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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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빈과 키티는 이날 저녁에 특히 자기들은 사랑받고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행복하다는 것은 똑같은 것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이룰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불쾌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39쪽

"부정한 수단, 교활한 방법에 의한 이득은," 레빈은 옳고 그름의 경계를 분명히 규정할 권위가 자기에게 없음을 느끼면서도 말했다. "말하자면 은행의 이득과 같은 것은" 하고 그는 계속했다. "그것은 악이야. 노력 없이 수만의 부를 획득한다는 것은 징세대리권의 경우와 마찬가지이고 그저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야. '국왕은 갔도다, 그러나 다른 왕은 건재한다'와 같은 논리야! 즉, 겨우 징세대리권이 폐지하자마자 재빨리 철도며 은행이 나타난 거야. 마찬가지로 노력이 들지 않는 돈벌이가 말야."-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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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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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입니다" 하고 콘스탄틴은 말했다. "어떤 활동이라도 개인적인 이익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면 공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진리, 철학적인 진리입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자기한테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철학을 논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철학적'이라는 말에 특히 힘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에게도 역시 자신의 성향에 충실한 일종의 철학이 있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뭐, 철학이니 하는 얘긴 그만두는 게 좋아." 그는 말했다. "원래 모든 세기에 걸쳐 철학이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관련을 찾아내는 데 있으니까 말이지. (후략)"-27쪽

"아아, 아냐!" 레빈은 언짢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학교에서 농민을 계발한다는 것이 꼭 이 요법과 마찬가지라는 거야. 농민은 가난하고 무지해. 이것을 우린, 그 아낙네가 어린애가 울기 때문에 병이 났음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알고 있어. 그러나 어떻게 이 빈곤과 무지라는 불행에서 학교가 농민을 구해낼까 하는 것은, 닭장 속 홰 위의 암탉들이 어떻게 경기를 치료하는가를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해하단 말야.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농민이 가난하게 되는 원인 그 자체에 있지 않은가 말야. -199~200쪽

죽음, 모든 것의 피할 수 없는 종결이 처음으로 불가항력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 죽음, 잠결에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습관처럼 하느님을 부르기도 하고 '빌어먹을!' 하고 외치기도 하면서 신음하고 있는 사랑하는 형의 내부에 있는 죽음은 결코 지금까지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인연이 먼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신 속에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느꼈다.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삼 년 후, 아무려나 결국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나 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그것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한 번도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일이 없었고, 생각해볼 만큼의 능력도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난 일을 하고 있다. 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어한다. 그러나 난 잊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죽음이 있다는 것을.'-221쪽

레빈은 자기가 요즈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얘기했다. 그는 무엇을 보든지 그 속에서 죽음이나 혹은 죽음에의 접근만을 보았다. 그러나 그가 계획한 일은 더욱더 강하게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이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228쪽

그무렵에 그는 자기를 불행하게 여기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행복이 그의 앞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최상의 행복은 이미 과거의 것이 돼버린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전혀 그가 처음보았을 무렵의 그녀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쁜 쪽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온몸이 턱 퍼져버렸고, 방금 전 그 여배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는 얼굴에 미모를 찌그러뜨리는 앙칼스러운 표정이 나타날 정도였다. 그는 아름다운 꽃을 사랑한 나머지 꺾어서 못 쓰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겨우 그 아름다움을 깨닫고, 이제는 자기의 수중에서 시들어버린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사랑이 훨씬 강렬했었고 굳이 원한다면 자기의 심장에서 그 사랑을 뽑아내버릴 수도 있으리라고 느꼈던 예전보다도, 오히려 그녀에 대해 조금도 사랑을 느끼고 있지 않는 듯한 지금에 와서야 자기와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깨뜨릴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41~2쪽

"정말 어쩌면 저렇게 토론을 좋아하는 부늘이 다 있죠? 어차피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도 없을 텐데요."
"그래요. 정말이에요." 레빈은 말했다. "단지 상대방이 이야기하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별없이 열을 내어 토론을 하는 일이 흔히 있게 마련이니까요."-315쪽

레빈은 종종 가장 현명한 사람들 사이의 논쟁에서도 엄청난 노력과 거창한 논리적 기교와 말을 마구 늘어놓은 뒤에야 자기들이 오랜 시간을 허비해서 서로 논증하고 있었던 내용은 이미 오래 전 토론을 시작할 때부터 쌍방에게 알려져 있었음을, 그러나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반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음을 감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 종종 남과 한창 토론하다가 부지중에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똑똑히 이해하게 되고 갑자기 자신도 그것이 좋아져서 얼른 상대방에게 동의해버리는, 그리하여 그때까지의 논쟁이 모두 전혀 무용하게 돼버리는 경우도 경험한 바 있었다. 그러나 따로는 그와 반대로 자기 논증의 근저가 되고 있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마침내 드러내어 훌륭하고 절실하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갑자기 그것에 동의하고 논쟁을 그쳐버리는 경우도 흔히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315쪽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직접 그 작은 배에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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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10-01-0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해에도 많은 책들을 즐기자구요. ㅋㅋ

