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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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의 저력을 찾는 글들로 엮여 있다. 조선인들의 삶의 양식, 생각, 제도 중에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주제를 다루어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사람들은 조선이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근대로의 전환은 시험에 합격, 불합격을 따지듯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일부만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조선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명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를 자신들의 미래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설정하지 않은 목표나 결과에 어찌 실패와 성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길 가다 강도를 만나 상해를 당하면 그 사람에게 운이 없다고 하지, 그 사람이 실패했다고는 하지 않는다.-5~6쪽

이왕의 조선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이나 해석에 동의하지 못하는 데가 꽤 있기 때문에, 즉 조선 역사에 깨진 데가 많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썼기 때문에, 독자가 읽다보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나 해석과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독자들이 내가 '범凡식민주의'라고 부르는 '식민주의'와 '근대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할지도 모른다. 흔히 "진실은 불편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에 기대어 나의 견해를 합리화할 생각은 없다. 그건 오해이기 때문이다. "정작 불편한 것은 편견이다."-13쪽

치자인 국왕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기능인이나 전문가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 잘하기를 바라지 말라(無求備於一人)'는 점에서 보면, 관리는 기능인이자 전문가여야 한다. 그러나 '군자는 한 방면에만 치우치는 전문가여서는 안 된다(君子不器)'는 관점에서 보면, 치자는 '다 잘해야 한다(不器)'. 그런데 '다 잘해야 한다'니! 어떻게 영어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고 100미터도 잘뛰나? 어떻게 국방도 잘하고 외교도 잘하고 교육도 잘하나? 이게 다기多器(다재다능)지, 어떻게 불기不器가 되나?
그러나 옳은 말이다. 달리 말하면, '군자란 전문성으로 평가될 수 있는 차원의 인격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두 측면이 있다. 여러 방면에서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는 내공이 그 하나이다. 상황과 조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감각과 몸의 훈련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둘째는, 그 내공이 갖는 보편적인 지향이다. 그리고 둘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것이 군자이다. 대개 소인은, 보편적 지향이 결여된 내공만 있는 경우가 많다.-39~40쪽

성군이란 호칭은 임금이 성인이란 뜻인데,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가. 아니다. '내성외왕內聖外王', 곧 유가에서 왕은 성인이어야 했다. 그것은 훈련, 공부를 통해서 달성된다. 지금은 성인이 아니라도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군주의 덕성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사회는 이런 군주가 가져야 할 이상적 인격을 경연이란 제도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41쪽

실록의 묘미는 아무나 볼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국왕은 물론이고, 사관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기록이었다. 조선 양반 관료제가 자정성自淨性을 유지할 수 있었던 큰 힘이 바로 이 실록에 있었다. 역사라는 심판관이 쥔 판결문을 아무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61쪽

방납은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대신 내주고, 그 대가를 받아 이득을 취하는 행위이다. '생산되지 않는 공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방납도 있지만, 이득을 노리고 농간을 부려 민폐를 끼치는 방납도 있다. 종래에는 방납이 으레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운운하면서 조선 후기의 '봉건제 해체기 양상'의 하나로 다루어졌다. 물론, 방납이 '상품화폐경제'를 발달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방납은 공납제라는 부세제도의 부산물(이었다가 구조가 된 현상)로 보는 것이 옳다. -143쪽

700년 가까우누 긴 시간 동안 동아시아의 사상계를 주도했던 탓인지, 주자에서 집대성된 성리학에 대해 사람들은 선입견이 있는 듯하다. 마치 주자의 시대에 이미 성리학이 주도 이념이었던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그리고 이 오해에는 좀 생각해보여야 할 데가 있다.
우선 오랜 기간 주도 이념이었다는 것이 이런 오해의 직접적인 이유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성리학이 주도 이념이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언짢음에서 나오는 오해처럼 보인다. 여기에도 근대주의적 콤플렉스가 작동한다. 망국에 이르게 한 사상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발생사적 접근이나 이해를 미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꺼풀을 벗어던져야 한다. -164쪽

조선문명의 성격은 분명히 평화적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하면 "당하고만 사는 게 무슨 평화주의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지만,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역사상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부'와 '강'일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은 돈이 얼마나 있어야 만족하는가 하는 질문과 같다. 과연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부'와 '강'으로 사회의 평안과 행복의 척도를 삼으려고 했다면, 그건 줄을 잘못 서도 한참 잘못 선 셈이다. 그것은 단지 '어떤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조건, 그것도 '조절되어야 할 조건'의 하나일 뿐이다. -218~9쪽

