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학교 출신이라고 지적받는 것은 불쾌하다. 그러나 그 지적대로 모교가 정말 3류 학교라면 더 불쾌하다. ‘강대국의 흥망’ 등 저서로 잘 알려진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4개국을 ‘거대한 코끼리’로,한국은 이들 코끼리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동물’에 비유한 것도 마찬가지.
주변 4강과 비교해 한국이 훨씬 작다는 뜻임을 잘 알지만 일단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에 연간 수출 2000억달러 규모의 ‘무역 대국’아닌가. 게다가 냉전 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어떤 나라도 꺼뻑 죽는 미국에 당당히 ‘할 말은 좀 하는’ 나라 아닌가. 이런 조국을 뿌듯하게 여기는 이들,특히 누구처럼 ‘앞으로 5∼10년 후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분노마저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냉철하게 따져보자. 우선 OECD 회원국이라고 모두 같은가. 세계 11위의 GDP라도 1위인 미국에 비하면 18분의 1도 채 안 되고 2위인 일본에는 약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실질적으로 국력을 뒷받침하는 군사력은 어떤가. 단적인 예로 주변 4강이 갖추고 있는 이지스함이나 항공모함은커녕 2차대전의 유물인 선령 62년짜리 함정이 아직도 현역으로 운용되는 형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곧 사실을 적시당했기 때문에 ‘작은 동물’이라는 비유가 한층 더 언짢아진다. 그러나 이 같은 비유는 한국을 비하하거나 폄훼한다기보다 우리 속담처럼 ‘고래 사이에 낀 새우’의 처지에서 한국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의 전제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혹시 불쾌하더라도 그 ‘누구’를 비롯한 ‘민족 자존파’는 충분히 유의해야 옳다. 과거 주한 미군의 한 장성이 한국인을 ‘들쥐떼’에 비유했던 것과는 다르다.
즉 13일 개막된 제5회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한 케네디 교수는 한국을 ‘코끼리 틈에 낀 작은 동물’로 전제한 뒤 생존,발전을 위해서는 주위의 코끼리 4마리가 화를 내지 않도록,또 서로 싸우지 않도록 줄다리기를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급속한 탈미(脫美)·친중(親中)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아무런 보장도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미국의 화를 촉발해 한국의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
어찌 보면 미국 학자로서 다분히 미국 편향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분석이다. 탈미·친중은 미국의 개입 여지를 줄임으로써 북한에 의한 생존 위협의 정도를 높일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미·중 관계를 불편하게 해 한국의 생존에 또 다른 위협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신석기 철학(Neolithic Philosophy)’의 희생물로서 가치가 높다. 인류학자 칼턴 쿤 박사가 말하는 ‘신석기 철학’의 요체는 이렇다. ‘너희 양이 우리 마을의 풀을 뜯어먹으면 너희를 죽이겠다. 아니면 우리 양이 먹을 풀을 확보하기 위해 너희를 죽일 수도 있다. 누구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면 죽인다.’
말하자면 아무리 현대인이라도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것을 뺏어야 하고 뺏어도 된다는 석기 시대 원시인들의 사고 방식,이른바 ‘아틸라 증후군’을 기본적 인식의 바탕에 깔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 이에 비추어보면 중국의 동북공정도,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도 신석기 철학에 따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울러 미·중 간의 동북아 패권 다툼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그 한복판에 희생물로서 한국(크게는 한반도)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변치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한국이 주변 강대국들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감상적인 ‘자주’나 섣부른 ‘민족 자존’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열강을 불필요하게 도발하거나 상호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어차피 작은 동물이라면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동물에 맞서기보다 그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는 때로 억울하더라도 감정적·충동적 대응을 자제하는 대신 빈틈없는,고도의 계산만이 필요하다. 이는 작은 동물일지언정 큰 동물들이 쉽게 넘볼 수 없도록 토끼나 양이 아니라 고슴도치가 된다 해도 다르지 않다.
김상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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