이매지 2010-01-01 21:38   좋아요 0 | URL
미미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올 한해도 열독해요! ㅎㅎ
 
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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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가장 착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삶이 주는 일반적인 해답 이외에는. 그 해답이란 이렇다. 사람은 그날그날의 요구에 따라 살아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꿈을 꾸어 잊는다는 것은 적어도 밤이 되기 전까지는 바랄 수 없다. 이제 목이 긴 병의 여인들이 부르던 그 노래가 있는 곳으로는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는 현실에서의 꿈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17쪽

"아니야. 어떤 경우에도 처녀에게는 그런 게 조금도 두려운 일이 아냐. 어떤 처녀든 청혼을 받으면 뽐내게 마련이니까."
"그래. 어떤 처녀든 말이지. 그렇지만 그녀만은 예외야."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빙그레 웃었다. 그는 레빈의 이런 감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레빈에게는 세상의 모든 처녀가 명백히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한 부류에는 키티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처녀들이 속해 있고,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온갖 약점을 지닌, 말하자면 아주 범상한 처녀들이었다. 그리고 또다른 부류는 약점이라곤 전혀 없는, 모든 인간성을 초월한 오직 그녀 한 사람뿐인 것이다. -81쪽

세상에는 자기의 운좋은 경쟁자를 만나면 언제나 상대가 지닌 일체의 장점은 외면하고 그저 단점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과, 그와는 반대로 경쟁자에게서 자기보다 뛰어난 구석을 발견하려는 생각으로 마음이 옥죄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저 장점만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레빈은 후자에 속했다. -106쪽

그는 키티에 대한 자기의 행위가 일정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는 것, 바로 결혼하려는 의사 없이 처녀를 유혹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유혹이야말로 그처럼 화려하고 젊은 남자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하나라는 것을 몰랐다. 그에게는 자기가 이러한 만족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만족스런 발견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118~9쪽

인생을 답답하게 생각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지난 일을 되씹는 건 천치 같은 짓이다. 우리들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다 나은, 훨씬 좋은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193쪽

"뭐든 재미있는, 악의 없는 얘길 들려주세요." 영어로 'small talk(잡담)'라고 불리는 아담한 얘기에 능란한 공사부인은 역시 무슨 얘기를 꺼낼까 망설이고 있던 외교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게 가장 어렵다는 거예요. 독기가 있는 얘기만이 재미있는 것이니까요." 그는 웃는 낯으로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디 한번 해보겠습니다. 화제를 내봐주세요. 무슨 일이든지 화제 나름 아니겠어요. 화제만 내주시면 그것을 짜나가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난 이따금 생각하지만, 전대의 재담꾼이라는 사람들도 오늘날에는 좀 기지가 있는 얘길 하려면 여간 힘들지 않을 거예요. 재치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곧 싫증나기 쉬운 것이니까요......"
"그것도 꽤 해묵은 얘긴데요." 공사부인이 웃으면서 그의 얘기를 가로막았다.
얘기는 품위 있게 시작되었으나 너무 지나치게 품위 있었기 때문에 이내 또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바뀔 일이 없는 확실한 방법인 험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264~5쪽

난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사람의 머리가 각기 다르듯이 생각도 다르다고 한다면, 마음이 각기 다른 만큼 사랑의 종류도 다를 것이라고요.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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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7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7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7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7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8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09-12-1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밑줄이 막 늘어나고 있네요!

앗! 위에서 세번째 밑줄부분이 화악~ 기억에 떠올라요. 저도 예전에 저부분에 밑줄 그었던 기억이!!!

이매지 2009-12-17 23:52   좋아요 0 | URL
오오. 같은 부분에 밑줄을! ㅎㅎ
초반에는 살짝 헤맸는데 슬슬 속도가 붙네요 :)

2009-12-19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0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12-27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안나 카레니나 어때요? 속도가 붙어서 결국은 아주 근사한 책읽기가 되었나요? 궁금해요!!

이매지 2009-12-27 21:4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까지 줄야근에 특근까지 하는 바람에 책 읽을 시간이 없었어요 ㅠ_ㅠ 아직도 1권에서 헤매고 있어요 ㅎㅎㅎ 다 읽고 알려드릴께요!
 
