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동네 이면도로 네거리에 풀빵 장수 노인이 나와 있다. 방금 전 좌판을 벌인듯 불을 밝혀놓고 분주하게 빵을 굽는다. 할아버지가 굽는 빵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유명 브랜드의 제빵보다도 더 달콤하다. 저녁을 먹고 이슥해져서 동네를 한 바퀴 돌다보면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빵을 굽고 있다.
리어카 한 귀퉁이에 매달아 놓은 비닐 봉지에는 계란 껍데기가 수북하다. 계란 껍질이 많이 모아진 것으로 보아 빵을 꽤 판 듯하다. 빵 장수 할아버지의 가득 차오르는 쓰레기 봉투를 보는 것이 여간 즐겁지가 않다. 어떤 밤에는 할아버지의 쓰레기 봉투를 ‘구경’하러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며칠 전 인천에서 60대 후반의 아버지와 40대의 아들이 탱크로리에서 영업용 액화석유가스(LPG)를 훔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탱크로리 운전경력이 45년인 아버지는 생활이 어려워 며느리가 얼마 전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장사에 필요한 연료를 얻기 위해 고민하는 아들을 보다못해 그는 새벽에 자신이 운전하는 탱크로리에서 아들과 함께 가스를 훔치다 때마침 순찰 중이던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KT의 사내 뉴스포털 게시판이 얼마 전 ‘붕어빵’을 소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이용경 KT 사장이 지난달 중순경 붕어빵 아저씨를 초빙,점심시간에 KT 본사 지하식당 입구에서 붕어빵을 구워 별다른 설명 없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그러자 KT 직원들 사이에서 궁금증이 증폭됐고 사내 게시판에는 다양한 해석들이 올라왔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와 같이 장난기 있는 의견도 있었지만 ‘고객중심으로 체질 개선의 의미를 담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원들의 궁금증이 고조되자 마침내 이 사장이 붕어빵을 나눠준 이유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붕어빵이 제일 맛있는 때가 언제인가. 갓 구워내 따끈따끈할 때 먹어야 가장 맛이 있다. 변화와 혁신도 마찬가지다. 공감대가 형성된 초기에 바짝 이루어내야 한다.”
위의 이야기들에는 마음이 끌리는 ‘화로’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야밤에 풀빵을 구워야 하는 노인의 숨은 내력도 그렇고,가난한 며느리를 위해 연료를 훔쳐야 했던 노인의 드러난 이야기도 그렇다. 거리에서 풀빵을 구울지라도 갓 구워낸 빵과 같이 마음 속에 찰기가 있을 때 우리는 배고프지 않다. 경제난국을 맞은 우리 사회에 21세기의 보릿고개를 넘을 ‘내부의 간절함’이 있는가.
임순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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