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봉우리 2
다니구치 지로 지음,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 애니북스 / 2009년 9월
구판절판


찌릿찌릿 가슴이 시려오는 듯한 저 산…
정상을 올려다보면 가슴이 짓눌려버릴 것만 같은 위압감…
그런 것과는 일절 상관없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겠지.
그런 것과는 작별하게 되었으리라.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하부를 추적하고 있는 건 그것 때문이리라.
하부를 추적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이 끝나지 않았는가…?
아마도 자신의 산이…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산의 정상, 환상의 봉우리인지도 모른다…-148~9쪽

8,000미터 봉을 등정하는 데에는 실로 다양한 요인이 개입한다.
첫 번째 요인은 원정 대원에 뽑히는 일이다.
다음은 체력이다.
그리고 건강.
하지만 아무리 체력이 있다 하더라도 고도순응에 실패하면 끝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부상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인맥, 혹은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대장이 그 사람을 등정대원으로 뽑아주지 않으면 등정은 하지 못한다.
게다가 행운도 따랴아 한다.
베이스캠프에서 C1, C2F로 캠프를 올려 최종적으로 C6에서 정상공격조가 등정을 향해 출발하게 된다.
그러기까지 대원 모두가 짐을 올리게 된다.
그 모든 작업을 마쳤을 때 자신의 포지션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로테이션의 형편으로 마침 베이슼캠프나 C1에 있었다면 등정대원에 뽑히는 일은 없다.
C6에 있더라도 체력이 다 소모된 대원은 뽑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원끼리 고도의 심리전이 전개된다.
자기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지키거나 체력을 아껴두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산소가 풍부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체력을 회복해두는 것이다. -17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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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품절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일은 한 해의 일을 마무리하는 종무식이어서 회식에 참석해야만 한다. 그 순간 입에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참석해야만 하는 회식이란 어떤 것일까? 지금 내가 '~해야만 한다.'라고 여겨온 것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고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애당초 인간관계는 미래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15쪽

세상에서 가장 큰 고독은 어느 누구도 내가 고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16쪽

인생이 이렇게 허무할 줄 몰랐어.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슴 두근거린 순간, 어처구니없이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듯한 심정이야. 인생도 영화도, 내 멋대로 기대를 했기 때문이겠지.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이 6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거, 아직도 남의 일 같아. 입으로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말하지만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더군. 하지만 몇 시간마다 공포가 밀려오기도 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아침에 세면대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봤을 때, 역 플랫폼에 서 있을 때, 휴대전화로 일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불시에 공포가 밀려오는 거야.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다리가 덜덜 떨린다고. -40쪽

나는 인생을 되돌아보고 싶다. 내 인생이 이런 것이었다고 확실히 알고 싶다. 인간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본다고 한다. 아니, 주마등이 아니라 더 느긋하게 되돌아보자. 남은 6개월을 아낌없이 투자해서 내 인생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것이 남은 6개월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 6개월이 짧다고 한탄하는 짓은 그만두자. 그런 번뇌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잊어버리는 것이다. -49쪽

인생은 연필로 그리는 데셍 같은 것이다. 연필로 몇 개의 선을 그리면서 조금씩 전체의 모습을 포착한다. 개중에는 아무리 봐도 실제보다 많이 삐져나온 선이 있다. 현실을 왜곡한 선이다. 지우개로 지울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그릴 텐데……."라는 선을 남기고 싶다. 남은 날들 안에서 인생을 수정하고 싶었다. -135쪽

"원래 세월이란 그런 게 아닐까?"
"마치 추억 같아요."
"한마디로 정리하는군."
"그렇잖아요. 좋지 않은 건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좋은 것만 기억하니까요."
"그게 살아가는 지혜야. 신은 그러기 위해 인간에게 '잊어버리는 능력'을 준 거지."-182쪽

