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사람들 스리랑카 구호] 이재민들 열대과일로 답례 혹사당한 양수기 결국스톱
기사입력 : 2005.01.27, 19:07

지진해일 참사 한 달이 지났지만 기자가 있는 스리랑카 남부 마타라 지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제개발NGO 선한사람들(이사장 조용기) 2차 구호팀과 함께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마타라 해안가 인근 고투웰교회는 이번 지진해일로 교회 관사 뒤뜰 부분이 조금 갈라졌을 뿐 괜찮았다. 이 지역에는 모두 5개의 교회가 있는데,한 곳만 피해를 보았을 뿐 대부분의 교회가 양호했다.

선한사람들 구호팀은 26일 새벽부터 새로 들여온 양수기 2대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갖고 있던 양수기 1대는 우물 안에 있는 온갖 이물질로 펌프가 막혔으나 전기수리공과 설비직업을 가진 구호팀의 신속한 수리로 간신히 작동됐다. 그러나 2대의 양수기는 첫날 7개의 우물을 정화하고 이튿날 19개 우물의 오염된 물을 뿜어내더니 결국 멈춰버렸다.

구호팀은 긴급히 콤롬보로 연락을 취했으나 이번 지진해일로 양수기가 품귀현상을 빚어 가격이 3배나 뛰었고 그나마 값을 올려줘도 구하기 힘들다는 소식뿐이었다. 다행히 현지 교회들의 끈질긴 구매노력으로 26일 새벽 새 양수기를 들여올 수 있었다.

구호팀은 아침 일찍 마타라 지역에서 동남쪽으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고다우다 마을에 도착했다. 이 지역 해안가에 있는 집들은 지진해일로 모두 휩쓸려 사라졌고 전 세계 구호단체들이 쳐놓은 텐트에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30여개의 우물이 있었다. 지진해일이 오기 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지만 현재 주민들은 구호단체와 정부에서 지급하는 생수로 생활하고 있었다. 선한사람들 구호팀은 새로 구입한 양수기 등으로 신속하게 우물에 들어간 염수와 이물질들을 걷어냈다. 주민들 앞에서 수질검사 테스트를 마치고 이제 물을 마셔도 된다는 것을 확인시키자 마을 주민들은 뛸듯이 기뻐하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열대과일과 스리랑카 특산물인 실론티를 구호팀에 건넸다.

만노주(36)씨는 “아내가 지진해일이 오고 1주일 뒤 딸을 출산했는데,아이를 씻길 물도 없어 큰 걱정이었다”면서 “이번에 선한사람들이 도움을 줘 이제는 안심하고 우물물을 사용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30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 속에서도 오후 1시가 되면 어김없이 소나기가 내려 한낮의 더위를 식혀줬다. 선한사람들 구호팀의 봉사활동은 이곳 주민들에게 시원한 한줄기 물과도 같았다.

마타라=이병주기자 ds5ec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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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또 다른 고통 ‘미혼부’가 는다]20대 총각 아빠의 하소연
기사입력 : 2005.01.27, 22:58

총각 아빠 오명호(28·가명)씨. 한때의 실수로 ‘미혼부’가 된 그는 “무모했죠.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인데 어쩌겠습니까”라며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도 지나지 않은 기훈(3·가명)이를 남기고 어느날 집을 떠난 생모는 이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7살 어린 여자친구와 두 달 사귀고 동거한 뒤 2002년 덜컥 아기를 낳게 된 오씨 커플. 그러나 10개월 간 아기를 함께 키우던 여자친구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처음에는 기훈이를 평생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 보육원에 보내거나 입양시킬까도 생각해보았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입양 주선 기관을 찾았지만 입양 역시 쉽지 않았다. 미혼모와 달리 미혼부의 경우 자식 입양시 ‘반드시 친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 걸린다는 설명이었다.