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절판


그렇다. 편집자마다 '고유의 스타일'은 필수다. 이는 '아류'가 되지 않으려는 정신과 닿는다. '일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허영처럼 보인다. '이류', '삼류'의 콤플렉스가 묻은 자학은 소모적이다. 이류, 삼류보다 치명적으로 낮은 등급은 '아류'다. 창조적인 편집자가 되는 과정은 바로 '아류'를 극복하는 태도와 궤를 같이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남들 다 가는 길로 가지 않고 남들 다 하는 대로 따라 하면 재미없다. 다중에게 권위를 부여받은 스타일은 참고의 대상일 뿐이다. -9쪽

인생이란 지난한 편집의 과정이다. 어떤 분야의 공부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 것인가? 학력의 편집이다. 무슨 일로 밥벌이를 할 것인가? 직업의 편집이다. 누구와 결혼하고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지는 가족관계의 편집이다. 오늘 점심을 누구와 어디서 어떤 메뉴로 먹을지 결정하는 일, 역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의 편집 행위 가운데 하나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려내고, 중요한 것을 선택해 기획하여 실천하는 일, 삶은 그러한 편집의 반복이다. -20쪽

똥은 똥이고, 된장은 된장이다. 재미있는 매체 편집을 지향한다 해도, 똥과 된장의 경계를 구별할 수 없다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온 강마에의 대사처럼 '똥덩어리'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악취 풍기는 재미는 재미가 아니다. -41쪽

좋은 헤드라인을 위한 10-10-10 훈련법

1. 하나의 헤드라인을 10가지 종류로 뽑아보라.
2. 하나의 헤드라인을 10자 이내로 뽑아보라.
3. 하나의 헤드라인을 뽑아보고, 쉽게 뽑았다고 생각될 때까지 10번을 고쳐보라.

안주하지 않으면 '조금 더' 좋은 헤드라인이 나온다. 만족스런 헤드라인이 나올 때까지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보라. 머리에 쥐가 날 때쯤 엉망진창으로 정리 불가능하던 헤드라인이 차츰 다듬어지는 기적을 보게 되리라. -54쪽

신문과 잡지를 펼쳐들고 느낌표, 물음표, 작은따옴표, 쉼표 등이 얼마나 많은지, 적재적소에 들어갔는지를 살펴보자. 불필요한 문장부호를 최대한 생략한다는 기준으로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리라. 문장부호, 많으면 공해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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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3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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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종이에 쓰는 수평적 행위를 통해 한때 사랑했던 이의 심장을 겨누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마음에 담았던 이에 대한 험한 말들을 자신의 필적으로 남기고 싶은 이는 별로 없다.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는 편지는 수십 번 썼다 지우게 마련이다. 연서를 쓸 때 그러했듯, 그 편지를 쓰는 시간도 으레 밤이다. 찢어버린 종이가 수북이 쌓이는 동안 날이 새고, 날 섰던 감정의 결도 얌전히 가라앉는다. 이별을 말하는 편지가 대개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잔뜩 성난 손가락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는 수직적 행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묵히지 않은 감정을 실어 매섭게 내리 꽂는 손가락들이 만들어내는 한 자, 한 자가 그대로 비수가 되어 상대의 가슴에 박힌다. 보내는 자는 인쇄체로 찍히는 말들에 대해 너그럽다. 받는 자는 무미(無味)한 그 자형(字形) 때문에 더욱 상처받는다. 홧김에 발신 버튼을 누르는 순간 메일이 발송된다. 그 어떤 손의 온기도 느껴보지 않은 말들이 차갑게 점멸하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수신인의 동공을 찌르는 것은 순간이다. 문자나 이메일로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53~4쪽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이 나이에 누군가의 첫사랑으로 평생 가슴에 남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유는 물론 부담스러워서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갖는 기대를 생각해보라! 한 회사 동료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빨리 수능시험 보고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데, 상대는 이제 막 성문 기본 영어책을 펼쳐들었을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나는 이제 누군가의 첫사랑이기보다는 '마지막 사랑'이고 싶고,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보다는 다른 여자들에게 충분히 길들여져서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처럼 반들반들 묵직하게 윤나는 남자가 좋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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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1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첫번째 부분 읽고 <무진기행>을 바로 장바구니로 직행시켰답니다.

이매지 2009-12-11 23:22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브론테님의 페이퍼를 보고 읽기로 결심했어요 ㅎㅎ <무진기행>은 정말 좋다는 말 밖에는 :)
저는 새삼 <위대한 개츠비>가 읽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09-12-1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진기행]을 가지고 있지만 읽지않고 쌓아두기만 했다는.....( '') 먼 산.

이매지 2009-12-12 01:2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이 참에 보심이 ㅎㅎ

... 2009-12-12 01:52   좋아요 0 | URL
우리 함께 <무진기행>과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 보아요~
이 야심한 새벽에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매우 난해한 <아우라>를 읽고 있는 1인

이매지 2009-12-12 20:06   좋아요 0 | URL
<아우라> 제목부터 아우라가 느껴지는 ㅋㅋㅋ
저는 달밤에 주말에 봐야 할 교정지를 보면서 고통스러워했지요 -ㅅ-;;;;;

2009-12-12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2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