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학교
이윤기 지음, 북디자인 정병규, 정재규 그림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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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하든, 연기를 하든, 연출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 아니다. 나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더라. 자기 하는 일에 깨어 있더라는 것이다. 저금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에게는 못 당한다는 옛말이 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는 전문성, 그걸 뭔 수로 당하겄냐.
-1쪽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저 좋은 것은 더 좋게 가꾸어 기억하고 저 싫은 것은 슬그머니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시켜 버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2쪽

책을 읽기는 하는데 영화도 보기는 하는데 내용은 도무지 기억을 못하겠다면서 자기 기억력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묻곤 합니다. 콩나물이 제가 자라면서 마신 물을 기억하지 못해서 콩나물이 자라지 못하더냐구요. 콩나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콩이라는 씨앗의 소양 위에 이루어진 물의 퇴적이 아니겠느냐구요.
-3쪽

시험에 실패했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대학을 만들고 학생을 뽑고 공부를 시키는 자들 역시 인간일진대, 너라고 해서 못하라는 법은 없을터, 그러니 네가 대학이 되면 되느니라.
-4 쪽

겨울을 방안에서 보낸 알뿌리는 봄에 꽃을 피어내지 못하지요. 미당 서정주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했답니다. '바람'이 무엇이겠어요? '끼' 같기도 하고 '풍상' 같기도 하네요. 고통의 커리큘럼같지 않은가요? 이제 내 눈에는 미당 자체가 거대한 학교로 보입니다.
-5쪽

쓰는 사람들 중에는 삶의 가죽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뼈를 취하는 사람도 있고, 골수를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 그 근기에 따라 취한 것을 나름대로 연마한 언어의 그물막으로 싼 것이 글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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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품절


사람들은 사실 우리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모를 수치심과 불안감으로 떨고 있었다. -28쪽

말이야, 두꺼비집이 닫히는 것처럼, 물기 묻은 전원에 스위치가 자동으로 차단되는 것처럼, 사랑 같은 거, 호감 같은 거, 느끼려는 순간 철컥 하고 스위치가 내려져.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아. 감정이 암전된 것만 같아.-30쪽

이 밤 따뜻한 저 카페 안에서 연인들은 사랑하리라. 사랑한다고 말하고 두 손을 잡고 있으리라. 죽을 때까지 함께 아침을 맞자고 약속을 할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말들이 우리를 버려두고 추억의 페이지 속으로 우루루 사라져 버릴지라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영원을 움켜쥔 듯 기쁠 것이다. -57쪽

말할 시간은 많을 거야. 그러다 보면 그 말을 하는 동안, 네가 말하는 그 감정이라는 것도 변해 가.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네가 왜 그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게 되고. 감정은 변하는 거니까. 그건 고마운 거야. 변하니까 우린 사는거야.-96쪽

결혼이라는 것만큼 이미 해본 사람은 하지 말라 하고, 하지 않은 사람은 기어이 하고 마려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면 그토록 꼼꼼히 리뷰들을 챙기면서 결혼이라는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의 리뷰도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104쪽

나는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온 우주의 풍요로움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문제는 사랑이 사랑 자신을 배반하는 일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속성이었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의 빛이 내 마음속에서 밝아질수록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진다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나만은 다를 거라고, 우리의 사랑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112쪽

여자들은 말이야. 너무 매사를 사랑에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어. 사랑에 집착하는 순간,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순간, 남자는 떠나가는 거야. 남자의 본성은 사냥꾼이거든. 잡아 놓은 짐승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도망 다니는 언덕 위의 날랜 사슴을 쫓아가고 싶어하거든. 우리 여자들이 할 일은 그들의 그런 본성을 인정하고 쿨해지는 거야. 그래야 남자들의 사냥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거든. -125쪽

사랑이 깨어지는 방식은 이래.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한다. 대개는 남자가 먼저지. 그러다가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이 익숙해질수록 여자는 사랑을 조금씩 더 많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자는 슬슬 여자가 지겨워지고 새로운 사람에 흥미를 느낀다. 여자는 더 집착하고 그럴수록 남자는 더 떠나고 싶어하고, 그럴수록 여자는 더 집착한다. 그리고 끝. 속편은 이거야. 여자는 친구를 붙들고 남자들은 다 똑같아, 나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어, 라고 다짐하지. 마지막은 긴 눈물과 중무장한 분노, 그리고 냉소지. 하지만 어느 날인가 또다시 여자를 흥미 있게 생각하는 남자의 구애를 받게 되고 이렇게 끝도 없디 다시 시작되는 거야.-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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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품절