한편으론 기훈이는 ‘내 핏줄’이라는 생각이 더 앞섰다. “여자는 제 갈 길 찾아 떠났다지만 저마저 아이를 버리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하지만 미혼부 오씨가 무슨 선택을 하든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할 뿐이다. 그는 “취직할 때는 ‘미혼인데 애 아빠다’고 할 수 없어 늘 속였다”며 “집 안팎에서 안정이 안 되니 영업직과 생산직을 전전하다 금방 그만두곤 했다”고 말했다.

아기를 맡기고 일을 가고 싶어도 맡길 데가 없었다. 오씨는 “미혼모들을 위한 시설은 많은데 저 같은 미혼부를 위한 양육 보조시설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부모님에 얹혀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식당일을 하던 오씨의 어머니는 기훈이 때문에 일도 그만뒀다. “새출발이요? 아예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아이도 딸린 저한테 누가….” 오씨는 인터뷰 말미에 눈시울을 붉히며 “한 가지 소망은 기훈이가 엄마 없이도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서지현기자 s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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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처음도 끝도 화려했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 아시아 청소년 축구의 태양은 박주영(20·고려대) 하나였다.

일본 수비수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붙잡고 밀어도 어느새 빈틈을 찾아 골망을 흔들었다. 또다시 2골. 4게임에 나서 무려 9골(1어시스트)이다. 일본이 ‘괴물’이라고 자랑하던 히로야마 소타(20·쓰쿠바대)는 박주영 앞에서 ‘키만 큰 어린애’였다.

27일 새벽 카타르 도하의 그랜드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8개국 초청 청소년축구대회’ 결승전. 한·일 라이벌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무색했다. 한국의 3-0 완승. 1970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의 5-0 대승 이후 35년 만의 청소년축구 일본전 3골차 이상 승리다.

지난해 10월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준결승에서 1골·1어시스트를 내주며 박주영의 무서움을 봤던 일본. 일본은 박주영을 막아야 이긴다며 전담 마크맨을 붙여 괴롭혔다. 박주영이 전반 7분 만에 골키퍼 니시카와의 선방에 막힌 1 대 1 찬스를 잡자 일본 수비의 견제는 더욱 거칠어졌다.

박주영은 이런 일본 수비에 힘으로 맞서지 않았다. 미드필드로 한발 물러나 볼이 오면 최전방의 김승용·신영록 투톱에게 패스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빈틈이 보이면 갑자기 뛰어들어가며 상대 수비를 괴롭혔다.

전반 41분 터진 첫골의 주인공은 박주영이 아닌 김승용이었다. 김승용은 오른쪽 측면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신영록이 가슴으로 밀어주자 골지역 오른쪽에서 다시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재빨리 왼발로 차넣었다. 박주영에게 쏠려 있던 상대 수비를 완전히 무너뜨린 김승용·신영록의 완벽한 작품. 한국에 막아야 할 선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 일본 수비는 허둥댔고, 박주영의 골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3분 뒤 김승용이 오른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날렸는데 걷어내려던 일본 수비수 나기라가 헛발질을 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박주영은 수비수 3명 사이에서 먼저 오른발로 볼을 차 골망을 흔들었다.

박주영은 후반 11분 빠른 순발력을 자랑하며 한골을 보탰다. 자신의 패스를 받은 김승용의 슛이 수비 발맞고 나오는 것을 오른발로 가볍게 차 넣었다. 일본 수비수 2명이 발을 갖다대려 했지만 박주영처럼 빠르진 못했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중국과의 결승전부터 시작해 5경기째 2골 이상. 이번 대회에서는 경기당 평균 2.25골의 가공할 골잔치를 마감하는 골이었다. 이 골로 63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박인선이 세운 청소년 단일 대회 최다골 기록(8골)도 42년 만에 깨졌다.

청소년 대표팀은 29일과 2월1일 시리아 청소년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펼친 뒤 스페인으로 떠나 다음달 9일 스페인의 명문팀 레알마드리드 2군과 연습경기를 펼친다.