그런데 역사 연구에서 조심해야 할 두 가지 병폐가 있다. 하나는 천박한 역사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쓰는 글이다. 천박한 역사의식이란 자신의 인간 이해에 상응하는 사료를 편한 대로 주워 모아서 역사상을 구성하는 일이다. 특히 인물의 이해에서 이런 식의 서술이 많지만, 꼭 인물 연구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흔히 인물은 그가 활동하는 역사무대가 있고 거기서 사건이 펼쳐지기 때문에 곧장 역사상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개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몇 가지 이유를 이리저리 고민, 갈등하는 과정을 통해 차츰 마음 놓고 보여줄 수 있는 역사상에 도달하는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 때문에 간단명료하다. 그래서 쉽다. 더욱이 이런 결론이나 관점이 기존 대중들의 관점과 부합하는 데가 있으면 한층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 역사학의 포퓰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하다. 이는 역사상을 구성하는 사건이나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검토를 거치지 않는 단순화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다.-248~9쪽

한편 포퓰리즘은 역으로 필자 자신의 관점과 해석을 강화한다. 대중의 호의가 그에게는 이제 독이 된다. 아니, 어쩌면 알게 모르게 필자는 독자의 달콤한 독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필자에 대한 독자의 호의는 언제나 경계할 일이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긴장이 사라지는 순간이 쇠락의 시작일지니.
아무튼 현상적인 인과성 또는 연관성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은 사료의 선택과, 그에 따른 역사상의 구성이 습관화되면서 필자는 미다스의 손을 갖게 된다. 단장취의나 견강부회라는 말이 어울리는 글이 되고, 그래서 결국 이제는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내가 경계 삼아 가진 지론이 있다. 역사상을 완벽하게 재구성해주는 사료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원하는 역사상을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사료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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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3-1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재미있네요^^

이매지 2010-03-16 09:24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
그렇게 무겁지 않고 괜찮네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구판절판


알겠니. 여자란 시도 때도 없이 철권을 취둘러서는 안돼.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성인군자는 그야말로 한 줌, 남은 건 썩은 못된 놈이든가 멍청이든가, 아니면 썩은 못된 놈이면서 멍청이야. 그러니까 때로는 그러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철권을 휘두르게 되지. 그럴 때는 내가 가르쳐준 친구펀치를 써. 굳게 쥔 주먹에는 사랑이 없지만 친구펀치에는 사랑이 있어. 사랑이 가득 찬 친구펀치를 구사하며 우아하게 살아갈 때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생이 열린단다. -9쪽

나는 '태평양 물이 모두 럼주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할 만큼 럼주를 사랑합니다.
물론 럼주 한 병을 아침에 우유 마시듯이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그대로 다 마셔도 좋지만 조심성 있는 아가씨라면 그런 자그마한 꿈은 마음의 보석 상자에 담아놓아야겠지요.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그러한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조심을 해야 한답니다.
그 대신 나는 칵테일을 즐겨요. 이런저런 칵테일을 고를 때는 마치 예쁜 보석을 하나씩 고르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호사스러워집니다. 아카풀코나 튜바리버나 피나콜라다. 나는 물론 럼 이외의 칵테일에도 흥미가 많아서 그것들과도 적극적으로 음주의 정을 나눕니다. 나온 김에 더 말하자면 칵테일만이 아니라 모든 술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자는 마음입니다. -16쪽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건 그저 행복했으면 하는 것뿐이야. 네 부모님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거야. 나도 부모니까 알아."
"하지만 행복해지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지. 부모도 해줄 수는 없는 일이지. 스스로 행복을 찾는 수밖에. 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 아낌없이 해주고 싶어."
정말 멋진 분이구나, 심성이 맑기도 해라,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젊은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늘 그걸 물으며 살아야 해.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인생이 의미를 갖게 되지."
도도 씨는 그렇게 단언했습니다.
"도도 씨에게는 뭐가 행복인데요?"
그는 내 손을 잡았습니다.
"이렇게 지나쳐 가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 그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이것이 내 행복일지도 몰라." -25~6쪽

