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헥 길 위에서 온몸으로 뒹굴던 젊은 날의 치기가 음식에 대해 새로이 눈뜨게 해주었다. 진정한 '맛'은 물속에 땅 위에 바람결에 깃들어 있었다. 우리 땅, 우리 물에서 나는 재료들만 가지고 얼마든지 이 세상 최고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어느 일류 레스토랑의 주방이 아니라 길이, 자연이 곧 나의 스승이었다. -6~7쪽
요리란 물, 바람, 불, 빛을 담은 우주의 재료에 영혼을 보태는 작업이다. 그 긴 시간과 광활한 공간 속에서 무르익어가는 삶이 저절로 흘러나온 것이 나의 요리였으며, 그것은 곧 자연 그 자체였다. -9쪽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이름 모를 풀들도 다 존재 이유가 있다. 척박한 산골마을 주변에 피어 있는 이 풀들은 모두 산골마을 사람들을 위한 보양식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하기에 다름 아닌 그곳에 피어 있는 것이다. -22쪽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를 위해 작은 지게를 맞춰주셨다. 그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고 약초도 캤다. 산에 있는 게 좋아서 나무하러 간다고 하고서 이 산 저 산 돌아다녔다. 산에 있으면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내겐 숲속이 놀이터이자 침대였다. 요즘도 생활에 지쳐 맥이 빠질 때 산에 오르면 힘이 솟는다. 방전된 힘이 충전되고 다시 아이처럼 생기발랄해진다. 그게 산, 자연이 주는 에너지다. 그렇게 산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나면, 그 좋은 기운을 마음에 실어와 다시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곤 한다. 그러면 그이는 산에 올라가지 않았어도 그 기운을 그대로 먹을 수 있다. 나는 자연을 옮겨놓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64~5쪽
나는 만나는 분들에게 평소 어떤 음식들을 주로 해 드시는지를 묻곤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늘 해오던 모습 속에 우리네 음식의 본류가 있고,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레시피와 재료를 내 방식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재미나다. -93쪽
기분에 의해, 몸의 상태에 따라 혀로 느끼는 맛은 기복이 심하다. 혀에 의존하지 않고 냄새와 색, 질감과 같은 다른 감각으로 맛을 보는 것 또한 훈련이다. 몰입할수록 맛보지 않고도 제 맛에 근접해간다. 수행하듯이 맛있다, 맛있다는 생각을 심으면 그 생각이 음식에 녹아든다. -95쪽
음식의 맛은 재료를 섞을수록 복잡해지는 게 아니라 단순해지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주재료를 다른 요리들에 두루 쓰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문어를 먹을 때도 문어에서 나온 소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양념도 단순한 게 좋다. 그래야 각 재료의 맛을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다. 그게 자연식을 즐기는 방법이다. 양념이 뒤범벅되거나 너무 세면 재료의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양념의 맛으로 먹게 된다. -120~1쪽
어릴 적 마을 뒷산에 나무하고 약초 캐러 다녔을 때는 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생각보다는 먹을 수 있나 없나, 효과가 있나 없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후 전국 각지를 방랑하며 얻은 깨달음은, 자연이 열려 있는 것처럼 재료의 쓰임도 열려 있다는 것이었다. 일기가 변하듯 바람의 성질, 흙의 성질에 따라 자연의 재료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131~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