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영세민 부부의 다섯살 난 아이가 장롱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행정기관이나 이웃들이 이 가족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18일 오전 11시40분쯤 대구 불로동 김모(38?노동)씨 집에서 김씨의 둘째아들(5)이 안방 장롱 안에 숨져 있는 것을 불로성당 사회복지위원장 구자문(53)씨 등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구씨는 "아이 엄마가 '굶어죽을 것 같다'며 도움을 청해 와 성당 신자들과 함께 김치와 쌀을 갖고 찾아갔다"며 "도착하자마자 장애아로 평소 몸이 아픈 둘째 아이의 안부를 물었더니 김씨가 장롱문을 열어 시신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아이는 심하게 굶주린 듯 발견 당시 전신이 깡마른 상태였다. 김씨의 딸(2)도 영양실조로 아사 직전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가족은 관할 행정기관은 물론 수년간 한 동네에서 생활해 온 이웃들로부터조차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왔다. 김씨 가족은 김씨가 일용직 노동을 통해 매우 어렵게 생활했음에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해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아이를 장애 전문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약 1주일 전 동사무소를 찾아가 '발달 장애아동 등록'을 문의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는 필요한 서류에 대해서만 설명해 줬을 뿐 더이상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어머니(39)는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데도 의료기관으로부터 정신장애 진단을 한번도 받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도 하지 못했다. 동네주민 중에서 김씨 가족에게 기초생활 수급권자 신청이나 장애인 등록에 대해 조언 한마디 해 준 사람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씨 가족은 힘든 노동으로 버는 쥐꼬리만한 수입과 불로성당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쌀 등으로 고단한 삶을 버텨왔다.
특히 숨진 아이는 미숙아로 태어나 누군가가 밥을 떠먹여 주지 않으면 식사를 못할 정도였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 부부는 아이가 지난 16일 경기를 계속하고 밥을 먹지 못했지만 돈이 없어 병원으로 옮기지 못하고 집에서 수지침을 뜨는 등 응급조치만 했다. 그러다 숨을 쉬지 않자 겁이 나 장롱 속에 넣어둔 것으로 밝혀졌다. 누나(8)는 동생이 숨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8년 전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해 3남매를 둔 김씨는 단칸방에 살면서 최근에는 일감을 구하지 못했고,가족들은 매일 하루 한끼는 굶어야 했다. 경찰이 현장을 확인하러 김씨 집에 갔을 때 보증금 100만원,월세 25만원짜리 셋방에는 냉장고가 있었지만 안에는 감기용 물약 2∼3병 외 아무것도 없었다.
대구=김상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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