아마 거미는 청소 아줌마와 끊임없는 싸움을 반복했을 것이다. 집을 지으면 청소 아줌마가 치우고, 그러면 거미가 또 집을 짓고……. 강인한 생명력이다. 아니, 거미의 생명력이 특별히 강인한 것이 아니다. 거미는 다만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계속 집을 지을 뿐이니 단순한 본능이다. 안타깝게도 이 거미집은 내일 또 치워질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거미는 부지런히 집을 짓고 있다. 가령 '네 운명은 그러하다.'라고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거미는 집짓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보답을 받거나 보답을 받지 않는 것에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는 작지만 내 집을 지어왔다. 하지만 앞으로 한 달 안에 내 집은 무너진다. 거미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집을 짓는 것일까? 오래된 집의 천장 안쪽이나 별장의 사용하지 않는 난로, 정원의 나무와 나무 사이에 집을 지었으면 헐리는 일은 없을 텐데……. 내가 거미를 가엷게 여기는 것은 주제넘은 짓일까? 거미는 아마 자신의 마지막 날을 모르리라……. -3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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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3 - 땅!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절판


나는 희망을 품을 수 없었다. 아니, 머리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깨끗이 접지 못한 희망에 마음이 매달려서, 혹시나, 만에 하나, 어쩌면, 하며 매일 속삭이고 있었다. 어차피 종체가 끝나면 고백할 작정이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하면 마음을 정리해버리자고 생각했었다.
희망이 움트고 말았다. 커다란 희망이. 그놈은 강렬한 독약처럼 나를 녹아웃 시켰다. 희망이라는 건 멋진 것인 줄 알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희망은 이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무서운 것이었다. 잠 한숨 이루지 못했다. 날짜가 바뀌었다. -122쪽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포화 상태라는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대단한 연애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상상) 이어달리기 팀의 우애도 무한한 것인지 모른다. (실감) 축구에서도 진짜 좋은 팀에는 그런 감정이 있는 듯하다. 나야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겐짱이 선수권을 다툰 3학년 때, 가이레이 팀은 하나의 패스도 선수 전체가 느낄 만큼 일체감이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팀도 마찬가지다. 한 명 한 명의 러닝을 네 명이 전부 느낀다. 사소한 몸짓이나 낯빛만으로도 그날 그 사람의 컨디션을 알 수 있다. 누구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보완해주고, 좋을 때는 함께 상승할 것 같다. 배턴을 직접 주고받는 사람은 두 명뿐이지만 늘 넷을 의식한다. 육상을 하면서 이런 강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줄은, 솔직히 생각해본 적도 없다. -143쪽

스포츠는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결과를 냈을 때는 정말로 대단하다. 눈앞에서 본 도리사와의 승리는 나의 내부에 압도적인 힘을 만들어놓았다. 기쁨이라기보다, 용기라기보다, 뭔가 몸속에 솟구쳐 오르는 힘 자체를 말이다.
도리, 나도 달린다! -164~5쪽

이어달리기는 행복한 러닝이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달린 적은 처음이다. 같은 직선 100미터를 달려도 개인 종목하고는 전혀 다르다. 2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고, 예상대로 2위로 관동을 결정지었는데도 이렇게 기쁘니 말이다. 네 명이 멋진 레이스를 펼쳤다는 행복감은 그냥 4배가 아니다, 16배, 64배, 무한대. -184쪽

인생은, 세계는, 이어달리기 자체다. 배턴을 넘겨서 타인과 연결되어간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구간에서는 완전히 혼자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이 고독을 나는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나를 좀 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은 말이 없는 세계일 것이다, 아마도.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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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2 - 준비!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절판


미와 선생이 차지할 수 없었던 것, 차지하고 싶었던 것, 우리 손에 쥐여주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것은 400미터 계주 팀이 우리 학교 역사상 최초로 인터하이에 출전하는 것만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기록을 0.01초 단축하는 것. 거리를 1센티미터 늘리는 것. 예선에서 끝나지 않고 준결승에 올라가는 것. 지구에서 끝나지 않고 현에 올라가는 것. 각자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 자세, 주법, 도약법, 투척법, 시합에 임하는 정신. 육상 경기 그 자체. 우리가 모여서 육상을 한다는 그 자체.
그것에 호응하고 싶다. -142~3쪽

'가능성'이라고 다니구치에게 말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 중장거리로 전향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다니구치가 나에게 상담을 청했을 때다. 흔해빠진 말이다. 육상부 활동을 하는 고등학생에게라면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말이다. 그 말이 다니구치에게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입 밖에 내는 말이 무게를 띠는 것은 행동이 따를 때뿐이다. 모리야 선배가 말한 '하루하루가 나의 최선을 경신한다.'는 말처럼…… 나는 노력하고 있을까? 다니구치가 나를 보고 '가능성'이란 말을 믿어줄 만큼?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이 쓰렸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가능성, 영원히 버리고 싶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내내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말이다. -162쪽

