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새해는 을유년(乙酉年) 닭의 해다. 닭은 전근대 시대 시공간의 지표였던 십이지(十二支)의 열 번째 동물로 시간(유시·酉時)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로는 음력 8월, 방향으로는 서(西)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에 해당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왔으며,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는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으로 받아들여졌다. 민간에선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버린다고 믿었다.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고 칭송돼왔다. 닭의 벼슬(관·冠)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나타내며,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는 것이다.
닭은 조강, 신조아강, 심흉목, 순계아목, 꿩과, 닭속, 닭종에 속하는 척추동물이다. 현재의 닭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야생하고 있던 들닭이 사육, 개량된 것이며 서기 6~7세기쯤부터 사육되기 시작했다. 인도의 중부 산림지대에 사는 적색야계가 현재 닭의 선조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닭은 사육하기 쉽고 기후·풍토에 대한 적응능력이 강하며 알·고기·관상 등 용도가 많아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는 닭의 종류는 이탈리아 원산으로 알과 고기를 다 식용할 수 있는 백색 레그혼이다.
한반도에서 닭이 언제부터 자생하게 됐는지 확실치 않지만 문헌상 삼한시대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와 ‘삼국지’등의 동이전에 나오는 꼬리의 길이가 5자(척)인 세미계(細尾鷄)가 바로 그것이다. 닭이 본격적으로 한국문화의 상징적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 혁거세와 김알지의 신라 건국신화에서다. 알영이나 김알지 같은 나라 임금이나 왕후가 나타날 때 서조(瑞兆)를 미리 보여주는 새로 닭이 표현돼 있다. 신라와 닭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로 계룡(鷄龍)·계림(鷄林)이나 인도사람들이 신라인을 닭을 숭앙하는 사람들로 부르는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도 닭을 숭배해 무용총 천장에 닭 한쌍이 그려져 있고 인도에서 계귀국으로 불리었다.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단지 안에 수십 개의 계란이 들어 있었고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제물로 쓰인 닭뼈가 발견됐다. 이는 저 세상에 가서 먹으라는 부장식량의 의미와 함께 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이 재생·부활의 종교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고려 때 왕궁에서는 일명계(一鳴鷄)·이명계(二鳴鷄)·삼명계(三鳴鷄)라 하여 각각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인시(寅時)에 우는 닭을 함께 길러 그 시간을 알았을 정도였다. 고려시대에는 닭의 보급이 널리 이뤄졌으며 연말에 집안에 있는 잡귀를 몰아내는 축귀행사인 나례의(儺禮儀)의 공양물로 채택됐다. 각종 문헌이나 문화작품, 설화, 민요 등에 나타나는 닭의 관념은 길(吉)한 것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흉한 것(암탉소리 등)으로 바뀐다.우리 민속에서 닭 울음은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황본풀이’나 김알지 등의 건국신화를 보면 닭울음소리는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태초의 소리였다. 또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時報)의 역할을 하며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도 갖고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 새벽시간은 닭의 울음소리로, 날씨가 흐린 날이나 밤시간은 닭이 홰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시간의 흐름을 파악했다. 유시(酉時)를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로 배치한 것도 닭이 홰에 오르는 시간에 맞춘 것이다.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태양의 새이자 여명과 축귀(逐鬼)의 상징성 때문에 닭그림은 세화(歲畵)로 많이 그려졌다. 호랑이, 용, 개, 사자 그림 등과 함께 정초에 액을 없애고 복을 부르는 의도로 대문이나 출입구에 붙였다. ‘포박자’ 등 중국문헌을 보면 닭을 직접 문에 매달거나 닭피를 대문과 벽에 바르기도 했다.
또 관을 쓴 모습인 닭 볏 때문에 닭은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조선시대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었다. 닭의 볏과 모습이 비슷한 맨드라미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이 함께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또 봄날 갓 깨어난 병아리가 어미 닭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그림은 오복(五福) 가운데 하나인 자식 복을 염원하는 것이었다.
을유년에 일어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는 강원도 철원 도피안사 철저비로자나불상과 3층석탑 조성(865년), 영국함대의 거문도 불법점령(1885년),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광복(1945년) 등이 있다. “닭이 우니 새해의 복이 오고 개가 짖으니 지난해의 재앙이 사라진다”는 덕담처럼 을유년 새해에는 지난해의 불행이 다 사라지고 행복만 가득하기를 기대해본다. 오는 2월28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새날을 밝히는 닭’에 가면 우리 문화에서 닭이 가진 의미와 상징을 살펴볼 수 있다. (도움말: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학예연구관)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