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부 2급 정보] ○…“직장이요? 갖고는 싶지만 이 생활에 너무 젖어버려 이제는 일할 자신도 없어요.”
거리의 네온사인이 제법 밝아진 1일 오후 6시30분. 서울 영등포동 롯데백화점 뒤편 어두운 골목안 노숙인 쉼터 ‘샤론하우스’에서 만난 박모(27)씨는 서둘러 영등포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군 제대후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모은 돈을 떼인이후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김씨의 유일한 낙은 영등포역과 그 인근을 돌아다니는 것.김씨는 오후 늦게 일어나 점심겸 저녁을 먹은 후 밤새 영등포역에서 노숙자들과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오전에야 다시 쉼터로 향하는 생활을 1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장기 불황 속에 직업을 구하지 못한 20대 청년들이 최근 스스로 쉼터를 찾는 등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달 31일 밤 8시30분 ‘e-열린공동체’의 거리배식이 진행된 영등포동 롯데백화점 앞. 400여명의 노숙인들이 저녁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줄을 늘어선 가운데 머리에 염색을 한 20대 노숙인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비교적 깨끗한 차림이었지만 어깨를 잔뜩 움추리며 재빨리 밥을 먹고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매주 수?일요일 이곳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박희돈(49) 목사는 “젊은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밥을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20대 노숙자들은 영등포 뿐 만 아니라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있는 서울역이나 을지로,미아리 등 시내 곳곳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
실제로 서울역 노숙인상담소의 경우 9월 상담 노숙인 25명중 20대는 1명(4%)에 불과했지만 10월 들어서는 51명중 8명(16%)으로 증가했다. 영등포역 상담소도 9월엔 43명 중 2명(5%)이었으나 10월 들어서는 26명 중 3명(12%)을 차지했다. 노숙인 지원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20대 노숙자들이 대략 1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 대학 유도학과를 졸업하고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김모(25)씨는 지난 4월 돈을 벌어보겠다며 서울에 올라왔지만 지금껏 마땅한 직업도 없이 영등포역과 ‘드롭인센터(노숙인 임시보호소)’를 전전하고 있다.
스포츠마사지 1급,생활체육지도자 2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다 전공도 유도여서 경호업체 등 여러곳에 이력서를 내기도 했으나 면접 연락조차 없는 사회의 냉냉함에 지금은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다.
김씨는 “가끔 들어오는 건설 노동일을 하기도 하지만 하루 뼈빠지게 일한 일당 5만4000원으로는 자립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거리에 보면 나처럼 노숙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취직을 못해 나왔다고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국민일보 최정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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