도대체 누가 후회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까. 신은 사람에게 후회하게 함으로써 무엇을 배우게 하려는 것일까. 무겁게 짓눌리는 시간의 쇠사슬을 등에 지고 아래를 내려다본다.-6쪽

언제나 첫인상만큼 믿지 못할 것도 없다.-13쪽

행복과 같은 양만큼의 불안도 있었다. 그 불안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행복의 질에 달려 있다. -70쪽

꿈이 차츰차츰 무너져 내려 작은 구멍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밝은 미래에도 검은 구름이 끼게 되었다. 평온한 미래라도 거친 파도가 일 때가 있다. 이것들은 자연현상과 다를 바 없었다. -77쪽

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쓸쓸함은 사랑을 약하게 만든다. 슬픔은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거기에 젊음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다. 밝은 색을 잃어버린 화가가 그린 그림과 같았다.-89쪽

세상은 하루하루, 아니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안정된 것들도 모래산 위에 꽂은 깃발처럼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이 아닐까.-161쪽

사소한 한마디, 별 뜻 없이 한 말이 그 틈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 버리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아무도 그것이 심각한 줄을 모른다. 병을 앓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통증을 느낄 때는 이미 병이 몸속 깊이 퍼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161~2쪽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과 같은 입장에 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상대방의 마음을 제멋대로 거짓으로 꾸미는 게 보통이에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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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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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에 대해서는 그런 법이다. 뭔가가 부족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갈망하면서 속으로 <만일 그걸 가질 수만 있다면 내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될 거야>라는 말을 하지만 일단 그것을 얻고 나면, 갈망하는 물건이 손에 들어오고 나면, 그것은 매력을 잃기 시작한다. 다른 욕망들이 고개를 들고, 다른 부족한 것들이 느껴지고, 우리는 어느 새엔가 조금씩 조금씩 원위치로 되돌아가게 된다.-79쪽

삼세 번이라는 말은 잊어버리자. 스리 스트라이크면 아웃을 포볼이면 걸어 나간다.-307쪽

우리는 예전처럼 그렇게 강인하지가 못하다. 어쩌면 세상이 그것 때문에 좀더 나은 곳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러나 나는 아무 대가도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으며, 원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르는 대가도 더 크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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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이 죽었다고?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품절


우연의 반복을 필연이라고 한다면 대체 몇 번의 우연이 겹쳐야 필연이 되는 걸까?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낭만적 상상은 우연이 필연으로 비약하는 데 필요한 정족수를 터무니없이 줄여준다. 그리하여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단 한 번의 우연조차도 필연으로 미화하는 논리적 비약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본디 사랑이라는 감정은 비약에 근거하므로.-98쪽

연애에 관한 한 정직은 최악의 방책이어서 이럴 땐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중략) 그러나 그녀는 내 거짓말을 모르는 척 눈감아준다.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애당초 그녀가 원한 건 사실이 아니라 '배려'였으므로. -98~99쪽

연애의 초기 단계, 세상의 그녀들에게 건네는 사소한 물건들(이를테면 길거리에서 파는 머리핀 같은)의 사용 가치는 교환 가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머릿결을 고정시키는 머리핀은 그것을 살 때의 당신의 환한 표정과 자상함을 환기시켜 그녀의 관심을 당신에게 집중시킨다. 교환 경제의 규칙을 교란시킨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가장 위협적인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랑이다.-104쪽

남녀 간의 우정은 불가능하다. 우정이란 선택적인 감정이어서 타인에 대해 이런 면은 마음에 들지만 저런 면은 맘에 들지 않아도 성립한다. 그러나 사랑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이분법적 감정이어서 이것 혹은 저것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도 빠짐없는 전부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에 빠질 때 연인의 이마에 난 뾰루지조차 그녀의 특별함에 대한 증거가 된다. 그녀의 이마에 난 뾰루지에 무관심할 수는 있어도 뾰루지를 증오할 수는 없다. 우정은 무관심을 견디지만 사랑은 무관심을 감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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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월 신간 읽기
    from 달보러가자 2015-12-03 17:12 
    포르투갈, 시간이 머무는 곳모요사, 최경화-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 여행의 거의 모든 것" 이라는 책 소개. 리스본 골목을 헤매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나에겐 꼭 읽고 싶은 책.셰프의 빨간노트엑스오북스, 정동현- 색깔부터 빨갛다. 뭔가 맛있을 것 같다.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톡톡 튀는 음식칼럼을 연재해 호평 받은 젊은 셰프 정동현은 음식을 따따블로 맛있게 먹는 방법을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