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는 혼자다 1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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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클래스, 그들은 초조하지 않는다. 두려울 것도 없다. 또 배신을 용서하지도 않는다. 각자가 지켜야 할 규칙을 알고 있고, 그 안에 머문다. 세간에 떠도는 전설과는 달리, 슈퍼클래스가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은 서로 짓밟고 올라선 결과가 아니다. 그들이 어떤 예기치못한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더라도-영화든 음악이든 패션이든 분야에 상관없이-그들 자신의 필요에 의한 철저한 연구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이런 호텔 바에서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21쪽

이고르는 대화할 상대가 아무도 없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는 승자다. 승자는 외로운 법이다. -23쪽

"이 영화제에 오는 건 백만장자들뿐인가?"
"백만장자들 말고도 스스로 백만장자라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오죠. 영화제 기간 동안 칸의 이쪽 동네는 꼭 정신병원처럼 변해요. 모두가 마치 자신이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죠. 정말로 중요한 인물들은 빼놓고요. 그분들은 내가 파는 것을 항상 사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미소를 짓거나 상냥한 말을 건네고, 나를 아주 정중히 대해줘요. 근데 당신은요? 당신은 무얼 하러 여기 오셨죠?"
"하느님은 엿새 만에 세계를 창조했지. 그런데 세계란 뭐지? 그건 당신이나 내가 보는 것들이오.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우주의 한 부분 역시 죽는다고 할 수 있지. 한 인간이 보고 느끼고 체험한 모든 것들이 그와 더불어 사라져버리는 거야. 눈물이 빗물에 섞여 사라지듯이."
"눈물이 빗물에 섞여 사라지듯이... 아! 그 말, 어떤 영화에서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떤 영화였는지는 생각 안 나지만."
"하지만 난 울기 위해 여기 온 건 아니야. 사랑하는 여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왔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 몇 개의 우주, 혹은 몇 개의 세계를 파괴해야 해."-39~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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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구판절판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물론 없었다. 이 사회는 아직 과도기라 그 나름의 단점이 있었다. MGB 간부인 레오는 의무적으로 레닌의 저작을 공부해야 했는데, 사실 전 시민의 의무이기도 했다. 빈곤과 결핍이 사라진 것처럼 사회 불안정으로 발생하는 범죄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임을 레오는 알고 있었다. 다만 아직 안정기에 다다르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댔고, 술에 취해 벌인 말다툼이 주먹다짐으로 변하기도 했으며, 범죄자들의 갱단인 우르키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어야 했다. 이 사건을 살인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짓인 것이다. 레오는 상사이자 스승인 야누슈 쿠즈민 총경이 해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1937년 열린 재판에서 피고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믿음을 잃은 것이 바로 죄다. -37~8쪽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이 가장 의심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쿠즈민은 스탈린의 유명한 잠언을 이용했다.

믿되 조사하라.

스탈린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믿는 이들을 조사하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나 의심스런 사람이나 똑같이 철저하게 조사하기 때문에 일종의 평등이 존재한다는 논리다.
조사관의 의무는 유죄가 드러날 때까지 결백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캐는 것이다. 어떤 죄도 찾지 못했다면 그만큼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55~6쪽

진실보다 더 끈질긴 건 없어. 그래서 당신이 진실을 그렇게 증오하는 거야. 진실 때문에 당신 기분이 더러워지는 거지. 그래서 나, 아나톨리 타라소비치 브로츠키가 수의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화나게 할 수 있는 거야. 당신은 내가 유죄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내 결백이 화가 나는 거야. 나를 체포했기 때문에 내가 유죄이기를 바라는 거야. -106쪽

아나톨리는 무고하게 잡힌 사람이었다. 꼭 있어야 하고, 중요한 사람이지만, 오류도 저지르는 국가란 기계의 톱니바퀴에 눌려 으깨져버렸다. 아나톨리 사건은 이처럼 단순하면서 불운한 일일 뿐이었다. 사람 하나가 그들이 수행하는 작전의 의미를 약화시키지는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들의 근무 원칙은 계속 공고하게 남아 있다. 국가를 지키는 것은 한 사람보다 더 중요하고, 천 명의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공장과 기계와 군대들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들에 비하면 일반 대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상황의 경중을 따지는 일은 그의 업무에 필수적이다. 계속 이 일을 하려면 이런 식으로 사태의 경중을 잘 판단해야 했다. 이론은 그럴싸했지만 사실 하나도 믿지 않았다. -130쪽

줄 하나로 생사가 갈리는 그것이 바로 이 나라의 사법 체계였다. 눈을 감은 레오는 루비안카의 복도에서 들은 억누른 공포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의 도덕적인 나침반은 너무나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북쪽이 남쪽이 됐고 동쪽이 서쪽이 됐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면 답이 없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런 불안한 시기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행동 방침은 가능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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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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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사람들이 아무도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평생 그 시대로부터 따돌림당했으니 그는 고산자孤山子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그 뜻이 드높았으니 그는 고산자高山子요, 사람으로서 그의 염원이 최종적으로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산을 닮고, 그 옛산에 기대어 살고 싶어했으니, 그는 고산자古山子라고도 했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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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0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산자라면 혹 대동여지도를 만드신 그분의 호인가요? 기억이 가물가물....

