 단 한 번만 사는 거고. 게다가 얼마나 살지 예측할 수 없는 거요. 이런 귀한 인생을 누구 눈치 보거나 체면 따지는 데 낭비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믿게 되었죠."
지금은 중요하게 여겨질지 모르는 '남들과의 비교'는 나중에 인생을 되돌아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에 얽매여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거다.
여행이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 일생에서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여행 조건이 딱 갖추어지는 기회는 없다. 태어나서 30세 정도까지는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고, 30세부터 60세까지는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으며, 60이 넘어서는 돈과 시간은 있지만 여행할 힘이 없다고 강조한다. 조건을 기다리다가는 좋은 세월 다 보내고 늙어서 후회하기 십상이니 어느 때라도 적은 돈만 있으면 시간을 내, 여행이라는 또 하나의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200~1쪽

혼자 여행을 하면 자신이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혼자 결정하고, 그 모든 결정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와의 대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나를 잘 알아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수록, 어떤 일이 닥쳐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더해지는 것 같다. 자기에 대한 믿음, 이거야말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소득이 아닐까. 결국 이것이 인생을 사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테니까 말이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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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7-12-3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있는 책이죠. 고딩 때 한번 읽고 눈을 뗄 수가 없었던 :)

이매지 2007-12-30 21:30   좋아요 0 | URL
개정판이라 새로운 내용이 생겼나했는데
개정판 서문에 되도록 안 고쳤다고 해서 아쉬웠어요.
저도 이 책 예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ㅎ
나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은 있는데 말이죠^^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구판절판


역사란 실로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언제나 밤의 어둠을 틈타 습격을 가해 온다. -25쪽

"자네는 역사를 잊어버렸나. 저 역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돼. 잊어버리면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거야!"
나는 나도 모르게 반론했다.
"잊어버리지는 않았어요. 잊어버릴 리도 없죠. 단지 역사에 대한 당신들의 태도에는 찬성할 수 없을 뿐입니다. 당신들은 불공평합니다. 요루어쉐이는 몇 년 전에는 쉬허엉종보다 훨씬 커다란 권력을 쥐고 있었고 한 짓도 훨씬 악질이었어요. 대증들은 그에 대해서 대단히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자기비판도 시키지 않고 당위원회 사무국 주임을 맡겼죠? 그가 고참 간부라는 단지 그 이유 때문인가요? 게다가 당신들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유리한 역사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 불리한 역사는 말살하고 왜곡하려고 하고 있습니다."-30쪽

"내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소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너 역시 잘 알고 있잖아. 그건 자기를 상품화해서 사람들에게 고르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야."
"네가 고르는 것도 안 되는 거야?"
"안 돼. 나는 구매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어. 애정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면 안 돼. 눈꼽만큼이라도 사고 파는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야." -35쪽

프로이트라면 내 일기를 기꺼이 예로 들며 자기의 잠재의식에 관한 이론의 증거로 내세울 것이다. 그런 것쯤 아무래도 상관없다. 정상적인 형태가 정상적인 형태로서 표현될 수 없다면 변태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고난 천성이 억압당한다면 마음 깊숙이 숨어서 '잠재의식'이 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잠재의식'이 꼭 저급한 것은 아니다. '잠재의식'을 문학화하면 위대한 문학 작품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명사(名士)는 아니지만 만일 내가 명사였다면 이 일기 역시 '명저'가 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중국인은 항상 명사에게만 명언을 발하게 하고, 명저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고훈(古訓)을 지키고 있다. 낭만적인 것과 퇴폐적인 것은 대개의 경우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다른 점이라고는 그것이 어떤 사람의 것이냐는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46~7쪽

이 사건은 내 마음속의 사랑이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인간은 사랑할 힘만 있으면 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56쪽

"사람들은 모두 머리 위에 이슬 방울을 하나 얹고 있단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의 복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야."
할머니는 자주 별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인간도 별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존재할 장소와 권리를 갖고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별은 자기를 받쳐 주는 것이 없어도 하늘에 있다. 인간 역시 손잡아 줄 사람이 없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별이 빛나면 지상의 이슬까지도 빛나는 법이다. 이것이 내가 받아들인 최초의 철학이었다. -75~6쪽

"알았네. 인간성 전문가님. 하지만 그런 쪽의 문제는 언급하고 싶지 않아. 자네에게는 고전 문학에 대한 소질이 있으니까 그쪽 연구라도 하면 좋을 텐데."
"왜? 인간성과 휴머니즘의 문제는 금지 구역이기 때문에?"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금지 구역인 것은 아니지. 하지만 일부러 거기까지 산보하러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꽃은 적고 가시덤불만 많은 곳이니까. 자네는 왜 소수파 쪽으로 갈 필요가 있는가. '나무가 수풀보다 빼어나면 바람이 그것을 쓰러뜨리고, 행동이 타인보다 고아하면 대중이 그를 비방하리니' 이런 말들 몰라? 역시 남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구."
"호오, 자네는 개인주의의 꼬리를 정말로 산뜻하게 잘라 내 버렸군. 하지만 말해 두겠는데 자네처럼 소극적인 사람이 있으니까 소수자가 눈에 두드러지게 되는 법이야."-77~8쪽

우리들은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가. 나도 곧잘 혼잣말을 한다. 그런 버릇이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마음속의 '자기'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자기'와ㅣ 또 하나의 '자기'가 늘상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일수록 마음속의 '자기'가 많다. 그것이 그 사람과 힘을 합해서 고독을 이겨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까 그녀가 한 말은 무슨 의미인가. '젊은 사람의 행복이 부럽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완벽하게 행사할 수 있으니까.'라니? 이것은 그녀의 혼잣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말은 마음의 목소리이다. 그녀는 뭔가 부자유를 느끼고 있으며, 그녀의 머리 속에 터부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는 지금 선택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녀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터부인가? -125쪽

