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배기 박○○군 부모님이 박군의 시신을 확인하러 푸켓에 갔는데 만났나. 그럼 바로 크라비 병원에 모시고 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어린이 시신이 거기 있다니까. 돌아오는 여행객들은 공항까지 앰뷸런스로 이동할 수 있게 조치해.”
29일 오전 11시 태국 푸켓의 현지 직원에게 전화로 지시사항을 숨쉴 틈 없이 쏟아낸 하나투어 최윤수(36)과장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동남아사업부 직원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아침에만 벌써 7번째 회의다. 통신사정이 나쁘고 현지 상황이 급박해 조금만 늦어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는 하루종일 반복된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속에서 실종자 가족 현지 일정과 귀국 여행객 일정을 재확인한 최 과장과 직원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전화통을 붙들고 태국의 한국 공관과 병원 등으로 실종자 생사확인 작업에 매달렸다.
지난 26일 지진해일 발생 직후부터 동남아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여행사 사무실은 사실상 ‘재해대책 상황실’로 바뀌었다. 비상근무체제로 24시간 대기하며 실종자 생사확인,사망자 시신수습,생존자 귀국편 확보 등으로 숨가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실종 및 연락두절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 500명을 넘어서면서 여행사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피말리는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푸켓에 관광객 288명을 보낸 하나투어는 동남아사업부 직원 60명이 총동원돼 전화와 인터넷 메신저로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임원 3명이 현지로 급파됐고,현지 직원 100여명이 병원과 해일 현장을 오가며 부상자 및 시신을 시시각각 확인하고 있다. 지난 나흘간 집에 다녀온 1시간을 빼곤 사무실을 떠나지 않았다는 최 과장은 “지진해일 전날까지 아내와 가족들이 푸켓에 머물다 귀국해 화를 면했다”며 “몸은 힘들지만 피해자 가족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비상근무 직원들은 태국에서 전해오는 소식에 하루하루 희비가 엇갈린다. 사건 직후 사망자 명단에 올랐던 박군이 다른 나라 어린이로 드러나 실종자로 정정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28일 다시 한국인 어린이 시신이 발견돼 사망 가능성이 높아지고 현지 대사관에서 박군 사망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무실은 침통한 분위기로 반전됐다. 한 직원은 “박군 외할머니가 손자를 잃었다는 충격으로 실신해 병원에 입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혼여행 부부 두 쌍이 실종된 모두투어 역시 현지에서 직원 40여명이 사고현장을 다니며 수많은 시신 속에서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푸켓지점 추승균 부장은 “꼬박 사흘을 헤매다 28일 오후 사고현장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던 한국인 여자 여행객 시신을 수습해 유족에게 인도했다”며 “사고 당일부터 한숨도 못잔데다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어서 탈진하는 직원도 속출하고 있다”고 현지상황을 전했다.
엄기영 강준구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