이매지 2009-07-04 12:17   좋아요 0 | URL
넵.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님 맞아요^^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변종모 지음 / 달 / 2009년 6월
절판


나는 이제 여행자다. 길 위에서 생겨나게 될 모든 세상의 것들과 대면하고 돌아온 자리에서 다시 그것들을 그리워할 테지만 내 그리운 것들과 만나고 그것들 만나기 위해서 지금과는 멀어져 있는 현실을 만나러 가는 여행자다. -22쪽

잘못된 과거란 없다. 다만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재가 있을 뿐. 아픈 것도 내 추억이며 슬픈 일도 내 추억인데 왜 말하지 못하고 왜 울지 못했던가? 나는 그렇게 우는 연습도 제대로 못한 채 어설픈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겁하고 나약한 마음이 새벽 강가의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27쪽

그래 어쩌면 이것이 올해의 마지막 행운인지도 몰라. 어쩌면 생애 처음 생긴 행운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계획에 없던 일이었으므로, 행운이란 계획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것 또한 누가 장담하랴. 아무도 모르는 세상. 지금처럼 살다보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무수한 것들이 있을 텐데. 기대하지 말고 만나자. 그러다가 다가온 행운 앞에 살짝 웃어주며 바라보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38쪽

사랑은 속으로 상처를 내는 일이다. 그 상처가 단단해져 행복하거나 시들어 병들어 가는 것. 오래된 것들은 사라지고 없어질 줄 알았으나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일이 분명 있다. -49쪽

모든 상황이나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고 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 과거에는 행복이었다가 현재에는 독약이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눅눅한 나의 마음에 습기를 가하는 이 8번 방이 어쩌면 누군가에겐 행운의 방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53쪽

낯선 곳에서 길을 잃게 된다면 자신이 잃어버린 정보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곳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것들에 대하여 여유로운 마음으로 침착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준비한 정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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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절판


그렇다. 나는 끔찍한 비극을 겪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했다. 충격, 슬픔, 분노, 공포...... 이 모든 것이 나를 성난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가 내 마음을 폐허로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것은 세상, 그리고 사람과의 괴리감이었던 것 같다. 그후 몇 주 동안 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나의 신념을 꺾어야 한대도 진정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내게 보통 남자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아내와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내가 간호사와 약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해도, 만약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보내야 한다 해도 내가 여전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13쪽

우리의 인생에 닥친 이런 예기치 못한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이 반응에 따라 나의 반응도 달라진다. 주변 사람들이 불안해하면 나도 불안했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나를 보살펴주면 나는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지쳤을 때 내가 그들을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치유했다.
사고 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감정은 전염된다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느끼지 못한 감정까지도 옮겨진다. -16~7쪽

비틀즈는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에게는 오직 사랑만이 필요해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반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가사는 완벽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요." 받기만 하는 사랑과 주기만 하는 사랑, 믿음직한 사랑과 배신한 사랑, 어떤 식의 사랑이건 이 세상의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꾼다. 그리고 순수하고 솔직하며 이타적인 사랑보다 더 깊고 진실한 사랑은 없다. -22쪽

사랑이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순수하게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그들도 우리를 그만큼 사랑할지, 또 그들이 행복한지 애태우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심이 '그들을 아끼는 방법'의 하나라거나 '그들의 인생을 위한 고민'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그들을 개조하려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근심에 지나지 않는다. 내 기분이 나아질 것 같기 때문에 그들을 바꾸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안일 뿐이다. -23쪽

어쩌면 우리는 손에 쥔 것을 더 많이 놓을수록 더 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불안과 욕망, 희망이나 분노와 같은 모든 감정을 뛰어넘는다. 사랑은 마음을 완전히 열어야 오는 것이며 그 무엇도 요구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우리를 어지럽히는 모든 바람과 욕망 들이 잠잠해질 때, 우리가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별로 없을 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일 때, 사랑은 조용히 우리를 찾아온다. -28~9쪽

우리는 계속 나만의 이론을 꼭 쥐고 있으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항상 믿어왔던 이론을 손에서 놓으려 할 때는 기존의 신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다른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내 안의 탄성을 믿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 -42~3쪽

우리는 살면서 항상 상처받지만 그 상처는 항상 치유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52쪽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내가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머니가 내게는 여성도,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분은 그저 어머니였다. 나는 늘 언젠가는 어머니가 나를 알아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어머니는 더이상 나를 알 수 없을 것이고 나 또한 어머니를 알지 못할 것이다. -63~4쪽

어미니의 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나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관계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상대의 마음에서 온기를 느끼지 못한다.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분노하거나 미래에 겪게 될 상처를 두려워할 뿐이다. 혹은 서로를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 소용도 없었던 지난 세월의 불만과 짜증만을 실감한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그저 손만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속에는 진한 슬품이 차오른다. -68쪽

내가 이 일을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일까?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 평화로운 사람이 되고 그에 대한 말은 삼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늘 편견 없이 너그럽게 대하길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한다. 내가 칼럼을 쓰면서 그랬던 것처럼 주먹을 꽉 쥐고 흔들며 평화를 옹호한다면 언제나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인 사람밖에는 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을 잃게 된다. -7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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