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의 문화수준이 어떤 대접을 받느냐 하는 문제는 사소한 일상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 학교에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한국이나 일몬 등 동양 아이들은 급식이 입에 맞지 않아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은 미국 학교에서도 좀 다른 대접을 받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김치는 고사하고 김밥도 거의 못 가지고 갑니다. 미국 아이들이 낯설어하고 이상하게 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일본 아이들은 당당히 아보카도를 넣은 일본식 김밥인 '롤'을 싸가지고 갑니다. 일본 음식점을 자주 찾는 미국인들은 롤을 무척 좋아합니다. 미국 아이들도 스시 같은 일본 음식은 최고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가 미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21~2쪽
예술의 출발은 돈이지만, 예술은 미다스의 손처럼 경제를 만듭니다. 예술과 문화를 얼마나 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대가도 달라집니다. -31쪽
뉴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문화는 크리에이션은 잘 못해도 참 크리에이티브합니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전혀 새로운 장르나 문화형태를 개척하는 데는 더딥니다. 그래도 미국 대중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문화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못해도 아이디어를 달리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부족해도, 변형은 무궁무진합니다. 이 변형이 바로 뉴욕 대중문화의 연쇄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냅니다. -42쪽
웹 2.0은 이렇게 이용자가 자유롭게 정보와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게 해주는 인터넷 서비스입니다. 기존의 웹1.0이 서비스 제공자가 만들어놓은 작품을 사용자들이 감상하는 수준이었다면, 웹2.0은 서비스 이용자가 백지 위에 원하는 작품을 마음대로 그리고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웹2.0에서는 단순한 뉴스와 정보가 아니라 비평과 여론이 유통되고, 단순히 관람하기 위한 예술과 대중문화가 아니라 보여주고 즐기기 위한 예술과 대중문화가 만들어지고 공유됩니다. 또 그냥 상품이 유통되는 게 아니라 그 상품에 녹아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유통됩니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과 아이콘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문화가 창조됩니다. 한마디로 웹2.0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전파되는 공간이자 놀이터입니다. 바로 거대한 '문화의 제국'입니다. -55쪽
전세계인이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 것은, 그가 단지 뛰어난 사업가이거나 일대 기술혁신을 가져온 테크노크라토(Technocrat)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세계 직장인들은 "미칠 정도로 멋진 제품을 창조하자"고 하는 잡스를 바로 자신의 멘토로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그의 연설에 감동하고, 그의 프리젠테이션에서 카리스마를 느낍니다. '청바지'로 대표되는 그의 정신에 매료됩니다. 바로 세계인의 소비문화를 바꾸는 개척자이기 때문에 잡스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65쪽
대표적인 문화기업 이미지를 가진 몇몇 기업을 보면서, 시작도 끝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화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문화적인 마인드를 가진 직원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제품과 서비스가 결국 회사를 문화적인 기업으로 만들어간다는 얘기지요. 기업 이미지나 제품을 문화적으로 포장하는 노력과 탁월한 문화마케팅이 비결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문화적인 마인드를 키우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 머릿속에 문화적 영감이나 상상력을 채워넣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회사는 직원들에게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주말까지 끼워 연수원에 불러다 앉혀놓고 빡빡한 일정으로 교육시켜봤자 남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더 비문화적이고 더 수동적으로 만들 뿐입니다. -107~8쪽
'샌드위치 한국'이 '딜리셔스 한국'이 되려면, 관건은 문화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성장력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생산성이라고 했습니다. 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을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노동과 자본 투입량이 같아도 산출량이 크다면 생산성이 높은 것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생산성은 얼마나 좋은 기술을 가졌느냐에 의해 좌우됐습니다. 그러나 문화적 언어로 소통되는 문화제국에서 생산성은 얼마나 유연한 문화 환경과 콘텐츠를 가졌느냐에 의해 좌우됩니다. 한국의 수많은 시든 양상추 샌드위치 직장인이 딜리셔스해지기 위해서도 관건은 역시 문화경쟁력입니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경제적인 능력이 문화수준까지 규정했다면, 앞으로는 문화수준이 개인의 경제능력을 좌우하게 됩니다. -121쪽
한국 사람들은 '문화'라는 말이 나오면 '나이'라는 색깔부터 먼저 규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문화' '당신들만의 문화'로 나눕니다. 문화를 접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채널을 보아나 이효리를 연신 보여주고, 또 어떤 채널은 30~40대를 마치 노인네 취급하듯 '7080콘서트'라고 이름 붙여버립니다. 또 50대 이상이 되면 설운도나 태진아만 나오는 <가요무대>만 봐야할 것 같습니다. 문화평론가들은 "외로운 30~40대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줘야 한다"고 점잖게 칼럼을 씁니다. "요즘 대중문화는 온통 10대에 국한되어 30~40대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문화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30~40대가 10대 문화에 근접하기 어려우니, 30~40대용 문화를 많이 만들어내는 게 문화생산자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대체 문화에 나이가 어디 있습니까? 박진영은 나이가 마흔이 다 돼가지만 GOD를 만들고, 비를 만들고, 원더걸스를 만들었습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거의 비슷한 스토리와 의상과 노래로 20년째 매주 8회씩 공연되고 있습니다. -124~5쪽
문화는 최신유행과는 다릅니다. 반짝하고 치우는 트렌드와도 다릅니다. 오히려 문화를 나이로 구분하거나, 반대로 세대를 문화로 구분하는 시도 자체가 반(反) 문화적인 것 아닙니까? 물론 세대간 정서차이가 없을 수는 없겠죠.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느끼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과 젊은 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또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대화 자체가 안 된다'며 답답해하고, 다른 세대보다 '더 상처받고 있다'는 억울함으로 꽁꽁 웅크려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문화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대간 문화의 동맥경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뉴욕의 문화가 번창한 것은 단지 보여줄 그림과 공연이 많아서만이 아닙니다. 나이 불문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라이언킹>보러 가는 어른관객이 많아지면 더 좋은 공연이 계속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125~6쪽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게 상품화되면서, 꼭 돈 주고 표 사서 들어가야만 문화마인드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적 마인드의 본질은 "당신, 해봤어?" "얼마나 해봤어?" 식의 질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안 해보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에 있습니다. 다른 문화, 새로운 것, 비주류에 대한 포용력과 호기심 말입니다. 잭슨 폴록의 난해한 그림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목조목 분석하고 공부한 예술이론이 아닙니다. 그건 미술전문가의 몫입니다. 폴록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정신세계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폴록의 기존 그림기법에 대한 반항, 기존 틀을 엎어버리고자 하는 갈망과 자유의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상상력과 감성, 그리고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문화의 텃밭에서 자라는 것은 바로 이런 유연성 때문입니다. -1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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