"넌 진짜 잘 마시는구나. 정말 밑 빠진 독이 따로 없군." 사장님이 말했습니다. "너 도대체 주량이 얼마니?"
나는 가슴을 쫙 폈습니다. "거기에 술이 있는 한."-63쪽

책들은 말한다. "우리를 읽고 조금은 똑똑해지는 게 어때, 친구?" 하지만 나는 이제 책이라면 넌덜머리가 났다.
헌책시장의 신이여, 나에게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윤택함부터 달라.
지식은 그런 뒤에 줘도 된다. -97쪽

나는 히구치 씨와 메밀국수를 먹으며 책과 우연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오랫동안 찾던 책과 만나는 일. 혹은 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책이 때마침 눈앞에 나타나는 일. 내용도 보지 않고 사 온 서로 다른 책들 속에 같은 사건이나 인물이 나오는 일. 또는 옛날에 내가 샀던 책이 헌책방을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일.
이만큼 많은 책들이 사고 팔리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니 그런 우연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건 복잡하게 얽힌 인과의 끈을 못 봐서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책을 둘러싼 우연에 마주쳤을 때 실로 나는 운명 같은 뭔가를 느낍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믿고 싶은 사람입니다. -109쪽

상사병이란 '연모하는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아 병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사랑은 인간이 걸리는 온갖 병에 들지 않는 병이라, 갈근탕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300쪽

세상에는 대학생쯤 되면 연인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편견일 뿐이다. '대학생쯤 되면 연인이 있다'라는 편견에 등 떠밀린 어리석은 학생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신분을 번지르르 치장한 결과 누구에게나 연인이 생기는 괴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더 편견을 조장한다.
허심탄회하게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나 또한 그 편견에 등 떠밀린 건 아닐까. 고고한 남자임을 내세우면서 실은 유행에 취해 사랑을 쫓아다닌 것은 아닐까. 사랑을 탐하는 아가씨는 귀엽기나 하지. 하지만 사랑, 사랑, 하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남자들의 그 으스스함이란!
도대체 나는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눈에 못이 박힐 지경으로 바라본 뒤통수 외에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반했다고 하는가. 근거가 불분명하다. 그건 단지 내 마음의 공허에 그녀가 어쩌다 빨려 들어온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321쪽

그렇게 모든 걸 다 고려해야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남녀가 서로 교제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제군이 요구하는 것 같은 순수한 연애는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온갖 요소를 검토하고 자신의 의지를 남김없이 뜯어봐야 한다면 우리는 허공에 멈춰 선 화살처럼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지 않겠는가. 성욕이든 허영이든 유행이든 망각이든 멍청이든, 그 무슨 말을 듣더라도 다 인정하겠다. 모두 다 맞겠지. 하지만! 비록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실연이라는 나락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순간이 있지 않겠는가. 지금 여기서 뛰어들지 않으면 미래영겁을 어두컴컴한 청춘의 한구석에서 뱅글뱅글 배회하며 보내게 되지 않겠는가. 제군이 바라는 게 그건가.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이대로 내일 홀로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을 거라고 말할 자 있는가? 만약 있다면 한 발 앞으로! -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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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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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물리적 폭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했던 사람들은 오늘 오로지 '하반신의 욕구우월주의'만 살아 꿈틀대는 사회에서 자본의 힘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들은 복종하면서도 복종하는지 알지 못한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임을 알아차릴 때 저항을 모색하거나 반란을 꾀하기도 하지만, 노예임을 모를 때는 다만 '편안하게' 죽어 간다. 과거 자본권력은 정치권력 뒤에 숨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자본의 지배 방식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인 자유를 지향하여 일생 동안 시대와 치열하게 마주했던 리영희를 오늘 여기에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다. -6쪽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스승이란 우리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우리를 각성케 하는 모든 존재에게 부여될 수 있는 이름이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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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품절


진단을 받았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항해'라는 말로 인생을 비유하기도 하는데. 항해를 하다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풍랑을 만나기도 하죠. 병은 말하자면 일종의 거친 풍랑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이겨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등대처럼 그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살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70쪽

한순간에도 생사가 갈리는 병원에서 '만약'이라는 말처럼 힘없고 빛바랜 말이 어디 있을까. 아니, 그렇기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환자들에게 얼마나 달콤하고 매력적인가. 그런데 김영훈 교수의 '만약'이란 말은 좀 달랐다. 더 이상 잃어버린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달콤한 '가정'도 아닌,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과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고 싶은 '의지'를 담은 '미래'의 말처럼 들렸다. -78쪽