쉽게 비교하지는 마. 육상은 결과가 숫자로 딱딱 나오는 경기야. 그러니까 비교하기는 쉽지. 하지만 한 선수의 잠재 능력은 당장의 기록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거야. 이기려고 안달하면 안 된다. 그렇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래도 최대한 따라 잡으려고 노력해야지. 훔쳐낼 만한 것이 있으면 깡그리 훔쳐내. 흉내 낼 만한 것이 있으면 모조리 흉내 내. 너하고 이치노세는 스타일이 다른 러너니까 결국 너는 네 주법을 추구하게 될 테지만, 스프린트의 기본이 잡힐 때까지는 아무리 흉내를 내도 괜찮은 거야. 살아 있는 교재니까. 그 이상의 교재는 바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부원들은 아마 행운을 누리는 거겠지. …… 이 이야기, 내가 늘 하던 이야기잖아? (중략)
초조해하지 말고 기죽지도 말고 끈질기게 추격하는 거야. 달리기의 기초를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너만의 스타일을 찾아야지. 그렇게만 하면 너는 3학년 종체가 열릴 때쯤이면 이치노세와 겨룰 수 있는 선수가 될 거다. -167쪽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180쪽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다른 학교 선수들이지만 그 주자들을 모두 응원해주고 싶었다. 처음 1학년 여름 합숙에 참가했을 때 300미터나 400미터 달리기에서 다른 학교 선수들에게 차별 없이 응원을 보내는 모습에 나는 어색함을 느꼈다. 아무리 훈련이라도 경기 형식의 경쟁이지 않은가. 하지만 육상은 그런 것이다. 달린다는 것은 평등하고 존엄한 행위다. 단거리든 장거리든 타임이나 순위에 관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달린다는 것이 소중하다. 그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달리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지만, 우리는 배턴이나 어깨띠가 없어도 응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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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 제자리로!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절판


선배들이 배턴 터치를 시작한다. 트랙이 혼잡하자 미와 선생과 예비 주자 고마쓰 선배도 안으로 들어가서 코스를 확보하고 있다. 1주자 시마다 선배가 달렸다.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나도 달리고 싶다. 저 빨간 트랙을 달리고 싶다. -66쪽

'구기에 서툴고 하반신에 강력한 탄력을 가진 선수는 속도 경기에서 대성할 수 있다. 스프린트의 왕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일까? 나는 언제나 그 말을 부적처럼 가슴에 품고 지냈다. 사르트 FC에서의 고달팠던 마지막 2년조차 필요한 과정으로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고교 육상부의 훈련은 중학생 시절 축구 클럽 훈련보다 육체적으로 훨씬 고되다. 그 고됨이 나는 반갑다. 나는 정말로 성과를 원했다. 골이라는 성과. 더 많은 골이라는 성과. 화려한 드리블과 감각적인 패스. 팀 승리에 공헌하는 것. 하지만 미진했다. 늘 굶주려 있었다.
스프린트 기록. 충실히 훈련하면 향상되는 기록. 내 몸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록.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기록. 자신감, 나에게 가장 부족한 그것. 예전의 나는 그걸 조금이라도 갖고 있었을까…….-177~8쪽

내가 100미터엣 11초 2를 기록했고, 그다지 믿음직한 기록은 아니지만 렌은 11초 1을 기록했다. 2위와 1위다. 아주 근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0.1초에서 아마존 강폭만 한 차이가 느껴진다. 게다가 과연 녀석은 전력을 다해서 달렸을까?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저 분하다. 그렇게 농땡이나 치는 놈한테는 지고 싶지 않다. 렌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솔직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분하다. 엄청 분하다. -184쪽

100미터는 역시 가장 긴장되는 종목이다. 옆으로 나란히 한 줄로 늘어서는 스타트. 굉장한 압박감을 느낀다. 모두들 오라를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는 것이 마치, 내가내가내가내가, 이긴다이긴다이긴다이긴다, 라도 주장하는 듯하다. 스타트에서 실수하면 바로 끝이다. 기가 약한 놈은 출발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에너지가 바닥나버린다. 대개 나는 '큰일 났다,' 생각하며 스타트 라인에 서고, '아차!' 하며 출발하며,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하면서 골인한다.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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