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절판


하지만 우리는 사귄 지 아직 2년도 안 됐고 같이 산 것도 겨우 10개월밖에 안 됐다. 우리 관계는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갈까? 이러다 얼마 후에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시하며 사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을 찾기 귀찮으니 그냥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너무 늙고 못생겨서 다른 사람을 찾을 가망이 없어 그냥 살거나? -31쪽

남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상대방의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140쪽

"유치하게 왜 이래? 혹시 생리해?"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이제는 정말 끝이다. 나는 이런 말은 딱 질색이다. 혐오한다. 남자들은 할 말이 없으면 꼭 이렇게 묻는다. 여자의 태도가 자기 때문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자기랑은 전혀 상관없고 결백하다고 믿는다. 다 생리 탓이고 생리를 하는 여자 탓이다. 정말 간단하다. -169쪽

나는 혼자 어디 가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나의 습관과 취향을 뒤로하고 그냥 혼자 보내기로 했다. 집에 쭈그리고 앉아서 깊은 우울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나는 얼굴 화장을 고치고 티셔츠를 한 번 더 잡아당긴 다음 집을 나섰다. 루카스는 어차피 내가 저녁에 약속이 있는 걸로 아니까 굳이 어디 간다는 쪽지를 남길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주고받고 산다. 대다수 부부의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이 고작 12분이라는 조사 결과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했지만, 이제는 하루 대화 시간이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192쪽

나는 가능한 한 카타를 위로하려고 애썼지만 유부남과 사귀는 게 탐탁지 않아 그리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특히 여자는 서른이 넘으면 싱글 시장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유부남과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그래도. 남자는 부인을 배신하고, 여자는 유부남의 애인으로 살아가는 것. 정말 못할 짓이다. 그런데 가장 끔찍한 것은 카타도 그걸 다 알지만 어찌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가끔 보면 우리 여자들은 진짜 멍청하다. 카타가 너무 안됐고 나도 안됐고 배신을 당하는 모든 부인도 안됐다. 나도 눈물을 흘렸다. 오늘 밤의 모토는 '누구 하나 울 때까지'가 아니라 '둘 다 울 때까지'가 되어버렸다. 최근에 내가 흘린 눈물만 모아도 해수면이 2미터 정도 올라갈 것이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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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카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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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쓰코는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총에 맞아 죽는다 해도 누가 꿈쩍이나 할까.
일은 누군가가 대신 맡아 줄 것이다. 어차피 꼭 이쓰코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뿐이다. 얼마 동안은 동료들도 슬퍼할 테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주목받기 좋아하는 사토미는 피해자의 동료로 언론 취재를 받을 수 있어서 기뻐할지도 모르겠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물론 무척 슬퍼하시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마음이 허했다.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고는 오직 '부모님'밖에 없는 인생이라니, 그런 건 현지 옵션 없는 패키지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30~1쪽

일반적으로 한 손님이 사흘 간격으로 드나드는 가게라면, 직원은 손님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잡담 정도는 나누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랬더라면 방범상의 문제 운운하지 않았더라도 손님이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은 그런 곳이 아니다. 모두가 그런 곳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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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1
김정란 지음 / 나무수 / 2009년 9월
구판절판


결국 주위의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왜 야구가 좋으냐"고 물었는데, 열에 여덟은 "야구가 삶에 지쳐가는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고작 스포츠일 뿐인 야구가 지쳐가는 인간을 위로한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야구가 무슨 애인이라도 되는 걸까.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는 많이 다르다. 일단 총 9회로 이루어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역동적으로 달릴 필요도 없다. 선수 한 명이 잘한다고 점수를 낼 수도 없다. 규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며, 그에 따른 작전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야구를 '마니아의 스포츠'라 부르며 스스로 벽을 만들거나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다. 타석에 서면 누구에게나 적어도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공정한 기회를 의미하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승리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우리네 인생사와 비슷하다. 수많은 전략과 두뇌 싸움 속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도 인생과 닮았다. -9~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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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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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홀수가 싫었다. 무리를 굳이 둘씩 나누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서, 놀이기구에서, 관계는 '둘'로 정의되었고, 전체가 홀수였다면 한 명은 꼭 남았다. 3-2=1, 5-2-2=1, 7-2-2-2=1, 이런 계산법으로 인해 외톨이가 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정원이 48명인 반에서 나는 마음이 편안했고, 47명인 반에서 마음이 불안했다. 48명인 반에서 일어나는 전학이나 결석, 조퇴와 같은 일들도 역시 불안했다.
어릴 때 운동장이나 교실 안에서 겪었던 홀로됨의 어색함은 결국 교문 안에서만 유효할 뿐, 그 당시에는 중요했던 그 문제가 사실 미니어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정말 비극이 시작된다. 교문 밖에서 울타리도 없이 벌어지는 홀로됨의 비극은 더 이상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한다. 그냥 무관심 속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관심 속에서 오래 머물면 처음에 그 무관심의 주체가 타인이었는지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혼란스러워진다. -25쪽

