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진해일 진앙과 가까워 최악의 피해를 당한 인도네시아 아체주 지역은 주거지 인프라의 80%가 파괴되고 주요 도시 인구의 20%가 사망했지만 통신과 교통망이 모두 두절돼 외부 구호손길조차 접근을 허락지 않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했다.
본보 취재팀이 동행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구호팀 본진 22명은 30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경유지 싱가포르에 도착했으나 선발대 3명이 다급히 알려온 현지상황을 보고받고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틀 전 먼저 출발한 선발대가 아직도 아체주에 접근하지 못한 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진입 공항이 있는 메단시에 머물고 있다고 전해왔기 때문이다.
메단시는 구호활동 지역으로 계획했던 아체주 주도 반다아체시와 700㎞나 떨어져 있다. 선발대 멤버인 서원석 기아대책 아시아담당 부총재는 본진과의 통화에서 “메단시와 반다아체시 사이 내륙에는 열대우림이 가로막혀 있어 해안가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대부분 해일로 도로가 유실됐고 통신마저 끊겨 접근 가능한 루트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다아체시로 갈 육로가 확보된다 해도 아체 지역에서 활동하는 반정부 게릴라 세력 때문에 사실상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반다아체시로 가는 방법은 항공편이 유일한데 고향에 고립되거나 실종된 가족을 찾아가려는 아체 출신 현지인들이 항공권을 구하려고 공항에 인산인해를 이뤄 항공편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서 부총재는 설명했다.
지난 29일 긴급구호활동을 위해 메단시에 도착한 다른 국가 구호팀들도 아직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 아체 지역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으며,메단시 의료진 10명이 한때 급파됐지만 현지 공항에 내리고도 이동수단 등 의료활동 여건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10여시간 만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메단시 관계자는 선발대에 “반다아체시 피해 상황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전체 시민 40만명의 20% 이상인 8만∼9만명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발대가 취합한 정보에 따르면 반다아체시는 여진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피난행렬이 이어지고 방치된 시신들이 썩어가면서 악취가 진동하는 ‘죽은 도시’로 변했다. 생존자들은 대부분 산악지대로 피신해 도시가 텅 비다시피 했으며 메단시에서 차로 7시간 거리인 록스마웨시에 난민촌이 형성되고 있다. 구호팀이 현지에 진입하더라도 의식주부터 모든 사항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기아대책 구호팀 본진은 긴급대책회의에서 31일 메단시로 이동한 뒤 상황에 따라 1차 구호활동 지역을 록스마웨 난민촌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선발대가 메단에서 만난 반다아체시 출신 피난 여성은 “팔이 부러지고 상처가 곪아가는 수많은 부상자가 소독약조차 없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인은 “다시 집에 돌아가겠냐”는 질문에 “절대로 가지 않겠다”며 울먹였다.
싱가포르=한장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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