나는 평소에 여간해서는 울지 않는다. 남아는 눈물이 있어도 가볍게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로 아픔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끼니가 없어 우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훨씬 뒤의 일이었다. 사람은 각각 자질이 다르기 때문에 받는 상처도 다른 법이다. -126쪽

쑨위에!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을 잘 읽어 보라구. 되풀이해서 읽는 동안에 두 위인의 마음속에는 '인간'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씌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의 이론, 그의 실천은 모두 이 '인간'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 인간을 '인간'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모든 현상과 그 원인을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었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들 자칭 마르크스주의자 중에는 그 수단만을 기억하고 그 목적은 망각하거나 간과해 버리는 자도 있지. 마치 혁명의 목적이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고 인간의 가정을 파괴하며 사람들을 갖가지 울타리로 서로 격리시키는 것이기나 한 것처럼 말이야. 우리들은 봉건적인 경제적 등급을 소멸시킨 반면, 많은 정치적 등급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 말았어. -129쪽

보기 드문 날씨다. 붉은 복숭아 꽃과 유록빛 버들로 캠퍼스에는 봄이 넘치고 있다. 지금 한창 피어나고 있는 저 꽃들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 속을 걸어가는 저 남녀 학생들처럼 우리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꽃은 피었다가 진다. 일 년에 한 번. 사람은 청춘을 맞고 그리고는 늙어 간다. 일생에 한 번. -158쪽

인간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머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는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서 무슨 일에 있어서나 '왜?'라는 질문을 던져 왔노라고 말한다. 희극적으로 비극을 연기하고, 비극적으로 희극을 연기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저주하고 누구를 동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169쪽

자존심이란 허영심과 구별하기 어려워. 내가 말하는 자존심이란 것은 허영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그것을 버리기는 어려워. -196쪽

"희극이니 비극이니 생각할 필요가 없어. 지나간 일은 무엇이든지 내게는 이미 흐릿하기만 해. 역사니 뭐니 하는 것은 폐품처럼 끈으로 묶어서 구석에 내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그만이야. 뜨개질 역시 잘못 뜨면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뜨잖아. 뜨는 방법을 달리하면 그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물건이 되고 어느 누구에게도 원래의 형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지."
그녀는 내 비유에 자기도 모르게 웃었으나 금방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뜨개질은 실이 한 가닥뿐이지만 인간의 삶은 수십 가닥의 실이 서로 얽히거든."-206쪽

누구나 다 변해 가지. 변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저마다 '인간'의 소재에서부터 진정한 인간으로 변해 가는 거야. 다른 인생길이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다른 인간이 또다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지. 어떤 길에나 인간이 있고 어떤 인간 뒤에도 길이 있어.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인간에게는 부침이 있어. 길은 서로 교차되고 인간은 서로 부딪히지. 그것이 인생이야. -232쪽

너는 원래 피가 통하는 인간이다. 뛰는 심장을 갖고 있는 거야. 네 머리에는 뇌수가 가득 차 있어. 그러니까 생각할 수 있는 거지. 네 자신의 감각이 갖다주는 재료를 기초로 네 사상을 형성하고 네 판단을 내릴 수가 있는 거야. 네게는 입이 있어. 그러니까 자기의 마음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앵무새 같은 남의 흉내를 내지 않아도 좋은 거야. 과거에 너는 그것을 잊고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너는 기억해 낸 거야. 아니, 발견한 거지. 너는 원래 그러한 본능을 지니고 그러한 요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너는 의심과 두려움을 품고 수치심마저 느끼고 있지. 그건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야. -242쪽

"이상을 갖고 있으면 생활이 아무리 괴로워도 정신적으로는 편안한 법이군. 그것도 일종의 행복이야." 누군가가 말했다.
"치른 대가가 크군!"쉬허엉종도 감탄하며 말했다.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대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쑨위에가 굼꾸는 것처럼 말했다. 낮게 신음하듯이. -275`쪽

역사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인 말이지. 그러나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추진시키는 요인, 특히 인간은 구체적이고 복잡 다양하며 그야말로 신비로운 존재야. 더불어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질 사람을 우리가 기다려서는 왜 안된다는 거지? 한 민족의 역사, 한 시대의 역사는 수천 수만 명의역사가 보여서 만들어진 것이야. 그 모이는 과정에서 누구나가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자네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자네 혼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짊어질 생각인 거야? -345쪽

인생이라는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 버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지금 나는 인생의 갖가지 고통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인생의 가장 귀중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367쪽

운명의 신은 그 위력이 막강하다. 어떤 인물일지라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천재와 영웅들이 운명의 신에게 조롱당해 왔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했으며 자기를 부정하고 인간을 부정하게 해 왔던가.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에게 자각과 자존과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운명의 손에 맡겨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우리들이 자각과 자존과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그리고 만일 맡겨 버렸던 자기의 모든 것을 되찾는다면 우리들은 운명을 지배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지도,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과거'를 '오늘'의 자양분으로, 고통을 지혜의 원천으로 바꾸고 있다.(중략) 나는 청춘과 애정을 잃었지만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나는 열정이 불타고 난 뒤의 숯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를 따뜻이 데워 주고 내가 나아갈 길을 비춰 주기에 충분하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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