착한 사람이어야죠. 그러려면 환자한테 거짓말하지 말아야 할 거구요. 또 환자한테 항상 따뜻하게 대해야죠. 환자들이 '내가 선생님 부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냐, 그렇게 수술하겠냐' 하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 가족이라고 생각 안 하면 어떻게 최선의 방법을 찾겠습니까? 당연히 그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을 수밖에 없고, 늘 마음을 다해야죠. -161쪽

의사가 가장 위험할 때가 언제냐면 본인이 자만할 때거든요. 나는 농담처럼 이제 우리 과에서 하산할 때가 됐다는 표현을 합니다. 어느 정도 수술이 자신이 있고 다 아무 문제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자만심이 생기고 사고가 나기도 하거든요. 항상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의사가 환자보다 단지 열 배 정도의 의학지식을 더 가진 건 맞지만 의사가 우리 몸과 질병에 대해서 100% 알고 있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의사는 항상 겸손해야 돼요. -206쪽

집도의는 수술장에서 일종의 지휘자와 같은 거야. 자기만 잘한다고 수술이 잘되는 게 아니지. 마취는 잘 되었는지, 환자의 혈압은 괜찮은지, 환부의 상태는 어떤지부터 심지어는 수술장에 들어온 다른 스태프들의 컨디션은 어떤지까지… 수술장의 모든 상황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진정한 집도의지. -217~8쪽

<명의>를 연출하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의사가 모든 병을 고쳐주지는 않는다. 완치를 위해서는 환자의 몫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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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3-04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이쁘게 말해주는 의사가 많다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안고 '기적'을
만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인간은 건강한 신체도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을 정도의
굉장한 정신력과 힘을 가지고 있어요. 즉, 역으로 이용하면 스스로 병도 치료할 수 있단
말이 되죠. 하지만...어째서 인간은 남이 말해 주기 전까지는 스스로에게 그런 힘이 있단
것을 믿지 않은 걸까요.쯧..

이매지 2010-03-04 18:40   좋아요 0 | URL
건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이 책을 보면서 느끼고 있어요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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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은 전망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 전망을 마음껏 즐기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선 다소 험준하고 높은 곳에 오르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장르 중 가장 험하고 고도감이 높아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시와 철학일 겁니다. 시와 철학은, 오르기만 하면 그래서 그 고도감에 적응하기만 하면, 시인과 철학자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는 빼어난 산과도 같습니다. 또한 이런 비유가 적절하다면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을 각각 하나의 봉우리에 견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모든 봉우리들이 우리가 원하는 좋은 전망을 약속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좋지 않은 전망을 준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봉우리에 오를 이유가 없었겠지요. -5쪽

언어를 배우면서 우리가 동시에 배우는 것은 침묵이기도 합니다. 사실 언어가 없다면 침묵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침묵은 언어의 한 가지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지요. -56~7쪽

여러분, 이제 '소리의 뼈'가 보이나요? 그것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다양한 규칙들입니다. 언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맹목적으로 규칙을 따르고 있지만, 그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언어의 규칙이란 마치 척추동물에게 몸의 뼈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들은 자신의 모든 행동들을 지탱하고 있는 뼈의 중요함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뼈에 문제가 생겨서 서거나 걸을 수 없을 때에만, 동물들 혹은 우리 사람들은 뼈가 무엇인지를 감지합니다.
언어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강의실을 채운 침묵이 학생들을 당혹감에 몰아넣은 것처럼, 침묵은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사용의 규칙을 마치 상처를 뚫고 튀어나온 뼈처럼 드러나 보이게 한 것입니다. 오직 이럴 경우에만 학생들은 이제 자신들이 사용해 온 언어가 과연 얼마나 맹목적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자각할 수 있습니다. 동물보다 우월한 인간의 중요 징표로 간주된 언어조차도 사실 합리적 근거를 가진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58쪽

아렌트가 생각하기엔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요. -78쪽

근대 이후 인간 사회는 거대한 전체와 미세한 조직들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바로 우리가 속한 거대한 전체는 언제든지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괴물로 손쉽게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지요.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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