〈김석기자 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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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트라이커’ 이젠 박주영

 

차범근(1970년대)→최순호(80년대)→황선홍(90년대)→박주영?(2000년대)

시대별로 한시대를 풍미한 한국축구의 간판 킬러들이다. 고려대 1년때(71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 79년부터 11년간 독일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 현 수원삼성 감독. 그는 국내보다는 독일에서 훨씬 코리안의 이름을 날렸다. 분데스리가 성적은 308경기 98골.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득점 신기록. 독일 언론은 차범근을 향해 ‘황색폭격기’라는 별병을 붙이며 아시아선수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도 독일 등 유럽에서 ‘차붐’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올드팬들이 적지 않을 정도다.

차범근에 이어 80년대 ‘코리안 킬러’의 바통을 이은 선수는 최순호 포항스틸러스 기술고문.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청소년대표로 활약했던 최고문은 80년에는 성인대표까지 겸했다. 그리고 그해 아시안컵에서 4경기 연속골(7골)을 뽑아내며 당당히 득점왕에 올랐다.

해외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차범근 감독과는 달리 최고문은 청소년 때부터 일찌감치 주목을 받은 ‘될성 부른 떡잎’이었던 셈이다.

90년대 킬러는 단연 황선홍 전남코치다. 88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뒤 94년 아시안게임 득점왕에 올랐고 월드컵 무대는 90년 이탈리아월드컵부터 모두 4차례 출전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에 월드컵 첫승을 안긴 폴란드전 결승골의 주인공. 99년 일본프로축구(J리그) 득점왕(24골)까지 등극, 한국의 힘을 떨쳤다.

2000년대 한국킬러의 계보를 이을 선수는 누굴까. 안정환(요코마하), 이동국(광주)이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한국대표팀을 이끈 간판 공격수. 한국선수 최초로 이탈리아 프로축구(세리에A)를 경험한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때 2골을 넣으며 일약 월드스타로 도약했다. 그리고 98년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한 이동국도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0년 아시안컵에 잇달아 출전하며 2000년대를 이끌 재목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킬러가 되기에는 왠지 부족한 점이 있다.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대표팀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이동국은 2002년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하는 결정적인 결격사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가 막 반환점을 돈 가운데 축구팬들의 눈은 쉼없는 골행진을 벌이는 청소년 킬러 박주영에게 쏠리고 있다. 출중한 실력을 갖춘 박주영은 벌써부터 한국축구의 고질병인 골결정력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약관의 나이지만 벌써부터 대표팀 발탁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는 아직도 5년여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앞으로 2005년 세계청소년대회, 2006년 독일월드컵,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남아공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대회가 변함없이 열린다. 그리고 안정환·이동국·박주영 등 2000년대 한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고자 하는 스타들도 변함없이 그라운드를 누빌 것이다. 누가 과연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킬러가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어린 나이에 믿기 어려운 출중한 기량에다 미래에 대한 무한한 발전 가능성까지 갖춘 박주영이 0순위 후보임에 틀림없다.

〈김세훈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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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억제 단백질 찾았다

 

세포 내에 존재하는 ‘p18’이라는 단백질이 강력한 암 억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국내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서울대 약대 김성훈 교수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규명된 이 연구 결과가 세계적인 과학전문저널 셀(Cell)지 1월호에 실렸다고 27일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세포 내에서 p18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는 쥐의 경우 수정 후 며칠 만에 죽어버렸으며 p18 단백질을 정상쥐보다 절반가량 적게 만드는 쥐들은 성장하면서 림프종, 간암, 유방암, 폐암 등 다양한 암이 발생했다. 이는 p18 단백질이 세포의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또 사람을 대상으로 백혈병, 간암 환자를 분석한 결과 환자의 절반가량에서 p18 단백질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김교수는 “p18은 손상된 DNA를 치유하는 기능을 하고 있어 이 단백질이 부족하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DNA 손상이 축적되어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암발생을 억제하는 p18 단백질을 대상으로 항암제를 발굴, 암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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