식탁 위의 혁명이었지만 그 여파는 단지 식탁 위에만 머물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나를 에워싼 수많은 행성들 속에서 나는 절대 '껴' 있는 게 아니라 '주목'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고깃집에서도 결혼식 뷔페에서도 무리 없이 혼자 떨어진 내가 외로운 게 아니라 돋보이는 것처럼, 나는 지하철의 중심, 지구의 중심, 우주의 핵, 세상의 봉이라는 생각으로 충만했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 인파 속에 휩쓸리면서도 나는 주인공이었다. 단지 내 궤도를 이탈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37쪽

1:1 상담 시간에 담임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 세상에 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게 그리 큰 문제가 되나. 열한 살짜리에게는 꿈을 말할 기회가 쓸데없이 많다. 그러나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자꾸 물어보는 것도 실례다. 주관식은 스트레스다. (중략)
담임은 대통령이 될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아이에게서 다른 무언가라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유행대로라면 CEO나 실장님이 되고 싶다고 말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연예인이라고도 말해야 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정말 꿈이 없었다. 단지 그뿐인데 어른들은 꿈이 없는 어린이를 생각이 없는 어린이와 비슷하게 취급했다. -3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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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5-1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인용식탁....이라는 공포영화가 있었더랬는데요. 뜬금없는 댓글 죄송합니다. - -;;

이매지 2010-05-11 23:4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저도 그 영화를 생각했더랬죠 ㅎㅎㅎ
1인용 식탁의 주인공 이름은 오인용입니다 ㅋㅋ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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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안과 맞버텨야만 서는 단어다. 그래서 경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경계는 아주 허술하고 느슨할 것이다. 이따금 "어떻게 이게 바깥이야?!" 하며 시비 삼고 싶은 경구도 있을 것이다. 경계의 경계가 삼엄하지 않은 사회, 안과 바깥이 평화롭게 바뀌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는 세상, 아예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마당을 우리는 바란다. -5쪽

사람이든 사물이든, 공간이든 시간이든, 모든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는 사연이 있고 맥락이 있다. 사연이 안타깝고 논리가 부조리해도 거기에는 도덕과 당위의 맥락으로 치환되지 않는 시스템의 힘이 있다. 어떤 것을 밀어내고 사라지게 하는 데 앞장서는 것(혹은 사람 혹은 논리)들은 그 시스템의 내력벽 뒤에 숨어 도덕적 부담을 덜고, 그러면서 시스템을 두텁게 굳힌다. 시대의 조류라고도 부르고, 지배적 가치라고도 부르는 그것들이 시대와 사회를 아우르느네, 데카르트의 용어로 말하자면, 보편 이성에 닿아 있었던 때와 경우를, 서글프게도 우리의 역사책은 소개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인류는 부조리를 견디는 내성을 다윈의 비정한 가르침처럼 키워와야 했고, 그것이 때로는 맹목의 행복으로 보이기도 한다. -27~8쪽

자신의 신념이나 열정에 등 돌리는 이들 중에는 보란듯 자신의 옛 자리에 침을 뱉음으로써 새로운 의지와 입지를 굳히려는 이들이 있다. 반면에 애써 잊고자 머물던 자리로 눈길조차 돌리지 않으려거나, 늘 동경하며 가난한 집 문풍지처럼 흔들리는 이들도 있다. 그는 어느 쪽인지 궁금했고, 전자라면 변신의 명분을, 후자라면 스산한 소회라도 듣고 싶었다. 요컨대 끝내 불고가사할 수 없었거나, 못 한 이의 변명이 내겐 필요했다. -76~7쪽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증상에 개입해야 하는 경우처럼 특별히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일들이 있다. 차별이 그런 경우다. 차별 현상을 해석하고 지향과 해법을 모색하는 일은, 논리의 정연함 못지않게 논리의 품격을 요구한다. 차별의 낮은 편을 편든다면서 가지런히 빗질된 이성만으로 덤벼들어 상처를 후벼 파고 차별의 구조를 굳히는 데 부역하는 예는 흔하다. 누구나 개입할 수 있지만 아무나 제대로 개입하긴 힘든 저 화사한 모순의 화단 안에서, 차별은 자란다. -130쪽

고래古來의 명망가들은 책의 가치를 떠받드는 숱한 잠언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책을 높이는 성향이 남아 있다. 그것이 긴 세월 동안 문자문화를 전유했던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든 문화적으로 빈한했던 기층민들의 콤플렉스 탓이든, 책은 물신의 전일적 지배가 완성됐다는 이 시대에도 미미하나마 가치의 프리미엄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상품 가운데 하나다. 매주 그런 책은 쏟아져 들어오고, 어떤 책은 시장 바깥으로 쫓겨난다. 그리고 모든 신문의 출판 면은 새 책의 목록만 의무인 양 챙긴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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